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마지막 서프라이즈: 재혼 선물: Chapter 11 - Chapter 20

23 Chapters

제11화

그 도발적인 음성 메시지 밑에 ‘태성운’이 보낸 공설아와의 침대 사진, 그리고 공설아가 남성용 커플 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서 찍은 셀카가 있었다.두 번째 캡처 화면은 ‘태성운’이 결혼 5주년 기념일 당일 공설아와 함께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사진이었다.세 번째 캡처 화면은 차 안에서 밀회를 즐겼던 호숫가의 위치였고 네 번째는 세 장의 웨딩 사진과 허윤미를 도발하며 남편을 공유하자는 등의 뻔뻔한 메시지였다.전부 ‘태성운’이 보낸 것이었다.하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태성운의 계정으로 보낸 음성 메시지인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왜 공설아일까?이때 아까부터 참견하기 좋아하던 눈치 빠른 하객 한 명이 단번에 사건의 핵심을 짚어냈다.“혹시 공설아가 대표님의 휴대폰으로 허윤미 씨한테 이 내용들을 보낸 거 아닐까요?”그 한마디에 하객들의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사방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요즘 상간녀들은 다 저렇게 뻔뻔한가요? 남의 남편 휴대폰으로 본처한테 도발 메시지를 보내다니.”“안 되겠어요. 내가 성운이의 친구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실드 쳐줄 수가 없네요. 지금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거 겨우 참고 있어요.”“상간녀 주제에 뭐가 저렇게 당당하죠? 살면서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나 봐요.”하객 중 태성운의 친구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허윤미의 친구들과 함께 공설아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부었다.태성운도 그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핏발이 서 눈이 벌게진 채 공설아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겠다고 가져가더니 윤미한테 메시지를 보내서 도발을 해? 내가 분명 경고했지?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줄 테니까 윤미가 네 존재를 알게 해선 절대 안 된다고. 그리고 내 와이프는 오직 윤미뿐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어!”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대화 기록을 보던 태성운은 문득 허윤미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허윤미가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뎠을지, 공설아가 도발적인 메시지를
Read more

제12화

태성운이 잠시 망설이다 한숨을 내쉬었다.“너도 알잖아. 윤미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거. 설아가 아이를 낳으면 바로 은산을 떠나게 할 거야. 다시는 이곳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라고.”허윤미가 안타까웠던 임소정이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그녀는 태성운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바보같이 그를 대신해 불임이라는 병을 뒤집어썼다.그런데 태성운은 허윤미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설령 허윤미가 정말로 아이를 낳지 못한다 하더라도 태성운은 첫사랑에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해선 안 되었다. 이건 허윤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상처가 될 테니까.“더는 해 줄 말이 없어. 태성운, 언젠가 반드시 네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임소정의 말이 거슬렸던 태성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 더 물으려는데 임소정이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포기하지 않고 허윤미의 친구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려 행방을 물었다.오늘 생일 파티에 임소정만 빼고 허윤미의 친구들이 대부분 다 참석했다. 태성운이 첫사랑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아예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를 받더라도 허윤미를 대신해 거친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다.수십 통의 전화를 돌렸음에도 허윤미에 관한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하자 결국 전문 조사 인력을 동원했다.이튿날 점심 태성운의 사무실.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보고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노르웨이로 가셨습니다...”‘노르웨이?’태성운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더니 깊은 절망에 빠진 듯 두 눈을 감았다.5년 전 태성운이 허윤미와 혼인신고를 할 당시 장인어른 허수환과 장모 김인경이 그에게 계약서 한 장을 쓰게 했었다.만약 허윤미가 태성운 때문에 상처를 받고 홀로 노르웨이로 돌아가게 된다면 태성운은 평생 노르웨이 땅을 밟지 못한다.그리고 이를 어길 시 태성운 명의의 모든 자산이 허윤미에게 넘어간다는 내용이었다.태성운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노르웨이로 가는
Read more

제13화

‘아니야. 내가 잘 숨겨서 아무도 모를 거야.’같은 시각 노르웨이 공항.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온 허윤미가 저 멀리 대기 구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인경과 허수환을 봤다.김인경이 초췌해진 허윤미를 보자마자 가슴이 미어져 몰래 눈물을 훔쳤다.어릴 적부터 애지중지 키운 딸이 고작 5년의 결혼 생활 만에 이토록 지쳐버렸다니. 두 눈에 생기마저 남아있지 않았다.“거기에서의 일은 다 정리했어?”어젯밤 김인경과 허수환이 은산시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 들었다.태성운이 허윤미를 배신하고 몰래 공설아와 웨딩 사진을 찍은 데다가 부모까지 만났다는 소문이 세상에 파다하게 퍼졌다.부모에게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생각에 허윤미는 목이 멨다.“엄마, 아빠, 죄송해요.”허수환과 김인경은 노르웨이에서 상당한 명예와 지위가 있는 인물들이었다.그런 그들의 딸에게 이런 일이 터졌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딸이 안쓰러웠던 김인경이 허윤미를 품에 꼭 안고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네 잘못이 아니야. 부부 관계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 헌신한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다.”“진짜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파람을 피운 그 인간이지.”줄곧 묵묵히 서 있던 허수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인경의 말에 동의했다.“맞아. 태성운 같은 놈이랑은 차라리 이혼하는 게 훨씬 이득이야. 이제 노르웨이로 왔으니 아빠랑 엄마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회사 물려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돼. 우리가 벌어둔 돈만으로도 네가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테니까.”김인경이 허윤미의 손을 꼭 잡았다. 혹여나 딸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을까 봐 걱정되어 다정하게 다독였다.“우린 널 행복하게 해 주려고 낳았어. 그리고 이혼한 게 뭐 어때서? 너한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본이 있는데.”김인경은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여장부였고 젊은 시절 허수환과의 결혼 역시 대단한 집안끼리의 결합이었다.두 사람은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부었다.허윤미가 코를 훌쩍였다.
Read more

제14화

해 질 녘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별장 단지로 들어서더니 공설아의 별장 앞에 멈춰 섰다.조수석에서 한 젊은 남자가 내리자마자 검은색 승용차가 즉시 단지를 빠져나갔다.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블루 데님 차림이었는데 반듯하고 수려한 외모와 달리 눈매에 반항기와 문란함이 서려 있었다.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제멋대로 자란 철부지 재벌 2세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설민호를 보자마자 공설아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미간을 찌푸렸다.“너 미쳤어? 기사까지 데리고 오면 어떡해? 그렇게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어?”설민호가 공설아에게 바짝 다가가 담배 연기를 그녀의 얼굴에 내뱉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뭘 그렇게 무서워해? 설마 태성운이 우리 관계를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거야?”매캐한 연기에 공설아가 콜록거리며 얼굴을 찌푸린 채 뒷걸음질 쳤다.설민호는 소파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고는 공설아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왜 불렀어? 다시 만나고 싶어서?”공설아가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설민호를 쳐다봤다.‘예전에 남자 보는 눈이 왜 이렇게 없었던 거야?’그녀는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배 속의 아이 네 아이야.”“뭐?”설민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멈칫했다가 갑자기 콜록콜록 기침했다. 그러고는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으로 공설아를 쳐다봤다.“내 애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공설아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아이의 아빠가 태성운이길 바란다고...”“공설아!”다급해진 설민호가 소리를 질렀다.“진정해. 진지하게 할 얘기가 있으니까.”그녀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태성운이 아직 이 아이가 그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고 조만간 노르웨이로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다.얘기를 다 들은 설민호가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눈을 가늘게 떴다.“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태성운이 노르웨이로 가기만 하면 걔 명의로 된 재산
Read more

제15화

허윤미는 순간 멍해졌다가 바로 뜻을 알아들었다. 임소정이 태성운을 조심하라고 귀띔하려고 전화를 건 것이었다.역시 임소정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조심할게.”전화를 끊은 뒤 허윤미는 태성운이 온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최근 부모님이 허윤미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조만간 허씨 가문의 가업을 허윤미에게 물려주겠다고 발표할 계획이었다.오후, 회사에서 돌아온 김인경이 허윤미의 방 문을 똑똑 두드렸다.“윤미야, 내일 저녁에 엄마 아빠랑 나가서 저녁 먹자.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알았어요.”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허윤미가 고개를 들고 고분고분 대답했다.근래 그들이 사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내로라하는 거물들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자리일 것이라 짐작했다.다음 날 해 질 녘, 허윤미가 부모님을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식사 장소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레스토랑이었다. 창밖에 설산과 협곡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졌다.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윤미가 손을 씻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복도를 지나가다가 눈앞에 펼쳐진 바다뷰에 매료되어 발걸음을 멈췄다.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와 살짝 차가운 바람, 허윤미는 이런 느낌을 좋아했다.허윤미가 풍경에 흠뻑 취해 있던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허윤미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확 밀어버렸다.중심을 잃은 허윤미가 본능적으로 난간을 잡으려는데 남자가 재빨리 다시 한번 허윤미를 힘껏 밀었다.그 순간 허윤미가 차디찬 바닷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으악.”바다에 빠진 허윤미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바닷물이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거센 파도가 허윤미를 집어삼키려던 찰나 한 남자가 정신을 잃어가던 허윤미를 덥석 잡았다.5분 뒤 허윤미가 구조되어 뭍으로 올라왔다.힘겹게 겨우 눈을 떴을 때 한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남자의 온몸이 흠뻑 젖어 회색 정장이
Read more

제16화

허윤미를 밀친 그 힘의 세기로 보아 남자임이 분명했다.유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하게 말했다.“저랑 같이 매니저님을 만나러 가요, 그럼.”잠시 후 보안실.레스토랑 직원이 해당 시간대의 영상을 확인하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범인이 범행 직전에 카메라를 가려버렸어요. 허윤미 씨가 물에 빠지는 순간이 찍히지 않았네요.”허윤미가 미간을 찌푸렸다.“이 레스토랑에 설치된 다른 CCTV 중에 이 남자의 정면이 찍힌 건 없나요?”네 명의 직원이 달라붙어 CCTV 영상을 돌려보았다.30분 후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죄송합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어요.”허윤미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이 남자가 찍힌 모든 구역의 영상을 저한테 보내주세요.”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윤미가 받은 영상을 임소정에게 전송했다.“이 사람이 누군지 좀 알아봐 줘.”“무슨 일이야?”본능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임소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허윤미가 미간을 찌푸린 채 저녁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유준혁 씨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임소정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나한테 맡겨. 누군지 꼭 알아낼게.”같은 시각 별장 거실.공설아가 태성운에게 열 통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싸늘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소파에 던지자마자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기대에 찬 얼굴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발신자가 설민호인 걸 보고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뭐? 누가 허윤미를 구했다고? 그 남자 대체 누구야?”설민호로부터 오늘 밤의 상황을 전해 듣던 공설아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두 눈이 질투로 이글거렸다.‘허윤미는 어쩜 운도 이렇게 좋아?’휴대폰 너머 차 안에 앉아 있던 설민호의 눈동자에도 독기가 서렸다.“이번에 죽다 살아나서 당분간 엄청 조심할 거야. 다시 손쓰기가 쉽지 않겠어.”공설아가 차가운 얼굴로 낮게 속삭였다.“일단 경거망동하지 마. 기회
Read more

제17화

“응.”허윤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분석했다.“내가 죽은 것처럼 꾸며서 태성운을 조문 오게 하는 거야. 그러면 태성운의 재산을 빼앗아 올 수 있어. 그러게 누가 사랑꾼인 척하래? 내가 죽었다고 하면 공설아도 더는 설민호한테 날 죽이라고 하지 않을 거야. 맨날 감시당하면서 산다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무엇보다 중요한 건 태성운이 조문하러 노르웨이까지 온다면 태성운의 돈을 노리는 공설아가 한 푼도 못 가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거야.”그야말로 일석삼조의 묘책이었다.하지만 완벽한 위장 죽음을 설계하려면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깊은 고민 끝에 유준혁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그러니까 상대가 윤미 씨를 해쳐서 죽었다고 생각하되 진짜로 죽지는 않는 방법을 추천해 달라는 거죠?”유준혁의 준수한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허윤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준혁에게 숨기지 않고 지난 두 달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전부 털어놓았다.과거를 얘기할 때 허윤미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하는 것처럼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그 사람들한테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요.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긴 싫고요. 위장 죽음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눈앞의 가녀린 그녀를 바라보는 유준혁의 검은 눈동자에 안타까움이 서렸다.허윤미는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태롭고 부서질 듯한 분위기가 보는 이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유준혁이 시선을 거두고 진지하게 상황을 분석했다.“보통은 바다에 투신하는 게 가장 그럴듯한 위장 죽음이긴 한데 최근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바닷가 근처로 갈 일은 없겠죠. 절벽에서 추락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차라리 교통사고로 위장하는 편이 낫겠어요.”“교통사고요?”허윤미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유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허윤미의 생활 동선이 아주 단조로웠고 매사에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설민호가 그녀에게 손댈 기회가 흔치 않을 터. 그렇다면 그녀가 자주
Read more

제18화

“설민호가 다음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허윤미 씨의 차가 회사 주차장에 들어서면 그때 손을 쓰라고 했습니다.”중년 남자가 망설이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덧붙였다.“설민호가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더군요. 단번에 허윤미 씨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라고. 성공하면 50만 달러를 더 주겠답니다.”펜을 돌리던 유준혁이 멈칫했다. 잘생긴 얼굴에 서슬 퍼런 한기가 서렸다.“허. 제법 통이 크군요.”유준혁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걸 알아챈 중년 남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평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유준혁이 감정을 표출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럼 저희는 그때 어떻게 움직이면 될까요?”유준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지시를 내렸다.“차에 아주 미세하게만 손을 대도록 해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허윤미 대신 대역을 구해서 운전하게 한 뒤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할 계획이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닷새 뒤 노르웨이에 거센 폭우가 쏟아졌다.그날 아침 허윤미는 평소처럼 차를 몰고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차를 세우고 하이힐을 또각또각 밟으며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 안에서 설민호가 허윤미의 뒷모습을 빤히 노려보며 중년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출근 시간이 지나면 바로 움직여요.”“알겠습니다.”점심에 사람이 적은 시간을 틈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차 보닛을 열어젖히고 한참 동안 만지작거린 다음 은밀하게 모습을 감췄다.지하 주차장을 벗어난 중년 남자가 곧바로 설민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다 끝났습니다.]설민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장을 보냈다.[잔금 방금 송금했어요. 허윤미를 한 번에 해결하면 약속한 50만 달러도 바로 계좌로 쏴줄게요.][감사합니다.]퇴근 시간이 되자 지하 주차장의 차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설민호가 차 안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봤다. 저녁 7시 30분이 되어서야 ‘허윤미’가 천
Read more

제19화

공설아가 무너져내리기 일보 직전인 태성운을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쳐다봤다.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긴 태성운은 자존심 따위 내팽개친 지 오래였다.과거 공설아가 모질게 태성운을 떠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무너진 적이 없었다.‘대체 허윤미가 뭐가 좋다고.’그녀는 태성운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억울함을 쏟아냈다.“노르웨이로 가겠다고? 허윤미는 이미 죽었어. 지금 가봤자 무슨 소용이야? 거기 가면 오빤 빈털터리가 된다고.”태성운이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공설아의 손을 확 뿌리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한 걸음씩 다가갔다.그의 음산한 눈빛에 겁을 먹은 공설아가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힌 그때 태성운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그때 네가 가지 말라고 막지만 않았어도 우린 진작 화해했을 거야. 윤미가 교통사고를 당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네가 우리 윤미를 간접적으로 죽였어. 공설아, 애만 낳으면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독기가 서린 태성운의 목소리에 공설아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잠시 후 태성운이 손을 떼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겁에 질린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던 공설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눈에 당혹감과 원망이 가득했다.“끝났어. 다 끝났어.”천 번 만 번 머리를 굴렸지만 태성운이 가진 자산을 전부 잃을 것을 알면서도 노르웨이로 가겠다는 선택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대론 안 돼. 태성운이 노르웨이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그럼 태성운이 무슨 쓸모가 있어? 하루빨리 설민호랑 다시 합쳐야 해.’설민호가 아무리 혼외자라 해도 빈털터리가 된 태성운보다는 나았다.한다면 하는 성격인 공설아가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들어 설민호에게 전화를 걸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제 돌아와?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이튿날 오후 허윤미의 장례식장.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허수환과 김인경이 허윤미의 영정 사진을 품에
Read more

제20화

“알겠습니다, 사모님.”일주일 뒤 이정후가 태성운의 별장을 찾았다.15kg 가까이 빠진 태성운의 모습을 본 순간 이정후의 두 눈에 언뜻 경악이 스쳤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찰나였을 뿐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대표님, 허윤미 씨 어머님께서 이 별장을 매각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오늘 매입자가 계약을 마쳤으니 이만 집을...”이정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성운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쓸쓸하게 웃었다.“이 집에서 나가란 말이죠? 윤미는 죽었고 이 집에도 윤미 물건이 하나도 없어요. 계속 있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긴 해요.”태성운이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가자 그가 걱정됐던 비서가 뒤를 쫓았다.최근 들어 태성운은 매일같이 술로 밤을 지새웠다. 허윤미에 대한 그리움에 하루에 겨우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그리움이 극에 달했을 때는 손목을 긋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결국 태성운이 정원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발을 헛디뎌 그대로 다시 쓰러져 버렸다.비서가 태성운을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 더는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어 그 전화번호를 눌렀다.두 시간 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태성운의 할아버지 태영철이었다.병실 안으로 들어와 초췌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태성운을 본 순간 태영철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간호사가 태성운의 손등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고 있었다.링거를 놓아주려는데 태성운이 가차 없이 바늘을 뽑아버렸다.간호사가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다시 바늘을 꽂았지만 태성운이 또다시 뽑았다. 이번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혈관을 스쳐 피가 뚝뚝 떨어졌다.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태영철이 지팡이를 들고 태성운을 마구 때렸다.“못난 놈, 당장 무릎 꿇어.”태성운이 구세주를 보듯 태영철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는 이미 삶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할아버지, 윤미 곁으로 가게 해주세요. 제발 보내주시면 안 돼요? 윤미 옆에 묻히고 싶어요. 윤미 부모님께 말씀 좀 잘 드려주세요.”
Read more
PREV
12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