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딸, 사랑을 담다. 》全部章節:第 1 章 - 第 10 章

30 章節

1화 "불이야!"

1506년 가을,임금이 폐위되던 밤, 그의 핏줄도 함께 사라져야 했다.후.후. 거친 숨결이 턱밑까지 올라왔다.최나인은 생전 이토록 큰 불을 본적이 없었다. 자시인데도 번지는 불길에 사방은 대낮처럼 빛났고 뒤엉킨 고함소리에 궁궐은 쑥대밭이었다.자선당(연산군의 침소)을 벗어나니 다행히도 금군의 고함소리는 조금씩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채 겁에 질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를 안고 뛰다보니 더 이상 맏다리(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그때였다.“거기 누구냐?”수색 중에 있던 금군 하나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최나인 쪽으로 다가왔다. 최나인은 잽싸게 행각 창고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행각까지는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창고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지난 번 행각을 증축한 이후로 버려졌던 창고였던 터에 곰팡이 냄새와 쥐똥 썩는 냄새가 섞여 자연스럽게 토악질이 나왔다.‘참아야 해’최나인은 죽을 힘을 다해 숨을 참고 서서히 내쉬었다. 거칠게 터져 나오려는 숨을 억누르며 가마니 사이로 몸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볏짚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횃불을 든 군졸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서벅 서벅‘아 이렇게 끝나는구나.’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창고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뭐하는 게냐?”“예, 나으리, 창고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하여……."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탄지간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품 안의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잠결에 무언가 불편한지, 아이의 작은 입술이 달싹거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실룩였다.‘안 돼, 제발…….’“아무도 없지 않느냐? 자 빨리.. 시간이 없다. 주상을 추포하는 것이 먼저다. 자선당으로 빨리 가자!”“예!”두 횃불을 든 금군이 사라지자 창고는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였다.“하아.”이제야 최나인은 숨이 쉬어졌다.“유모.. 엄마”이제 몇마디 말을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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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불길 속의 이별

“계십니까? 안에 혹시 계십니까? 좀 도와 주십시오!.”최나인이 집주인을 애타게 불렀다.만석이 집 마당에 나오자 안에 강보를 힘겹게 안고 발을 질질 끌며 들어 오는 최나인을 보았다. 한 쪽 팔은 피가 흥건한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나인 쪽 대체 이게 어쩐 일이오? 팔은 어쩌다가…”“지금 궁에 변고가 났습니다. 큰 일이 난 거 같아요. 궁이 불타고 있어서…몸만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일단 어서 들어 오시오! 어서!”만석은 십여 년 전 궁의 빨래를 하러 시냇가에 온 최나인을 처음 보고 한 눈에 연모했던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해 냈다.“내가 저기 까지만 들어 드리겠소.”물을 먹어 무게가 배 이상으로 늘어난 갓 빤 빨래통을 만석은 번쩍 집어 들었다.“아닙니다. 제가 하면 됩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당황하는 최나인에게 만석이 투박하게 건넸다.“아무도 없지 않소! 저짝 까지만 옮겨 줄 테니 염려 마시오.!”그 후 최나인은 빨래감을 가지고 동무들과 함께 왔다. 멀치감치 만석은 그런 최나인을 아스라이 바라보곤 했다. 키울 수 없는 연모의 감정에 가슴이 매였다. 최나인이 돌아가면 만석은 시내로 내려가 빨래를 펼 수 있는 좀 더 넓고 평평한 돌덩이를 골라 옮겨 놓곤 했다.그리고 이제 눈 앞에 최나인과 조우를 하게 되었지만, 반가워 하기엔 상황이 너무나도 급박했다. “나인 쪽 팔은 어쩌다 그리 된 것이오? 그리고 이 아이는…..”만석은 당황스러움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서로 교차하며 최나인에게 물었다.“궁 밖으로 빠져 나오다 좀 다쳤어요. 아이는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이가 마실 물을 좀 내주실 수 있나요?”만석이 물을 내주며 최나인에게 말했다.“아무래도 나인 쪽 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소. 이리 내보시오.”“아. 전 괜찮습니다.”“무슨 말이오? 피가 계속 나는 것 같구만.. 어서”방 안은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겨우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만석은 거친 손으로 대야의 물을 짜내어 최나인의 곁으로 다가앉았다.“이리 내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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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살아 남은 아이

반시가량 걸었을까? 드디어 어렴풋이 집의 형태가 보였다. 만석이 말한 그 집으로 보였다. 최나인이 조심스레 사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단촐한 초가집이었다. 방문을 열어 보니 텅 비어있었다. 부엌에 나와보니 다행히 한켠에 해 놓은 뗄감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우선 불을 피우자. 불을 피워야 애기씨가 고뿔이 들지 않을 거야!’생각시 시절 배워둔 기술로 최나인은 금방 불을 피울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 강보를 안은 채 몸을 움츠렸다.새벽 암탉이 울고 동이 틀 무렵 유모는 우선 은신하고 있는 초가집 뒤편 나물 거리가 있는지 둘러 보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등성이는 잡풀과 가시가 달린 나무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그래도 맏다리(허벅지)에 힘을 주고 감다리(종아리)가 후들 거리며 등성이를 조금 오르니 참취가 살포시 돋아 있는 곳이 있었고 머루도 보였다.‘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거라도 뜯어가서 오늘 요기를 떼우고 내일은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도 얻어오고 일감도 있는지 알아봐야겠다.’희망이 생기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다음날 아침 일찍 최나인은 아직 쎄근거리며 자고 있는 영수를 뒤로 한 채 마을로 내려갔다.“저 죄송하지만 밥알이라도 좀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뭐야 이거, 아침부터 재수없게.”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지만 녹록치 않았다.“휴우, 장터 쪽으로 가는게 나으려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함에 배고픔도 잊고 있을 때 한 아낙이 말을 걸어 왔다. “이 동네 사시우?”“아. 저는 저 위쪽에 조카랑 살고 있어요.”“보아하니 동냥을 하는 중인 거 같은디 내가 부엌에서 누룽지를 좀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게.”“예? 아 정말 고맙습니다.”“지난 밤 제사 때 올렸던 수육도 몇 점 가져왔소. 조카에게 가져다 주시구려. 조카는 몇살이요?"“네? 다섯살이요.”“아이고 아직 젖먹이구만. 그래, 부모가 일찍 죽었소?”“아 예? 예예 저.. 혹시 제가 삯을 받을 만한 곳이 필요한데... 예전에 빨래랑 바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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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기억하는 눈

최나인의 손을 잡고 내려온 장터는 소란스러웠다.낯선 웃음소리, 낯선 냄새, 낯선 사람들.영수는 그저 신기했고 즐거웠다. 궁에서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강녕전 앞 넓은 뜰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수많은 무희와 손님들이 어우러지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다시금 흥겨운 웃음소리와 노랫가락이 귀에 스며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형형색색의 노리개도 구경하고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지는 호박엿도 맛보았다. 줄타기와 인형극을 보면서 영수는 탄성을 질렀다. 최나인 외에는 마을 그 누구도 영수의 존재를 몰랐다. 한 해가 급류처럼 순식간에 흘러갔다. 조정은 이제 연산군의 흔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새로운 임금 아래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래? 찾았느냐?”“예 대사헌대감. 화성근처 한 초가집에 1년 전쯤 갑자기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여자와 네다섯 살 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녀지간처럼 보이지 않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합니다.”“그래? 시기랑 나이가 모두 비슷하구나. 그 둘만 시체를 찾지 못했는데 하늘로 솟았을리도 땅으로 꺼졌을리도 없지. 계속 감시하고 더 확실한 증좌를 찾게 되거든 지체 없이 보고하거라. 알겠느냐?”“예 나으리, 하온데... 그들이 누구이옵니까?”“아이는 연산의 자식이고 나이든 여자는 그 아이를 보호하는 궁녀이다.”“예? 그것이 사실이옵니까?”“그렇다. 도를 멀리하는 임금은 폭군이 되고 그로 인해 백성이 고통을 받고 결국에는 나라가 혼란스러워 진다. 폭군의 씨앗은 자라나 주변을 어지럽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숙주가 되느니라. 나는 그것을 애초에 제거하려 한다.”“그렇다면……”“확실한 증좌가 있다면 은밀히 처리해도 된다. 나는 아이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대를 위하여는 친족도 내쳐야 하는 법, 나는 오로지 반정을 과거에 묻고 조선이 태평성대를 이루기 원하는 것이니라.”"나으리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곧 소식 올리겠나이다."인사를 올린 종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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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씨앗은 깊이 남아 있구나

어느덧 다섯 번의 겨울을 보내고, 최나인과 영수에게 궁에서의 기억은 등잔불의 심지가 거의 꺼질 때 주변이 어스름해지듯 희미하고 아련해졌다. 영수는 이제 사실상 자신이 궁에서 왔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마을의 어린아이로 동화되어 갔다. 마을 아이들과 고누놀이도 하고, 개울에서 물첨벙을 하기도 하고, 들꽃을 따다 손에 감기도 하고, 잠자리도 잡으러 다니며 그렇게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최나인도 그런 영수를 보며 마치 자신의 아이가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흐뭇해했다.한편 왕은 내금위장을 은밀히 편전으로 불렀다.“내금위장!”“예 전하!”“영수가 이제 한 열살 되었겠지?”“예! 제 기억이 맞다면 전하의 말씀이 맞을 것이옵니다.”“이제 그 아이도 글을 읽고 법도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그 아이의 스승이 되면 좋겠는가?”“전하께서 하문하시니 감히 말씀을 올리자면 호현 김승탁 대감은 어떨런지요? 전하께서 일찍이 홍문관에 계실 적 경연에서 그 학문을 아끼셨던 분이옵니다.”“좋은 생각이구나. 기별을 넣도록 하라.”“예 전하.”유난히 살을 에는 바람이 심했던 다섯 번째 겨울을 나고 봄쑥이 돋던 그해 봄, 이제 제법 낯이 익은 내금위장이 영수와 최나인의 작은 흙집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갓을 단정히 쓴 채 흰머리가 제법 섞인 양반과 동행이었다.“영수 애기씨 마마도 이제는 글을 가르쳐 줄 스승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최나인이 살짝 놀라며 말했다.“글을요? 애기씨는 제가 이미 글을 가르치고 있는데요?”영수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을 크게 뜨고 손님들과 유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영수 애기씨 마마도 어엿한 왕실의 후손 아닙니까? 단지 글을 깨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내훈』과 『여사서』도 공부하시고 궁중의 예법도 배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나으리, 송구하오나 궁으로 돌아갈 것도 아닌데 궁중의 예를 배워야 할까요?”“상궁은 어찌 그리 시야가 좁소? 애기씨가 어떤 신분인지 알면서도 그리 이야기하시오? 전하께서 직접 영수마마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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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첫번 째 칼날

그렇게 또 다섯해가 흘렀다. 영수는 이제 어엿한 아씨의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최나인이 바느질할 때 이제 같이 동무도 되어 주고 틈틈히 서책도 근실히 읽으며 영수는 몸과 정신이 모두 성장하고 있었다. 최나인이 양견을 손으로 주무르는 모습을 보고 영수가 말했다.“유모 어깨아파? 내가 주물러 줄까?”“아씨 아니에요. 괜찮아요.”손사레를 치면서도 유모는 이제 자신도 예전 같은 힘과 패기가 없다는 것이 서서히 느껴졌다.“아니야 유모 내가 주물러 줄께. 오늘 장에 옷감을 맡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 뒷뜰에 누군가 인기척이 있었어. 내가 들어오니까 바람처럼 사라지던데 유모는 혹시 못느꼈어?”“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저희 둘이 살기에 이곳은 많이 외지지요? 다음에 내금위장 나으리가 오시면 한 번 여쭤 볼까요?”........................."종길아, 어찌 되었느냐?"“나으리. 신이 쭉 살펴본즉, 사십이 넘은 듯한 아낙 하나와 열다섯 안팎으로 보이는 소녀 하나가 외진 초가에서 몸을 의탁하고 있었사옵니다. 마을 사람들과 왕래도 거의 없어 보이는데다 몸을 아주 낮추고 조심하고 있사옵니다. 시기로 보건데 병인년 이후 자취를 감춘 연산군의 여식과 그를 모시던 궁인이 분명하옵니다.”“그래 과연 내 짐작이 그르지 않았구나. 이제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너는 군사 서넛만 거느리고 움직이거라.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은밀히 말이다. 달 안에 끝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예 나으리, 확실하게 처리하겠사옵니다.”“비록 여인의 몸이라고하나, 장성하여 장부와 같은 나이가 되면 전하의 성심을 어지럽힐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조선은 연산의 그늘과 모든 잔재에서 벗어나야 태평성대를 이를 수 있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임을 새기고 온마음을 다해 행하도록 하라.”“신, 골수에 새겨두겠사옵니다. 염려 놓으소서.”조광조의 입가에 머금은 엷은 미소가 타고 있는 양초의 불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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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소문

“살..살려주십시오. 가진 거 전부 드리겠습니다.”영수와 최나인은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랐다.“우린 돈따위에는 관심없다. 너희 목숨만 가져가면 된다.”아직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 햇빛에 반사되는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가르려는 찰나, 화살이 복면한 남자의 칼을 쥔 오른 손 어깨에 박혔다.‘윽’순식간에 두 명이 활을 맞고 쓰러졌다. 그 순간을 틈타 최나인과 영수는 옆에 억새풀로 덮인 들판으로 몸을 던졌다. 돌에 부딪히며 몇번이나 굴렀지만 정신만은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도 비탈의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둘 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등성이 위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숨은 차오르고 넓적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자객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위로 뛰었다. 다행히 자객들도 부상을 입었는지 그들을 추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나인과 영수는 자신들의 초가집 지붕이 이내 보이자 그제서야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낼 수 있었다.“애기씨 마마, 괜찮으십니까? 다친데는 없으신지요?”내금위장이 먼저 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안부를 살피려 오는 길에 두 분이 보여서 인기척을 하려는 찰나, 무장한 자객 두어 명이 보여 급히 몸을 숨기고 미행했습니다. 정말 큰일이 아니어 다행입니다.”“나으리 아니셨으면 저희 둘 오늘 저승길로 갈 뻔 했습니다.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최나인과 영수는 내금위장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아니오. 애기씨 마마의 옥체를 잘 보존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오. 전하께서도 잘 살피라 명하셨기에 유의하고 있던 중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오. 조정에 마마와 자네가 살아 있는 것을 눈치채고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소. 극도로 몸조심 해야 할 것이오.”“그게 누굽니까?”“지금은 밝히기 곤란하오.”상처는 곧 아물었다. 큰 부상이 아닌 게 다행이었으나 영수는 자객의 말이 아직도 생생했다.‘네 부모를 원망하거라.’ 영수의 기억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없이 자상하고 자신을 품어 주던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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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또 한번의 떠남

최나인은 이번처럼 내금위장이 반가운 적이 없었다.“나으리!”“마마, 지난 번 다치신데는 괜찮으신지요?”“네 급하게 뛰다 한번 뒹굴어서 얼굴에 살짝 생채기가 났을 뿐입니다. 다른데는 괜찮습니다.”“천만 다행입니다. 나인 쪽은 어떻소? 괜찮으시오?”내금위장이 최나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저도 특별히 다친 곳은 없사옵니다.”“모두들 정말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대사헌 대감이 움직인 거 같습니다. 매우 치밀하고 단호한 자라 정말 위험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를 찾아야 할 듯 합니다.”“나으리, 아무래도 아씨가 연산군의 따님이라는 소문이 난 듯 하옵니다.”“그래 나도 알고 있소. 대사헌 대감이 자객을 보낸 것 같소. 허니 거처를 옮겨야 할 듯 하오. 어서 채비하시오.”“예? 지금 당장 말씀이시옵니까? 하루 말미를 주시면.....”“시간이 없소. 본인들의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가 눈치 채고 대비하기 전 다시 급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오. 어차피 세간도 얼마 안 되지 않소? 빨리 짐을 꾸리시오. 말은 준비해 놓았으니 초경에는 출발해야 하오.”십년의 세월은 강상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그야말로 순식간에 흘러갔다. 보따리 하나 가지고 들어 왔으나 보따리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홀연히 들어왔고 홀연히 떠날 뿐이었다. 십년 전 강보에 싸여 궁녀의 품에 안겨 있었던 영수는 이제 눈매가 초롱초롱하고 가슴도 봉긋한 어엿한 아씨가 되어 있었다. 영수는 조심스럽게 내금위장이 준비해 둔 말에 올랐다. 그 뒤를 최나인이 뒤따랐다.“여기서부터 한 시 남짓 달리면 미리 일러 둔 주막이 있소. 거기서 묵고 하루 더 가면 정한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오.”내금위장이 감정의 동요 없이 말했다.…………………………………………………………………..“주모! 우리에게 방을 내어 주시오!”“예 나으리, 제일 안 쪽으로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우리는 내일 동이 트기 전 떠날 것이오. 혹시라도 누구를 찾는 낯선 이들이 오면 적당히 둘러 데시오.”내금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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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를 묻다

낯선 땅 이천에서 꿀맛 같은 한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씨, 여기는 흙이 좋아 심기만 자라는 구만유."힘 좋은 구식이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그래?""아씨, 우리 오늘은 장터에 함 나가 볼까요? 이 곳 장터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마침 무명도한필 필요하고요.""그래 유모. 우리 오늘 한 번 나가 볼까?"둘은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터로 향했다. ....................................................................................................“아야야야야야”“요 도둑놈 잡았다. 멀리 못갔구나.”“나으리 도둑놈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이놈! 어디서 발뺌을 하려 드느냐? 네가 정녕 관아로 가서 치도곤을 맞고 실토를 할 터이냐?”“무슨 발뺌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아이가 겁먹은 채 말했다.이내 장터는 소동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갓을 쓴 선비가 어린 소년의 귓등을 잡아 당기며 놓지 않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얼굴이 상기되어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제가 이놈하고 방금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제가 포목전에 값을 치르기 위해 돈주머니를 꺼내려고 소매 안을 보니 돈주머니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아까 어깨를 서로 부딪친 틈에 이놈이 제 소매 안에 있던 돈주머니를 채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나으리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전 돈주머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하! 어린 놈이 눈빛 하나 안 변하면서 거짓을 말하는구나. 그래! 좋다! 같이 관아로 가서 시비를 가려 보자꾸나.”“아씨 우리는 저쪽으로 가요!” 유모가 소동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하기 위해 은근히 영수를 밀어내었지만, 영수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나으리. 혹시 증좌가 있으신가요?”영수가 갓을 쓴 사내 앞에 나서며 말했다. "아씨.. 아씨.." 최나인이 속삭이듯 당황하며 영수를 불렀지만 영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증좌라니? 어디 아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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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잠시 내려 앉은 평온

“계십니까?”“누구요?”비로 마당을 쓸던 덕수가 대문을 열었다.“누구를 찾소?”“그게.. 저. 저는 승덕 어멈이라 하고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혹시 영수 아씨는 안에 계신지요?”“무슨 일로 오신게요?”덕수가 잔뜩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로 말했다.“아 저희가 전에 장에서 아씨께 은혜를 입어 보답을 하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이 씨닭을 아씨께 전해 드리려고요.”덕수가 보니 여인의 품 안에 정말 토실한 씨닭이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잠시 계시오. 내 아씨께 여쭈고 나오겠소.”“무슨 일이니 덕수야.”영수가 마침 마당으로 나오며 물었다.“아 아씨. 저 승덕 어멈이구먼요. 승덕아 인사 드려야지?”“강녕하셨습니까 아씨?”‘아이고,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지난번 장에서 양반과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승덕이를 구해 주셔서 저희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별 것은 아니지만 씨닭을 가져왔어요. 아주 튼튼한 녀석이에요.”“이렇게 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밭에 일하러 갈 채비를 갖추고 나오던 유모가 일행과 마주쳤다. 승덕 어멈과 승덕은 최나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일전에 아씨께 은혜를 입었던 승덕 어멈입니다. 어디 나가시는지요?”“예 밭에 돌을 골라 내러 갑니다. 곧 부추를 심어야 해서요.”“유모 잠깐만. 나도 얼른 준비해서 나갈께.”승덕 어멈이 흠짓 놀라며 호기심이 실린 어투로 물었다.“아씨도 나가신다고요? 양반댁 규수님이 밭을 나가시다니요?”“아. 저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영수가 약간은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아이구 그러셨구나. 저희도 도울께요. 저희도 부추 농사를 많이 해봐서 도움이 되실 거에요.”“아이고 아닙니다. 저희가 폐를 끼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귀한 닭을 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데. 이제 얼른 돌아가십시오.”“아닙니다. 이렇게 고우신 아씨가 농사까지 하시다니요. 저희가 도우면 힘도 덜 들고 도움이 분명 되실 거에요. 같이 가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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