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 그 이름은 여전히 방 안을 떠돌았다.공기처럼, 벽지처럼, 모든 틈 사이에 박혀 있는 단어 하나. 입 밖으로 흘러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이현은 이미 자신이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되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말하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입으로 꺼낸 순간 죄가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다.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말하고 나니, 모든 장면이 더 생생하게 돌아왔다.그녀가 울고 있던 모습. 도망치듯 돌아선 자신의 뒷모습.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 소식.그는 침대 머리맡에 앉은 채,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심장이 조여드는 기분. 죄가 아니라, 벌처럼.유리는 말이 없었다.그날 이후, 그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이름.‘조유진’을 말한 뒤부터, 이현은 오히려 입을 닫았다.하지만 유리는 기다렸다.사람은 입으로 고백한 죄보다,스스로 마주한 기억에서 더 깊은 고통을 느끼게 되어 있다.지금은 침묵이 약이 된다.죄는 말보다 침묵 속에서 더 잘 자란다.그녀는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말을 걸지도, 몸을 만지지도 않았다. 다만,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아주 조용히 숨을 고를 뿐.그렇게 고요하게, 그의 망가짐을 기다렸다.그날 밤, 유리는 일지를 펼쳤다.[심리 반응: 혼란, 후회, 언어적 표현 중단 / 자아의식 위축][방향 전환: 적극적 추궁 대신 감정 동조 + 침묵 활용]그녀는 메모를 남기며, 책상 서랍에서 조심스레 깨진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사고 당일, 언니 유진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핸드폰이었다.검정 케이스, 액정은 금이 가 있었고, 전원은 꺼져 있었다.오랫동안 충전되지 않았던 그것은, 최근 복구팀의 손을 거쳐 겨우 부팅된 상태였다.그 안에는 단 두 개의 폴더가 있었다. 하나는 영상. 다른 하나는 사진.유리는 영상 폴더를 열었다.그 안에는 침대 위, 이현과 유진의 하룻밤이 그대로 담긴 클립 하나가 있었다.화면 속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지만,이현의 얼굴은 그 어디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6-25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