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왕씨는 소연이 감히 제 말을 거스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빛이 순간 어둡게 가라앉았다.‘내가 가서 혼줄을 내줘야지.’ 그녀는 소하의 손을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네 오라버니 생신이니 조금만 참아라.” 소하는 왕씨가 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억울한 말투로 말했다. “어머니, 저는 원래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우리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 이번엔 혼 좀 내줘야지.” 왕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소하야. 네가 착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연이가 자초한 것이니 우릴 탓할 수 없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씨는 소씨 어르신에게 불려 가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소대는 몸값을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된 뒤로, 남들이 하인을 부리듯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웃들도 덩달아 그를 “소씨 어르신”라 부르며 떠받들었다.지금쯤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을 받아 얼굴이 붉어졌고, 왕씨가 오는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생일잔치가 곧 열리는데 명이는 왜 아직 오지 않은 것이냐?” “아마 글공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시간을 잊은 모양입니다. 제가 방금 하인을 보내 재촉하게 했습니다.” 왕씨는 그 말을 할 때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고 허리도 곧게 폈다. 그러자 주변 손님들은 바쁘게 말을 받았다. “소씨 도련님이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부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되지요.”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한 마디씩 칭찬하기 시작했다. “소씨 도련님은 정말로 문곡성이 강림하셨나 보군. 젊은 나이에 벌써 수재가 되다니. 이번 향시에서도 반드시 급제를 할 것이야. 왕씨 부인께서는 고명부인(誥命夫人: 조정에서 관료의 부인에게 내리던 봉호)이 될 준비나 하게.” 듣기 좋은 말들이 쉴 새 없이 왕씨의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왕씨는 기분이 좋아져 얼굴의 웃음 주름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소연은 그 말을 들으며 입가에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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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왕씨는 마당에 서 있는 소연을 바라보았다. 정오의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며 그녀의 온몸을 따스한 금빛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선녀 같았다.소연은 태어날 때부터 이쁘장했다. 어릴 때부터 요염한 눈매는 반짝이면서도 정이 많아 사람을 볼 때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먹물 같은 머리카락은 폭포처럼 드리워져 서 있기만 해도 소하를 주방 일하는 하녀처럼 보이게 했다. 왕씨는 본래 소연이 국공부에서 몇 해쯤 고생하다 보면, 저 눈에 띄는 아름다움도 조금은 깎이고 무뎌지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오히려 더욱 아름다워졌고 타고난 요염한 기품은 감춰지기는커녕 한층 짙어졌고, 사람을 홀리는 듯한 그 운치는 예전보다 더해져 있었다.왕씨는 가슴이 답답해서 참지 못하고 기침을 두 번 했다. 소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 왕씨는 즉시 정색을 하고 그녀를 훈계했다. “소씨 가문의 딸이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절제해야지. 네 꼴 좀 보거라. 요염하게 이게 뭐냐? 얼른 가서 옷을 갈아입고 장신구들을 치우거라.” 소연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모두 어머니께서 가르치신 것이잖아요? 제가 요염한 것이라면 소하는 누구를 유혹하려고 이렇게 차려입은 것입니까?” 그녀의 말에 소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분홍색 나비가 수 놓인 화려한 예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연 몸의 귀티 나는 남광금과 비교를 하니 화가 나면서도 조급했다. 왕씨도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다. ‘내가 이 년을 너무 얕본 것 같군. 통방이 된 지 며칠 되었다고 나한테 대들다니.’ 왕씨는 오늘 소연의 기세를 꺾지 않는다면 앞으로 소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 탓하지 말거라. 이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니.’ 왕씨가 화를 내려고 하자 밖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소씨 어르신께서 또 그녀를 불렀다.왕씨는 어쩔 수 없이 화를 가라앉히고 앞마당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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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소하가 떠난 후, 소연은 복숭아나무 아래로 걸어갔고, 갑자기 장 수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연아.”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석가산 뒤에 장 수재가 새 선비 옷을 입고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전생이었다면, 그가 먼저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는 순간 소연은 기뻐 어쩔 줄 모르고 달려가 맞이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연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눈빛은 담담했고,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쉽게 알아챌 수 없는 거리감과 혐오감마저 어려 있었다.장서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소하가 말한대로 소연이 세자의 통방이 되더니 눈이 높아져 가난한 선비인 자신을 경멸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아직 얼굴을 붉힐 때가 아니었다.그가 글공부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지난 몇 해 동안 붓과 먹, 종이와 벼루는 물론이고, 때때로 마신 술값까지도 모두 소연이 받은 상전으로 보태 온 것이었다.여기서 소연과 틀어진다면, 앞으로 누가 그에게 은자를 가져다주겠는가?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는 곧바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소연에게 다가갔다.“소연아. 오랜만이다.”예전 같았으면 소연은 그가 이런 다정한 말을 건네기만 해도 금세 감동해 눈시울을 붉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연은 그저 담담히 웃었을 뿐이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은자가 부족하지는 않으냐고 묻지도 않았다.전생에 소연은 그를 만나면 항상 재잘재잘 말이 많았지만, 이렇게 침묵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장서환은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먼저 말을 걸었다.“소연아, 네 얘기 다 들었다.”장서환은 소연이 통방이 되어 어떻게 자신을 마주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가 보기에 소연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본래 부도를 지키지 않는 여인은 돼지 우리에 담그는 큰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소연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소연이 국공부의 통방이 되었으니 자신의 출세 길을 닦으며 죄를 뉘우쳐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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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역시나 소하의 예상대로 그 말이 나오자 몇몇 늙은 하인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국공부의 하인은 아니었지만, 국공부인의 은혜를 입은 몸이었다. 그러니 국공부의 체면을 더럽히는 자를 결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특히 하녀가 세자를 배신하는 일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설령 그녀가 소씨 집안의 딸이라 할지라도 마주친 이상 반드시 그녀를 국공부로 압송해서 처리해야 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라.” 자신을 에워싸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연의 얼굴에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순순히 따라갈 테니 잡을 필요 없습니다.” 소하는 소연이 이렇게 침착할 줄은 몰라 서둘러 장서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장서환은 즉시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소연아, 내가 너와 같이 가마. 난 국공 부인과 세자 저하께서 반드시 우리를 이해하실 거라 믿어.” 그 말에 하인들은 화가 나서 두 사람의 코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고, 이때 왕씨가 눈물을 훔치며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소연을 보더니 구원자를 본 듯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소연아, 어서 네 오라버니를 구해주거라. 네 오라버니가 맞아서 다리가 부러졌다.”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소연을 향해 도움을 청했고, 방금 둘째 딸에게 소연을 망하게 부추긴 일을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소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뺐다. 왕씨는 제자리에 서서 멍해졌다. 그녀는 큰딸이 이렇게 냉담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에 집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먼저 달려가 걱정을 나누던 딸이었는데. 왕씨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소명은 절뚝거리며 뒷골목으로 갔다.그리고 왕씨 얼굴의 눈물자국과 소연의 냉담한 표정을 보더니 그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손을 들어 소연을 향해 내리쳤다. “이런 양심도 없는 년. 어머니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어찌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느냐?” 소명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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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장서환을 힐끗 보았다. 왕씨는 그제야 방금 전에 계획했던 일을 떠올리며 속으로 시기가 엇갈렸다고 생각했다. 막 입을 열려고 하자, 소하가 다가와 걱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어머니, 언니와 장씨 오라버니의 일이 알려지면 분명 국공부에서 처리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언니에게 폐 끼치지 마십시오.” 소하는 말을 하며 왕씨를 향해 눈짓을 하자 왕씨는 순간 깨달았다. ‘소연 그 천한 년만 처치하면 세자 부인의 환심을 살 수 있고, 세자 부인의 도움을 받으면 소명의 다리를 치료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친딸이야.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계산이 있는 걸 보면. 저 천한 년은 일이 생기면 숨기만 하고.’ 왕씨는 능청스럽게 눈물을 닦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이런 추악한 짓을 하고도 내가 널 보호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거라.” 그녀의 말이 끝나자 국공부의 몇몇 하인들이 밧줄을 들고 소연의 몸을 묶으려고 했다. 이때 밖에서 한 목소리가 뒷골목으로 들려왔다. “세자 저하 납시오.” 소연이 고개를 돌리자 허준안이 장풍을 데리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고, 검은 눈동자는 그녀에게 고정되어 화가 난 것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었다. 왕씨는 세자가 직접 오실 줄은 몰라 약간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자께서 직접 소연과 외간 남자가 사적에서 만나는 것을 목격한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세자 저하, 제가 딸을 잘못 가르쳐 국공부를 망신시켰습니다. 소연을 세자 저하께 맡길 테니 저하께서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왕씨는 무릎을 꿇고 허준안을 향해 연신 절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를 보고 무릎을 꿇었다.장서환은 원래 세자 앞에서 문인의 기개를 뽐내어 세자의 주목을 끌려고 했지만, 세자의 위압이 너무 강해서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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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장풍은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소연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지만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이미 평생을 약속했다’는 말을 꺼낸 이상 명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었다. ‘이를 어쩌지? 만약 소 아씨가 이로 인해 세자 저하의 신임을 잃는다면 앞으로 국공부에 설 자리나 있겠는가?’ 장풍은 몇 년 동안 세자 곁을 따랐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에 끼어들지 말아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일은 그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 일은 소연 스스로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소연을 몰래 훔쳐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고, 심지어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장풍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소 아씨께서 이미 이 상황을 만회할 방법이 준비되었단 말인가?’ 주변 사람들도 모두 소연의 반응을 주목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사사로운 정분이 들통났다면 진작에 무릎을 꿇고 세자의 선처를 빌었을 터였다. 그런데 소연은 어찌 저리도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그들은 어쩌면 소연이 정말 억울함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니, 이제 그만 세자 저하께 잘못을 인정해. 이미 장씨 오라버니에게 몸을 바친 이상 국공부에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지. 세자께서 인자하시니 어쩌면 목숨은 살려줄지도 모르잖아.” 소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난 장씨 오라버니와 사적인 감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어. 단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일 뿐이야. 그런데 넌 왜 계속 더러운 누명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거야? 명성이 여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진정 모르는 것이야?” 소하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나는 언니를 위해서, 차마 언니가 계속 실수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그런 건데.”소명은 소연이 감히 소하를 꾸짖는 것을 보자,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소연을 때리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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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이 세상은 원래 여인들에게 가혹했다. 설령 장서환이 선 넘는 행위를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소연에게 염치없다고 할 것이다. 방금 장서환의 말을 들은 몇몇 하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장서환은 그 말들을 들으며 마음속으로는 소연에 대한 경멸로 가득했다.‘이미 세자의 침대에 기어오른 년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시집온단 말인가?’소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씁쓸했다.오랫동안 사모해 온 남자가 그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렇게 거리낌 없이 모욕하다니.만약 국공부에서 정말로 그녀가 부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어떤 운명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소연의 시선은 다시 허준안에게로 향했다.하지만 뜻밖에도 허준안은 장서환의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소연에게로 돌아서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연아, 너와 함께 할 때 이미 처녀의 몸인 것을 확인했으니 나는 널 믿는다.”그의 말에 소연의 가족들은 모두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은 소연이 이렇게 쉽게 세자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그녀를 믿다니.하지만 그들에겐 마지막 계획이 남아있었다.왕씨는 황공한 목소리로 연신 절을 하며 말했다.“세자 저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는 더 이상 이 악녀를 방임할 수 없습니다. 그건 노부인의 은덕에 너무 죄송한 일이니까요. 이것 좀 보십시오.”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품속에서 매미 날개처럼 얇은 물건 하나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리고 허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 제가 기이한 재주를 지닌 사람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 말로는, 이미 처자의 몸을 잃은 여인이라도 초야를 치르는 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속일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왕씨는 말을 하며 손톱으로 그 얇은 막을 뚫자 바로 피 한 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졌다.국공부의 하인들은 그 장면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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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왕씨, 이게 당신이 말한 증거인가? 친딸을 그렇게 모함하다니.”허준안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장풍, 내 영패를 가지고 소씨 가문 사람들 모두 관직으로 보내거라.”그 말에 소씨 가문은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왕씨는 창백한 얼굴로 소연에게 달려들어 울먹이며 간청했다.“나는 정말로 너와 장서환이 그런 관계인 줄 알고 널 도와주려고 그랬던 것이다. 넌 이 어미의 마음도 몰라주느냐?”소하도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언니, 나도 말을 잘 못 들었어. 아무리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 정말로 날 탓하는 건 아니겠지?”장서환은 온몸을 떨면서도 억지로 버티고 서서 단언했다.“소인은 소연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그녀가 떠날까 봐 두려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절대 고의로 모함한 것이 아닙니다.”사람들은 소씨 가족과 장서환을 바라보는 눈빛에 약간의 동정이 담겨 있었다. 소연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효도를 제일순위로 여기는 대웅에서, 내가 정말로 그들을 관직에 보낸다면 아마도 불효자식이라고 소문이 나겠지. 난 이제 세자의 사람이라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국공부의 체면과 관련이 있어. 국공부는 겉으로 보기엔 끝없이 번성해 보이지만, 실상은 이미 불 위에 기름을 끓이는 형국과 다름없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들이 이 집안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만약 나 때문에 국공부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그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닌가?’소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허준안에게 몸을 굽히고 말했다.“세자 저하,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어머니께서도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랬을 것입니다. 다만 저와 장 수재 사이가 결백하다는 것만 믿어주십시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소연이 이 사람들을 놓아준 것은 자신의 명성을 더럽힐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시간은 많으니 그녀는 천천히 그들이 진 빚을 다 받아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국공부로 돌아가면 이자부터 받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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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금심각에 있을 때에야 소연은 비로소 알아차렸다. 허준안은 일에 몰두할 때면, 저도 모르게 달콤한 주전부리를 하나씩 입에 넣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연꽃과자를 준비했다.소연이 서재에 들어서자 도시락 안의 유혹적인 향기는 그녀보다 먼저 풍겨 나왔다. 허준안은 여전히 손에 든 서첩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붓을 쥔 손은 어느새 내려놓은 뒤였다.소연은 식합을 조심스레 서안 위에 내려놓고,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세자 저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께서 제때에 오지 않았더라면 전 정말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사실 그가 오지 않더라도 소연은 소씨 가문을 상대할 방법이 있었지만, 세자가 나타난 덕분에, 확실히 그녀는 훨씬 수월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허준안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제법 분수를 아는군.’ 그의 시선은 무의식적을 도시락으로 향했다. 그러자 소연은 바로 일어나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마치 방금 연못에서 따온 연꽃과 같은 과자가 들어있었다. 허준안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자, 얇고 바삭한 겉결이 겹겹이 부서졌다. 곧이어 잣의 고소한 향이 혀끝에 은은하게 퍼졌고, 식감은 더없이 부드러웠다.그는 만족스럽게 삼키고 눈을 들어 소연에게 말했다. “장 수재의 일은 내가 이미 분부했으니 앞으로 절대로 너에게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소연은 조금 의외였다. 그녀는 매일 많은 일을 처리하는 세자께서 그런 사소한 일까지 기억해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소연은 촉촉한 눈빛으로 허준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득 세자의 통방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감싸주고 있는 느낌이 혼자 버티던 날들보다 훨씬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의 맑고 준수한 얼굴을 보며 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반응하지 않은 틈을 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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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하지만 기뻐서 폴짝폴짝 뛰는 소연을 보니 허준안의 입가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옆에서 보고 있던 장풍은 깜짝 놀랐다.‘세자 저하께서 이렇게 웃는 것이 얼마 만인가? 소 아씨는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줄을 잘 섰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세자 저하의 첩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허준안은 생각하더니 말했다.“장풍아, 가서 내 바둑 판을 가져오거라.”장풍은 오랫동안 그를 모셔, 당연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더욱 놀랐다.‘세자께서 옥기 바둑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심지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데 소 아씨에게 내주다니. 세자께서 정말로 소 아씨를 마음에 품으셨나보군.’그는 빠른 걸음으로 창고로 바둑을 가지러 갔다. 허준안은 소연에게로 돌아서서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인생은 바둑과 같아. 넌 성격이 너무 소심해 오늘부터 나랑 바둑 한 시진씩 하면서 담력을 길러보자꾸나.”소연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세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세자께서 그녀를 이렇게 추켜세워줄 줄은 몰랐다.세자가 매일 그녀에게 바둑을 가르친다는 소문이 외부로 퍼지기라도 하면 아무도 그녀를 일반 통방으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큰 주방에 식재를 가지러 갈 때도 하인들이 다시는 그녀에게 눈치를 주지 못할 것이었다.이에 소연은 기뻐하며 무릎을 꿇고 허준안에게 절을 올렸다.“세자 저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풍은 바둑을 들고 돌아왔다.허준안이 두껑을 열자 안에는 흑백 바둑알이 가득 차 있었고, 등불 아래에서 따뜻한 옥기 특유의 광택이 감돌았다.그는 눈을 들어 소연을 바라보았다.“바둑을 배운 적이 있느냐?” 소연은 솔직히 고개를 저었다. 소씨 가문에 있을 때, 왕씨는 그녀에게 일만 강요할 뿐, 이런 아씨들만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배우게 할 리가 없었다. 허준안은 자신의 예상과 어긋나지 않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보거라.” 소연은 백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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