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쫓겨난 유모, 유국공부를 접수하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한창 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을 때, 돌연 돌산 쪽에서 사람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위풍당당한 셋째 나으리가 아니라, 가녀린 여인이었다.그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감싼 채 쏜살같이 밖으로 달아나 금세 자취를 감췄다. 마치 뒤에서 악귀라도 쫓아오는 듯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하인들은 모두 얼이 빠져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셋째 나으리는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몇몇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돌산 뒤편으로 달려갔다.평소 거침없고 제멋대로이던 셋째 나으리는 등을 돌린 채 괴석 옆에 서 있었으며, 한 손으로는 조금 전에 부딪힌 팔뚝을 가만히 움켜쥐고 있었다."셋째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한 하인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쭈었다. "방금 그 시녀를 소인들이 당장 가서 잡아 올까요?""예, 감히 나으리의 옥체에 몸을 부딪히다니, 절대 가볍게 넘어가선 안 됩니다!"배유준은 그 말에 홱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하인들은 그의 표정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그 빼어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두 뺨과 귓불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울 만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눈빛도 매우 흔들렸다. 조금 전처럼 날카롭게 사람을 몰아붙이던 기세는 사라지고, 보기 드물게 당황한 듯했다…… 아니, 허둥대는 듯했다.하인들은 제 눈이 멀기라도 한 것인지 의심할 지경이었다."잡아오긴 뭘 잡아온단 말이냐!"배유준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평소보다 한층 높은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애써 감추려 해도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됐다. 법도도 모르는 시녀 하나를 상대로 본 공자가 뭘 굳이 따지겠느냐!”문득 대나무 사이로 푸른 잎끝에 맺힌 뽀얀 물방울이 스치듯 눈에 들어왔다. 배유준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는 덧붙였다.“그리고 오늘 일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마라. 알겠느냐?”셋째 나으리가 언제부터 이토록 아량이 넓고 자비로운 위인이었단 말인가?하인들은 의문투성이였지만 그래도 몸을 굽히며 대답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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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이른 아침, 유민영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정란원으로 번을 서러 갔다.막 안채 회랑 아래에 이르렀을 때였다. 연노랑 운금 치마를 차려입은 단아하고 아리따운 젊은 부인이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아마 저택의 이부인 임지유일 터였다.유민영은 재빨리 한쪽으로 물러서서 고개 숙여 예를 올렸다.임지유는 그녀를 눈여겨보지도 않고 곧바로 내실로 들어갔다.대부인 은정서가 웃으며 말했다. “지유 왔니? 어서 앉아라. 오늘 날씨가 좋아 네가 올 것 같더구나.”유민영은 그 뒤를 따라 조용히 내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늘 하던 대로 작은 침상에서 곤히 잠든 소공자의 안색을 먼저 살핀 뒤, 구석진 자리에 고개를 숙이고 서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은정서와 임지유는 나한상(羅漢榻: 방 안에 두는 긴 평상) 양쪽에 앉아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엽이가 또 부쩍 자란 것 같습니다. 이목구비가 갈수록 형님을 쏙 빼닮아 가네요.”임지유는 작은 침상 쪽을 바라보며 애정과 부러움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은정서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법이지. 너도 너무 조바심 내지 말거라.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너도 제 자식을 품에 안을 날이 올 테니.”두 사람은 두런두런 집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석에 서서 그 말을 듣던 유민영은 속으로 대강의 사정을 알아차렸다.대부인과 이부인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막역한 사이였다. 정이 깊었던 두 사람은 훗날 같은 해 배씨 가문으로 시집와 동서지간이 되었으니, 그 인연이야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은정서는 말을 이어가며 임지유의 손을 잡아 가볍게 토닥였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너와 둘째 나으리가 부럽더구나. 둘째 나으리는 성품이 온화하고 겸손한 데다 사람을 잘 배려하지 않니. 첫째 나으리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이는 온종일 형부 일로 바쁘기만 하고, 열흘 보름이 지나도 그림자조차 보기 힘드니……”순간 임지유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야말로 찰나였으나, 유민영은 그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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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너무 많이 안다고 반드시 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당번이 낮 시간대로 바뀐 후, 유민영의 생활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그중 첫째는 더 이상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충분한 수면은 그야말로 만병통치 약과 같아서, 그녀의 안색은 불과 며칠 만에 불그스름한 생기를 되찾았다.아무래도 휴식을 제대로 취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보름 가까이 그녀를 괴롭혔던 한밤중 놀라 깨는 증상 또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또 다른 이점은 대부인을 따라 저택 안을 오갈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가령 며칠에 한 번씩 은정서가 국공 부인께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갈 때면, 엽이를 함께 데려가곤 했다.유모인 유민영 역시 자연스럽게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다.오늘처럼 날씨가 화창하고 은정서의 몸도 한결 가뿐한 날이면, 은정서는 유모에게 아이를 안기고 함께 화춘당으로 문안을 가곤 했다.화춘당은 유국공부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향으로 트인 별채는 널찍했고, 주변에는 화초와 수목이 무성했다.문 안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맑고 은은한 단향목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대청으로 들어서자 자단목 의자 위에 자줏빛 비단 도포를 입은 부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용모가 배정현과 제법 닮아 있었다.바로 국공 부인, 오씨였다.“며느리가 어머님께 문안드립니다.” 은정서가 앞으로 나와 법도에 따라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유민영은 아이를 안은 채 그 뒤를 따라 깊숙이 예를 올린 뒤, 은정서의 측면에서 반 걸음 물러선 자리에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었다.그 자리는 국공 부인이 아이를 잘 볼 수 있으면서도 제 존재감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는 딱 알맞은 위치였다. “어서 일어나렴, 앉거라.”배 부인은 웃으며 손짓으로 예를 거두게 하고는, 붉은 바탕에 금실 자수가 놓인 천 기저귀로 시선을 옮겼다.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서 엽이를 이리 데려오너라.”유민영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서서 아이를 건네주었다.배 부인은 손자를 받아 품에 안고 고개를 숙인 채 세심히 살폈다.어린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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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찾았습니다!"유민영이 자수 바늘을 꺼내 배 부인과 은정서에게 보여 드렸다.고통을 유발하던 주범이 사라지자 소공자도 이내 울음을 점차 그쳤다.은정서는 놀라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아들을 품에 안고는, 가슴이 미어지는지 연신 눈물을 흘려댔다. "멀쩡한 강보에서 어찌 바늘이 나온단 말이냐? 누가 우리 엽이를 해치려 한 것이냐!"배 부인도 크게 노하여 말했다. “명백히 조사해라! 이 강보가 대체 누구 손을 거친 것이냐?”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강보는 이번에 새로이 들여온 물품이었고, 문제의 바늘은 자수방의 자수공이 떨어뜨린 것이었다.강보는 앞서 번을 섰던 유모가 새로 갈아 준 것이었다. 서두르느라 꼼꼼히 살피지 못한 탓에, 그 안에 바늘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자수방의 실수가 분명해, 관사는 이미 그쪽에 따지러 간 뒤였다.그 유모도 곧 불려 왔다. 자초지종을 알게 되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연신 용서를 빌었다.크게 노한 배 부인은 부주의한 유모를 엄히 벌하라 명했다. 석 달 치 월급을 삭감하고 손바닥 열 대를 치게 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본보기로 삼게 했다.유모에게 벌을 내린 뒤, 배 부인은 비로소 유민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조금 전 그녀가 어떻게 바늘을 찾아내고, 또 어떻게 엽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는지 배 부인은 빠짐없이 지켜보았던 터였다. “오늘은 네가 세심하게 살펴 준 덕분에 큰일을 면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엽이가 얼마나 더 고생했을지 모를 일이야.”의원이 당도해 아이의 몸을 살펴보니, 다행히 등에 가느다란 바늘구멍 하나가 났을 뿐이었다. 약만 조금 바르면 흉터조차 남지 않을 가벼운 상처였다.배 부인의 어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국공 부인 마님, 소인은 유씨 성에 이름은 민영이라 하옵니다.”배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곁에 있던 어멈에게 분부했다.“유씨에게 은자 열 냥과 항주 비단 두 필을 내리거라. 오늘 세심하게 살핀 공을 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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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유민영은 고된 일쯤이야 참아낼 수 있었지만, 누명을 씌우는 짓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유모는 조리정연하게 쏟아지는 그녀의 말문에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새빨개졌다.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속에서 치민 분노와 질투가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앗아 갔다. 그녀는 결국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기 시작했다.“내가 헛소리한다고? 그깟 자수 바늘을 애초에 네년이 몰래 넣어 둔 것인지 누가 안단 말이냐! 제가 저질러 놓고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수작 따위를 누가 부리지 못할 줄 알고?”“네년이 일부러 이 사달을 벌인 거지? 네 능력을 과시해서 우리를 밟고 올라서려는 속셈 아니냐!”“이씨 언니......!” 유민영은 몸이 떨리도록 분노했다.그때 유민영보다 한발 늦게 저택에 들어온 조 유모가 이 유모의 팔을 덥석 잡더니, 말리는 척하며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유씨 동생, 이씨 언니, 둘 다 좀 그만하세요! 이렇게 싸워 봐야 몸만 상하지,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나, 유우헌 밖에 몰려든 하인들에게는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우리처럼 뒤늦게 저택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직 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했잖아요. 먼저 들어와 눈치껏 처신할 줄 아는 분들을 어디 당해 내겠어요? 그냥 참고 넘겨야죠. 어차피 이길 수도 없는 일인데…….”그 한마디는 지극히 사적인 다툼에 불과했던 일을, 순식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오래전부터 있던 사람들 사이의 대립으로 교묘히 몰고 갔다.이 유모는 마치 든든한 아군이라도 얻은 듯 조 유모의 손을 꼭 쥐고 유민영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둘이서 하나를 몰아붙이는 꼴이니, 아무리 유민영이라도 이겨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바로 그때, 전 어멈이 안으로 들어섰다.“다들 여기 모여서 뭐가 그리 시끄럽냐? 멀찍이서도 소리가 들리던데, 그 기운 가지고 주인 어른 앞에 가서 제대로 싸워보지 그러냐?”구경하던 하인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제 할 일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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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주인 어른 앞에 나아가 직접 시비를 가리자는 말에, 이 유모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방금 한 말들은 그저 분을 이기지 못해 내뱉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주인 어른들 앞까지 끌려가게 된다면 엉덩이가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가, 가지 않겠습니다……”겉으로만 사납게 으르렁댈 뿐, 실상은 속 빈 허세에 불과했다. 어리석고도 못된 인간이었다.소공자님께서 그녀의 젖을 받아 주지만 않았더라면, 평생 유국공부 문턱조차 밟아 보지 못했을 터였다.“흥, 갈 용기도 없으면서 뭘 그리 멍하니 서 있느냐? 이 저택에서 너희 같은 것들을 먹여 재우는 게, 밥이나 축내며 남을 헐뜯으라는 뜻인 줄 아느냐?”“예, 어멈……”이 유모와 조 유모는 풀이 죽어 뿔뿔이 흩어지며 곁채로 숨어들어갔다.저들이 허둥지둥 물러가자, 샛방에는 유민영과 전 어멈,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깊이 잠든 영아만이 남았다.침상 머리맡에 미처 치우지 못한 은자와 비단이 허름한 방 안에서 유난히 눈부시게 빛났다.전 어멈이 입맛을 다시며 혀를 내둘렀다.“쯧, 은자 열 냥에다 항주 비단이라니, 네가 주인 어른 눈에 아주 제대로 들었구나.”유민영이 은자를 둘어 그녀 앞에 내밀며 말했다. “어멈도 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평소 어멈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 아니었다면, 소인이 어찌 번을 설 때 이토록 세심해야 한다는 걸 알았겠습니까?”전 어멈은 잠시 멈칫했다. 유민영이 이렇게까지 시원스럽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이것은 주인 어른께서 너에게 내리신 건데, 내가 어떻게 감히 받겠느냐? 어서 거둬라.”유민영은 굳이 다시 한 번 더 내밀었다.“어멈, 부디 받아 주십시오. 당초 어멈께서 인정을 베풀어 주신 덕분이 아니었다면, 저와 영아가 어찌 이 저택에 발을 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또 샛방으로 옮기는 일마저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희 모녀는 지금쯤 어느 길 위를 떠돌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전 어멈은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의 서슬 퍼런 기세가 확연히 누그러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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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어머니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어찌나 청아하고 감미로운지 참 달콤했다.전 어멈이 대답했다. “착하기도 하지, 네가 나를 어머니라 불러줬으니 이 은자는 나 또한 거둘 수 없겠구나.”전 어멈이 은자 열 냥을 도로 건네주며 그녀의 손등을 다독였다. “앞으로는 저택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자꾸나.”유민영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눈시울이 시큰하게 달아올랐다.*소공자는 어느덧 두 달을 넘겨 이목구비가 갈수록 영롱하고 생기를 띠었다. 더는 갓 태어났을 때처럼 먹으면 자고 깨면 울어 대기만 하던 핏덩이가 아니었다.이제는 누군가 앞에서 달래주기만 해도 작은 입을 벌리고 까르르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어 댔다.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데굴데굴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앙증맞고 사랑스러웠다.이제 이만큼 자란 아이를 언제까지나 먹이면 재우고, 자다 깨면 또 먹이는 식으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유민영의 육아 지식이 빛을 발했다. 젖을 먹이자마자 재우는 버릇을 들이면 먹고 자는 흐름을 일정하게 잡기 어려울뿐더러, 훗날 밤중 수유를 끊거나 안아 재우는 습관을 고칠 때도 유난히 애를 먹게 마련이었다.그녀는 수유가 끝날 때마다 아이를 세워 안고 등을 토닥여 트림을 시켰다. 그런 뒤 햇살이 환히 드는 창가로 데려가 꽃과 나무, 하늘과 새를 보여 주며 그것들이 무엇인지 조곤조곤 일러 주었다.어떤 때는 색상이 선명하고 부드러운 헝겊 공을 가져와 아이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어린것은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았고, 작은 손발은 신이 난 듯 버둥거렸다.이렇게 일각(一刻: 15분)에서 두 각(兩刻: 30분)가량 놀아주다가, 아이가 하품을 시작하는 신호가 보이면 그제야 유민영은 조용히 달래서 잠에 빠뜨리곤 했다.은정서는 처음에 유민영이 젖을 먹인 아이를 곧장 재우지 않고, 품에 안은 채 이것저것 보여 주며 말을 걸어 주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그러자 유민영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는 아이가 젖 먹는 때와 잠드는 때를 구분하도록 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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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아이고, 뭘 그리 굼뜨게 미적거리세요!”시녀는 꾸물거리는 유민영을 보고 속이 터졌던지, 손에 든 대야를 낚아채며 투덜거렸다.“더러운 물 좀 버리면 어때서요! 설마 이깟 물 버리자고 한참 밖까지 걸어 나가겠다는 말이에요?”그녀는 팔을 홱 휘두르며 대야에 담긴 물을 그대로 월계화 덤불을 향해 거칠게 쏟아부었다.물이 공중으로 세차게 흩뿌려지던 바로 그 찰나, 하필 덤불 반대편 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불쑥 걸어 나왔다.앞장서던 하인이 정통으로 물벼락을 맞아, 더러운 물을 얼굴 가득 뒤집어쓰고 말았다!“어이쿠야, 사람 잡네!”하인은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이내 제자리를 방방 뛰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얼굴에 맺힌 물기를 거칠게 닦아내며 소리쳤다.“누구야! 누가 물을 버렸는가?! 눈을 대체 어디다 두고 다니는 게야!”그의 뒤편 세 걸음가량 떨어진 곳에는 달빛처럼 희고 은은한 비단 장포를 입은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역시 사달을 피하지 못했는지, 비단 자락에는 짙은 물자국이 축축하게 번졌고 흰 신발에도 선명한 얼룩이 남았다.물을 끼얹은 시녀는 다가온 이들을 알아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특히 뒤편에 달빛색 비단 장포를 입고 선 사내를 확인한 순간,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제 손으로 거대한 화를 자초했음을 직감한 그녀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유민영은 황급히 무릎을 굽혀 예를 올리며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그 더러운 물을 얼굴에 뒤집어쓴 하인이 막 고함을 지르려던 순간, 유민영이 먼저 사과를 건넸다.“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소인들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희는 정란원에서 시중드는 이들로, 방금 소공자님을 보살피던 중이었습니다. 이 물은…… 조금 전 소공자님의 몸을 닦아 드린 물입니다.”그 하인은 소공자를 모시는 사람이라는 말에, 더구나 그 물이 소공자에게 쓰였던 물이라는 말까지 듣고는 막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욕설을 그대로 삼켰다. 성난 얼굴은 순식간에 웃는 낯으로 바뀌었다.“아, 소공자님께서 쓰신 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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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사고를 친 시녀는 그제야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놀라 죽는 줄 알았어요! 다행히 마주친 분이 이방 나으리라 망정이지요. 성품이 가장 온화하고 너그러운 분이시잖아요.”“저분이 이방의 주인 어른이신가요?”유민영은 그제야 깨달았다.배지욱은 맑고 귀한 기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정성껏 다듬어 낸 옥처럼 단정하고 온화했으며, 번쩍이는 화려함보다는 은은한 품격이 느껴졌다.다만 그 옥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티끌 한 점 묻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할 만큼 말이다.시녀는 여전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맞아요. 그분이셨으니 망정이지, 다른 주인 어른을 마주쳤다면 우리는 오늘 그냥 넘어가진 못했을 거예요.”유민영은 옅게 미소 짓기만 할 뿐,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았다.애초에 그녀는 그 물을 아무 데나 버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말렸었다. 그런데도 기어이 빼앗아 쏟아 놓고, 이제 와서야 겁이 난 모양이었다.방금 배지욱 앞에서 몇 마디 거든 것도 그녀가 무슨 대단한 선심을 베풀어서가 아니었다.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자신까지 함께 엮였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더 이상 말 없이 깨끗한 따뜻한 물을 새로 떠서 다시 정자로 돌아갔다.오후가 되어 교대할 시간이 되었다.유민영은 청화에게 소공자의 상태를 알려 주었다.“아침에 젖을 먹인 뒤 한참 놀다가 잠들었습니다. 거의 한 시진 가까이 자고 점심 무렵 깼고요. 방금 다시 젖을 먹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제법 말똥말똥합니다. 천 기저귀도 새로 갈았어요. 잘 살펴봐 주세요. 아마 조금 더 놀면 슬슬 졸려 할 겁니다.”청화가 고개를 끄덕였다.“너는 정말 세심하구나. 며칠 전 이 유모가 너한테 시비를 걸었다던데, 마음에 담아 두지 마. 그런 사람은 언젠가 스스로 화를 부르게 마련이니까.”그날 다툼이 벌어졌을 때 청화는 소공자를 돌보고 있느라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에야 그 일을 전해 들은 참이었다.게다가 그동안 함께 지내는 사이, 청화가 유민영을 대하는 태도도 이미 달라져 있었다. 처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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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왜 그러세요?” 유민영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가 보면 알아!”청화는 가차 없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유모들이 지내는 곁채 문 앞에 이르렀다.채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안에서 치열한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조 유모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다급했다. “......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세요! 제가 도대체 언제 그 꼴사나운 팔찌를 가져갔단 말이에요?”“네가 아니면 누구냐! 오후에 분명 베개 밑에 넣어뒀는데, 돌아와 보니 없어졌다니까!”이 유모는 분을 이기지 못해 악을 썼고, 목소리 끝에는 희미하게 울음기까지 섞여 있었다.“그 시간에 방 안에 있던 사람은 너뿐이었어! 네가 훔친 게 아니면, 팔찌가 제 발로 걸어 나가기라도 했단 말이냐?"“하, 언니가 잃어버렸거나 어디 구석에 처박아 놓고 까먹은 거 아니에요? 그러고는 또 아무나 물고 늘어지는 거 아니냐고요! 며칠 전엔 유씨 동생을 물고 늘어지더니, 이제는 저한테까지 이러시네요. 제가 보기엔 언니야말로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이에요. 걸리는 사람마다 물어뜯고 다니잖아요!”“헛소리하지 마! 네가 어떤 녀석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평소엔 멀쩡한 척하면서 뒤로는 도둑질 같은 짓이나 하고 다니는 주제에! 당장 내 팔찌 내놔!”“누가 도둑질을 했다는 거예요? 어디 그따위 헛소리 한 번만 더 해 보시죠!”“그래, 말했어! 어쩔 건데, 이 도둑년아!”두 사람은 말할수록 감정이 격해졌다. 처음에는 서로 욕을 퍼붓는 데 그쳤으나, 이내 몸싸움으로 번져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청화는 흥미진진하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주머니에서 붉은 말린 대추 한 줌을 꺼내 절반을 유민영의 손에 쥐여 주었다.“자, 먹으면서 봐. 입 심심하지 않게.”유민영은 그 모습이 우스워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그녀는 말린 대추를 받아 들고 자신도 하나 집어 들었다.유모인 그들은 음식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해바라기씨 같은 볶은 간식은 몸에 열을 올리기 쉬워 절대 먹을 수 없었다.하지만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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