“가연아, 나 교통사고 좀 위장해 줄 수 있어? 사망자는 나로 해서.”노윤슬이 절친 이가연에게 전화를 걸어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전화기 너머로 이가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 고재형 그 자식이 또 너 괴롭혔어?”노윤슬이 고개를 들었다. 고재형의 외도를 목격한 그 순간에 눈물이 이미 다 말라버렸다. 무려 10년 만에 마주한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나 여길 떠나고 싶어. 이제 내가 기댈 곳은 너밖에 없어.”이가연이 두말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보름만 기다려. 우리 오빠가 계약 건 때문에 너의 옆 도시로 갈 거거든. 그때 오빠더러 널 데리고 오라고 할게.”“알았어.”그때 등 뒤로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노윤슬이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크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뒤에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여보, 미안해. 회사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어. 다음엔 꼭 병원 같이 가줄게. 아 참, 오늘 진료 결과는 어때? 의사가 뭐래?”고재형의 말에 노윤슬의 기억이 오늘 오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10년 전 노윤슬이 고재형을 구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었다.고재형은 노윤슬에게 다시 빛을 찾아주기 위해 고현 병원을 설립했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전 세계의 안과 권위자들을 초빙했다. 손상된 시신경을 되살리는 연구에만 수천억 원을 썼다.그 10년 동안 그녀는 매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무려 521번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기적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사실 노윤슬은 진작에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재형이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했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그가 그녀를 설득할 핑계가 하나 더 늘었다.“우리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지 않아? 제발 포기하지 마, 응?”게다가 아들의 매년 생일 소원조차 엄마가 다시 눈을 뜨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재형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들의 얼굴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그 간절한 집념이 노윤슬을 오늘까지 버티게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