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죽음의 기록을 재생합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28 Chapters

제11화

임유나가 눈을 떴을 때였다.병실에는 네 사람이 모두 모여 있었고, 저마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가장 먼저 임유나가 깨어난 걸 알아챈 건 신혁준이었다.“유나야, 깼어?”그 말을 듣고 모두가 일제히 임유나를 바라봤다.강미란은 금세 눈시울을 붉히더니 이불을 다정하게 여며 주었다.“유나야, 많이 아프지? 이제 좀 괜찮아졌어?”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걸 확인한 임유나의 눈빛에 잠시 만족감이 스쳤다.하지만 그녀는 금세 그 감정을 감추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수연이는요? 왜 안 보여요?”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강미란의 손을 덥석 붙잡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설마 제 몸에 이식된 신장이 수연이 거예요?”“안 돼요. 수연이는 진짜 두 분의 딸인데 제가 어떻게...”“수연이는 지금 괜찮아요? 왜 다들 제 곁에만 계세요? 얼른 수연이도 보러 가셔야죠.”말을 마치기도 전에 가슴을 움켜쥐면서 기침을 터뜨렸다.“콜록...”그 모습을 본 모두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몰려들었다.“무슨 그런 말을 해.”“그 애 신장이나마 네 몸에 들어간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난 그 애 신장이 너무 더러운 건 아닐까 걱정했을 정도야.”임철수도 곧바로 말을 이었다.“유나야, 너도 우리 딸이야.”송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수연이는 원래 그 정도 일로 끄떡도 할 애가 아니잖아. 우리가 굳이 걔를 왜 보러 가?”신혁준도 다정하게 그녀를 눕혔다.“유나야, 그냥 편하게 누워 있어. 수연이는 신경 쓰지 마.”임유나는 가까스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았다.지금 보니 이들은 아직 임수연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질까?분명 끝까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애초에 임수연은 신장이 하나뿐이었다.그 하나마저 자신이 빼앗았고, 더 처참하게 죽게 만들기 위해서 수술 보조 인력에게 돈을 건네고 마취제를 바꾸게 했다.임수연이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길 바랐다.감히 자신과 임씨 가문의 딸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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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병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의사에게 향했다.가장 먼저 표정이 굳어진 사람은 송지호였다.화를 내는 듯 보였지만, 정작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신장 하나 적출하는 수술인데 어떻게 죽습니까?”“설마 수연이 또 관심을 받으려고 누군가를 시켜서 꾸민 일 아닙니까?”그 의사는 그저 보호자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급하게 불려 온 사람이었다.그런데 이런 반응을 보이자, 의사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연기라뇨? 제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거짓말을 해요?”“그것보다 당신들, 정말 임수연 환자 보호자 맞습니까?”“가족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태도를 보이는 보호자가 어디 있습니까?”의사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졌다.“환자가 당신들과 원수라도 졌습니까?”“도대체 당신들은...”의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한 간호사가 급하게 달려왔다.목소리를 낮추고 있었지만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더 이상 확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환자분께서 유서를 남기셨고, 본인의 뜻에 따라 이미 다른 분이 시신을 인계해 가셨습니다.”그 말을 하던 간호사는 조금 전 시신을 인계하러 온 사람을 떠올린 듯했다.그리고 병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희미한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간호사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의사의 팔을 잡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병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남았다.그 순간 송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방금 간호사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곧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그게 무슨 뜻인지 직접 물어봐야 했다.하지만 그때 뒤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으윽...”“나 상처 부위가 너무 아파...”임유나의 애처로운 목소리에 송지호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다.순간 모두가 방금 전 일을 잊은 듯 임유나에게 시선을 돌렸다.“유나야, 왜 그래? 많이 아파?”강미란이 다급하게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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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임유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도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조금 걱정돼요. 제가 지금 몸이 좋지 않긴 하지만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임유나는 일부러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치 극심한 통증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이렇게까지 하면 모두 임수연을 보러 가는 걸 포기하고 자기 곁에 남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송지호가 그녀의 말을 받아 이어갔다.“확실히 가보긴 해야 할 것 같아. 임수연이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확인은 해야 하니까.”송지호는 잠시 임유나를 바라보다 말했다.“하지만 넌 몸이 안 좋으니까 여기서 쉬고 있어. 우리가 다녀올게.”그 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임유나는 순간 표정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당황했다.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는 억지로 속으로 분노를 삼켰다.그리고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갈게.”“어쨌든 수연이 저한테 신장을 준 거잖아. 직접 가서 고맙다는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임철수는 그런 임유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그래, 그럼 같이 가자. 하지만 조금이라도 힘들면 바로 말해야 한다.”“그때는 억지로 버티지 말고 돌아와서 쉬어야 해. 알겠지?”임유나는 못마땅하게 입술을 깨물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네 사람은 임수연의 병실 위치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철수는 방금 전 일을 떠올렸다.‘일반 병실로 보내라고만 했지...’정작 어느 병실인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병실 비용조차 내지 않았다.임철수의 얼굴에도 처음으로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침 지나가던 당직 간호사를 붙잡았다.“혹시 임수연 환자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그러자 간호사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임수연 환자요?”“그 환자분은... 수술 중에 돌아가셨는데요.”“세상에... 분명 환자분은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상태였는데요. 가족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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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임철수도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유서까지 남겨 놓고 다른 사람한테 자기 장례를 맡겼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결국 사람들한테 우리가 그 애를 괴롭혔다는 인상만 남기려는 거잖아.”“좋아. 그 애 뜻대로 해주겠어.”“애초에 그 애를 집으로 데려온 적도 없었던 걸로 치면 그만이야.”하지만 이번에는 신혁준도, 송지호도 아무 말이 없었다.두 사람은 병상 곁에 말없이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병실 안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임유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띠링-임철수의 핸드폰이 울렸다.처음 보는 번호였다.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은 임철수가 짧게 대답했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철수 님 맞으신가요?]“네.”임철수는 병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가 다시 말을 이었다.[실례지만 강미란 님과 신혁준 님, 송지호 님도 함께 계신가요?]임철수의 발걸음이 멈췄다.“그렇습니다.”[번거로우시겠지만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주시겠습니까? 전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상대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임철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결국 스피커폰을 켰다.잠시 뒤 상대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안녕하세요. 저희는 데스 메모리 제작팀입니다.][얼마 전 임수연 님께서 데스 메모리 제작을 의뢰하셨고, 본인의 요청에 따라 생전 기록 영상을 제작했습니다.][현재 임수연 님이 별세하셨기에, 편집이 모두 완료된 영상을 여러분의 이메일로 발송해 드렸습니다.][메일을 확인해 주시고,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병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데스 메모리는 몇 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장례 기록 서비스였다.삶의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주는 서비스였다.완성된 영상은 고인이 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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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송지호가 영상을 재생하려고 하자, 임유나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지호야...”그의 이름을 부른 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우리... 그 영상은 안 보면 안 될까?”송지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임유나의 눈에서 금세 눈물이 흘러내렸다.“수연이 나 때문에 죽었잖아.”“이제는 수연이와 관련된 건 차마 못 보겠어...”말을 마친 임유나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다 내 잘못이야,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나라면 조용히 사라졌을 거야.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 이렇게 괴롭히진 않았을 텐데...”“왜 하필 내가 아니라 수연이...”그 모습을 본 신혁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송지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메일부터 삭제했다.곧바로 임철수와 강미란의 핸드폰까지 받아서 같은 메일을 하나씩 지워 버렸다.“안 봐도 돼.”“유나야, 울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강미란도 송지호를 못마땅한 눈으로 한 번 흘겨봤다.지금 송지호를 함부로 나무랄 수도 없었기에, 결국 비난은 또다시 임수연에게 쏟아졌다.“내가 그때도 데려오지 말자고 했잖아. 죽어서도 가만히 있질 못해.”“유서까지 남겨서 남한테 시신을 맡기더니, 이번엔 무슨 데스 메모리인지 뭔지.”“끝까지 사람 속만 뒤집어 놓네.”임철수도 임유나의 우울증이 다시 심해질까 봐 서둘러 달랬다.“유나야, 울지 마. 정말 네 잘못이 아니야.”“집에 있는 수연이 물건은 전부 치워 버리라고 하마.”“흔적 하나도 남기지 않을 테니까 더는 신경 쓰지 마. 넌 아직 환자잖아.”송지호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임유나 앞으로 다가갔다.예전에 임유나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신장을 기증했다.이번 사고로 신장이 파열돼 이식 수술까지 받게 된 것도 결국 그 일 때문이었다.생각해 보면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이었다.임유나를 탓할 수는 없었다.그는 죄책감이 어린 얼굴로 임유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유나야, 다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마.”“애초에 네가 나한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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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이렇게 바로 촬영이 시작되는 건가요?”영상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화면에 비친 건 임수연의 얼굴이었다.창백한 얼굴이 카메라를 가릴 듯 화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카메라 위치를 맞추는 듯 화면이 한동안 흔들리더니 이내 안정됐다.“안녕하세요. 저는 임수연입니다.”“제 데스 메모리가 공개됐다는 건... 다들 아시다시피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겠죠.”임수연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제 인생은 늘 엉망이었어요.”“그래도 한 번쯤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정말 제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건지.”“친딸인 저보다 입양한 딸을 더 사랑했던 이유가 뭔지... 여러분이 직접 봐주셨으면 좋겠어요.”말을 마친 그녀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이내 옷깃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보시면 몸에 착용하는 카메라도 하나 달고 있어요.”“움직이다 보면 화면이 조금 흔들릴 수도 있는데, 그건 이해해 주세요.”그 후 임수연은 집으로 돌아온 뒤 자신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부당한 일들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가족들의 노골적인 편애.자신만 늘 밀려나야 했던 순간들.끝없는 차별까지.한참을 이야기하던 임수연이 지친 듯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의자에 몸을 기댔다.눈을 감으면서 잠시 쉬려던 바로 그때였다.벌컥-두 남자가 화면 안으로 들이닥쳤다.신혁준과 송지호였다.두 사람은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임수연의 팔을 붙잡더니 그대로 끌고 갔다.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던 임수연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하지만 이유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렇게 그녀는 그대로 병원으로 끌려갔다.잠시 후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짝!짝!선명한 따귀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처음까지만 해도 댓글은 많지 않았다.데스 메모리 영상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는 형식이라, 특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장면이 나오자, 댓글이 순식간에 폭주하기 시작했다.[잠깐... 방금 때린 사람이 친엄마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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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화면은 다시 임씨 저택을 비췄다.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이었다.고용인들은 모두 퇴근한 뒤였고, 임수연은 국을 끓이라는 지시를 받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비틀거리는 걸음. 핏기 하나 없는 얼굴.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앙상하게 야위어 있었다.현관문 앞에 선 임수연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그 순간이었다.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선홍빛 피가 그대로 흘러내렸다.도움을 청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있는 힘껏 현관문을 밀어보려 했지만 몸은 점점 더 휘청거렸다.쿵!야윈 몸이 계단 아래로 그대로 굴러떨어졌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댓글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이는데? 가족들이 아픈 줄도 몰랐다는 건 관심 자체가 없었다는 거 아냐?][아니, 저렇게 쓰러졌는데 아무도 안 나오는 거야? 그럼 계단에 쓰러진 채 밤새 있었던 거야?]영상은 그때부터 빨리 재생됐다.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하지만 하늘이 어둠에서 새벽으로, 다시 아침으로 바뀌는 모습은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임수연은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계단 위에서 밤새 홀로 쓰러져 있었다.[헌혈까지 하고 돌아온 사람을 밤새 저렇게 방치했다고? 이제야 아무도 자길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 이해되네.][그래도 본인한테도 문제가 있었겠지. 왜 다 입양한 딸만 좋아하고 본인만 미움을 받았겠어? 자기 자신도 돌아봐야 하는 거 아냐?][그 논리면 같은 회사 다녀도 누구는 월급 천만 원 받고 누구는 삼백만 원 받아도 본인 탓이냐? 피해자한테 책임 돌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잠시 후 영상 속 임수연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무표정한 얼굴이었다.천천히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말없이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영상이 여기까지 재생되자, 병실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굳어졌다.그날 아무도 수혈을 마치고 돌아간 임수연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임유나가 임수연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다고 믿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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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댓글은 갈수록 거칠어졌다.[진짜 가족 맞아? 입양한 딸은 거의 멀쩡한데 침대를 차지하고 있고, 정작 저렇게 피를 흘리는 사람 혼자 치료받으러 가다니.][이 정도면 중병이다. 저 사람은 온몸이 피투성인데 전부 못 본 척하잖아. 친딸이 아니라 원수라도 되는 줄 알았네.]화면 속에서는 모두가 작은 찰과상만 입은 임유나만 둘러싸고 있었다.반면 피투성이가 된 임수연은 홀로 진료실을 찾아가서 의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진료비를 결제하는 장면이 나오자 댓글은 다시 폭발했다.[잠깐... 임씨 가문이면 돈 없는 집도 아니잖아? 그런데 친딸 용돈도 안 줬다고?][저 임유나랑 같은 학교 다녔어요. 제가 증인이에요. 임유나는 용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요.] [그냥 대놓고 차별한 거예요. 더 어이가 없는 건 학교에서는 임수연이 자기 집 가정부 딸이라고 떠들고 다녔어요.][계속 보세요. 이건 시작도 아닙니다. 뒤가 더 심해요. 데스 메모리 보면서 이렇게 화가 난 건 처음이네요.]영상은 계속 이어졌다.시간이 흐를수록 임수연의 몸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집 안에서도 수시로 피를 토했지만, 누구 하나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모두의 관심은 오직 임유나에게만 쏠려 있었다.카메라 렌즈가 몇 번이나 쏟아낸 피로 붉게 물들었다.그럴 때마다 임수연은 미안한 듯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해요.”임수연은 카메라에 묻은 핏자국을 휴지로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 다시 촬영을 이어갔다.그러던 어느 날.임유나가 보낸 메시지를 읽는 장면이 화면에 나타났다.도발과 조롱이 가득한 문자들이었다.임수연은 오히려 혼자 피식 웃더니, 임유나의 말투를 흉내 내며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더 안쓰러웠다.그 장면이 이어지자,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임유나에게 향했다.임유나는 얼굴을 감싼 채 침대에 누워 흐느끼고 있었다.창백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결국 네 사람은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유나는 그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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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강미란의 말이 끝나자, 병실 안은 다시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그때 영상 속에서 다시 임유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수연아, 또 거짓말하는 거야?”“부모님이 매주 용돈 주시잖아.”“네가 다 써버리고 일부러 불쌍한 척하는 거 아니야?”순간 임유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다급히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아니에요...”“전 그냥 엄마한테 한 번 그렇게 말한 것뿐이에요. 정말 수연이한테 용돈을 안 주실 줄은 몰랐어요.”“전 당연히 수연이도 용돈을 받고 있는 줄 알았어요.”강미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임유나가 분명히 몇 번이고 말했다.임수연이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그런 아이한테 돈까지 준다면 더 삐뚤어질 거라고.그래서 자신은 단 한 번도 임수연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심지어 원래 임수연에게 돌아갈 몫까지 모두 임유나에게 줬다.그런데 지금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책망이 담긴 시선이었다.마치 모든 잘못이 자신의 몫인 것처럼.강미란의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자신은 언제나 임유나만 감쌌다.어렵게 되찾은 친딸에게는 독한 말만 퍼부었다.애써 자신에게 다가오려던 아이에게도 따뜻한 얼굴 한 번 보여준 적이 없었다.오히려 임유나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속셈이라면서 의심부터 했다.강미란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그리고 임유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예전의 애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댓글도 점점 거칠어졌다.[뭐야? 한 명은 약혼자고 한 명은 소꿉친구라면서 둘 다 입양한 딸만 감싸네? 설마 저 여자가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한 거야?][저 사람 술도 못 마시잖아. 너무 불쌍해. 난 지나가다 보는 사람인데도 마음이 아픈데,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저러고도 가만히 있네!] [저 여자 말 한마디에 모두 다 휘둘리는 거 진짜 역겹다!][저 입양한 딸 진짜 소름이다. 틈만 나면 고인을 모함했네.]영상은 계속 흘러갔다.임수연이 힘들게 손에 넣은 돈을 품에 안고 돌아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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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임유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지만, 이번에는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두려움 때문이었다.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어떤 변명도 소용없었다.눈앞에서 재생되고 있는 영상 속 자신의 표정.그 안에 담긴 자신만만한 목소리.모든 것이 임유나의 거짓말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나...”임유나가 떨리는 입술로 뭔가 말하려던 순간이었다.짝!날카로운 소리가 병실 안을 울렸다.강미란이었다.“이 악마 같은 년...”“그럼 지금까지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거야?”임유나는 뺨을 감싼 채 온몸을 떨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아니에요...”“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너무 무서웠어요.”“전부 수연이한테 빼앗길까 봐...”“원래 다들 저를 사랑했잖아요...”분노와 충격이 뒤섞인 시선이 모두 임유나에게 향했지만 송지호는 달랐다.송지호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앉은 채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영상 속 임수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쓸쓸한 표정과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며칠 전 간호사가 자신들을 바라보던 경멸 어린 눈빛이 떠올랐다.그리고 그 말.‘환자분은 신장이 하나밖에 없는 상태였는데요.’그때 자신들은 임유나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아니, 듣고도 그냥 지나쳤다.잘못됐다.모든 것이 잘못됐다.어릴 때부터 함께 버티며 살아온 사람은 임수연이었다.자신이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앞을 막아 준 사람도 임수연이었다.자신을 살리기 위해 신장까지 내준 사람도 임수연이었다.그런데 자신은 대체 무엇을 했을까?자신을 지켜준 사람은 외면한 채, 어릴 때부터 자신들을 괴롭혔다고 믿었던 임유나만 감쌌다.임수연에게는 모진 말을 쏟아냈다.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임수연을 몇 번이고 상처를 입혔다.임수연이 아무리 설명하고 아무리 억울하다고 말해도, 자신은 단 한 번도 믿어준 적이 없었다.송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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