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죽음의 기록을 재생합니다: Chapter 1 - Chapter 10

28 Chapters

제1화

임수연은 데스 메모리 운영사에 자신이 죽은 뒤 이 영상을 세상에 공개해 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남겨 두었다.친부모와 약혼자 신혁준, 그리고 소꿉친구 송지호에게 자신이 죽기 전까지 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꼭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직원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벌컥 열렸다.신혁준과 송지호가 다급히 안으로 뛰어들어왔다.잔뜩 굳은 표정의 두 사람은 임수연의 손목을 붙잡고 다급하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수연아, 유나가 또 우울증 때문에 손목을 그었어. 얼른 같이 병원으로 가자, 지금 바로 채혈해야 해.”이번 달에만 벌써 일곱 번째였다.임유나는 한 달 사이 무려 일곱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그때마다 과다출혈이 있었고, 그때마다 수혈이 필요했다.그리고 그때마다 두 사람은 어김없이 임수연을 데려와서 임유나의 혈액 공급원으로 삼았다.이제 임수연의 두 팔에는 크고 작은 주삿바늘 자국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모두 임유나 때문이었다.병원에 도착한 뒤.병실 앞에 막 들어서는 순간이었다.짝-두 번의 따귀가 임수연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친부모인 임철수와 강미란이 달려와서, 분노와 질책이 가득한 눈빛으로 임수연을 쏘아봤다.“또 유나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유나가 우울증 있는 거 알면서 왜 또 자극한 거니? 걔는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안 되는 아이잖아!”신혁준과 송지호가 임수연을 감싸는 듯 나섰지만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임유나에게 수혈할 시간이 늦어질까 걱정해서였다.“아버님, 어머님. 일단 그만하세요. 수혈부터 하는 게 먼저입니다.”임수연은 두 사람의 손에 이끌려 채혈실 안으로 들어갔다.이렇게 모두가 함께 임수연의 검사 결과를 기다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하지만 누구 하나 임수연을 걱정하지 않았다.모두 채혈실 문밖만 바라보고 있었다.초조한 눈빛에는 응급실에 있는 임유나에 대한 걱정만 가득했다.임수연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씁쓸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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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집으로 돌아온 임수연은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현관문 앞에 겨우 다다랐지만, 열쇠를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치밀어 올랐다.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온 힘을 다해 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끝내 버티지 못했다.몸이 그대로 앞으로 기울어지며 계단 아래로 쓰러졌다.눈앞이 새까맣게 변하면서 임수연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밤새 계단에 쓰러진 채 꼬박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그 긴 시간 동안 아무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핏자국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임수연은 스스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국을 끓이던 중 문득 핸드폰을 꺼내 SNS를 열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임유나가 연달아 올린 게시물이었다.사진 속에는 임철수와 강미란, 신혁준, 송지호가 선물한 갖가지 선물이 가득했다.임유나는 마치 공주처럼 모두에게 둘러싸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행복이 넘쳐나는 얼굴이었다.임수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말없이 화면을 껐다.보온병에 국을 담고, 현관 앞에 남아 있던 핏자국까지 깨끗이 닦아냈다.그리고 준비해 둔 음식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병실에 도착했을 때 안에는 임유나 혼자 있었다.임수연을 보자, 임유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아쉽네. 조금만 늦게 왔으면 다들 볼 수 있었을 텐데.”“엄마 아빠는 나 먹을 음식을 사러 갔어. 혁준 오빠는 내가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하니까, 병원장한테 가서 병동을 통째로 비워 달라고 했어.”“지호는 지금 내 우유 데우러 갔고.”임수연은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이번 달에만 벌써 일곱 번째야.”“넌 우울증도 아니잖아. 계속 날 모함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임유나는 피식 비웃었다.“재밌는데?”“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재밌거든.”“설마 네가 친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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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임수연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됐다.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 탓에 거의 매일 피를 토했다.세면대에 고인 검붉은 피를 볼 때마다, 임수연은 속으로 남은 시간을 조용히 계산해 봤다.‘과연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임유나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매일같이 수십 통의 메시지와 사진을 쏟아 보냈다.[임수연, 요즘 정말 불쌍하겠다? 난 엄마 아빠도 있고, 혁준 오빠랑 지호도 늘 내 곁에 있는데.][다들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알아? 식사도 매일 돌아가면서 직접 먹여준다니까.][너 같은 사람은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아. 평생 가정부 딸로 사는 게 딱 어울려.]임수연은 문자들을 하나하나 끝까지 읽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핸드폰 화면을 껐다.위장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이젠 더는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집에 있던 진통제는 이미 오래전에 바닥난 상태였고, 며칠 전 병원에서 다친 뒤 치료비를 내느라 가진 돈도 거의 다 써버렸다.남은 날들까지 매일 이런 고통을 견디고 싶지는 않았다.결국 진통제를 살 돈이라도 벌기로 마음먹었다.친구의 소개로 임수연은 유명한 MS클럽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일은 고됐지만 급여만큼은 괜찮았다.그날도 룸 정리를 마치고 나오던 순간이었다.복도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나야, 너 퇴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클럽에 놀러 오겠다고 한 거야?”“아버님이랑 어머님이 아시면 분명 걱정하실 텐데.”임유나는 신혁준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혁준 오빠, 난 하나도 안 무서워. 어차피 오빠가 다 해결해 줄 거잖아.”“어릴 때부터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늘 오빠가 다 감싸줬잖아.”“게다가 엄마 아빠도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절대 화 안 내실걸?”신혁준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임유나의 이마를 가볍게 톡 건드렸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지호는 벗어 둔 재킷을 그녀의 어깨에 조심스레 걸쳐주었다.“몸도 다 낫지도 않았는데 감기라도 들면 어떡하려고.”“목마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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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임수연은 지금 술은커녕 음식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몸이었다.하지만 돈이 필요했다.돈만 있으면 진통제라도 살 수 있었다.임수연은 천천히 몸을 숙여서 바닥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병에 입을 대고 그대로 술을 들이켰다.독한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목구멍부터 위장까지 불길이 번져가는 것만 같았다.아팠다.너무도 아팠다.순간 가슴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더는 참을 수 없었다.몸을 돌린 채 그대로 피를 토해냈다.붉은 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희미한 시야 너머로 신혁준과 송지호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는 모습이 보였다.순간이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스쳤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곧이어 들려온 임유나의 목소리에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수연아, 이제 그만 연기하지?”“예전에도 집에서 빨간 약을 피인 척 뿌려 놓고 엄마 아빠를 속였잖아.”“이제 와서 또 같은 수법 쓰는 거야?”두 사람은 차갑게 임수연을 바라봤다.조금 전 스쳤던 걱정의 기색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신혁준이 싸늘하게 말했다.“돈 챙겨서 나가.”임수연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돈을 챙긴 뒤 말없이 룸을 나섰다.문이 닫히자 뒤에서 임유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에휴, 또 저 돈으로 뭘 하려고 저러는 걸까?”“예전에도 몰래 돈 들고 나이트클럽이나 다녀서, 엄마 아빠가 생활비를 안 주기 시작한 거잖아.”그 말을 듣는 순간.임수연의 가슴속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주머니에 돈을 넣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돈다발을 빼앗겼다.경호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신 대표님과 송 대표님 지시입니다.”“이 돈은 차라리 찢어 버릴지언정 당신한테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돈다발은 순식간에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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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 후 며칠 동안 임수연은 주변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일에만 매달렸다.오늘 하루만 버티면 진통제를 살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그 생각을 하니 무거웠던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임수연은 주문받은 술을 들고 지정된 룸으로 향했다.술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뒤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서더니 그녀를 막아섰다.“어디 가려고?”“이리 와서 나랑 몇 잔만 마셔.”남자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셌다.손목이 아플 정도로 거칠게 붙잡힌 임수연은 몸을 돌려 사과하며 손을 빼내려고 했다.“죄송합니다, 저는 술을 못 마셔요.”하지만 남자는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술을 못 마셔?”“그럼 나랑 하룻밤 보내는 건 어때?”말이 끝나자마자, 남자의 손이 임수연의 몸 위로 거칠게 뻗어왔다.이곳에서 일한 뒤 처음 겪는 일이었다.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임수연은 겁에 질린 채 몸부림치며 소리쳤다.“놔주세요!”“계속 이러시면 사람 부를 거예요!”남자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탐욕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사람을 불러? 누가 와줄 것 같은데?”“똑똑히 말해줄게, 임씨 가문의 아가씨가 나한테 널 망가뜨리라고 시켰어.”“그러니까 얌전히 있어.”“그 사람이 준 돈이면 네가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줄 만큼 충분하거든.”임수연은 이렇게까지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설마 임유나가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눈물을 흘리며 계속 소리쳤다.필사적으로 버티던 끝에 결국 룸 문을 발로 걷어찰 수 있었다.쾅!큰 소리에 복도를 지나가던 두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소리를 따라온 사람은 하필 신혁준과 송지호였다.임수연은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서, 두 사람에게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다급하게 외쳤다.“신혁준, 송지호. 제발 도와줘.”“누가 나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해.”두 사람은 순간 멈칫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곧 익숙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임수연을 바라봤다.“또 연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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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렇게 임수연은 집 밖에서 꼬박 하룻밤을 무릎 꿇고 있었다.날이 밝아서야 저린 다리를 끌며 겨우 집 안으로 들어왔다.침대에 앉은 임수연은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뜻밖의 메시지를 발견했다.매그놀리아 디자인 어워드 결승 진출 초대장이었다.임수연은 원래 디자인을 좋아했다.예전에 매그놀리아 디자인 어워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결승에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주최 측은 결승 작품만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이후에는 최종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안내였다.아마 이 작품이 살아 있는 동안 남길 마지막 작품일 것이다.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쏟았다.꼬박 사흘 밤낮을 새워서야 작품을 완성했고, 마침내 제출했다.그리고 결과 발표 날.임수연의 작품은 정말로 1등을 차지했다.하지만 작품명 아래 적힌 이름은 달랐다.임유나.화면 속 자신의 작품 아래 새겨진 이름을 바라보며, 임수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뒤에서 임유나가 언제 나타났는지 다가와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어머, 나 진짜 상 받았네.”“그냥 한 번 해본 말이었는데, 엄마가 정말 네 원고까지 몰래 가져다줄 줄은 몰랐어.”“혁준 오빠랑 지호도 힘을 좀 썼나 봐. 네 이름을 아예 대회에서 빼버렸더라.”“임수연, 너 정말 불쌍하다.”임유나는 임수연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예쁜 얼굴에는 오직 악의만 가득했다.임수연은 단 한 번도 임유나를 해친 적이 없었고 먼저 괴롭힌 적도 없었다.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가슴속에서 타오르던 분노가 결국 모든 이성을 집어삼켰다.더는 참을 수 없었다.임수연은 손을 들어 임유나의 뺨을 거칠게 내리쳤다.짝!“임유나, 너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야?”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든 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임수연이 막 임유나의 뺨을 때린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임철수와 강미란, 신혁준, 송지호가 동시에 나타났다.그 광경을 본 네 사람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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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임수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자신의 방이었다.침대 곁에는 신혁준이 앉아 있었고, 막 약을 먹이려던 참이었다.임수연이 눈을 뜨자, 신혁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수연아, 이제 유나를 그만 괴롭혀.”“유나가 네 자리를 대신하며 살아온 건 맞아. 하지만 그건 유나 잘못이 아니잖아.”“이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잖아. 나도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어.”“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부족한 거야?”임수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임유나를 바라볼 때마다 드러나는 그 깊은 애정을 보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임수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대체 왜 나랑 결혼하려는 거야?”“두 집안의 혼약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마.”“넌 그 정도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잖아.”신혁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신씨 가문은 대대로 아들뿐이었어.”“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 우리 집안에 시집오는 사람은 반드시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고.”신혁준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유나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만 자랐어.”“난 유나가 그런 고생을 하는 건 차마 못 보겠어.”임수연은 허탈하게 웃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웃다 보니 어느새 눈물까지 흘러내렸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참 뒤에야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렇구나, 넌 정말 유나를 사랑하는구나.”“정말 대단하다.”신혁준의 눈빛은 한층 더 차갑게 식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유나야.”“너와 결혼하기로 한 이상, 책임은 다할 거지만 내 마음은 평생 유나의 거야.”임수연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봤다.“언젠가 네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걸 알게 되면?”“네가 사랑했던 사람이 사실은 나였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신혁준은 순간 멍해졌다.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다시 물으려던 그때였다.문이 열리며 송지호가 들어왔다.신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지호야.”“네가 어릴 때부터 수연이랑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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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만 생기면 임수연은 늘 구경거리가 됐다.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두고 수군거렸다.가정부의 딸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신씨 가문과 혼약을 맺게 됐냐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뿐이었다.보잘것없는 출신이면서도 늘 세상을 원망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마치 온 세상이 자신에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굴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하지만 임수연은 단 한 번도 변명하지 않았다.아니,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다.생일 파티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임철수와 강미란은 하객들 앞에서 임씨 가문의 모든 재산은 앞으로 임유나에게 상속하겠다고 발표했다.순간 커다란 박수가 쏟아졌지만, 임수연은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어차피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곧 죽을 사람이 재산을 받아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그때 임유나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임수연 곁으로 다가왔다.입가에는 승자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임수연.”“이번에도 내가 이겼네.”“엄마 아빠도, 혁준 오빠도, 지호도 정말 바보 같지 않아?”“자기들한테 잘해준 사람이 넌데, 전부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잖아.”임수연은 그 말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그녀가 말없이 돌아서려던 순간.쾅!머리 위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천장 장식물을 받치고 있던 구조물이 끊어지면서 장식들이 한꺼번에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임수연과 임유나를 향해서였다.“유나야!”순간 사방에서 임유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모두가 동시에 그녀에게 달려갔다.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임유나는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반면 임수연은 무너져 내린 장식물에 그대로 깔려서 바닥으로 쓰러졌다.머리가 어지러웠고, 이마를 타고 뭔가 축축하게 흘러내렸다.피였다.그제야 신혁준이 임수연을 돌아봤다. 그녀의 상처를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다가왔다.“많이 다쳤어? 병원부터 가자.”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유나가 비틀거리며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혁준 오빠, 머리가 너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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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네 사람이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이었다.임수연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잠시 후, 커다란 상자 세 개를 들고 내려와 한 사람씩 차례로 앞에 내려놓았다.가장 먼저 송지호 앞에 섰다.“지호야, 여기엔 우리 둘이 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이 전부 들어 있어.”“난 이걸 보물처럼 아끼며 살아왔어.”“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네가 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었거든.”“넌 내게 한 줄기 빛 같은 사람이었어.”“네가 없었다면 난 진작 무너졌을 거야. 그래서 수없이 꺼내 보면서 소중하게 간직했어.”잠시 말을 멈춘 임수연은 상자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하지만 이제 돌려줄게.”“우리의 추억도 오늘로 끝이야. 전부 잊을게.”그 말을 끝으로 임수연은 임철수와 강미란 앞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두 사람에게도 상자를 내밀었다.“아버지, 어머니.”“예전엔 멀리서 두 분이 유나를 아끼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이 부러웠어요.”“나도 저런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바랐죠.”“그러다 두 분이 제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전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어요.”“하지만 이 집으로 돌아온 뒤 단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은 없었어요.”“세상에는 친딸보다 양딸을 더 사랑하는 부모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으니까요.”임수연은 천천히 상자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여기엔 두 분이 그동안 제게 주셨던 선물이 전부 들어 있어요.”“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했어요.”“이제 돌려드릴게요.”“저를 낳아주셨지만 길러주진 않으셨죠. 그래도 이제 더는 원망하지 않을게요.”“이 목숨도 두 분이 주신 거니까 오늘 돌려드릴게요.”마지막으로 임수연은 신혁준 앞에 섰다.잠시 그를 바라보다 담담히 입을 열었다.“신혁준.”“이젠 당신한테 할 말도 없어.”“다만 언젠가 날 떠올리는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네 사람은 손에 들린 상자를 내려다보며 어딘가 불안한 기분을 느꼈다.하지만 마음은 온통 임유나에게만 쏠려 있었다.그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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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수술실 문이 닫히는 모습을 바라보던 네 사람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조금 전 임수연이 남긴 마지막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어둑한 복도에는 붉게 켜진 수술실 표시등만 유난히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네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하지만 이내 그 불안도 임유나를 걱정해서 생긴 감정이거니 하고 넘겼다.임수연이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임유나는 예전처럼 웃지 못했다.우울증까지 앓게 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해를 했다.이번에는 교통사고까지 당해 신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어서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강미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애초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걔는 정말 우리 집에 불행만 몰고 오는 것 같아.”가장 가까이 서 있던 임철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처음 임수연을 데려온 건 친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하지만 데려와 보니 결국 마음을 붙일 수 없는 아이였다.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운 임유나는 우울증에 걸렸고, 자신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도 임수연은 걱정하기는커녕 외면했다고 믿고 있었다.그때 자신들을 살린 건 임유나의 수혈 덕분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그 사고로 죽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날의 일을 떠올린 임철수의 표정도 차갑게 굳어졌지만, 수술실 안에는 아직 임유나가 누워 있었기에 걱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모두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드리울 무렵.철컥-수술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마스크를 쓴 채 밖으로 나왔다.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의사의 눈빛은 무척 무거웠다.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모두 의사에게 몰려들었다.“선생님, 유나는 괜찮죠?”“수술은 잘 끝난 거죠? 이제 위험한 건 아니죠?”“마취제는 가장 좋은 걸로 써주셨죠?”“유나는 아픈 걸 제일 무서워해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우리 유나는 곱게만 자란 아이라 이런 큰 수술은 처음이잖아요.”“수연이 깨어나면 유나 먹을 보양식부터 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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