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딸, 사랑을 담다.

폭군의 딸, 사랑을 담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6-20
Par:  이터니타스En cours
Langu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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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폭군 연산과 희대의 요부 장녹수 사이 태어난 유일한 핏줄, 영수가 성장하여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반정 성공 후, 연산과 장녹수는 결국 목숨을 잃었지만 영수는 한 나인의 도움으로 궁을 빠져나와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하지만 신분도 이름도 지워야 살 수 있는 기구한 운명,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사랑을 얻고 한 여자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 나갈까? 갓난아이의 영수에서 당당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영수의 일대기를 뒤쫓아 가는 로멘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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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itre 1

1화 "불이야!"

1506년 가을,

임금이 폐위되던 밤, 그의 핏줄도 함께 사라져야 했다.

후.후. 거친 숨결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최나인은 생전 이토록 큰 불을 본적이 없었다. 자시인데도 번지는 불길에 사방은 대낮처럼 빛났고 뒤엉킨 고함소리에 궁궐은 쑥대밭이었다.

자선당(연산군의 침소)을 벗어나니 다행히도 금군의 고함소리는 조금씩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채 겁에 질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를 안고 뛰다보니 더 이상 맏다리(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그때였다.

“거기 누구냐?”

수색 중에 있던 금군 하나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최나인 쪽으로 다가왔다. 최나인은 잽싸게 행각 창고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행각까지는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창고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지난 번 행각을 증축한 이후로 버려졌던 창고였던 터에 곰팡이 냄새와 쥐똥 썩는 냄새가 섞여 자연스럽게 토악질이 나왔다.

‘참아야 해’

최나인은 죽을 힘을 다해 숨을 참고 서서히 내쉬었다. 거칠게 터져 나오려는 숨을 억누르며 가마니 사이로 몸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볏짚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횃불을 든 군졸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서벅 서벅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창고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하는 게냐?”

“예, 나으리, 창고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하여……."

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탄지간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품 안의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잠결에 무언가 불편한지, 아이의 작은 입술이 달싹거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실룩였다.

‘안 돼, 제발…….’

“아무도 없지 않느냐? 자 빨리.. 시간이 없다. 주상을 추포하는 것이 먼저다. 자선당으로 빨리 가자!”

“예!”

두 횃불을 든 금군이 사라지자 창고는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였다.

“하아.”

이제야 최나인은 숨이 쉬어졌다.

“유모.. 엄마”

이제 몇마디 말을 떼기 시작한 아직 젖먹이의 아이가 입을 열였다.

“쉿, 애기씨 쉬………잇”

최나인은 불과 일각 전을 떠올렸다.

“최나인! 어서! 아이를 어서!”

장녹수가 급하게 최나인을 불렀다. 장녹수의 고고하고 단정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옷고름조차 풀어진 채, 절박하게 아이를 내밀었다.

“이 아이를 살려다오. 이 아이는 꼭 살아야 하느니라”

대답할 틈도 없이 장녹수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1년 전,

견습 나인이던 최나인이 크게 화를 입을 뻔한 적이 있었다.

“짝!”

최나인은 얼굴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악”

“네년이 내 비녀를 훔친 것이 확실 하렸다. 입궁할 때 우리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증표로 주신 소중한 비녀다. 목숨 만큼 내가 아끼는 그런 비녀인데 네가 방을 청소한 이후로 보이지를 않는다. 어디에 숨겼느냐?”

“마마. 저는 정말 기필코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년이 그래도 발뺌을 하는구나. 그래 어디 보자꾸나.”

“사월아!”

“예 마마”

“가서 작두를 가져와라. 내 이년이 진실을 고할 때 까지 손가락을 하나 씩 잘라낼 것이야”

“마마 제발 살려 주십시오. 믿어 주십시오! 저는 정말 그 비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작두를 대령하자 최나인은 얼굴이 백지장같이 질려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곧 손가락에 피가 솓구칠 것 같은 공포심이 짓눌렀다.

 그때였다.

“웬 소란이냐?”

장녹수가 나인 둘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장숙원이 여기는 무슨 일이오? 그냥 지나가세요.”

“귀인 마마 궁궐 안에서 대체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작두까지 대령해서요.”

“장숙원이 끼어 들 일이 아니니 그냥 가세요.”

“아니 지금 나인 하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고 있지 않습니까? 내명부 일을 이렇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처리하는 걸 주상께서 아시면 귀인마마도 좋지 않으실 텐데요.”

장녹수의 엄포에 홍귀인은 한발 물러섰다.

“내가 입궐할 때 사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비녀가 있었소. 그런데 이 아이가 내 침소를 청소한 후 그 비녀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추궁하고 있었습니다.”

“마마.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 비녀를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미시 경 방안을 청소하고 나왔을 뿐인데 비녀는 제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귀인마마 이 아이가 이리도 아니라고 결백을 주장하는데 한 번 더 살펴 보심 어떨지요?”

“장숙원! 내가 생사람을 지금 잡고 있다는 뜻이오?”

“때로는 일이 희안하게 꼬이다가도 쉽게 풀리는 법입니다. 제가 마침 데리고 온 아이들이 있으니 이 아이들에게 방을 한 번만 살펴 보라고 하면 어떨지요?”

“흥! 그리 하시오. 보나마나일 께요.!”

장녹수의 나인 둘이 귀인의 방으로 들어가 잠시 후 은색 비녀를 가지고 나왔다.

“마마 혹시 찾는 것이 이것인지요?”

“오 그래 이거다. 맞다! 하. 정말 다행이야 이게 어디 있었느냐?”

“예, 병풍 끝자락 바닥에 끼어 있었사옵니다.”

“귀인 마마 다행이십니다.”

귀인은 장녹수에게 체면이 깎인 것이 마음이 상하여 인사도 받지 않고 가버렸다

장녹수는 독하고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비정한 여우였을 지언정,  최나인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일 이후로 최나인은 장녹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살아야 했다.

“불이야! 불이야!”

최나인의 삭신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품에 안았다.

‘ 이 아이를 살려야 한다.’

…………………………………………..

최나인을 쫓던 금군이 다행히도 자선당 쪽으로 물러난 틈을 타, 최나인은 창고를 얼른 빠져나왔다. 몇 걸음도 채 달리지 않았을 때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꺄악”

“드디어 찾았다. 이 여자가 장녹수다. 얼른 포박하라.”

“놓아라!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는 것이냐? 이 손 놓지 못하겠느냐?”

“당장 포박하지 않고 뭐하는 것이냐?”

“내 너희들을 가만 둘 성 싶으냐?”

“이 여자의 입을 쳐라”

“윽”

이제 장녹수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처해 있었다. 최나인은 직감적으로 장녹수를 생전에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애기씨를 살려야 한다. 꼭!’

생각이 이에 미치자 발걸음이 저절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린 시절 세답나인(빨래담당궁녀)일 때부터 사용했던 궐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에 다다랐다. 장녹수의 내밀한 심부름을 수행할 때 사용하던 그 곳이었다. 흙벽처럼 위장된 부분을 발로 두어 번 차니 바로 헐리면서 성인 한 명이 드나들 만한 틈이 생겼다. 문제는 아이였다. 강보의 끈을 더 강하게 동여매고 우선 그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아이를 힘껏 밀어 넣었다.

“으앙”

불편함을 느꼈는지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최나인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애기씨 쉬잇. 제발.. 좀만 참으세요.”

최나인은 있는 힘껏 두어 번 강보를 바깥쪽으로 밀어낸 후 자신도 몸을 그 구멍에 들이 밀었다.

“앗”

몸을 엎드린 채 빠져나오다가 뾰족한 돌부리에 팔꿈치가 깊게 긁혔다. 지릿한 통증이 팔과 어깨를 타고 얼굴까지 화끈거렸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최나인은 다시 아이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최대한 궁에서 멀리 벗어나야 했다.

‘애기씨 조금만 참으면 돼요. 조금만…’

처서가 끝나고도 이레나 지나 밤에는 이제 입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으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더 이상 뛸 수가 없어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궁궐의 소리는 이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집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호롱불 빛이 보였다.

‘휴. 살았구나.’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잊혀져야 살 수 있는 연산의 여식이 도덕과 정의의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불려 내어지고 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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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ires

정기효
정기효
재밌게 보고 있어요 빠른 연재 부탁드립니다
2026-06-24 11: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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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불이야!"
1506년 가을,임금이 폐위되던 밤, 그의 핏줄도 함께 사라져야 했다.후.후. 거친 숨결이 턱밑까지 올라왔다.최나인은 생전 이토록 큰 불을 본적이 없었다. 자시인데도 번지는 불길에 사방은 대낮처럼 빛났고 뒤엉킨 고함소리에 궁궐은 쑥대밭이었다.자선당(연산군의 침소)을 벗어나니 다행히도 금군의 고함소리는 조금씩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보에 싸인 채 겁에 질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를 안고 뛰다보니 더 이상 맏다리(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그때였다.“거기 누구냐?”수색 중에 있던 금군 하나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최나인 쪽으로 다가왔다. 최나인은 잽싸게 행각 창고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행각까지는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창고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지난 번 행각을 증축한 이후로 버려졌던 창고였던 터에 곰팡이 냄새와 쥐똥 썩는 냄새가 섞여 자연스럽게 토악질이 나왔다.‘참아야 해’최나인은 죽을 힘을 다해 숨을 참고 서서히 내쉬었다. 거칠게 터져 나오려는 숨을 억누르며 가마니 사이로 몸을 슬며시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볏짚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심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횃불을 든 군졸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서벅 서벅‘아 이렇게 끝나는구나.’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창고 바깥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뭐하는 게냐?”“예, 나으리, 창고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하여……."바로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탄지간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품 안의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잠결에 무언가 불편한지, 아이의 작은 입술이 달싹거리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실룩였다.‘안 돼, 제발…….’“아무도 없지 않느냐? 자 빨리.. 시간이 없다. 주상을 추포하는 것이 먼저다. 자선당으로 빨리 가자!”“예!”두 횃불을 든 금군이 사라지자 창고는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였다.“하아.”이제야 최나인은 숨이 쉬어졌다.“유모.. 엄마”이제 몇마디 말을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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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소문
“살..살려주십시오. 가진 거 전부 드리겠습니다.”영수와 최나인은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랐다.“우린 돈따위에는 관심없다. 너희 목숨만 가져가면 된다.”아직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 햇빛에 반사되는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가르려는 찰나, 화살이 복면한 남자의 칼을 쥔 오른 손 어깨에 박혔다.‘윽’순식간에 두 명이 활을 맞고 쓰러졌다. 그 순간을 틈타 최나인과 영수는 옆에 억새풀로 덮인 들판으로 몸을 던졌다. 돌에 부딪히며 몇번이나 굴렀지만 정신만은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도 비탈의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둘 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등성이 위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숨은 차오르고 넓적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자객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위로 뛰었다. 다행히 자객들도 부상을 입었는지 그들을 추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나인과 영수는 자신들의 초가집 지붕이 이내 보이자 그제서야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낼 수 있었다.“애기씨 마마, 괜찮으십니까? 다친데는 없으신지요?”내금위장이 먼저 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안부를 살피려 오는 길에 두 분이 보여서 인기척을 하려는 찰나, 무장한 자객 두어 명이 보여 급히 몸을 숨기고 미행했습니다. 정말 큰일이 아니어 다행입니다.”“나으리 아니셨으면 저희 둘 오늘 저승길로 갈 뻔 했습니다.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최나인과 영수는 내금위장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아니오. 애기씨 마마의 옥체를 잘 보존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오. 전하께서도 잘 살피라 명하셨기에 유의하고 있던 중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오. 조정에 마마와 자네가 살아 있는 것을 눈치채고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소. 극도로 몸조심 해야 할 것이오.”“그게 누굽니까?”“지금은 밝히기 곤란하오.”상처는 곧 아물었다. 큰 부상이 아닌 게 다행이었으나 영수는 자객의 말이 아직도 생생했다.‘네 부모를 원망하거라.’ 영수의 기억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없이 자상하고 자신을 품어 주던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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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또 한번의 떠남
최나인은 이번처럼 내금위장이 반가운 적이 없었다.“나으리!”“마마, 지난 번 다치신데는 괜찮으신지요?”“네 급하게 뛰다 한번 뒹굴어서 얼굴에 살짝 생채기가 났을 뿐입니다. 다른데는 괜찮습니다.”“천만 다행입니다. 나인 쪽은 어떻소? 괜찮으시오?”내금위장이 최나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저도 특별히 다친 곳은 없사옵니다.”“모두들 정말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대사헌 대감이 움직인 거 같습니다. 매우 치밀하고 단호한 자라 정말 위험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를 찾아야 할 듯 합니다.”“나으리, 아무래도 아씨가 연산군의 따님이라는 소문이 난 듯 하옵니다.”“그래 나도 알고 있소. 대사헌 대감이 자객을 보낸 것 같소. 허니 거처를 옮겨야 할 듯 하오. 어서 채비하시오.”“예? 지금 당장 말씀이시옵니까? 하루 말미를 주시면.....”“시간이 없소. 본인들의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가 눈치 채고 대비하기 전 다시 급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오. 어차피 세간도 얼마 안 되지 않소? 빨리 짐을 꾸리시오. 말은 준비해 놓았으니 초경에는 출발해야 하오.”십년의 세월은 강상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그야말로 순식간에 흘러갔다. 보따리 하나 가지고 들어 왔으나 보따리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홀연히 들어왔고 홀연히 떠날 뿐이었다. 십년 전 강보에 싸여 궁녀의 품에 안겨 있었던 영수는 이제 눈매가 초롱초롱하고 가슴도 봉긋한 어엿한 아씨가 되어 있었다. 영수는 조심스럽게 내금위장이 준비해 둔 말에 올랐다. 그 뒤를 최나인이 뒤따랐다.“여기서부터 한 시 남짓 달리면 미리 일러 둔 주막이 있소. 거기서 묵고 하루 더 가면 정한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오.”내금위장이 감정의 동요 없이 말했다.…………………………………………………………………..“주모! 우리에게 방을 내어 주시오!”“예 나으리, 제일 안 쪽으로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우리는 내일 동이 트기 전 떠날 것이오. 혹시라도 누구를 찾는 낯선 이들이 오면 적당히 둘러 데시오.”내금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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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를 묻다
낯선 땅 이천에서 꿀맛 같은 한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씨, 여기는 흙이 좋아 심기만 자라는 구만유."힘 좋은 구식이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그래?""아씨, 우리 오늘은 장터에 함 나가 볼까요? 이 곳 장터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마침 무명도한필 필요하고요.""그래 유모. 우리 오늘 한 번 나가 볼까?"둘은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터로 향했다. ....................................................................................................“아야야야야야”“요 도둑놈 잡았다. 멀리 못갔구나.”“나으리 도둑놈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이놈! 어디서 발뺌을 하려 드느냐? 네가 정녕 관아로 가서 치도곤을 맞고 실토를 할 터이냐?”“무슨 발뺌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아이가 겁먹은 채 말했다.이내 장터는 소동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갓을 쓴 선비가 어린 소년의 귓등을 잡아 당기며 놓지 않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얼굴이 상기되어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제가 이놈하고 방금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제가 포목전에 값을 치르기 위해 돈주머니를 꺼내려고 소매 안을 보니 돈주머니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아까 어깨를 서로 부딪친 틈에 이놈이 제 소매 안에 있던 돈주머니를 채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나으리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전 돈주머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하! 어린 놈이 눈빛 하나 안 변하면서 거짓을 말하는구나. 그래! 좋다! 같이 관아로 가서 시비를 가려 보자꾸나.”“아씨 우리는 저쪽으로 가요!” 유모가 소동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하기 위해 은근히 영수를 밀어내었지만, 영수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나으리. 혹시 증좌가 있으신가요?”영수가 갓을 쓴 사내 앞에 나서며 말했다. "아씨.. 아씨.." 최나인이 속삭이듯 당황하며 영수를 불렀지만 영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증좌라니? 어디 아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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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잠시 내려 앉은 평온
“계십니까?”“누구요?”비로 마당을 쓸던 덕수가 대문을 열었다.“누구를 찾소?”“그게.. 저. 저는 승덕 어멈이라 하고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혹시 영수 아씨는 안에 계신지요?”“무슨 일로 오신게요?”덕수가 잔뜩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로 말했다.“아 저희가 전에 장에서 아씨께 은혜를 입어 보답을 하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이 씨닭을 아씨께 전해 드리려고요.”덕수가 보니 여인의 품 안에 정말 토실한 씨닭이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잠시 계시오. 내 아씨께 여쭈고 나오겠소.”“무슨 일이니 덕수야.”영수가 마침 마당으로 나오며 물었다.“아 아씨. 저 승덕 어멈이구먼요. 승덕아 인사 드려야지?”“강녕하셨습니까 아씨?”‘아이고,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지난번 장에서 양반과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승덕이를 구해 주셔서 저희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별 것은 아니지만 씨닭을 가져왔어요. 아주 튼튼한 녀석이에요.”“이렇게 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밭에 일하러 갈 채비를 갖추고 나오던 유모가 일행과 마주쳤다. 승덕 어멈과 승덕은 최나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일전에 아씨께 은혜를 입었던 승덕 어멈입니다. 어디 나가시는지요?”“예 밭에 돌을 골라 내러 갑니다. 곧 부추를 심어야 해서요.”“유모 잠깐만. 나도 얼른 준비해서 나갈께.”승덕 어멈이 흠짓 놀라며 호기심이 실린 어투로 물었다.“아씨도 나가신다고요? 양반댁 규수님이 밭을 나가시다니요?”“아. 저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영수가 약간은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아이구 그러셨구나. 저희도 도울께요. 저희도 부추 농사를 많이 해봐서 도움이 되실 거에요.”“아이고 아닙니다. 저희가 폐를 끼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귀한 닭을 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데. 이제 얼른 돌아가십시오.”“아닙니다. 이렇게 고우신 아씨가 농사까지 하시다니요. 저희가 도우면 힘도 덜 들고 도움이 분명 되실 거에요. 같이 가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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