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군의 딸, 사랑을 담다. : Chapter 1 - Chapter 4

4 Chapters

1화 "불이야!"

1506년 가을,임금이 폐위되던 밤, 그의 핏줄도 함께 사라져야 했다.후.후. 거친 숨결이 턱밑까지 올라왔다.최나인은 생전 이토록 큰 불을 본적이 없었다. 자시인데도 번지는 불길에 사방은 대낮처럼 빛났고 뒤엉킨 고함소리에 궁궐은 쑥대밭이었다.자선당(연산군의 침소)을 벗어나니 다행히도 금군의 고함소리는 조금씩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채 겁에 질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를 안고 뛰다보니 더 이상 맏다리(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그때였다.“거기 누구냐?”수색 중에 있던 금군 하나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최나인 쪽으로 다가왔다. 최나인은 잽싸게 행각 창고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행각까지는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창고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지난 번 행각을 증축한 이후로 버려졌던 창고였던 터에 곰팡이 냄새와 쥐똥 썩는 냄새가 섞여 자연스럽게 토악질이 나왔다.‘참아야 해’최나인은 죽을 힘을 다해 숨을 참고 서서히 내쉬었다. 거칠게 터져 나오려는 숨을 억누르며 가마니 사이로 몸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볏짚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횃불을 든 군졸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서벅 서벅‘아 이렇게 끝나는구나.’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창고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뭐하는 게냐?”“예, 나으리, 창고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하여……."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탄지간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품 안의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잠결에 무언가 불편한지, 아이의 작은 입술이 달싹거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실룩였다.‘안 돼, 제발…….’“아무도 없지 않느냐? 자 빨리.. 시간이 없다. 주상을 추포하는 것이 먼저다. 자선당으로 빨리 가자!”“예!”두 횃불을 든 금군이 사라지자 창고는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였다.“하아.”이제야 최나인은 숨이 쉬어졌다.“유모.. 엄마”이제 몇마디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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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불길 속의 이별

“계십니까? 안에 혹시 계십니까? 좀 도와 주십시오!.”최나인이 집주인을 애타게 불렀다.만석이 집 마당에 나오자 안에 강보를 힘겹게 안고 발을 질질 끌며 들어 오는 최나인을 보았다. 한 쪽 팔은 피가 흥건한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나인 쪽 대체 이게 어쩐 일이오? 팔은 어쩌다가…”“지금 궁에 변고가 났습니다. 큰 일이 난 거 같아요. 궁이 불타고 있어서…몸만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일단 어서 들어 오시오! 어서!”만석은 십여 년 전 궁의 빨래를 하러 시냇가에 온 최나인을 처음 보고 한 눈에 연모했던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해 냈다.“내가 저기 까지만 들어 드리겠소.”물을 먹어 무게가 배 이상으로 늘어난 갓 빤 빨래통을 만석은 번쩍 집어 들었다.“아닙니다. 제가 하면 됩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당황하는 최나인에게 만석이 투박하게 건넸다.“아무도 없지 않소! 저짝 까지만 옮겨 줄 테니 염려 마시오.!”그 후 최나인은 빨래감을 가지고 동무들과 함께 왔다. 멀치감치 만석은 그런 최나인을 아스라이 바라보곤 했다. 키울 수 없는 연모의 감정에 가슴이 매였다. 최나인이 돌아가면 만석은 시내로 내려가 빨래를 펼 수 있는 좀 더 넓고 평평한 돌덩이를 골라 옮겨 놓곤 했다.그리고 이제 눈 앞에 최나인과 조우를 하게 되었지만, 반가워 하기엔 상황이 너무나도 급박했다. “나인 쪽 팔은 어쩌다 그리 된 것이오? 그리고 이 아이는…..”만석은 당황스러움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서로 교차하며 최나인에게 물었다.“궁 밖으로 빠져 나오다 좀 다쳤어요. 아이는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이가 마실 물을 좀 내주실 수 있나요?”만석이 물을 내주며 최나인에게 말했다.“아무래도 나인 쪽 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소. 이리 내보시오.”“아. 전 괜찮습니다.”“무슨 말이오? 피가 계속 나는 것 같구만.. 어서”방 안은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겨우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만석은 거친 손으로 대야의 물을 짜내어 최나인의 곁으로 다가앉았다.“이리 내보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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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살아 남은 아이

반시가량 걸었을까? 드디어 어렴풋이 집의 형태가 보였다. 만석이 말한 그 집으로 보였다. 최나인이 조심스레 사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단촐한 초가집이었다. 방문을 열어 보니 텅 비어있었다. 부엌에 나와보니 다행히 한켠에 해 놓은 뗄감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우선 불을 피우자. 불을 피워야 애기씨가 고뿔이 들지 않을 거야!’생각시 시절 배워둔 기술로 최나인은 금방 불을 피울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 강보를 안은 채 몸을 움츠렸다.새벽 암탉이 울고 동이 틀 무렵 유모는 우선 은신하고 있는 초가집 뒤편 나물 거리가 있는지 둘러 보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등성이는 잡풀과 가시가 달린 나무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그래도 맏다리(허벅지)에 힘을 주고 감다리(종아리)가 후들 거리며 등성이를 조금 오르니 참취가 살포시 돋아 있는 곳이 있었고 머루도 보였다.‘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거라도 뜯어가서 오늘 요기를 떼우고 내일은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도 얻어오고 일감도 있는지 알아봐야겠다.’희망이 생기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다음날 아침 일찍 최나인은 아직 쎄근거리며 자고 있는 영수를 뒤로 한 채 마을로 내려갔다.“저 죄송하지만 밥알이라도 좀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뭐야 이거, 아침부터 재수없게.”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지만 녹록치 않았다.“휴우, 장터 쪽으로 가는게 나으려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함에 배고픔도 잊고 있을 때 한 아낙이 말을 걸어 왔다. “이 동네 사시우?”“아. 저는 저 위쪽에 조카랑 살고 있어요.”“보아하니 동냥을 하는 중인 거 같은디 내가 부엌에서 누룽지를 좀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게.”“예? 아 정말 고맙습니다.”“지난 밤 제사 때 올렸던 수육도 몇 점 가져왔소. 조카에게 가져다 주시구려. 조카는 몇살이요?"“네? 다섯살이요.”“아이고 아직 젖먹이구만. 그래, 부모가 일찍 죽었소?”“아 예? 예예 저.. 혹시 제가 삯을 받을 만한 곳이 필요한데... 예전에 빨래랑 바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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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기억하는 눈

최나인의 손을 잡고 내려온 장터는 소란스러웠다.낯선 웃음소리, 낯선 냄새, 낯선 사람들.영수는 그저 신기했고 즐거웠다. 궁에서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강녕전 앞 넓은 뜰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수많은 무희와 손님들이 어우러지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다시금 흥겨운 웃음소리와 노랫가락이 귀에 스며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형형색색의 노리개도 구경하고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는 호박엿도 맛보았다. 줄타기와 인형극을 보면서 영수는 탄성을 질렀다. 최나인 외에는 마을 그 누구도 영수의 존재를 몰랐다. 한 해가 급류처럼 순식간에 흘러갔다. 조정은 이제 연산군의 흔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새로운 임금 아래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래? 찾았느냐?”“예 대사헌대감. 화성근처 한 초가집에 1년 전쯤 갑자기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여자와 네다섯 살 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녀지간처럼 보이지 않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합니다.”“그래? 시기랑 나이가 모두 비슷하구나. 그 둘만 시체를 찾지 못했는데 하늘로 솟았을리도 땅으로 꺼졌을리도 없지. 계속 감시하고 더 확실한 증좌를 찾게 되거든 지체 없이 보고하거라. 알겠느냐?”“예 나으리, 하온데... 그들이 누구이옵니까?”“아이는 연산의 자식이고 나이든 여자는 그 아이를 보호하는 궁녀이다.”“예? 그것이 사실이옵니까?”“그렇다. 도를 멀리하는 임금은 폭군이 되고 그로 인해 백성이 고통을 받고 결국에는 나라가 혼란스러워 진다. 폭군의 씨앗은 자라나 주변을 어지럽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숙주가 되느니라. 나는 그것을 애초에 제거하려 한다.”“그렇다면……”“확실한 증좌가 있다면 은밀히 처리해도 된다. 나는 아이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대를 위하여는 친족도 내쳐야 하는 법, 나는 오로지 반정을 과거에 묻고 조선이 태평성대를 이루기 원하는 것이니라.”"나으리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곧 소식 올리겠나이다."인사를 올린 종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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