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 가을,임금이 폐위되던 밤, 그의 핏줄도 함께 사라져야 했다.후.후. 거친 숨결이 턱밑까지 올라왔다.최나인은 생전 이토록 큰 불을 본적이 없었다. 자시인데도 번지는 불길에 사방은 대낮처럼 빛났고 뒤엉킨 고함소리에 궁궐은 쑥대밭이었다.자선당(연산군의 침소)을 벗어나니 다행히도 금군의 고함소리는 조금씩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채 겁에 질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를 안고 뛰다보니 더 이상 맏다리(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그때였다.“거기 누구냐?”수색 중에 있던 금군 하나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최나인 쪽으로 다가왔다. 최나인은 잽싸게 행각 창고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행각까지는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창고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지난 번 행각을 증축한 이후로 버려졌던 창고였던 터에 곰팡이 냄새와 쥐똥 썩는 냄새가 섞여 자연스럽게 토악질이 나왔다.‘참아야 해’최나인은 죽을 힘을 다해 숨을 참고 서서히 내쉬었다. 거칠게 터져 나오려는 숨을 억누르며 가마니 사이로 몸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볏짚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횃불을 든 군졸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서벅 서벅‘아 이렇게 끝나는구나.’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창고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뭐하는 게냐?”“예, 나으리, 창고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하여……."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탄지간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품 안의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잠결에 무언가 불편한지, 아이의 작은 입술이 달싹거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실룩였다.‘안 돼, 제발…….’“아무도 없지 않느냐? 자 빨리.. 시간이 없다. 주상을 추포하는 것이 먼저다. 자선당으로 빨리 가자!”“예!”두 횃불을 든 금군이 사라지자 창고는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였다.“하아.”이제야 최나인은 숨이 쉬어졌다.“유모.. 엄마”이제 몇마디 말을
Last Updated : 2026-05-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