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 Chapter 11 - Chapter 20

217 Chapters

11화

“내가 이 회사 주인이라고?”웃음부터 나왔다.“지금까지 나보고 며느리 주제에 나대지 말라던 인간들이?”나는 권태겸을 봤다.“내 밥 먹고 살았네.”“착각하지 마.”그가 이를 갈았다.“지분은 아직 네 것이 아니다.”“51퍼라며.”문서진이 대답했다.“조건부야.”“무슨 조건.”그 순간 권태겸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그만 지껄여!”이록이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 벽에 처박았다.쿵.“이제 아버지가 닥치세요.”“놔, 이 후레자식아!”“제가 진짜 아들 맞다면서요. 그럼 닮았겠죠.”“권이록.”“사율이 지분 조건이 뭡니까.”권태겸은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문서진에게 손을 내밀었다.“서류 줘.”그녀가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첫 장부터 내 이름이 있었다.온사율.서린물산 보통주 51%.그리고 아래 작은 글씨.‘혼인신고 완료 시 신탁 해제.’나는 헛웃음을 흘렸다.“그럼 이미 내 거잖아.”“뒤를 봐.”다음 장을 넘겼다.손이 멈췄다.‘단, 혼인 유지 기간 중 수익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지분 전량은 법률상 배우자에게 승계한다.’나는 천천히 이록을 봤다.“이게 뭐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내가 죽으면.”목이 바싹 말랐다.“당신이 51퍼를 먹네?”이록의 얼굴이 굳었다.“사율아.”“알고 있었어?”“…….”그 짧은 침묵에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나는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짝.“알고 있었냐고, 이 개새끼야!”“알았어.”두 번째 손이 올라가기 전에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놔.”“때려도 되는데 들어.”“놓으라고!”“결혼 전에 알았어.”“그럼 나랑 결혼한 게 이거 때문이었네.”“처음에는.”나는 웃었다.“처음에는?”“그래.”“와, 아주 개같이 솔직하네.”권태겸이 비웃었다.“사랑이라도 한 줄 알았냐?”나는 고개를 돌렸다.“당신은 좋아 죽겠지?”“뭐?”“아들이 며느리 죽으면 회사 처먹게 설계해놓고.”권태겸 얼굴이 일그러졌다.“내가 만든 조항 아니다.”“그럼 누가 만들었는데.”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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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12화. 내 친아버지는 내 장례식부터 준비했다“내 친아버지가 날 죽이라고 했다고?”내가 웃었다.“씨발, 이제 아버지 찾기도 지겹다.”예라가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골랐다.“언니, 나도 잘못 들은 줄 알고 세 번 물었어.”“바꿔.”“누굴?”“권태식.”잠시 뒤 낯선 남자의 숨소리가 들렸다.—사율아.“그 이름 부르지 마.”—나는 네 아버지다.“딸 죽이라고 청부 넣는 게 애비냐? 개장수도 지 새끼는 그렇게 안 팔아.”이록이 내 팔을 잡았다.“전화 끊어.”“왜.”“저 인간 말 듣지 마.”나는 그를 노려봤다.“당신은 닥쳐.”“사율아.”“직접 죽이러 갔던 새끼가 지금 누구 편을 들어?”이록의 손이 굳었다.나는 다시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왜 죽이라고 했어.”권태식이 대답했다.—정확히는 죽은 사람으로 만들라고 했다.“뭐?”—네가 실제로 죽으면 안 됐어.권태겸이 욕설을 내뱉었다.“이 미친 새끼가 결국 그걸 까네.”나는 그를 돌아봤다.“당신도 알아?”“몰라.”“아까부터 모른다는 새끼 표정이 왜 똥 씹은 것 같은데?”문서진이 피식 웃었다.“알지. 아주 잘 알지.”“뭔데.”권태식이 말했다.—네가 사망 처리되는 순간 51퍼센트는 이록에게 넘어간다.“그건 알아.”—그리고 이록이 받은 지분은 스물네 시간 안에 다시 제3자에게 증여하도록 되어 있었다.나는 이록을 봤다.“누구한테.”그가 입을 다물었다.“대답해.”권태식이 대신 말했다.—나한테.헛웃음이 나왔다.“그러니까 딸을 서류상 죽이고 사위한테 회사 넘겼다가 다시 당신이 처먹으려고?”—권태겸에게서 회사를 빼앗으려면 그것밖에 없었다.“그래서 날 시체로 만들었어?”—살아 있으면 다시 신분을 돌려줄 생각이었다.“와.”나는 머리를 쓸어올렸다.“다들 사람 인생을 등기부등본처럼 생각하네.”권태겸이 버럭 소리쳤다.“저 새끼한테 속지 마! 네 장례까지 준비한 인간이야!”나는 멈췄다.“장례?”권태식이 침묵했다.문서진이 혀를 찼다.“그것도 몰랐구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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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생방송 전날 밤

“내일 밤 아홉 시. 전부 공개하겠습니다.”기자간담회장이 술렁였다.“불륜 영상 원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직접 촬영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있습니까?”“태강재단병원과 이번 사건이 관련돼 있나요?”나는 마지막 질문을 한 기자를 바라봤다.“내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전부는 공개 목록이 아니었다.무엇이 나올지 모르게 만드는 공포였다.숨길 것이 많은 사람은 닫아야 할 문부터 스스로 가르쳐준다.두 시간 뒤 태강 법무팀이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별지에는 유포된 4분 17초짜리 호텔 영상의 식별 정보가 적혀 있었다.신청 사유는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부부간 불법 촬영.병원 7층도 하겸도 언급되지 않았다.방송사 법무팀장이 신청서를 내밀었다.“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방송을 미루는 게 안전합니다.”“금지해달라는 대상이 어느 영상이죠?”“유포된 호텔 영상입니다.”“그건 방송하지 않아요.”법무팀장의 손이 멈췄다.태강이 준비한 방패는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간담회가 끝난 뒤 한미라에게서 전화가 왔다.—사율아. 지금이라도 멈추면 조용히 내보내주마.“어디로요?”—네가 원하는 곳으로. 돈도 부족하지 않게 주겠다.“제가 아픈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님은 갈 병원까지 벌써 정하셨더군요.”수화기 너머가 잠시 고요해졌다.—쓸데없는 오해는 그만둬라.“내일 방송 꼭 보세요. 아홉 시예요.”전화는 그쪽에서 끊겼다.그날 밤 이록에게 메시지가 왔다.[문예라가 내 방 앞이야.][문은 열어둘게.]나는 복도 모퉁이에서 녹음기를 켰다.“사장님, 사모님이 가진 자료가 뭔지는 몰라도 내일 전에 빼앗아야 해요.사장님이라면 방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문예라는 얇은 가운 차림이었다.떨리는 어깨가 계산인지 공포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래서 나한테 훔치라고?”“우리 둘 다 살자는 거예요.”그녀가 이록의 팔을 붙잡았다.“저 버리실 거예요? 이 아이도요?”이록은 그 손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지금 당신이 잡은 건 내 팔이 아니야.”“그럼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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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불륜 영상 대신 살인 영상

생방송 시작 37초 전,메인 재생 목록에서 영상이 사라졌다.부조정실 안에는 태강 법무팀 실장이 서 있었다.법원 결정문도 없이 방송국 간부를 움직여 송출을 보류시킨 얼굴이었다.그가 들고 온 가처분 신청서에는 호텔, 불륜, 사생활이라는 단어만 빼곡했다.그는 불륜 영상을 막았다고 믿었다.나는 도겸에게서 받은 외부 송출 키를 눌렀다.그들이 지운 것은 미끼였다.밤 아홉 시. 붉은 온에어 불이 켜졌다.검은 정장을 입은 나는 결혼반지만 남겼다.오늘 화면에 잡혀야 할 것은 버림받은 아내의 눈물이 아니라,죽은 사람의 마지막 시간이었다.진행자가 큐카드를 움켜쥐었다.“온사율 씨. 예고하신 불륜 영상, 지금 공개하시겠습니까?”“그 영상은 공개하지 않습니다.”스튜디오 밖이 술렁였다.“대신 제 동생이 죽던 날의 영상을 공개하겠습니다.”전국의 화면이 어두워졌다.[태강재단병원 7층. 3월 11일 22시 09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하겸이 내렸다.파일 봉투를 가슴에 품은 채였다.걸음은 빨랐고, 두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10초 뒤, 비상계단에서 검은 양복의 남자가 나와 하겸의 뒤를 따랐다.“이 여성은 제 동생 온하겸입니다.이 영상이 찍힌 38분 뒤, 병원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도로에서 사망했습니다.경찰은 단독 사고로 종결했습니다.”진행자의 입술이 굳었다.“이 영상은 어디에서 입수하셨습니까?”“폐기된 백업 서버에서 복구했습니다. 원본은 사고 당일 밤 삭제됐고요.”서버 기록이 화면을 채웠다.삭제 시각 23시 51분.삭제 계정, 병원 최고 관리자.“단독 사고라면 왜 마지막 동선을 지웠습니까?왜 하겸의 시신이 영안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삭제했죠?”나는 다음 자료를 띄웠다.사망 시각 22시 47분.조직 채취 동의서 발급 시각 23시 30분.스튜디오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사망 30분 뒤에 본인이 서명했다는 겁니까?”“죽은 사람은 서명할 수 없습니다.”“위조를 주장하시는 겁니까?”“확인된 사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하겸이 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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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이혼 못 하는 이유

권태겸이 봉투에 넣어 보낸 것은 이혼 합의서가 아니었다.추방 명령이었다.위자료 란에는 평생 써도 남을 숫자가 적혀 있었다.뒤에 붙은 영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내 값이 아니라,어젯밤 생방송이 권태겸에게 남긴 공포의 액수였다.합의서 아래에는 편도 항공권이 깔려 있었다.출발일은 2주 뒤. 목적지까지 정해준 친절한 유배였다.마지막 장의 부속 조항이 진짜 본문이었다.태강그룹과 태강재단병원에 관한 발언, 출판, 인터뷰 금지.위반 시 위자료 전액 반환과 손해배상.서명 즉시 본가 출입권과 재단 자료 열람 권한도 소멸.그들이 사려는 것은 이혼이 아니었다.내 입과, 태강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휴대폰이 울렸다. 태강 법무팀이었다.—오늘 정오까지 서명하시면 모든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하겠습니다.“서명하지 않으면요?”—어제 방송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겁니다. 불법 취득 자료 유포, 명예훼손,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배상까지요.“그렇게 자신 있으시면 왜 돈부터 주시죠?”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회장님께 전하세요. 법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침묵을 사는 데 평생 쓸 돈을 걸지 않는다고.”전화를 끊고 합의서를 다시 펼쳤다.서명란 옆에는 정오까지라는 붉은 표시가 찍혀 있었다.세 시간 안에 아내도, 며느리도, 태강의 내부자도 그만두라는 뜻이었다.권태겸은 사람의 인생에도 결재 시한을 붙였다.혼인이 끝나는 순간 나는 태강 내부로 들어갈 명분을 잃는다.재단 이사회 기록, 주주총회, 본가와 병원 출입 권한까지.이 결혼은 사랑의 증명이 아니었다.내 무기고의 열쇠였다.정오가 되기 전, 한미라가 서재로 들어왔다. 노크는 없었다.그녀는 합의서에 서명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얼굴을 굳혔다.“현명한 여자는 나갈 때를 안다.”“어머님은요?”“…뭐?”“나갈 때를 아세요?”한미라의 시선이 서류 위를 훑었다.“저 돈이면 어디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어.”“저를 걱정해주시는 것처럼 들리네요.”“네가 이 집에 남아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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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역고소와 여론전

문예라가 울기 시작한 순간, 고소장 세 장이 동시에 도착했다.불법 촬영.명예훼손.사생활 침해.권태겸은 나를 내보내는 데 실패하자, 범죄자로 만들기로 했다.화면 속 예라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부른 배를 감싸고 있었다.손에는 흰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태강이 준비한 피해자의 얼굴이었다.“저도 피해자예요.”그녀는 젖은 목소리로 카메라를 바라봤다.“사모님이 돈을 주면서 사장님께 접근하라고 했어요.호텔도, 연락 방법도 전부 정해줬고요.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이제 와서 저를 상간녀로 몰고 제 아이까지 이용하고 있어요.”기자가 바로 물었다.“아이의 아버지가 권이록 사장이라는 뜻입니까?”예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배를 감싸고 고개만 숙였다.10분 뒤, 침묵은 기사 제목이 됐다.절반은 사실이었다.그래서 더 위험했다.내가 예라를 골랐다는 것.이록에게 접근시켰다는 것.호텔과 카메라 위치까지 정했다는 것.거짓말은 부수면 끝난다.반쪽짜리 진실은 반박하는 순간, 감춘 나머지까지 끌려 나온다.“반박 기자회견 잡겠습니다.”도겸이 말했다.“안 해요.”“지금 막지 않으면 여론이 넘어갑니다.”“태강이 원하는 게 그거예요. 내가 불륜을 해명하다 병원 이야기를 놓치는 것.”기사 제목은 한 시간 만에 바뀌었다.[재벌가 며느리의 불륜 조작극.][임신부를 이용한 복수극.][병원 폭로 영상도 조작 의혹.]어제까지 하겸의 죽음을 묻던 사람들이 오늘은 내 결혼을 심판했다.죽은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울 수 없으니까.오후 두 시, 포털에서 ‘S-01’이 사라졌다.대신 서로 다른 언론사 서른두 곳이 같은 문장을 올렸다.제목도, 문단 순서도, 오타까지 같았다.한 번이면 우연이었다.서른두 번이면 지시였다.나는 고소장 세 장을 책상 위에 펼쳤다.“저쪽이 종이로 때리면요?”도겸이 물었다.“우리는 수사번호로 받아쳐요.”그날 오후 나는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사문서위조.증거인멸.의료법 위반.하겸이 사망한 뒤 발급된 조직 채취 동의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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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하겸의 마지막 영상

영상이 멈춘 순간, 화면 오른쪽 아래에 원격 접속 경고가 떴다.누군가 남은 4분 12초를 다시 지우러 들어왔다.나는 무선 연결을 끊고 복원 파일을 외장 저장 장치로 옮겼다.접속 시각과 주소도 캡처했다.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누가 이 영상을 두려워하는지 보여줄 기록이었다.검은 화면이 두 번 흔들린 뒤 하겸의 얼굴이 돌아왔다.“언니 몸에서 없어진 게 뭔지 알면, 언니가 무너질까 봐 무서웠어.”하겸은 울지 않았다.울 시간까지 아껴 증거를 남기는 얼굴이었다.“병원 전산에서 언니 이름으로 된 파일을 봤어.코드가 S-01이야. 언니는 난임 진단을 받았다고 했잖아.그런데 파일 안에는 채취 기록이 있었어.”심장이 한 번 세게 내려앉았다.“동의서도 있었는데 언니 서명이 아니었어.내가 기억하는 언니 글씨랑 달랐어.그래서 원본을 찾으려고 했어.”하겸이 카메라 밖을 돌아봤다.복도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배아 보관실 자료가 따로 있어. S-01하고 연결된 번호가...”화면이 크게 흔들렸다.하겸은 급히 노트북을 끌어당겼다.그 순간 어깨 너머로 병원 전산 화면이 1초쯤 잡혔다.“언니, 내가 연락 없으면 서도겸이라는 사람을 찾아. 그리고 권이록은 아직 믿지 마.”영상 속 문손잡이가 돌아갔다.하겸이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봤다.“꼭 찾아. 그건 언니 거야.”영상이 끝났다.나는 재생 버튼을 다시 누르지 못했다.장례식에서도 울지 못했다.그때는 단독 사고라는 네 글자를 믿느라 슬퍼할 순서조차 정해져 있었다.이제야 알았다. 하겸은 죽기 전 사흘 동안 내 몫의 공포까지 혼자 들고 있었다.하지만 영상만으로 무엇이 사라졌는지 단정할 수는 없었다.채취 기록이 실제인지, 서명이 위조됐는지,S-01이 무엇을 보관한 코드인지도 원본 확인이 필요했다.확실한 것은 하나였다.하겸은 죽기 전에 태강이 감춘 기록을 보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이록이 서재 입구에 서 있었다.“언제부터 봤어요?”“권이록은 믿지 말라는 부분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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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조작된 친자 확인서

문예라는 친자 확인서를 내 앞에 던졌다.종이가 대리석 탁자 위를 미끄러졌다.검사 대상은 태아.대조군은 권이록.친자 관계 성립 확률 99.98%.“이제 누가 상간녀죠?”예라는 부른 배를 감싸며 웃었다.한미라는 결과를 끝까지 읽지도 않고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몸 무거운데 서 있지 마. 이제 네가 태강 후계자의 엄마다.”어제까지 내쫓으려던 여자에게 하루 만에 왕관을 씌웠다.아이를 낳지 못하는 며느리 앞에서 보여주기 좋은 장면이었다.“사율아, 핏줄 앞에서는 서류가 아무 소용 없는 법이란다.”“어머님 말씀이 맞아요.”한미라의 미소가 멎었다.“그런데 태강은 반대잖아요. 서류로 핏줄을 만드니까.”나는 결과지를 집어 들었다.발급 기관은 태강재단병원 유전체분석센터.검사일은 지난주 화요일.검체 채취 장소와 담당자, 대조군 동의서 번호는 비어 있었다.“지난주 화요일에 이록 씨는 해외에 있었어요.”예라의 손이 배 위에서 굳었다.“병원에서 전에 보관한 검체를 썼겠죠.”“그걸 문예라 씨가 어떻게 알아요?”“그냥 가능한 얘기잖아요.”“가능하죠. 본인 몰래 보관했을 가능성도.”한미라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건강검진 때 남은 검체겠지. 결과가 나왔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니?”“동의요.”나는 비어 있는 칸을 손끝으로 짚었다.“누가 언제 채취했고, 누가 사용을 허락했는지요.”“또 병원을 범죄자로 만들 셈이니?”“제가 만드는 게 아니에요. 빈칸이 말하는 거죠.”현관문이 열렸다.이록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거실로 들어왔다.예라는 결과지를 빼앗아 그에게 내밀었다.“직접 보세요. 사장님 아이예요.”이록은 종이를 훑었다.“검사 의뢰는 누가 했지?”“병원에서 알아서 했어요.”“내 검체는?”“그것도 병원에서...”“네가 모르는 게 많네.”예라의 얼굴이 굳었다.한미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99.98%야. 숫자가 증명하잖니.”“태강병원 숫자를 아직도 믿습니까?”거실이 조용해졌다.이록은 결과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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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사라진 유족 명단

문예라의 언니는 죽은 뒤 명단에서 지워졌다.그런데 태강은 문예라를 아직도 관리하고 있었다.팔 년 전 유족 위로금 지급 내역.수령인 칸은 검게 가려져 있었지만 주소는 남아 있었다.문예라가 살던 반지하 골목이었다.도겸이 사망 기록을 띄웠다.문예진. 스물넷.사망 장소는 태강재단병원.사인은 수술 후 급성 쇼크.수술명과 집도의는 삭제돼 있었다.“수정 계정은요?”“문예라 씨 친자 검사 의뢰 기록을 지운 계정과 같습니다.”“최근 접속은?”“어젯밤입니다.”친자 확인서가 발급된 날이었다.팔 년 전 죽음과 지금의 임신을 같은 손이 정리하고 있었다.나는 예라를 옥상 정원으로 불렀다.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배부터 감쌌다.“재검사 얘기면 안 해요.”“문예진 씨 얘기예요.”예라의 걸음이 멎었다.나는 사망 기록을 내밀었다.“당신 언니죠?”그녀가 종이를 낚아챘다.“누가 조사하랬어요?”“수술명이 지워져 있어요.”“그만해요.”“언니 이름까지 지워지게 둘 거예요?”예라의 얼굴에서 연기가 벗겨졌다.“난소 수술이었어요.”바람이 옥상을 훑었다.“정확한 수술명은요?”“몰라요. 스물넷짜리가 왜 그런 수술을 받고죽냐고 물었더니 병원은 체질이라고 했어요.”“합의금은요?”“입 다무는 값이었어요.”예라가 웃었다.울음보다 망가진 소리였다.“언니는 안치실에 있고, 장례비는 없고,병원은 그날 서명하면 바로 돈을 준다고 했어요.”“그래서 서명했어요?”“그럼 언니를 그대로 둘까요?”나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돈으로 장례 치르고 반지하에서 나왔어요.이제 제가 얼마나 더러운 돈으로 살았는지 알겠어요?”“당신이 더러운 게 아니에요.”“위로하지 마세요.”“위로 아니에요. 병원이 자기 죄까지 당신한테 넘긴 거예요.”예라의 눈이 흔들렸다.나는 바로 물었다.“내가 접근했을 때부터 상대가 태강인 걸 알았죠?”그녀의 입가가 비틀렸다.“사모님이 절 골랐다고 생각하세요?”“무슨 뜻이에요?”“권이록 이름을 듣자마자 제가 먼저 하겠다고 했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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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아버지의 빚

아버지는 죽은 뒤 300억을 빌렸고, 공증사무실까지 직접 찾아갔다.적어도 기사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오전 5시 50분.기사가 올라온 지 10분 만에 나는 채무자의 딸이 됐다.[온사율 부친, 태강에 300억 채무.][빚 청산 위해 태강가에 접근한 며느리.]사람들은 차용일보다 금액을 먼저 봤다.300억은 죽은 사람도 탐욕스러운 채무자로 만들 수 있는 숫자였다.나는 해명문 대신 아버지의 사망진단서를 공개했다.차용증 작성일보다 62일 빠른 사망일.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다.[고인이 어느 공증사무실을 방문했는지 태강에 묻겠습니다.]15분 뒤 태강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고인이 생전 작성한 차용증이 뒤늦게 전산 등록된 것으로 확인됩니다.]나는 그 문장까지 저장했다.종이만 위조한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시간까지 새로 만들었다는 자백이었다.아침 식탁에서 한미라가 신문을 내 앞으로 밀었다.“네 아버지가 우리 집 돈을 그렇게 많이 썼더구나.”“돌아가신 뒤에도요.”그녀의 미소가 굳었다.“생전에 쓴 서류라잖니.”“그럼 어머님은 원본을 보셨겠네요.”“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아니?”“방금은 빚이 확실한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빚은 상속되는 거야.”“위조한 사람에게는 형량도 따라붙고요.”나는 신문을 증거 봉투에 넣었다.기사 원본.최초 게시 시각.태강 공식 입장.그들이 내민 종이를 내가 먼저 보관했다.도겸은 한시간 뒤 문서 감정 결과를 가져왔다.“차용증 서식부터 작성일과 맞지 않습니다.금융사 로고는 그해 하반기에 바뀐 신형입니다.”“공증 번호는요?”“실제 번호지만 원본은 임대차 계약입니다.어젯밤 문서명과 의뢰인만 바뀌었습니다.”“서명은요?”“아버님 필체가 아닙니다.”생전 문서 12건과 차용증이 화면에 나란히 떴다.아버지는 ‘온’ 자의 이응을 시계 방향으로 썼다. 차용증은 반대였다.그런데 ‘율’ 자 마지막 획은 낯설지 않았다.하겸의 글씨였다.문서 대조 결과 일치 후보가 나왔다.아버지 명의로 제출된 태강재단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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