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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너무 위험한 여자: Capítulo 11 - Capítulo 20

36 Capítulos

11. 달콤한 고문

이현은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점점 두려워졌다.마주보는 거리, 그녀의 시선, 말없이 고개를 기울이는 그 짧은 찰나까지.그 모든 것이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런데도 이현은 숨을 쉴 수 없었다.그날, 유리는 평소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이현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몸을 숙이자,그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뚝을 스쳤다.그는 움찔했다.그러나 그 스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그의 얼굴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뭔가를 시험하는 듯했고,입술 끝은 미세하게 흔들렸다.“지금 심장이 뛰고 있죠?”유리가 물었다.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손등을 아주 천천히 훑었다.“당신은 나한테 빠진 게 아니에요.”“...그럼 뭐죠?”“갈증이에요. 내가 만들어낸.”그녀의 말이 그의 귀에 닿자,이현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손끝을 움켜쥐었다.“유리…”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이번엔 진짜로, 가까이.“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말해요.”“당신을… 안고 싶어요.”그 말은 나직했지만, 흔들렸다. 그는 말하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유리는 그제야 살짝 웃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의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그런 충동, 참지 마요. 나는 원래, 사람을 망치는 데 능숙하니까.”그녀는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숨이 섞일 만큼 가까워졌고,그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입맞춤은 허락되지 않았다.단 1cm의 거리. 그녀는 거기서 멈췄다.“하지만 아직은 안 돼요. 당신이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너무 많으니까.”그날 밤, 이현은 한 번도 잠들지 못했다.이성을 삼키는 충동, 감정을 먹고 자라는 갈망.그 모든 게 한 사람에게 연결되어 있었다.그는 욕조에 앉은 채,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그녀가 나를 조이고 있다.’그건 확실했다.하지만 거기엔 분노도, 불쾌함도 없었다.그저, 더 원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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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자백 이후의 침묵

‘조유진.’ 그 이름은 여전히 방 안을 떠돌았다.공기처럼, 벽지처럼, 모든 틈 사이에 박혀 있는 단어 하나. 입 밖으로 흘러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이현은 이미 자신이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되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말하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입으로 꺼낸 순간 죄가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다.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말하고 나니, 모든 장면이 더 생생하게 돌아왔다.그녀가 울고 있던 모습. 도망치듯 돌아선 자신의 뒷모습.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 소식.그는 침대 머리맡에 앉은 채,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심장이 조여드는 기분. 죄가 아니라, 벌처럼.유리는 말이 없었다.그날 이후, 그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이름.‘조유진’을 말한 뒤부터, 이현은 오히려 입을 닫았다.하지만 유리는 기다렸다.사람은 입으로 고백한 죄보다,스스로 마주한 기억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게 되어 있다.지금은 침묵이 약이 된다.죄는 말보다 침묵 속에서 더 잘 자란다.그녀는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말을 걸지도, 몸을 만지지도 않았다. 다만,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아주 조용히 숨을 고를 뿐.그렇게 고요하게, 그의 망가짐을 기다렸다.그날 밤, 유리는 일지를 펼쳤다.[심리 반응: 혼란, 후회, 언어적 표현 중단 / 자아의식 위축][방향 전환: 적극적 추궁 대신 감정 동조 + 침묵 활용]그녀는 메모를 남기며, 책상 서랍에서 조심스레 깨진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사고 당일, 언니 유진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핸드폰이었다.검정 케이스, 액정은 금이 가 있었고, 전원은 꺼져 있었다.오랫동안 충전되지 않았던 그것은, 최근 복구팀의 손을 거쳐 겨우 부팅된 상태였다.그 안에는 단 두 개의 폴더가 있었다. 하나는 영상. 다른 하나는 사진.유리는 영상 폴더를 열었다.그 안에는 침대 위, 이현과 유진의 하룻밤이 그대로 담긴 클립 하나가 있었다.화면 속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지만,이현의 얼굴은 그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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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잠재된 칼날

[그냥, 유리씨 얼굴만 봐도 좋겠어요.]그 말은 따뜻했다. 그리고 차가웠다.그가 진심이라면, 너무 가벼웠고.그가 거짓이라면, 너무 간절했다.유리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였다.“넌 날 사랑하게 될 거야. 그게 네 죄가 된다면, 난 더 깊이 빠지게 만들 거야.”이현의 집은 여전히 단정했다.하지만 오늘, 그는 문을 열고도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껴안았다.“왔어?… 정말 그냥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었어.”그 품은 따뜻했고, 유리는 그 안에서 가볍게 눈을 감았다.그러나 마음은 차가웠다.복수의 열은 아직도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이 남자가, 언니를 죽였을까.그가 아무리 다정해도, 그 손끝이 사랑을 만들었다 해도.그날 밤, 언니는 죽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 죽음 앞에서 도망쳤다.“오늘은 술 말고, 차 마실래요.”유리가 말했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이 좋다면 뭐든지요.”그는 그녀를 위해 직접 차를 우리며 말했다.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창밖에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이현 씨.”“네?”“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처럼 보여요?”이현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었다. “이미 그런 것처럼 보여요.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런 건가.”“그래요, 믿고 싶게 만들어줄게요.”그녀는 차를 들고 그의 앞에 앉았다.다리를 꼬았고, 한쪽 어깨를 살짝 드러낸 블라우스 사이로 은은한 향이 퍼졌다.“근데요, 믿기 전에 하나만 물을게요.”“네?”“당신은, 누군가를 끝장낼 만큼 잔인한 사람이에요?”이현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유리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빛은 부드럽지만, 말은 날카로웠다.“사랑도, 죄도, 결국엔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당신 본성은 어떤 건지 궁금해서요.”“그런 말, 왜 해요?”“대답이 불편해요?”이현은 숨을 들이쉬었다.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잔인해질 수 있어요. 특히, 그게 자기를 지키는 일이라면.”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그래서 전, 당신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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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심한 도발

유리는 천천히 그의 무릎에 앉았다.손끝으로 그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몸도 마음도, 전부 내게 줄 수 있을 만큼의 진심이라면… 그 죄는, 더 무거워질 거예요.”이현은 그 말에 반응하지 못한 채 그녀를 끌어안았다. 입술이 닿고, 숨이 엉켜들고, 그 밤은 오래도록 타올랐다.새벽녘, 유리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었다. 이현이 깊은 잠에 빠진 틈,그의 핸드폰이 책상 위에 무방비로 놓여 있었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그때 슬쩍 봤던 패턴 그대로네.”그녀는 한참을 그 화면을 바라보다가,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덮었다.“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더 원하게 만들어야 해.”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두 개의 폰을 꺼냈다.한 폰엔 영상, 다른 폰엔 음성.그 증거는 칼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벨 필요 없다.피를 묻히기 전, 더 간절하게 만들 것.유리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사랑하게 만들어줄게. 끝을 보는 그날까지, 너는 나만 믿게 될 거야.”유리는 아무 말 없이 와인을 따랐다.붉은 액체가 잔에 스며들 듯, 그녀의 눈빛도 조용히 짙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이현 앞에서는, 눈동자의 깊이를 자꾸 재게 된다.“오늘도 참 조용하시네요.”그의 목소리는 늘 같은 톤이었다.존댓말이었지만, 공손하지 않았다.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무심하고 건드리는 말투.유리는 잔을 들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시끄러운 여자를 좋아하세요?”“아뇨. 조용한 여자가 더 위험하죠.”그 말에 그녀의 손이 잠시 멈췄다.잔을 입에 가져가기까지, 0.3초의 공백.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순간, 유리는 자신을 다잡았다.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 리가 없다.“그런 여자한테 왜 자꾸 다가오시죠?”“글쎄요. 아마 자극적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정답을 모르는 문제에 손이 가는 건 저만 그런 건가요?”유리는 웃지 않았다.대신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그의 시선은 물처럼 유리를 훑고 있었고,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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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가까운 입술, 멀어지는 진실

유리는 창가에 기대어 있었다.말없이, 조용히. 외투를 벗지 않은 채, 그저 그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커튼 틈 사이로 들이치는 불빛이 그녀의 턱선을 스쳐갔고,이현은 문을 닫은 뒤에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혼자에요?”그가 물었다.공손한 말투지만, 어딘가 건드리는 어조였다.늘 그렇듯, 그에게 존댓말은 예의가 아니라 여유였다.유리는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혹시 누굴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셨어요?”“그건 상상하기 나름이죠.”이현은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옆에 섰다.둘 사이엔 반 뼘의 공기와, 복수라는 칼날이 얇게 눕혀져 있었다.“아무리 생각해도요.”그가 말했다.“유리 씨는 좀 위험한 사람이에요.”유리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눈을 맞추는 데 3초, 입꼬리를 올리는 데 1초.그리고 대답은, 5초 후에야 나왔다.“그런 여자한테 끌리는 거예요?”“네. 아주 많이요.”그는 진심이었다.유리는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표정이 무너질 듯 부드럽고, 눈빛이 투명해지는 순간을.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투명함은, 언니가 죽은 날의 밤하늘처럼 속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이현은 유리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며 물었다.“오늘은 조금 취하고 싶으세요?”“오늘은… 조금 흔들리고 싶어요.”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유리는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녀는 유혹하고 있었고, 동시에 시험하고 있었다.이 남자가 끝까지 죄책감 없이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지를.“그럼, 저랑 흔들릴래요?”이현이 말했다.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흔들리는 건 제가 결정하는 거예요.”그의 손이 먼저 다가왔다.소매 끝을 잡은 그의 손가락이 유리의 손등 위에 가만히 얹혔다.유리는 저항하지 않았다. 피하지도, 잡아주지도 않았다.그저 가만히 있었다. 숨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이현은 어느새 그녀의 눈높이까지 고개를 숙였다.유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단지 유혹의 수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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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잔열의 오해

그 말엔 웃음이 묻어 있었지만, 그 속엔 분명한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물었다.“왜요, 제가 겁나요?”“네. 솔직히요. 당신은… 내가 평소에 상대한 여자들과는 달라요.”“어떻게 다른데요.”“예측이 안 돼요. 그러니까 자꾸 더 보고 싶고, 알고 싶고…가지고 싶어져요.”유리는 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이현의 눈동자엔 확신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그 확신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 가진 눈빛 같지 않았다.그게 그녀를 더 분노하게 했다.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가.만약 그날의 진실이 맞다면, 이 눈빛은 거짓이어야 한다.그래서 유리는, 더 깊이 들어가기로 했다.“가지고 싶다면서요.”그녀가 조용히 말했다.“그럼 가져보세요.”이현은 순간,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지금요?”“지금이요.”그녀는 다리를 풀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섰다.무릎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망설이세요?”“아뇨.”이현은 숨을 삼켰다.“다만…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어요.”“그럼 잘 기억해두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그녀는 그에게 입을 맞췄다.이번엔 짧지 않았다. 긴 숨, 긴 접촉, 그리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내면의 독백.‘이게 사랑이라면, 당신은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해요.’이현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숨결이 귓가를 타고 스며들었다.“유리 씨…”“네?”“사랑해요. 진심이에요.”그 순간, 유리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하지만 단 1초만. 그녀는 이내 그를 꼭 안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더는 도망치지 마요. 어떤 일이 있어도…내 앞에 있어줘요.”그건 약속이 아니라, 예고였다.이현이 잠든 뒤, 유리는 그의 품을 빠져나와 조용히 창가로 갔다.그녀의 손에는 작은 핸드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거기엔 영상 하나, 사진 하나, 그리고 아직 열지 않은 음성파일 하나가 저장돼 있었다.그녀는 화면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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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모순의 속삭임

질문은 너무 단순해서 되려 잔인했다.‘진짜’라는 단어가 복수의 설계 안에선가장 위선적인 감정이었으니까.유리는 그 말에 고개를 약간 숙이며,이현의 가슴께에 입술을 댔다.단지 입술만 닿은, 숨결도 없는 접촉.그 접촉 안에, 대답은 없었다.그 대신 속삭임만 남았다.“이건 진짜예요.”그날 밤, 이현은 유리의 어깨를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숨결이 고르고, 심장이 조용히 안정을 찾을 때쯤유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대맡에 놓인 자신의 핸드백을 열었다.안에는 유진의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사고 당시 발견된 건 아니었다.장례가 끝난 뒤, 유진의 집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져 있던,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또 하나의 폰.그 안엔, 열지 않은 음성 파일 하나가 있었다. ‘유리에게.’그녀는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다시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이현은 자고 있었다. 천진하고, 조용히.이 사람이 정말, 그 밤의 진실을 알고 있는 걸까.그 의문은 처음으로 복수가 아닌 방향으로 그녀의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리는 그 흔들림조차도 복수의 시계 속에서 정리했다.다음날 아침. 이현이 눈을 뜨자, 유리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일어나셨어요?”“네… 어제는… 정말…”“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조용했죠?”그녀는 웃으며 커피를 건넸고, 그의 손끝이 그녀의 손등을 스치듯 받았다.그 순간, 이현은 다시금 확신했다.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된다고. 그는 전혀 몰랐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게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심장을 겨누는 자백의 칼끝이라는 걸.그날 밤, 이현은 침대맡에 앉아 있었다. 머리를 헝클인 채, 담배를 입에 물지도 못한 채.유리는 조용히 그 옆에 앉으며 물었다.“오늘은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유리에게는 낯설었다.말이 많고 가벼웠던 그가, 오늘따라 어딘가 무너진 사람처럼 보였다.“유리 씨는요.”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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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랑이 죄가 될 때

이현이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유리는 문득 생각했다.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죄일까, 구원일까.침대 맡에는 여전히 유진의 폰이 놓여 있었다.화면 속 ‘유리에게’라는 제목의 음성 파일은재생 버튼을 누르라는 듯,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그녀는 손을 뻗었다. 그러다 멈췄다.이현의 팔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자기 뜻과는 다르게, 그는 늘 그녀를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였다.그 팔을 느끼며 유리는 자신을 미워했다.이 팔이 죄를 감추는 무기인지, 아니면 진심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걸지금 가장 괴로운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이른 아침, 이현이 눈을 뜨자 유리는 식탁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눈빛은 고요했고, 입술은 평소보다 단정히 닫혀 있었다.“유리 씨.”그가 다가와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왜 이렇게 말이 없으세요?”유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지금 말하면 감정이 샐까 봐요.”“감정이요?”“그쪽이 주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받아버릴까 봐.”이현은 그 말을 곱씹듯 입술을 다물었다.그리고 한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혹시… 내가 무너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신 때문이에요.”유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을 삼키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거짓말이었다. 그는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유리는 끝까지 연기해야 했다.그날 밤, 유리는 혼자 그의 집을 나와 호텔 근처의 작은 바에 들어갔다.바텐더가 술잔을 내밀었다.“뭐로 드릴까요?”“이름이 강한 걸로요. 오늘은 좀 무거운 게 마시고 싶네요.”그녀는 한 모금 마시고 핸드폰을 꺼냈다.유진의 메시지를 다시 재생할까 망설였지만, 그 대신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서이우.’ 이현의 형.검색 결과는 많지 않았다.보도자료 몇 줄, 회사 내부 행사 사진, 그리고 유진이 사망한 그 해의 모임 리스트.거기엔 ‘서이우’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 하나. 유진이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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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름을 부를 때

“곧 말할게요, 언니.”유리는 속삭이듯 말했다.“이름을 숨기던 시간은 여기까지.”그녀는 곧 조유리가 될 것이다.그 남자의 앞에서. 그가 끝까지 잊으려 했던 이름으로.며칠 뒤, 이우는 유리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정확히 말해 이현이 없는 자리에서.“잠시 뵙고 싶었습니다. 이현이 꽤 오래 붙들고 있는 분 같아서요.”유리는 테이블 너머에서 미소를 지었다.“그 사람에게 꽤 붙잡혀 있어요, 저도.”“무슨 일을 하시죠?”“전… 글을 써요. 사람의 표정을요.”“그럼 제 얼굴에도 무슨 문장이 쓰여 있나요?”“있죠.”유리는 와인잔을 들었다.그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말했다.“진심은 불필요하다. 그게 당신 얼굴에 쓰인 문장이에요.”이우는 웃었다. 그러나 웃지 않는 눈으로.“재미있는 표현이네요.”“그게 아니라, 정확한 표현이죠.”그 순간, 둘 사이엔 와인보다 진한 긴장이 흘렀다.그날 밤, 유리는 다시 유진의 음성파일을 재생했다.“유리야, 혹시 내게 무슨 일 생기면… 그건, 서이현… 그 사람 옆에 있는, ‘그 사람’의 짓이야.”그 사람.이제 얼굴을 봤다.이름도 알았다. 이제 필요한 건,그가 '유리'라는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유리는 차가운 라떼잔을 손끝으로 굴리며, 이우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생각 보다 부드러웠지만,그 부드러움 안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있었다.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안다는 듯한 태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현이 꽤 오래 붙잡혀 있더군요.”“제가 꽤 오래 붙잡아두고 있는 거예요.”유리는 웃으며 말했다.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문장의 끝은 단단했다.그녀는 지금 실로 만든 복수의 끈을 천천히 조이고 있었다.“근데요.”이우가 말했다.“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아요. 유리 씨.”“낯익은 얼굴은 원래, 오래 보게 되죠.”“아뇨. 얼굴 말고…느낌이요.”유리는 잔을 내려놓았다.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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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작위적인 미소

유리는 잔을 들며 말했다. 입술을 잔 가장자리에 살짝 얹었다. 마시지 않았다.그저 ‘침묵’을 마시는 것처럼 보였다.“유리 씨는 믿지 않나요?”“직접 보면 믿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요. 특히 누군가가 ‘침착하게 설명’할수록요.”이우는 한 박자 늦게 웃었다.“그 말, 저한테 하는 겁니까?”“글쎄요. 스스로 찔리는 부분이 있으세요?”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이제 그는 유리를 ‘애매한 연인의 여자’로 보지 않았다.경계 대상이자, 확인해야 할 변수로 분류한 것이다.“이현이 알면 속상하겠네요.”그가 말했다.“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의심과 질문을 품고 있다면.”“이현 씨는요.”유리는 잔을 내려놓으며 대꾸했다.“제가 어떤 질문을 해도 사랑하겠다고 했어요. 그 말의 무게를 저는 시험해볼 생각이에요.”이우는 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러곤 조용히 물었다.“조유진 씨, 장례식… 당신도 계셨습니까?”유리는 그제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어요. 검은 모자와 베일을 쓰고.”“왜요?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까?”“그날의 고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거든요.”“그 고요가 진짜 죽음을 덮어버릴지도 모르는데도요?”유리는 시선을 그의 눈에서 떼지 않았다.오히려 더 깊이 바라보며 말했다.“고요는 잠시고, 진실은 결국 제 시간에 깨어나요.”그날 저녁, 이우는 사무실로 돌아와 비서에게 지시했다.“조유리. 이름, 출신, 학력, 가족 관계, 과거 교우 관계까지 모든 걸 조용히 확인해. 단, 이현이 모르게.”비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나가자, 사무실엔 조용한 회색 빛만 남았다.그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이름이 같을 수는 있어. 하지만 눈빛은… 그건, 그녀를 쏙 빼닮았지.”한편 유리는 혼자였다. 그녀는 조용히 옷장을 열어,유진의 검은 원피스를 꺼냈다.그날 장례식에 입고 간 옷이었다.거울 앞에 서서, 그 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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