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라는 예고도 없이 왔다.호텔 라운지, 오후 세 시.통유리 너머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그녀는 약속도 없이 내 티타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내 앞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임신 테스트기였다.“사모님, 괜찮으세요?”두 줄.선명한 두 줄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옆 테이블의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멀게 들렸다.“이런 건 직접 보여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예라가 웃었다.예쁘게, 가볍게.그러나 나는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손을 보고 있었다.새로 바른 네일.그 아래로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손 떨리네요, 문예라 씨.”“네?”“임신한 여자 손치고는, 기쁜 사람 손이 아닌데.”그녀의 미소가 반 박자 늦게 돌아왔다.“긴장돼서요.”“사모님 앞이잖아요.”“그날 밤 얘기, 정말 안 궁금하세요?”“사장님은 생각보다 조용하세요.”“그런데 조용한 남자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거 아세요?”“궁금해요.”“…정말요?”“네.”“시간, 장소, 동선, 그리고 그 방에 누가 먼저 들어갔는지까지 전부요.”예라의 속눈썹이 한 번 흔들렸다.준비한 대본에 없는 질문이었을 것이다.“사모님은 참 재미없네요.”“문예라 씨는 참 부지런하고요.”나는 테이블 위의 테스트기를 눈으로 가리켰다.“그 테스트기, 어디서 받았어요?”“…네?”“브랜드가 시중 제품이 아니에요.”“약국에서 파는 물건은 포장 단위부터 다르죠.”“이건 병원 지급용이에요.”“그리고.”나는 그녀의 손목을 가리켰다.“병원 팔찌, 아직도 차고 있네요.”예라의 손이 반사적으로 소매를 내렸다.늦었다.흰 팔찌에 인쇄된 번호를 나는 이미 외운 뒤였다.TK-0417-S.“남편과 잤다는 말보다, 그 번호가 더 흥미로워요.”“사모님, 질투 안 하세요?”“질투는 내 것을 빼앗겼을 때 하는 거예요.”“제가 안 빼앗았다고요?”“아직은요.”“당신이 들고 온 게 진짜 내 것인지, 확인 전이니까.”예라는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웃었다.그리고 준비
최신 업데이트 : 2026-07-06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