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7년의 전쟁 끝에 제국에 승리를 안겼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과 토사구팽이었다. 흉터투성이 기사, 제국의 사냥개 로젤린 드 칼리스. 황제는 쓸모가 다한 그녀를 괴물이라 불리는 빈터발트 대공에게 팔아넘겼다. "죽어가는 대공을 간호하다 적당히 미망인이 되어 은퇴하려고 했는데." 저주받은 괴물이라던 남편이 조금 이상하다. 피도 눈물도 없다던 남자는 내 손길 한 번에 짐승처럼 가쁜 숨을 내뱉으며 매달리고, 남들이 징그럽다 비웃던 내 상흔에 입을 맞추며 속삭인다. "당신의 이 상처는 흉측한 게 아니야. 제국을 구한 훈장이지." 밤마다 발작하는 그의 마력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 어느새 그는 나를 치료제 그 이상으로 갈구하기 시작했다.
View More수만의 기사들은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일제히 무기를 바닥에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주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 안으며 그녀의 뺨에 고인 땀방울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두 사람의 영혼 동기화 사슬을 통해, 오랜 복수와 사투를 끝낸 직후의 깊은 해방감과 안도감이 뜨겁게 교류되었다."끝났군, 로젤린.""네, 전하. 이제 정말로 끝났습니다."로젤린은 비검을 검집에 단단히 집어넣으며 입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생을 피비린내 속에서 방황했던 그녀에게, 마침내 그 어떤 어둠도 침범할 수 없는 영원한 낙원이 완성된 것이었다.---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다.제국의 황궁은 부패한 세력들이 완전히 청소된 이후, 빈터발트 대공가의 엄격하고 공정한 가호 아래 새로운 번영의 기틀을 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와 로젤린은 수도의 화려한 왕좌에 머물지 않았다.그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고향이자 구원의 시작점이었던 북부의 대공성으로 완전히 귀환했다.북부의 봄날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청량했다. 가문의 저주가 완전히 박멸된 이후, 동토라 불리던 영지 곳곳에는 푸른 새싹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대공성 중앙의 푸른 정원.테오도르는 집무복 대신 편안한 셔츠
수만의 기사들이 본능적인 극한의 공포를 느끼며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대공 부처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격의 위압감은, 기사들의 오라와 정신 회로를 세포 단위로 압착하여 단 한 걸음의 전진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멜키오르 황태자 역시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성벽 난간을 잡은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테오도르는 성벽 위의 멜키오르를 차갑게 올려다보며 오른손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사내의 은빛 머리칼이 백금빛 폭풍 속에서 거대하게 휘날렸다."멜키오르, 네놈이 감히 내 낙원을 넘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사내의 냉혹한 사형 선고와 함께, 황궁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백금빛 화염의 전조가 제국의 심장부 한가운데에서 잔혹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원한 낙원의 서막황궁 연병장을 가득 메운 3만 대군의 침묵은 기괴하리만치 무거웠다.하늘을 깨부수고 강림한 테오도르의 백금빛 권능 앞에 제국 최고의 기사들이라 자부하던 이들은 단 한 자락의 검기조차 발산하지 못했다.그들이 쥔 검날은 보이지 않는 신격의 위압감에 짓눌려 파르르 비명을 질렀고, 군마들은 지면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거품을 물었다.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황태자 멜키오르는 황금 철갑 내부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지독한 오한과 공포가 그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쫓았던 황권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이, 저 아래에 서 있는 은빛 머리칼의 사내 앞에서
* 제국의 심장을 향한 진군대공성 전체를 감싸고 있던 차가운 눈보라가 일시에 걷히며, 북부의 하늘위로 찬란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가문의 오랜 비극이었던 용의 저주가 완벽하게 소멸함과 동시에, 빈터발트 영지를 위태롭게 흐르던 지맥의 뒤틀림 역시 대공 부처의 백금빛 마력에 순응하며 명징한 안정을 되찾은 것이었다.그러나 성 내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고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황궁으로 향하는 모든 출입로와 연성 마법진 주변에는 칠흑 같은 대공가 직속의 정예 기사단이 일렬로 늘어서서 검날을 서늘하게 벼리고 있었다.황태자 멜키오르와 부패한 귀족 세력들이 대공가의 공백을 노리고 북부 전역에 은밀하게 심어두었던 세작들과 암살단은, 테오도르가 귀환한 지 단 반나절 만에 흔적도 없이 색출되어 대공성 앞마당에서 가차 없이 목이 잘렸다. 영지 내부의 위협을 단 한 자락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청소한 완전한 숙청이었다.테오도르는 집무실 중앙에 길게 펼쳐진 제국 수도의 전략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의 투명한 은빛 머리칼 끝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백금빛 화염 파편들이 허공을 부유하며 사방의 대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머릿속을 가끔씩 헤집던 환청과 광기의 유령들이 완벽하게 사라진 지금, 사내의 판단력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정교하게 회전하고 있었다.붉은 빛 눈동자에는 일국의 군주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다운 오만함과, 자신의 가족을 건드린 야수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잔혹한 집념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로젤린은 품에 아기 엘리시아
테오도르는 로젤린의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사내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을 채웠다."로젤린, 황궁으로 진군하기 전에 먼저 대공성으로 돌아가 영지를 안정시켜야겠어. 가문의 저주가 정화되면서 북부 전체의 지맥 흐름이 크게 뒤틀렸을 거다. 영지민들을 불안하게 둘 수는 없지.""네, 전하. 멜키오르의 세력들이 대공성 주변에도 마수를 뻗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내부의 위협을 완벽하게 청소하고, 북부의 군세를 정비하여 황궁의 정적들을 단숨에 짓밟아야 합니다."두 사람의 의견은 단 한 자락의 어긋남이 없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영혼의 동기화 사슬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불필요한 조율은 사치에 불과했다.테오도르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우웅. 대성당 입구 주변에 흩어져 있던 대공가 직속의 전이 마법진들이 백금빛 화염을 머금으며 찬란하게 깨어나기 시작했다.가문의 저주를 끝낸 테오도르의 권능은 제국 전역에 설치된 빈터발트 고유의 공간 좌표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가자, 로젤린. 우리의 영지로.""네, 전하."두 사람의 신형이 백금빛 마력 폭풍 속으로 부드럽게 흡수되며 설원 위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그 시각,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거대한 황궁의 집무실.황태자 멜키오르는 화려한 황금빛 의자에 오만하게 기댄 채, 눈앞에 펼
“여주인을 능멸하는 건 나를 능멸하는 것과 같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네 목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알겠나?”“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마르타는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하녀들도 벌벌 떨었다. 로젤린은 고기를 씹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지.'로젤린은 착각하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로젤린을 아껴서 화를 낸 게 아니다. 자신의 '소유물'인 로젤린이 무시당하는 것이 곧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다. '하지만 뭐, 나쁘지 않네
테오도르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하하하! 걱정 마. 내 취향은 당신처럼 뻣뻣하고 흉터 투성이인 여자가 아니니까. 안심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그럼, 계약 성립이군요.”로젤린이 잡고 있던 손을 흔들며 말했다. 테오도르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잘 부탁해, 나의 안식처.”그 말이 묘하게 로젤린의 가슴을 울렸다. '안식처. 평생 전장을 떠돌던 자신이 누군가의 안식처가 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똑똑.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하녀들이 들어왔다. 가장 앞에는 은발
* 사냥개에게는 목줄이 필요하다대공의 집무실에는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의 장작 소리와, 째깍거리는 괘종시계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로젤린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었다.'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손등에는 자잘한 흉터들이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귀족 영애의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을 죽이는 손.'하지만 그 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청명했다. 마치 뼛속을 갉아먹는 구더기 떼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
“차라도 한잔하지. 부인의 그 땀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을 해서 비위를 상하게 하니, 씻고 오는 게 좋겠어.”“초대 감사합니다. 그런데 씻을 물이 없어서요. 하녀들이 제 방을 잊어버린 모양입니다.”로젤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테라스에 남은 테오도르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물이라….'그의 손가락이 휠체어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로젤린이 안내받은 곳은 테오도르의 집무실이었다. 벽면 가득 꽂힌 고서들, 바닥에 깔린 최고급 털카펫,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 그녀가 묵는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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