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여기사에게 미친 대공님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Chapter 11 - Chapter 20

20 Chapters

11

그는 로젤린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결벽증에 가까운 대공이 땀에 젖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지다니.“흑랑 기사단.”테오도르가 기사들을 향해 선언했다.“오늘부터 기사단의 검술 지도는 대공비가 맡는다. 불만 있는 놈은 지금 나와서 대공비에게 도전해. 이기면 내 전 재산을 주지. 하지만 지면….”그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이번 달 급여는 없다.”“예?!”기사들의 비명 섞인 대답이 울려 퍼졌다. 로젤린은 어이없다는 듯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전하, 제 의사는 안 물어보십니까? 저는 귀찮은 거 싫다고 했을 텐데요.”“3년 뒤에 받을 퇴직금, 두 배로 올려주지.”“콜. 언제부터 하면 됩니까?”로젤린의 즉답에 테오도르는 킬킬 웃었다. '역시 이 여자는 다루기 쉬웠다. 돈과 고기, 그리고 약간의 자유만 주면 최상의 효율을 뽑아낸다.'“당장 시작해. 아, 그리고.”테오도르는 부기사단장을 발로 툭 찼다.“아까 내 아내에게 '첩자' 운운한 놈들. 이름 적어서 집무실로 올려보내. 혓바닥이 너무 긴 것 같아서 좀 다듬어줘야겠어.”로젤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습니다. 제가 교육시키죠. 혓바닥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게 기억에 오래 남으니까요. 다들 집합. 연무장 100바퀴부터 시작한다. 실시!”“실… 실시!”'기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뛰기 시작했다. 로젤린은 뒷짐을 지고 교관 포스로 그들을 감시했다. 테오도르는 그 뒷모습을 보며 묘한 충동을 느꼈다.''강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유일한 존재이자, 자신을 대신해 적들의 목을 물어뜯어 줄 완벽한 검. 갖고 싶다. 단순히 3년 계약이 아니라, 영원히.' 테오도르의 가슴 속에서 비틀린 소유욕이 싹트기 시작했다.---그날 밤. 로젤린은 다시 대공의 침실, 간이침대에 누웠다. 낮의 고된 훈련 탓에 몸이 나른했다.“부인.”침대에서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자십니까?”“아니.”“오늘 기사들 상태가 엉망이더군요. 북부의 방벽이라더니, 기강이 많이 해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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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작의 집무실은 대공의 집무실보다 더 화려했다.“누구… 아, 대공비마마 아니십니까?”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건방지게 인사를 건넸다.“노크도 없이 들어오시다니, 역시 전장 출신이라 예법을 모르시는군요.”“예법 따질 시간 없습니다.”로젤린은 성큼성큼 다가가 책상 위에 낡은 검 한 자루를 쾅 내려놓았다.“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 신성한 집무실에 이런 고철을!”“고철? 그래요, 고철이죠. 당신이 우리 기사들에게 쥐어준 무기가 바로 이 고철입니다.”로젤린은 책상을 짚으며 자작과 눈을 맞췄다.“기사단 장비 교체 예산, 왜 집행 안 됐습니까? 제가 확인해보니 지난 3년간 한 번도 새 장비가 들어온 적이 없더군요.”자작은 코웃음을 쳤다.“부인께서는 살림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기사들 칼 갈아줄 돈이 어디 있습니까?”“굶어 죽어요?”로젤린은 자작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자작님 배를 보니 빈터발트 사람 열 명은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 방에 있는 장식품들만 팔아도 기사단 전원에게 새 검을 맞춰줄 수 있을 것 같은데.”“무례하십니다! 감히 가신에게 이런 모욕을!”자작이 소리쳤다.“저는 선대 대공 때부터 이 가문을 지켜온 충신입니다! 대공 전하께서도 저를 믿고 맡기시는데, 굴러들어 온 돌이 어딜 감히!”“충신이라. 충신이 주인의 군대를 고철 덩어리로 무장시킵니까?”“말이 안 통하는군요. 여자라서 숫자에는 젬병이신가 본데, 가서 자수나 놓으십시오. 성 안 살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자작은 축객령을 내렸다. 로젤린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숫자에 젬병이라….'그녀는 피식 웃었다. '장부 조작이나 횡령 같은 건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었다.'“좋습니다. 알아서 하신다니 두고 보죠.”로젤린은 순순히 물러났다. 자작은 비웃음을 흘렸다.“흥, 계집이 뭘 안다고. 기세만 등등해서는.”'하지만 그는 몰랐다. 로젤린이 물러난 것은 포기해서가 아니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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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황이었다면 즉결 처형감입니다. 군수 물자 횡령은 이적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여긴 전장이 아니니 법대로 하죠.”그녀는 자작을 바닥에 패대기쳤다.“토해내세요. 지금까지 빼돌린 돈 전부. 이자까지 쳐서. 만약 1골드라도 빈다면….”그녀는 귓가에 속삭였다.“그땐 내 검이 자작의 뱃속에 있는 기름기를 직접 확인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까?”“네, 네! 알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다른 분들도 할 말이 남았습니까?”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없으면 이만 하죠. 기사단 장비 교체 건은 승인된 걸로 알겠습니다.”테오도르는 소리 없이 박수를 쳤다.짝, 짝, 짝.“완벽하군.”그는 가신들을 둘러보았다.“들었지? 앞으로 성 내 모든 재정 관리는 대공비가 맡는다. 본 자작은 지하 감옥으로 보내고, 재산은 몰수해. 불만 있는 사람?”“없습니다!”“지당하신 처분입니다!”가신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텅 빈 회의실에 테오도르와 로젤린만 남았다.“수고했어, 부인. 생각보다 더 과격하던데?”“말만 해서는 안 듣는 족속들이니까요.”“예산 권한은 제가 가져갑니다.”“그래, 다 가져가. 어차피 내 돈이 다 당신 돈이지. 그나저나….”테오도르는 휠체어를 움직여 다가왔다.“당신, 제복이 꽤 잘 어울리는군. 드레스보다 훨씬 더.”“마담이 신경 좀 썼더군요. 활동하기도 편하고.”“섹시해.”로젤린은 흠칫했다.“그런 농담은 재미없습니다.”“농담 아닌데. 아까 자작 멱살 잡을 때, 솔직히 좀 흥분했어.”“전하 취향이 그쪽이신 줄은 몰랐군요.”“그럴지도. 당신 한정으로.”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덕분에 머리도 안 아프고, 속도 시원하고. 최고의 아침이야. 상이라도 줘야겠어. 뭐 갖고 싶은 거 없나?”“돈은 이미 챙겼고, 고기도 먹었고…. 딱히 없습니다.”“욕심 없는 여자라니까. 그럼 이건 어때?”그는 작은 열쇠 하나를 건넸다.“이게 뭡니까?”“빈터발트 영지 외곽에 있는 온천 별장 열쇠야. 주말에 같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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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의 관리인이 허둥지둥 달려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대공 전하, 그리고 비전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온천수는 가장 뜨겁게 데워 놓았습니다.”“안내는 됐다. 우리끼리 조용히 있고 싶으니 물러가 있어. 식사는 문 앞에 두고 가고.”테오도르는 관리인을 물리고 로젤린을 이끌었다. 별장 내부는 따뜻했다. 바닥에는 털가죽이 깔려 있었고,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방은 두 개입니다. 전하께서 오른쪽, 제가 왼쪽을 쓰면 되겠군요.”로젤린이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테오도르는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벌써부터 선 긋기인가?”“계약 준수입니다. 물에는 따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알았어, 알았다고.”테오도르는 두 손을 들며 항복 표시를 했다.“탕은 뒤편 노천탕과 실내탕이 연결되어 있어. 나는 실내를 쓸 테니 부인은 노천탕을 써. 경치 구경도 할 겸.”“배려 감사합니다.”로젤린은 망설임 없이 욕실로 향했다. 테오도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철벽이군. 하지만 그 철벽을 무너뜨리는 게 또 재미지.'***노천탕은 환상적이었다.검은 바위로 둘러싸인 탕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그 너머로는 끝없는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는 쏟아질 듯한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로젤린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알몸을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서둘러 뜨거운 물 속으로 몸을 담갔다.“으어….”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뜨거운 온천수가 얼어붙었던 근육과 뼈마디를 녹여주는 것 같았다. 7년 묵은 피로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그녀는 바위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조용하다.''비명도, 쇠 냄새도, 죽음의 공포도 없는 완벽한 평화.''이런 게 안식인가.'로젤린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물에 젖은 흉터들이 달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오른쪽 어깨의 화살 자국, 복부를 가로지르는 칼자국, 허벅지의 화상 흔적.예전에는 이 흉터들이 부끄러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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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걱정해서 뛰어든 그 무모함도.”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수증기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두 사람 사이의 텐션 때문인지 공기가 끈적해졌다. 테오도르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로젤린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약 위반이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애처로워 보였다.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 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섞였다.“전하.”로젤린이 작게 속삭였다.“계약, 잊으셨습니까.”테오도르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픽 웃으며 이마를 로젤린의 이마에 콩 하고 맞대었다.“기억하고 있어. 빌어먹을 계약.”그는 아쉬운 듯 입술을 떼지 않고 속삭였다.“하지만 부인. 계약서에 '치료를 위한 접촉'은 허용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이건 치료 범위를 넘은 것 같은데요.”“아직 아파. 심장이.”테오도르는 뻔뻔하게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여기가 계속 욱신거려. 당신이 더 가까이 와야 나을 것 같아.”그는 로젤린을 끌어당겨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로젤린의 눈이 커졌다. 물속에서 밀착된 하반신을 통해 그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상태가 아니었다.“전하, 이건….”“쉿. 남자의 생리현상이야. 건강해졌다는 증거니 기뻐해 줘.”테오도르는 짓궂게 웃으며 로젤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조금만. 조금만 이러고 있자. 더 이상은 안 할 테니까.”그는 로젤린을 안은 채 가만히 숨을 골랐다. 그의 뜨거운 체온과 규칙적인 심장 박동이 로젤린에게 전해졌다.로젤린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테오도르의 등을 감싸 안았다. 앙상했던 등뼈에 제법 살이 붙어 있었다.'따뜻하다.'그녀는 눈을 감았다. 빈터발트의 겨울은 춥고 혹독했지만, 적어도 오늘 밤, 이 온천 안에서만큼은 봄보다 더 따뜻했다.***다음 날 아침.두 사람은 퉁퉁 불은 눈으로 마주 앉았다. 밤새 물속에서 껴안고 있느라 잠을 설친 탓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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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목이 투구 깃털처럼 날아갈 겁니다. 알겠습니까?”“이, 이건 공무 집행 방해….”“공무? 내 눈에는 노상강도질로 보이는데. 황족을 능멸한 죄로 여기서 목을 베어도 황제 폐하께서는 할 말이 없으실 텐데?”로젤린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殺氣)는 진짜였다. 수많은 적을 베어 넘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압도적인 기세.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근위대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근위대장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저, 전원… 차렷! 경례!”결국 그는 꼬리를 내렸다. 근위대 병사들이 허둥지둥 길을 열고 경례를 붙였다.“통과!”로젤린은 검을 우아하게 집어넣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출발해.”마부의 채찍 소리와 함께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근위대장은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주저앉았다.'괴물… 저건 진짜 괴물이야.'마차 안.테오도르는 턱을 괴고 로젤린을 바라보고 있었다.“멋지네, 내 아내.”“칭찬은 나중에 하십시오. 이제 시작이니까요.”로젤린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화려한 수도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탐욕과 음모가 보였다.'황제 알렉산드로 3세. 기다리십시오. 당신이 버린 녹슨 검이, 얼마나 날카롭게 돌아왔는지 보여드릴 테니.'마차는 황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늑대는 숨통을 끊기 전까지 이빨을 보이지 않는다수도의 빈터발트 저택은 본성 못지않게 웅장했으나, 로젤린에게는 그저 또 다른 감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은 감옥의 죄수가 아니라, 사냥꾼이 되어야 했다.“준비는 끝났나?”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젤린은 거울 앞에서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뒤를 돌았다.그녀를 본 테오도르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에 선명하게 울렸다.마담 퐁파두르는 천재가 분명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드레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갑옷이자,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무기였다.칠흑 같은 검은색 벨벳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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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위에는 제국의 주인, 알렉산드로 3세가 앉아 있었다. 그는 와인 잔을 든 채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그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초라하고 망가진 로젤린, 그리고 병석에 누워 오늘내일하는 테오도르. 그 비참한 꼴을 보며 자신의 자비심을 과시하고, 로젤린을 다시 자신의 장기말로 삼으려 했다.그런데 저 당당한 모습은 뭐란 말인가.게다가 테오도르가 걷고 있다? 첩보에 의하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다고 했는데.“빈터발트의 주인, 테오도르 폰 빈터발트. 제국의 태양, 폐하를 뵙습니다.”“로젤린 드 칼리스 빈터발트. 폐하를 뵙습니다.”두 사람은 정중하게, 그러나 비굴하지 않게 예를 갖췄다. 알렉산드로 3세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입꼬리를 올렸다.“오, 빈터발트 대공. 그리고 칼리스 경. 아니, 이제는 대공비라고 불러야겠군.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황제의 목소리는 인자했으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소문에는 대공의 건강이 위독하다고 하여 짐이 밤잠을 설쳤는데, 이렇게 두 발로 걸어오다니. 기적이 일어난 모양이오?”“폐하의 염려 덕분에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게다가.”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입술에 가볍게 대었다.“제 아내의 내조가 워낙 훌륭해서 말입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병이 씻은 듯이 낫더군요.”'내조라.'황제의 시선이 로젤린에게 꽂혔다. 탐욕과 아쉬움이 섞인 끈적한 시선이었다.“북부의 전장은 험한 곳이지. 그곳에서 구르던 손으로 내조라니, 대공은 비위가 참 좋구려.”황제는 농담인 척 로젤린을 깎아내렸다. 주위의 귀족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역시 천박한 기사 출신'이라는 비웃음이었다.로젤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황제를 응시했다.“전장에서 구르던 손이라 거칠기는 합니다만, 그 손으로 벤 적의 목이 수천입니다. 덕분에 폐하께서 이곳에서 편안하게 와인을 드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연회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감히 황제의 말에 말대꾸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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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춤 같은 거 못 춥니다. 검무라면 모를까.”“검무라고 생각해. 스텝은 내가 리드할 테니, 당신은 나한테 몸을 맡기기만 하면 돼. 나를 믿어.”테오도르의 눈빛이 진지했다. 로젤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잔을 내려놓고 그의 손을 잡았다.“발 밟아도 모릅니다.”“상관없어. 당신이라면 발등이 으스러져도 좋으니까.”두 사람은 홀 중앙으로 나아갔다.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집중되었다. 괴물 공작과 도살자 대공비의 춤이라니. 모두가 우스꽝스러운 꼴을 기대했다.하지만 음악이 시작된 순간, 그 기대는 산산이 조각났다.쿵, 짝, 짝.테오도르의 리드는 완벽했다. 그는 로젤린의 허리를 단단하게 받치고, 물 흐르듯 그녀를 이끌었다. 로젤린 역시 천부적인 운동 신경을 가진 소드 마스터였다. 처음에는 뻣뻣했지만, 금세 리듬을 타고 테오도르의 스텝에 맞췄다.그들의 춤은 부드러운 왈츠라기보다는, 치열한 탱고나 대련에 가까웠다.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회전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힘과 긴장감이 넘쳤다. 검은 예복과 검은 드레스가 엉켜 돌아가는 모습은 마치 밤하늘의 폭풍우 같았다.“당신, 꽤 잘하는데?”“전하의 리드가 훌륭해서겠죠.”로젤린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턴을 할 때마다 그녀의 드레스 자락이 휘날리며 다리의 곡선을 드러냈다. 테오도르의 손이 그녀의 파인 등을 훑어 내렸다. 흉터 위를 지나가는 손가락의 감촉에 로젤린의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전하.”“보라고 해. 내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테오도르는 로젤린을 확 끌어당겨 가슴을 밀착시켰다.“로젤린, 기억해. 이 연회장의 누구도 당신을 비웃을 자격 없어. 당신은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검이고, 나의 유일한 안식처니까.”그의 속삭임이 음악 소리에 섞여 귓가에 파고들었다. 로젤린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심장이 춤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뛰고 있었다.'이 남자, 위험하다.''전장의 적보다, 황제의 음모보다 더 위험하다. 내 마음의 방벽을 허물고 들어오려 한다.'음악이 클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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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 타자마자 테오도르가 무너지듯 로젤린을 덮쳤다. 좁은 마차 안,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섞였다.“로젤린… 안아줘. 더 세게.”그는 어린아이처럼 매달렸다. 고통에 찬 신음과 갈구. 로젤린은 그를 품에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괜찮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그녀의 손길에 따라 테오도르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열기가 너무나 뜨거웠다.'이 밤, 제국의 심장부에서 가장 위험하고 은밀한 치료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밤이 지나면 소문은 날개가 된다달리는 마차 안은 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 같았다. 창밖에는 화려한 수도의 가로등 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두꺼운 벨벳 커튼이 쳐진 마차 안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그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얽혔다."하아… 윽…."테오도르는 로젤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황제와의 대치로 인해 폭주하기 시작한 마력이 혈관을 타고 날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안에서부터 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하지만 로젤린과 닿아 있는 부분만큼은 시원했다.그녀의 서늘한 체온이 닿을 때마다, 날뛰던 마력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테오도르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과,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소유욕이 뒤섞여 이성을 흐릿하게 만들었다."로젤린… 가지 마. 계속… 계속 안아줘."그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평소의 냉철하고 오만한 대공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로젤린은 그런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한 팔로 그의 등을 감싸 안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안 갑니다. 여기 있으니 진정하십시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심장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좁은 마차 안, 남자의 뜨거운 숨결, 그리고 옷 위로 전해지는 단단한 근육의 감촉. 아무리 치료 목적이라 해도 묘한 긴장감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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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손님방이라니까요. 여기는 수도 저택이고, 방은 넘쳐납니다. 굳이 좁게 같이 잘 필요 없지 않습니까.""누가 그래? 방 없어.""네?""내가 오기 전에 지시해뒀거든. 이 저택의 모든 침구류를 세탁하라고. 그래서 지금 쓸 수 있는 침대는 여기 하나뿐이야."거짓말이 명백했다. 로젤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전하. 유치한 수작 좀 그만 부리십시오.""수작이라니. 나는 그저 내 진통제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싫을 뿐이야. 오늘 황제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봤잖아. 밤사이에 또 발작하면 어떡해? 그때는 당신이 달려와도 늦을지 몰라."테오도르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로젤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늘 그의 발작은 심각했다. 만약 자신이 곁에 없었다면, 그는 지금쯤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지도 모른다.'젠장. 약점 잡혔군.'로젤린은 결국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쳤다."알겠습니다. 대신 침대 반 딱 나눠서 넘어오지 마십시오. 넘어오면 발로 찹니다.""걱정 마. 내 다리는 소중하니까."테오도르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침대 안쪽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그날 밤, 수도의 저택 침실은 고요했다. 로젤린은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잠들지 못했다.그는 달빛에 비친 로젤린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감은 눈, 긴 속눈썹, 그리고 살짝 벌어진 입술."미치겠군."테오도르는 마른세수를 했다.몸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다른 의미의 열기가 그를 괴롭혔다. 그녀를 안고 싶다. 만지고 싶다. 단순히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여자를 원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참았다.지금 욕망을 드러냈다가는 그녀가 도망칠지도 모른다. 그녀는 경계심 많은 야생동물과 같아서, 천천히 길들여야 했다."기다려, 로젤린. 네가 제 발로 내 품에 안길 때까지."그는 조심스럽게 로젤린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침.수도 엘라도르는 간밤의 연회 이야기로 들끓었다.[충격! 빈터발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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