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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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통방을 고르던 날로 다시 태어났다. 전생에 그녀는 가족을 믿고 주저 없이 노부인을 거절했지만, 늑대 같은 가족들에게 끝까지 이용당하다가 결국엔 어머니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명혼까지 맺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 소연은 이번 생에 소씨 가문을 제 발밑에 철저히 짓밟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통방 시녀가 되어 세자를 유혹하고, 그의 권세를 방패 삼아 겨우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타고난 회임 체질 덕분에 국공부의 어엿한 양첩이 되었고, 삼 년 사이 아이를 둘이나 낳으며 끝내 세자 부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통방 시녀에서 국공부의 안주인이 되기까지. 그 아득한 신분의 간극을, 그녀는 너무도 손쉽게 넘어섰다. 그녀의 삶은 날이 갈수록 더없이 순탄하고 화려해졌지만, 배은망덕했던 가족들은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소연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을 때도, 소연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진정한 가족이 있었고, 그녀를 뼛속 깊이 사랑해 주는 사내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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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치마를 벗어라.”

소연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고, 얼굴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고분고분 허리띠를 풀자 치마는 가는 허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속옷만 남았다.

그녀가 옆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자, 작은 속옷은 동작에 의해 위로 올라가 허리를 반쯤 드러냈다. 아침 햇살 아래의 피부는 마치 고급 양지옥처럼 새하얗고 눈이 부셨다.

하지만 국공 부인과 진 어멈은 가는 허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에 있던 하녀보다 훨씬 풍만한 그녀의 엉덩이에 눈을 고정하고 말했다.

“부인, 소연의 엉덩이가 풍만한 걸로 보아 무조건 아기를 잘 낳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인께서 오랫동안 가르쳐 규율을 잘 알고 있으니 절대로 여우처럼 주인을 유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허. 어멈이 나이는 들었지만 눈썰미는 여전히 좋구나.”

국공 부인의 잘 가꾸어진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소연아, 넌 오늘 밤 잘 꾸미고 세자 저하의 시중을 들거라.”

소연은 국공 부인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하녀였다. 국공 부인은 그녀를 볼 수록 마음에 들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있던 소연은 국공 부인의 말을 듣고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전생에도 소연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그땐 옷차림이 단정했었다. 그리고 노부인께서 치마를 벗고 검사를 받으라는 말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저에게는 이미 혼약을 정한 자가 있습니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국공부는 본래 하인들을 너그럽게 대한다는 평이 자자했다. 노부인은 약간 시무룩했지만 그녀에게 몸값 증서를 바로 돌려주었다. 소연은 몸값 증서와 그동안 모은 은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장 수재와 혼인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가족들이 그녀의 한쪽 다리를 부러뜨린 후, 팔십 세의 이씨 나으리에게 후처로 시집을 보냈다.

그 뒤의 일은......

전생의 일을 생각하자 소연은 고통스러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깃털처럼 가느다란 속눈썹을 살짝 떨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노부인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국공 부인은 그녀가 다른 경박한 여인들처럼 들뜬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고, 오히려 더욱 흡족해했다.

“소연아, 세자께서 장가를 들었지만 아직 자식이 없다. 네가 아들을 낳을 수 있다면 바로 다음 세자가 될 것이다.”

국공 부인은 말을 마치고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소연의 동경하는 눈빛을 보더니 더욱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공 부인은 그래야 세자를 잘 모시고 국공부의 자손을 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넌 내 곁의 하녀이니 세자 부인이라도 널 얕잡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국공 부인은 말을 하며 자신의 팔찌를 벗겨 소연의 팔에 끼워주었다.

소연은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국공 부인을 바라보았다.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세자 저하를 모시고 부인의 근심을 덜어드리겠습니다.”

그녀가 다시 한번 절을 한 후에야 국공 부인은 비로소 그녀를 내보냈다.

하선거에서 나오자 소연의 눈빛은 다시 차갑게 변했다. 그녀는 뒤편 시녀들의 부러운 시선을 슬쩍 훑고는,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을 머금었다.

선택의 여지만 있다면 그녀는 하녀들과 바꾸고 싶었다. 그녀는 비천한 통방이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단지 출가할 나이에 좋은 사람과 혼인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세자가 혼인한 지 이미 삼 년이 지났건만, 세자 부인은 물론 두 명의 첩실에게서도 아직 회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만약 세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일부러 손을 쓴 것이 분명할 터.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회임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였다.

국공 부인의 성정을 보아하니, 아이만 남기고 모친은 내쫓아 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막다른 길에 몰린 것이 아니라면, 그녀가 어찌 순순히 통방이 되려 하겠는가.

지금 그녀에게는 아직 세자라는 든든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 힘을 빌려 집안의 배은망덕한 자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이 일은 당장 움직일 수 없었다. 천천히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밤의 시침이었다.

세자는 규율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라 분명 오늘 밤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일 아침 그녀는 조롱거리가 되어 집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소씨 집안 사람들을 떠올리자, 소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전생에서 익힌 것들을 하나씩 되짚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고 마음속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밤 반드시 세자에게 총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지자 소연은 세자의 금심각으로 안내되었다. 그녀는 씻고 단장을 마친 모습이었다. 얇은 흰 치마가 가볍게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녀는 침상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얇은 치마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그려냈다. 새하얀 피부는 촛불 아래에서 드러날 듯 말 듯 은은히 비쳤고, 그와 달리 얼굴빛은 서리처럼 차갑고 맑았다. 마치 그림 속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보는 이의 마음을 유난히 흔들었다.

하녀가 세자께서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해서 그녀는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들었다.

문이 열리자 허준안이 문 앞에 섰다. 낮에 어머니가 시녀 하나를 보내겠다 말씀하시긴 했으나, 그날 밤 곧장 제 방에 들여놓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마침 소연이 고개를 들어 말없이 수줍음을 머금고 똘망똘망한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허준안은 그대로 서서 마치 책상 위에 놓인 옥기를 훑어보듯, 놀라움도 의욕도 없이 그저 무관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소연은 가슴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자 저하, 제가 옷을 벗겨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허준안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누구보다 법도와 규칙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실인 한씨의 처소로 갔고, 상순과 하순에는 각각 하루씩 시간을 내어 두 첩의 방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통방까지 받아들이게 된다면, 설마 또 하루를 따로 내어 그녀까지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잠자리가 잦으면 몸을 상하게 한다고 여기는 허준안은 내심 내키지 않아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노부인이 진 어멈을 시켜 보신탕까지 보내오자, 그는 오늘 밤만큼은 피할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 자식이 없다는 건 이미 어머니 마음속의 병이 되었다. 특히 서제 쪽에서는 삼 년 동안 아들을 둘이나 낳아, 손 이낭이 매일 아이를 안고 어머니 앞에서 자랑을 하니 어머니는 손자를 품에 안겠다는 생각에 거의 사로잡혀 있었다.

“진 어멈, 탕을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알았다고 전하세요.”

허준안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진 어멈은 세자가 지극한 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가 그러겠다 약조한 이상, 오늘 밤에는 반드시 소연을 받아들일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생각한 진 어멈은 흡족한 얼굴로 물러나 노부인께 보고하러 갔다.

진 어멈이 떠난 후, 허준안은 소연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편히 쉬게.”

그는 두 팔을 벌려 소연이 그의 옷을 벗겨주기를 기다렸다.

소연은 노부인 곁에 있던 큰 하녀라 이런 일에 익숙했다. 그녀는 서둘러 규율에 따라 조용히 허준안의 겉옷을 벗겨주면서 그의 안색을 살폈다.

예전에 그녀는 세자를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시녀들이 세자께서 하늘이 내린 듯한 자태를 지녔다고 수군대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날카로운 눈썹에 빛나는 눈동자, 마치 우뚝 서 있는 고송 같으면서도 밝은 달처럼 부드러웠다. 그녀는 이런 남자를 모시는 것도 전생에 겪었던 고통을 보상하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세자의 옷을 갈아입힌 후, 그녀는 얇은 외투를 살짝 벗고 연꽃을 수놓은 배두렁이만 남겼다.

요염한 붉은색의 배주머니는 그녀의 피부를 양지백옥처럼 윤기 나게 했다. 그리고 살짝 드러난 가슴의 곡선은 마치 생동감 있고 향기로운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

다른 사내들이었다면 이 모습을 보고 진작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미인을 품에 끌어안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세자는 보통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한 번 힐끗 바라보았을 뿐, 이내 다시 본래의 차갑고 담담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소연이 어떻게 할지 궁리하고 있을 때, 세자는 손을 뻗어 그녀를 이불속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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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치마를 벗어라.” 소연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고, 얼굴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고분고분 허리띠를 풀자 치마는 가는 허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속옷만 남았다. 그녀가 옆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자, 작은 속옷은 동작에 의해 위로 올라가 허리를 반쯤 드러냈다. 아침 햇살 아래의 피부는 마치 고급 양지옥처럼 새하얗고 눈이 부셨다. 하지만 국공 부인과 진 어멈은 가는 허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에 있던 하녀보다 훨씬 풍만한 그녀의 엉덩이에 눈을 고정하고 말했다. “부인, 소연의 엉덩이가 풍만한 걸로 보아 무조건 아기를 잘 낳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인께서 오랫동안 가르쳐 규율을 잘 알고 있으니 절대로 여우처럼 주인을 유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허. 어멈이 나이는 들었지만 눈썰미는 여전히 좋구나.” 국공 부인의 잘 가꾸어진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소연아, 넌 오늘 밤 잘 꾸미고 세자 저하의 시중을 들거라.” 소연은 국공 부인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하녀였다. 국공 부인은 그녀를 볼 수록 마음에 들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있던 소연은 국공 부인의 말을 듣고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전생에도 소연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그땐 옷차림이 단정했었다. 그리고 노부인께서 치마를 벗고 검사를 받으라는 말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저에게는 이미 혼약을 정한 자가 있습니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국공부는 본래 하인들을 너그럽게 대한다는 평이 자자했다. 노부인은 약간 시무룩했지만 그녀에게 몸값 증서를 바로 돌려주었다. 소연은 몸값 증서와 그동안 모은 은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장 수재와 혼인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가족들이 그녀의 한쪽 다리를 부러뜨린 후, 팔십 세의 이씨 나으리에게 후처로 시집을 보냈다. 그 뒤의 일은......전생의 일을 생각하자 소연은 고통스러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깃털처럼 가느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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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불속에서 세자는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 소연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미리 준비해 둔 손수건을 꺼냈다. 비록 통방은 국공 부인과 세자 부인에게 손수건을 따로 바칠 필요는 없지만 전생의 경험으로 인해 그녀는 무슨 일을 하든 증거를 남겨두는 습관이 생겼다. 설령 세자를 모시는 일이라 해도, 남들이 트집 잡을 빌미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세자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보고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연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미소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세자의 자세는 비희도에 그려져 있던 것보다 더 표준적이었지만 눈엔 조금의 정욕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소연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아니, 세자의 부인과 첩들은 하나같이 이런 식으로만 모셔 왔단 말인가? 하지만 난 다시 태어났으니 좀 즐겨도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 소연은 애틋한 눈빛으로 세자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흐름을 끊긴 것은 세자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는 곧장 움직임을 멈추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하면서도 약간의 짜증이 어린 눈빛으로 소연을 바라보았다.“세자 저하. 저하께서 낮에 나라를 위해 수고하셨으니 시중을 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세자 저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소연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양을 떨었다. 세자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 소연은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설마 화난 건 아니겠지?’ 소연은 더 지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세자를 향해 요염하게 감사를 표한 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아 안았다.허준안은 이렇게 주동적인 여인을 만나본 적이 없어 잠시 멍해졌고 소연은 바로 그 틈을 노렸다. ‘진 어멈이 대체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예의가 없는 건가?’ 허준안은 손을 뻗어 소연의 움직임을 막고, 얼굴을 굳힌 채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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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세자 부인의 소문을 생각하며, 소연은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얼굴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녀는 소연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하녀의 눈엔 소연의 걸음이 가볍고 빨랐으며 자태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순간 국공 부인께서 왜 소연 언니를 통방으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소연이 머무는 곳은 세자 부인의 초하원에서 몇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금방 초하원 입구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소연은 세자 부인의 몸종 하녀인 최홍이 악의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연은 순간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에 그녀가 노부인의 제안을 거절하자 세자 부인은 최홍을 통방으로 내세웠다. 그러니 최홍은 소연이 자신의 청운길을 막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부인께서는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으니 여기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려.” 최홍은 팔짱을 끼고, 고소해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순순히 무릎을 꿇었겠지만 소연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소부인이 준비를 마쳤는지 아닌지 그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만약 최홍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시간을 지체했다가 문안 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한다면, 소부인께서 탓할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었다. 괜히 무릎만 상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늘 준비해 온 이 신발도 끝내 바치지 못하게 될 터였다.그녀는 몸을 약간 굽히고 공손하지만 의지는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최홍 언니, 일깨워줘서 고맙지만, 노부인께서 직접 신발을 소부인에게 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만약 소부인께서 아직도 준비 중이시라면 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최홍은 그녀가 이토록 만만치 않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지금 노부인으로 날 협박하는 것이냐?”소연이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홍은 노기등등해서 말했다.“고작 통방이 소부인의 명령을 거부하려는 건가? 내가 지금 바로 소부인에게 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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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노부인과 세자 저하를 위해 복을 비는 건 제 영광입니다.” 소연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가 고분고분 순응하는 모습에 한씨의 안색도 많이 누그러졌다. 이때 소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제가 이런 세밀한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불경을 더럽힐까 염려되오니, 이 자리에서 몇 줄 써보겠습니다. 소부인께서 한 번 훑어주시고 가르쳐주십시오.” 그녀는 전생에 국공 부인께서 한씨의 마음이 불쾌할까 봐 일부러 허준안을 본청에 보내 점심 식사를 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되었다. 한씨는 소연이 자발적으로 가르침을 요청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소연이 피로 불경을 베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속의 울분이 절반 이상 가라앉았다. 그녀는 최홍에게 분부해서 도구들을 바닥에 내려놓게 했다. “그럼 여기서 쓰거라.” 한씨는 소연에게 좌석을 내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씨의 눈에 통방하녀는 아무렇게나 처리할 수 있는 물건일 뿐이니 좌석을 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소연은 붓을 집어 들고, 이를 세워 손끝을 깨물었다. 살을 파고드는 듯한 통증에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지만, 그녀는 끝내 붓을 움켜쥐었다. 손끝에서 배어 나온 피를 붓끝에 묻힌 뒤, 푸른 벽돌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한 글자씩 베껴 쓰기 시작했다.규율에 따르면 피로 경서를 베낄 땐 피를 작은 도자기에 받아내고, 피가 굳는 것을 방지하는 약을 넣어야 했다. 이는 성의를 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홍은 본래부터 소연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소연을 위해 자기병을 준비해 줄 리 없었다. 최홍은 속으로 소연이 열 손가락을 모두 깨물어 피를 빼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한씨는 높은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눈여겨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최홍의 행동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소연 같은 천한 년은 겁을 줘야 고분고분 말을 듣고 주인을 유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한 줄도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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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세자 전하, 다른 분부가 없으시다면 저는 노부인의 시중을 들러 가겠습니다.” 소연은 눈을 내리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부터 그녀는 노부인 쪽에서 다방을 관리했는데, 노부인은 그녀가 만든 차와 간식을 아주 좋아했다. 허준안은 소연이 통방이 된 후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이 돌아서려고 하자 허준안이 입을 열었다. “잠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또 날 불러 세워서 뭘 하려는 거야? 빨리 노부인의 비위를 맞추러 가야 되거늘.’ 그녀는 오늘 한씨의 미움을 샀으니 이젠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노부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자보다는 노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할 것 같았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소연은 순순히 몸을 돌려 물었다. “세자 저하, 분부하실 것이 있습니까?” “앞으로 넌 금심각에 남아있거라. 초하원에 가서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된다.” 허준안의 말에 소연의 눈엔 약간의 놀라움이 스쳤다. 이는 정말 그녀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씨와 정면으로 맞설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한씨라 해도, 서재까지 찾아와 자신을 트집 잡지는 못할 테니까.“예. 알겠습니다.” 소연은 몸을 살짝 굽혀 인사를 하고 나갔다. 허준안은 소연이 다른 두 명의 첩실처럼 총애를 받았다고 오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계속 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소연은 금심각을 나온 뒤, 본래는 먼저 다방에 들렀다가 노부인께 문안을 드리려 했다.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진 어멈에게 이끌려 곧장 거실로 들어가게 되었다.노부인은 나한의자에 앉아 소연을 보며 말했다. “잘했다, 잘했어.” 그녀는 오늘 아침에 특별히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는데, 어젯밤에 소연이 세자 방에서 무려 한 시진이나 머물렀다는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왜냐하면 그건 전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혼인을 한 지 3년이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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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연이 떠난 후, 노부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한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시집온 지도 3년이 되었으니 이제 안살림을 너에게 맡길 때가 된 것 같구나.” 노부인의 말에 한씨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머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며느리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부족한 것이 많아, 감히 그런 큰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노부인은 담담하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괜찮다. 내가 옆에서 가르쳐 줄 테니 천천히 배우면 된다.” 예전에는 안살림의 자잘한 일들이 한씨를 지치게 하여 자식 보는 일에 지장을 줄까 염려해, 노부인은 일부러 그녀에게 맡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씨가 당장 회임하기도 어렵고, 허준안도 소연에게 마음이 있으니, 차라리 한씨에게 안살림을 맡겨 주의를 분산시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방 안의 그 자잘한 일들만 붙들고 있다가, 좁은 식견으로 사람을 괴롭히게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게다가 노부인은 자신이 아들을 위해 통방을 뽑은 건 확실히 한씨의 체면을 깎았으니 안살림을 맡기는 것도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한씨는 노부인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다.그녀는 그저 지난 삼 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노부인의 눈에 든 것이라 여기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채 큰일이라도 해낼 기세였다.노부인은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고 한씨를 곁에 남겨 두었다. 잠시 뒤 관리인 아낙들이 와서 일을 보고할 테니, 그 자리에서 한씨도 자연스레 얼굴을 익히게 할 생각이었다.한씨는 노부인 곁에서 안살림을 배우느라 바빠졌고, 자연히 소연을 찾아가 트집 잡을 여력도 없어졌다. 소연은 금심각에 머물면서 한가한 생활을 보냈다. 다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자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실 거나 만들어볼까?” 어차피 시침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떠오르지 않고 해서 차라리 마실 것을 만들어 노부인을 찾아가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소연은 다방으로 행했다. 세자가 혼인을 한 후,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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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허준안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상 위에 얌전히 누워 있던 소연이 갑자기 몸을 비틀기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치 작은 벌레처럼 이리저리 꿈틀대는 바람에, 침상에서는 삐걱삐걱 소리까지 새어 나왔다.‘어찌 이런 황당한 여인이......’ 허준안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단정하던 그의 준수한 얼굴 위로 부끄러움과 노여움이 뒤섞인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그가 버릇없는 소연을 꾸짖으려 할 때, 그녀가 신음소리를 냈다. 허준안은 순간 숨을 죽이고 꾸짖는 것도 잊었다. 이어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소연은 몸을 살짝 비틀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오므린 채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살갗에 닿는 은근한 소리와 소연의 낮은 신음이 뒤섞이자, 허준안의 눈빛은 한층 더 깊어졌다.“건방지구나.” 그는 황급히 손을 빼냈다. 목소리에는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거침이 담겨 있었다. 소연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세자 저하,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노부인을 안심시키기 위함입니다. 절대로 선을 넘는 일을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허준안은 눈을 깜빡이며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소연은 침대를 더 세게 흔들었고, 신음소리도 높아져 마치 두 사람이 정말로 합방을 하는 것 같았다. 허준안은 그녀가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질책의 말을 한숨으로 바꾸었다. ‘어머니께서 손자를 안고 싶어 미칠 지경이니, 정말로 금심각에 사람을 심었을 가능성이 커. 만약 오늘 밤 이쪽에서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어머니께서 더 걱정하시겠지. 그렇다면 이 시녀가 꼭 총애를 얻으려 일부러 이러는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그저 맡은 일을 완수하려는 것뿐이겠지…’ 허준안은 마음속의 분노가 점차 사라졌고 곧이어 몸이 뜨거워졌다. 소연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속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허준안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아니야.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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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렇게 생각할수록 한씨는 점점 더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다.그러다 곁에 있던 심복 종 어멈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서야, 한씨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마님, 시집오기 전에 부인께서 어떻게 당부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첩들과 통방은 주인의 장난감에 불과하니 질투를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자께서 지금은 신선함에 빠져 통방을 총애하는 것이니 며칠 후에 핑계를 찾아 내보내면 그만입니다.” 종 어멈은 목소리를 낮추고 답답한 말투로 말했다. “자, 어서 들어가십시오. 노부인께 문안 인사드릴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지요.” 종 어멈의 말에 한씨는 순간 냉정해졌다. ‘그래, 난 세자 부인이야. 일개 통방을 질투할 필요 없지. 나중에 핑계를 찾아서 소연을 내보내면 그만인 것을. 내가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부군에게 첩들을 들이게 할 리가 있겠어? 부군이 첩을 더 들이고 싶다면 최홍을 부군에게 보내면 그만이야. 다만 그 사람이 소연이어서는 안 돼. 딱 봐도 여우처럼 생겨서는 통방이 된 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세자 곁에 달라붙어 이틀 밤을 연달아 시침 들다니. 나중에 정이 들면 내 머리 위까지 기어오르겠어.’ 한씨는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노부인은 어젯밤 손자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 잠을 설쳐 아침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방금 하인에게서 어젯밤 소연이 또 시침했을 뿐만 아니라 밤새 세자와 함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두통이 반쯤 나은 것 같았다. 마침 소연이 또 간식을 가져왔는데 박하 복숭아떡은 복숭아 모양으로 빚어져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웠다. 한입 베어 물자, 위쪽에서는 달콤하고 촉촉한 복숭아 소가 부드럽게 씹혔고, 아래쪽의 작은 잎사귀 부분에는 박하가 섞여 있어 입안이 더없이 산뜻해졌다.노부인은 하나를 먹고 나니 두통마저 싹 가신 듯했다. 그래서 소연의 손을 붙잡고 웃으며 농담까지 나누었다.시일이 너무 짧지만 않았더라면, 당장 부중 의원을 불러 소연의 맥을 짚어 보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혹시 벌써 회임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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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노부인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넌 받을 만하다. 준안이를 자주 네 방에 들여야 빨리 회임할 수 있다. 정말로 회임한다면 내가 다시 큰 상을 주마.”한씨는 옆에서 소연의 목에 생긴 붉은 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노부인께서 그녀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고 억지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소연에게 내릴 상을 준비하겠다고 말한 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떠난 후, 노부인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손을 내저어 소연을 물러가게 했다.노부인은 의자에 기대어 미간을 주무르며 진 어멈에게 탄식했다.“내가 준안이를 위해 부인을 잘못 들인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고작 통방일 뿐인데 저렇게까지 질투를 하다니. 주모로서의 기개가 조금도 없군. 3년 동안 회임소식이 없어도 시어머니인 내가 언제 그녀에게 뭐라고 한 적이 있었느냐? 그런데 오늘은 도리어 저리 억울한 기색을 내비치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시어미로서 그녀를 박대한 줄 알겠구나.”“노부인, 화내지 마십시오. 소부인께서는 아직 나이가 어려, 노부인 마님께서 그녀를 위해 얼마나 깊이 마음 쓰시는지 미처 모르는 것입니다. 훗날 소연이 정말 아이를 낳고, 노부인 마님께서 그 아이를 소부인께 맡겨 기르게 하시면, 그때는 자연히 노부인 마님의 뜻을 알게 되실 겁니다.”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창고에 가서 수수한 장신구 두 가지를 찾아 소연에게 가져다 주거라. 그럼 사람들이 내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소연이 금심각으로 돌아온 지 차 한 잔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진 어멈이 직접 노부인의 하사품을 가져왔다.두 가지 장신구는 모두 꾸밈없는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보기만 해도 제법 묵직해 보였다. 금은방에 가져가 팔기만 해도, 못해도 은자 수십 냥은 받을 수 있을 터였다.소연은 이미 마음속으로 나름의 계산을 해 둔 상태였다. 만약 정말 세자를 위해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때는 노부인께 은혜를 청해 국공부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할 강남으로 가 조용히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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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소연의 부모님은 국공 부인 곁에서 일을 하던 하인들이었다. 다만 나중에 노부인께서 은덕을 베풀어 소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몸값 증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왕씨는 몇 년 동안 저축한 은자로 저택을 사서 하인을 부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연의 오라버니와 동생도 모두 도련님과 아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오직 그녀만 세 살 때 어머니에 의해 국공부에 보내졌다. 그녀는 그날의 장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노부인께서 이렇게 인자하신데 하인인 저희가 어찌 근본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연이를 국공부에 남겨 주인을 모시게 해 주십시오.” 그날부터 소연은 국공부의 가장 비천한 하녀가 되었다. 그녀는 마당을 쓸고 닦는 막일부터 시작했다. 겨울의 찬물은 그녀의 손가락을 갈라지게 했고, 여름의 햇볕은 그녀의 등이 벗겨지게 했다. 매달의 약소한 월봉마저 가정비에 보탠다며 어머니가 매달 와서 가져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매번 올 때마다 딸을 본다는 핑계로 노부인에게서 비단, 간식, 은전을 얻어 집으로 가져가 오라버니와 여동생에게 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그녀가 국공부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눈치를 보며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조금도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등에 칼을 꽂았다.오라버니는 그녀에게 노비 냄새가 난다며 같이 다니면 학자로서의 체면을 잃게 된다고 했고, 여동생 소하는 하인들 앞에서 그녀를 하녀라고 불렀다. 심지어 가족 연회에서조차 그녀를 상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복도 끝에 서서 시중들게 했다. 오직 매년 섣달 그믐날 주인이 두터운 명절 선물을 할 때만 그녀를 집으로 들였다. 말로는 명절에 부모를 방문하는 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받은 상을 집으로 가져다 바치길 기다리는 것이었다.분명 모두 그녀에게서 피를 빨고 있는 구더기들이지만, 하나같이 그녀 앞에서 높은 자세로 도련님과 아씨 티를 냈다. 전생에 그녀가 마지막에 참혹하게 죽은 것도 ‘가족’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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