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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만 회귀 안 했다.: Chapter 11 - Chapter 20

84 Chapters

제11화. 제국 스케일의 바지사장 취임식

다음 날 아침, 여관을 나선 마차는 드디어 제국의 심장, 수도 론디움의 성문에 도착했다.수도 성문 앞은 평소와 달리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일반 백성들의 통행은 전면 통제되어 있었고, 성문에서부터 황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대로에는 붉은단풍나무 잎이 비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양옆으로 제국 최고의 엘리트라 불리는 황실 근위대 수천 명이 부동자세로 늘어서 있었다.'와…… 전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통째로 대관했네.'나는 마차 창문 너머로 펼쳐진 메가톤급 스케일에 혀를 내둘렀다. 나 하나를 속여서 완벽하게 파멸시키기 위해 수도 성문 전체를 세트장으로 활용하고, 수천 명의 황실 군대를 엑스트라로 고용하다니. 이 거대한 사기극의 배후에 있는 기획자의 자금력과 정치력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끼이이익-마차가 성문 한가운데 멈춰 섰다. 마부석에서 내린 카이엔이 익숙하게 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엘리, 드디어 수도에 도착했소. 저 앞에…… 그대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군."카이엔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본 나는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화려한 황금 마차 앞, 제국의 태양이라 불리는 황제 폐하가 황금 왕관을 내려놓은 채 맨땅에 꿇어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주변에는 제국의 고위 귀족 수백 명이 줄줄이 대가리를 박고 오열하고 있었다."성녀 마마-!!"황제가 내 얼굴을 보지 마자 붉은 실크 카펫 위로 기어 오며 부르짖었다."전생에 마마의 고결한 신성력을 거짓이라 매도하고, 제국의 안위를 위해 마마를 악녀로 몰아 단두대에 세웠던 이 어리석은 황제를 처단해 주시옵소서! 마마가 가문을 버리고 수도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3일 밤낮을 피눈물로 지새웠나이다!"황제가 내 구두 앞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황금 왕관이 바닥을 굴렀다.나는 팔짱을 낀 채 그 눈물겨운 연기력을 냉정하게 감상했다.'그럼 그렇지. 제국 영토 반토막을 그냥 줄 리가 없지.'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저들은 지금 제국의 막대한 국가 부채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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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무보증 월세방의 수상한 옵션

황제의 통곡을 뒤로하고 수도의 복잡한 뒷골목으로 스며든 나는, 가장 먼저 허름한 복덕방(부동산 중개소)을 찾아 들어갔다. 제국 전체가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대기업(황실, 대공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가장 영세하고 어두운 음지의 매물을 찾아야 했다."저기, 보증금 없고 월세가 가장 저렴한 단칸방 하나 있습니까? 창문은 볕 안 들어도 상관없고, 가구나 마법 도구 같은 '옵션'은 일절 없어야 합니다."내 요구에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허름한 차림의 중개업자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중개업자, 손에 쥔 깃펜이 무려 제국 최고급 마탑제 만년필이었고, 셔츠 소매 사이로 살짝 보이는 시계는 황실 납품용 한정판이었다. 창밖을 슬쩍 보니, 카이엔과 르웰린이 기사들을 대동하고 복덕방 건물을 포위한 채 중개업자의 등 뒤로 살벌한 눈빛을 쏘아보내고 있었다.중개업자는 식은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꺼냈다."아, 예……! 마침 딱 마마…… 아니, 고객님께 어울리는 아주 누추하고 끔찍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월세는 단돈 동전 1개! 보증금은 제 목숨…… 아니, 없습니다!"'월세 동전 1개?'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21세기 부동산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허위·미끼 매물' 사기 수법이었다. 일단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손님을 방에 입주하게 만든 뒤, 다음 달부터 '건물 관리비', '계단 청소비', '보안 유지비' 같은 명목으로 매달 수백 골드씩 강제로 뜯어내 나를 빚쟁이로 만들려는 치밀한 계략이 분명했다."좋습니다. 일단 방이나 보죠. 관리비 조항에 특약 사항 넣을 거니까 그리 아세요."내가 서늘하게 말하자 중개업자는 거의 울기 직전인 얼굴로 나를 수도 변두리의 어느 낡은 아파트 옥탑방으로 안내했다.겉보기에는 비가 새고 쥐가 파먹은 듯한 허름한 목조 건물이었다. '여기라면 안전하겠지'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이 대륙급 사기단의 집요함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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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시급 100골드짜리 고수익 알바의 실체

드래곤 실크 이불의 깃털 같은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뜬 아침.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이 수상쩍은 옥탑방에서 무사히 살아남고, 월세 동전 1개를 당당히 내 손으로 지불하기 위해서는 당장 경제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이나 황실이 짜놓은 판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 하는 법이다."좋아, 구직 활동이다."낡은 가방을 메고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옆집 문이 용수철처럼 튀어 열렸다. 오늘도 여전히 때 묻은 앞치마를 두른 이웃집 총각(을 빙자한 북부 대공) 카이엔이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에, 엘리……! 아, 아니, 이웃집 고구마 총각이오. 아침부터 어디를 가시는 길이오? 날이 추우니 내가 업어…… 아니, 마차로 모셔다드리겠소."그의 등 뒤로 대공가 정예 기사들이 골목길 담벼락 뒤에 밀착해 스파이처럼 우리를 감시하는 게 보였다. 계단 아래에서는 경비원 복장을 한 대마법사 르웰린이 마법 빗자루로 계단을 광이 나도록 쓸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제 갈 길 가는 거니까 신경 끄세요. 그리고 카이엔 씨, 그 도끼 전설의 명검 같은데 그걸로 장작 패지 마세요. 무기 밀매 혐의로 잡혀가기 딱 좋으니까."나는 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단칼에 잘라내고 수도의 가장 번화한 상업 지구로 향했다.내가 찾은 곳은 시장 구석에 위치한 자그마한 허브 약재상이었다. 가게 앞에는 대충 갈겨쓴 구인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완벽해. 이 정도로 작고 허름한 개인 상점이라면 대기업의 마수가 뻗치지 못했을 거야.'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마른 체구의 약재상 주인이 나를 맞이했다.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기, 구인 광고 보고 왔는데요…….""예? 아, 저희 가게는 시급이…… 헉?!"나를 양두(兩頭) 보듯 평범하게 바라보던 약재상 주인의 눈이 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넘어, 가게 유리창 너머를 향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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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바람잡이 고객님들의 눈물겨운 대량 구매

출근 첫날,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약재상 창고부터 뒤엎기 시작했다.어지럽게 널린 약재들을 효능별로 분류하고, 손님들의 동선에 맞춰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인기 허브들을 전면 배치했다. 21세기 시장에서 갈고닦은 매장 진열 기술과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디스플레이 기법을 아낌없이 발휘한 결과물이었다."과장 광고나 허위 효능 기재는 절대 금지입니다. 나중에 소비자 고발이나 황실 위생국의 단속에 걸리면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니까요."내 철저한 매장 관리 기준에 약재상 주인은 "과연 대륙의 모든 유통망을 꿰뚫어 보시던 성녀 마마의 혜안……!"이라며 옆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카운터에 앉았다.그때,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첫 손님이 들어왔다.남루한 평민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걸어 들어오는 자세가 지나치게 꼿꼿하고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은 사내였다. 자세히 보니 내 방 옥탑방 건물을 포위하고 있던 북부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부단장은 카운터 앞으로 다가오더니, 품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쿵 내려놓았다. 주머니 틈새로 번쩍이는 최고급 백금화들이 쏟아져 나왔다."여기 있는 흔하디흔한 감기약 허브 한 줄기를 주시오. 잔돈은 필요 없소."나는 백금화 무더기를 빤히 내려다보았다.'그럼 그렇지. 첫날부터 바로 작전 들어오는구나.'이건 아주 악질적이고 전형적인 '바람잡이(사재기) 사기' 수법이었다. 가짜 손님을 동원해 말도 안 되는 고액의 매출을 발생시킨 뒤, 장부를 조작해 나를 '불법 비자금 세탁 및 탈세 혐의'로 엮어 단두대에 보내려는 치밀한 계략이 분명했다. 내가 이 돈을 계산대에 넣는 순간, 황실 감사관들이 들이닥쳐 내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겠지.나는 백금화 주머니를 단호하게 부단장의 품으로 다시 밀어냈다."손님, 저희 매장은 정찰제입니다. 감기약 허브는 한 묶음에 단돈 3코퍼입니다. 그리고 고액권 지폐나 백금화는 위조지폐 감별기가 없어서 받지 않으니, 당장 일반 동전으로 꺼내세요.""헉……! 백, 백금화를 거부하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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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전생의 기억, 착각의 온도 차이

퇴근길, 뉘엿뉘엿 지는 노을빛을 받으며 자취방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고요했다.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카이엔의 무거운 발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그는 하루 종일 내가 약재상에서 허브를 분류하느라 거칠어진 손끝을 아까부터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그 지독한 시선이 부담스러워 내가 먼저 툭 던졌다."카이엔 씨, 자꾸 그렇게 남의 손 쳐다보지 마세요. 닳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전생에."카이엔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에 노을빛보다 더 붉고 쓸쓸한 슬픔이 차올랐다."전생의 너는 북부 대공비이면서도, 단 한 번도 화려한 드레스나 보석을 요구한 적이 없었지. 내 어머니가 예산을 끊어버려 한겨울에도 난방도 안 되는 별채에서 홀로 낡은 옷을 꿰매 입으면서도…… 넌 내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하, 또 시작이네. 과거의 비참한 기억을 조작해서 내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감성 마케팅 보소.'"그때의 나는 네가 그저 오만하고 고집이 세서 나를 무시하는 줄로만 알았다."카이엔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내 앞에 서서 천천히 손을 뻗어, 차마 맞잡지는 못하고 허공에서 내 손을 감싸듯 멈춰 섰다."북부 전선에 괴수들이 들이닥쳐 군수 물자가 끊겼을 때, 군인들의 상처를 치료할 약재를 익명으로 매달 보내주던 이가 있었다. 마력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한다며 제국 전체가 널 비웃을 때…… 넌 그 마력 '0'인 손으로 밤새 피를 흘려가며 독초를 정제해 해독제를 만들고 있었더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네 손에 박힌 굳은살을 보며 다른 사내라도 만나는 줄 알고 모진 말을 퍼부었지."카이엔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결혼 후 3년째 되던 해, 눈보라가 몰아치던 밤이었소. 네가 정원 구석에서 얼어붙은 약초를 캐다 쓰러진 날, 난 처음으로 네 방에 찾아갔지. 달빛 아래 누워있던 네 가냘픈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소. 억지로 밀어붙인 정략결혼이었고, 널 미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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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최첨단 스파이웨어와 약정 노예의 덫

약재상에서의 둘째 날 역시 평화롭고(?) 치열했다. 평민으로 위장한 근위대원들이 여전히 3코퍼짜리 허브를 사기 위해 줄을 섰고, 나는 그들의 싹쓸이 시도를 '1인당 1개 한정 판매'라는 공정거래법(?)으로 철저히 방어하고 있었다.점심시간 무렵, 가게 안으로 빗자루를 든 마탑주 르웰린이 슬며시 다가왔다. 변장용 환경미화원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가 걸어올 때마다 은은하게 풍기는 최고급 마나 향료 냄새는 숨길 수 없었다."마마…… 아니, 엘리 씨. 잠시 대화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르웰린이 주위를 슬쩍 살피더니 품 안에서 정교하게 가공된 푸른빛의 수정 목걸이를 꺼내 놓았다. 그 영롱한 보석 내부에서는 고대 마법 문자들이 살아 숨 쉬듯 넘실거리고 있었다."이것은 고대 마탑의 유산인 '가디언즈 에코'라는 아티팩트입니다. 착용자 주변의 모든 소리와 영상을 기록하고, 위험이 닥치면 대마법사의 실드(Shield)가 자동으로 전개되는 물건이지요. 이것을…… 부디 몸에 지녀 주십시오. 대가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르웰린의 보랏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보석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속에는, 뼈를 깎는 듯한 전생의 참회가 서려 있었다.'전생에…… 내가 그 지독한 마법의 덫을 깨달았어야 했는데.'르웰린의 머릿속에 전생의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가짜 성녀가 엘리아나에게 황실 독살 음모 죄를 뒤집어씌웠을 때, 제국 최고의 심문관이었던 르웰린은 '진실의 보석'을 들고 그녀의 앞에 섰었다. 하지만 그 보석은 이미 음모자들에 의해 '거짓을 진실로 오인하게 만드는' 흑마법이 걸려 있었고, 마력이 전혀 없던 엘리아나는 보석의 마력 반동을 이겨내지 못했다."제가 아닙니다…… 르웰린 공작, 제발 믿어주세요……!"피를 토하며 결백을 주장하던 그녀의 영혼이 보석의 고문으로 인해 하얗게 바스러져 가던 그 순간, 르웰린은 보석의 수치만을 믿고 차갑게 등을 돌렸었다. 차가운 지하 감옥 바닥에 버려져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던 엘리아나의 허망한 눈빛. 그것이 르웰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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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공짜 상단주의 자리와 다단계의 덫

르웰린의 스파이웨어 목걸이 소동이 폭풍처럼 지나간 다음 날. 내가 일하는 허름한 약재상 앞에, 이번에는 황실의 문장이 거대하게 박힌 순백의 마차가 멈춰 섰다.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화려한 제복을 입은 황태자 에이든이었다. 그 역시 제국을 파멸로 몰고 갔던 전생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회귀자 중 한 명이었다.에이든은 약재상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내 모습을 보고 털썩 무릎부터 꿇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려 있었고, 양손에는 황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엘리아나 마마……! 드디어 전하를 뵙나이다!"황태자의 머릿속에는 전생의 가장 참혹했던 비가 내리던 날이 스쳐 지나갔다.당시 수도에 원인 모를 역병이 돌았을 때, 엘리아나는 빈민들을 살리기 위해 황궁 문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빌었었다. 단돈 500골드의 구호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하지만 당시 오만했던 황태자는 "성녀라면서 고작 풀때기를 살 돈이 없어 구걸을 하느냐"며 그녀를 비웃고 쫓아냈었다. 결국 엘리아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고결한 신성력이 담긴 피를 뽑아 팔고, 아름답던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아가며 약재를 구했었다. 나중에 그녀의 가냘픈 팔에 가득했던 주삿바늘 자국과 흉터를 보았을 때, 황태자는 제 심장을 칼로 찌르는 듯한 후회에 휩싸였었다.그 지독한 죄책감 때문에, 황태자는 이번 생에 제국의 모든 유통을 담당하는 '황실 직속 약재 상단'을 통째로 그녀에게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마마, 이 계약서에 서명만 해 주십시오! 제국 전역의 약재 유통권을 독점하는 '황실 상단주'의 자리를 아무런 대가 없이 마마께 봉헌하겠나이다! 마마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황실의 재정이 무한정 지원될 것입니다!"황태자가 피맺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계약서를 내밀었다.하지만 그의 간절한 고백을 듣는 나의 21세기형 '이커머스 뇌'는 빛의 속도로 위험 신호를 감지했다.'하, 대박이다. 이번엔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기 겸 다단계(MLM) 덫이네.'가입비와 권리금 0원, 게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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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한도 무제한 블랙카드의 검은 속내

약재상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벌어들인 8실버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깊은 성취감을 느꼈다. 역시 내 손으로 땀 흘려 번 돈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투명한 자산이다. 대륙급 사기단 놈들이 아무리 억 단위의 덫을 놓아도, 내가 이렇게 소액 정찰제와 최저임금만을 고집한다면 결코 나를 법적으로 얽맬 수 없을 것이다.가게 문을 닫고 정리를 하려는데,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이웃집 총각(을 가장한 남편) 카이엔이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한 손에는 붉은 보석이 촘촘히 박힌, 한눈에 봐도 기괴할 정도로 화려한 검은색 금속 패가 들려 있었다."엘리……."카이엔이 내 앞에 서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금방이라도 툭 터질 것 같은 슬픔과 뼈를 깎는 후회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그의 슬픈 눈망울을 보는 순간, 카이엔의 머릿속에 전생의 가장 시리도록 추웠던 겨울날이 스쳐 지나갔다.결혼 2년 차 되던 해, 별채의 늙은 유모가 폐렴으로 쓰러졌을 때, 엘리아나는 단돈 1실버의 약값을 구하지 못해 대공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었다. 밤샘 집무로 예민해져 있던 카이엔은 그녀의 가냘픈 손을 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내뱉었었다."대공비에게 지급되는 가문 예산이 있을 텐데, 고작 1실버가 없어서 내 집무실까지 찾아와 구걸을 하는 거요? 가련한 척 연기하는 건 그만두시오."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엘리아나의 생활비를 전면 동결하고, 가문 장부를 조작해 그녀를 횡령범으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결국 엘리아나는 유모의 약값을 대기 위해 친정에서 가져온, 어머니의 유품인 가짜 보석 반지마저 전당포에 헐값으로 넘기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나중에 그 전당포 장부를 발견했을 때, 카이엔은 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싶을 만큼 지독한 절망에 울부짖었었다."엘리…… 네가 오늘 고작 몇 실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내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소."카이엔이 떨리는 손으로 검은 금속 패를 내밀었다."이것은 대륙 중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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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명품 협찬이라는 이름의 위약금 덫

한도 무제한 블랙카드를 불법 사채 장치로 결론짓고 기분 좋게 퇴근한 다음 날 아침. 내 낡은 옥탑방 문을 열자마자, 복도에는 기이할 정도로 거대하고 호화로운 가죽 트렁크 수십 개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그리고 그 앞에는 제국 최고의 오트쿠튀르 의상실을 운영하는 천재 디자이너, 마담 엘레가 수십 명의 시종을 대동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전생의 기억을 품고 고통 속에서 회귀한 자였다.마담 엘레는 나를 보자마자 트렁크를 전면 개방하며 내 구두 앞에 무릎을 꿇었다."성녀 마마……! 아니, 엘리아나 마마! 마마를 위해 제 영혼을 갈아 넣은 드레스들을 가져왔나이다! 전선에서 돌아온 드래곤의 비늘을 녹여 만든 방어용 실크 드레스부터, 마법 면사포까지! 이 모든 것을 마마께 '무상 협찬'해 드리고자 합니다!"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펼쳐 보인 옷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담 엘레의 붉어진 눈시울 너머에는, 전생의 지독하게 시렸던 황실 무도회의 기억이 일렁이고 있었다.전생의 건국기념일 연회 날. 카이엔의 어머니인 전 대공비는 엘리아나에게 가문 예산을 단 한 푼도 주지 않았고, 결국 엘리아나는 밑단이 다 해진 낡은 백작가의 옛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에 참석해야 했다. 제국의 오만한 귀족들은 그녀를 향해 "북부의 거지 대공비", "대공가의 수치"라며 대놓고 비웃음을 퍼부었다.당시 정적들과의 치열한 암투로 눈이 뒤집혀 있던 카이엔은, 연회장 구석에서 홀로 비웃음을 견디고 있던 엘리아나를 보며 차갑게 뱉었었다."대공비로서 가문의 체통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렵소? 그 한심한 옷차림은 나에 대한 반항인가?"그는 엘리아나가 북부 영지의 대기근을 막기 위해 자신의 화려한 예복과 드레스들을 전부 암시장에 팔아 곡식을 바꿨다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그녀가 판 드레스들의 대금으로 북부 영민 수만 명이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뒤늦게 연회장 뒤편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던 그녀의 붉어진 눈을 발견했을 때, 카이엔은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고 싶을 만큼 지독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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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무료 건강검진과 장기 매매의 음모

명품 협찬 사기극까지 완벽하게 방어해 낸 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1실버의 정당한 시급을 받으며 약재상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21세기 장사꾼의 기본은 체력 관리이기에, 나는 탕기에서 끓고 있는 평범한 대추차를 홀짝이며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바로 그때,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약재상 문이 거칠게 열렸다.들어선 이는 하얀 사제복 위에 황금빛 십자가를 주렁주렁 매단, 제국 성황청의 최고위 치유사 ‘엘도라도 주교’였다. 그의 뒤로는 신성력을 뿜어내는 고위 사제 수십 명이 거대한 가마를 메고 늘어섰다. 그들 역시 전생의 피비린내 나는 파멸을 겪고 돌아온 회귀자들이었다.주교는 나를 보자마자 털썩 무릎을 꿇으며 가슴을 십자로 그었다."오오…… 성녀 마마! 드디어 마마를 뵙나이다! 황실과 대공가의 전언을 듣고 성황청의 모든 신성 치유사들을 대동하여 한달음에 달려왔나이다! 마마의 가냘픈 옥체를 진단하고, 고대 신의 저주로 엉망이 된 오장육부를 무상으로 전면 치유해 드리겠나이다! 비용은 단 1코퍼도 받지 않는 ‘우주 전액 무료 VIP 정밀 종합 검진’입니다!"주교의 절박한 외침 너머로, 그의 기억 속에 있던 전생의 가장 잔인했던 봄날이 스쳐 지나갔다.전생에 북부 영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온 영혼과 생명력을 갈아 넣어 해독제를 연성했던 엘리아나. 마력이 없던 그녀는 오직 자신의 ‘인간적 생명력’을 담보로 약을 만들었기에, 폐와 간이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그녀가 홀로 피를 토하며 성황청의 문을 두드렸을 때, 주교는 가짜 성녀의 눈치를 보느라 "마력도 없는 자가 신성한 성당을 더럽힌다"며 그녀를 차가운 빗속으로 내쫓았었다.나중에 대공성이 함락되고 세상이 멸망할 때, 카이엔이 발견한 엘리아나의 마지막 진단서에는 ‘장기 손상률 95%, 생존 가능 기간 3일’이라는 끔찍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몸으로 북부의 수만 명을 살려내고 홀로 죽어갔던 것이다. 카이엔은 그 진단서를 쥐고 피눈물을 흘리며 제국의 모든 치유사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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