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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뒤늦게 찾아온 나의 봄: Chapter 11 - Chapter 19

19 Chapters

제11장

마차가 무사히 경성을 벗어난 순간, 임서아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며칠 동안 팽팽하게 조여오던 긴장감이 이제야 온전히 풀려나갔다.그때, 곁에 기대어 있던 송씨가 그 모습을 보더니 붉어진 눈시울로 입을 열었다."아가씨, 저희... 드디어 경성을 떠났습니다."임서아가 손을 뻗어 송씨의 손을 꼭 잡았다. 나긋한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예, 떠났어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마차로 며칠 동안 부지런히 달려 나루터에 다다르자, 두 사람은 선박으로 갈아탔다.선박은 널찍하고 흔들림 없이 평온하였는데 선상에는 송씨에게 약을 챙겨주고 수발을 들 하인들이 올라타 있었다.심태건의 세심한 배려에 임서아의 가슴 한구석이 은은하게 따스해졌다.몸이 불편한 송씨를 배려해 쉬엄쉬엄 길을 가다 보니, 두 달이 지나서야 마침내 강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한편, 소식을 들은 이보화가 직접 대문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임서아를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손을 다정하게 감싸쥐었다."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지? 네 소식은 다 전해 들었다. 가여운 것, 이제 심씨 가문에 왔으니 이곳을 이제 네 집이라 생각하거라. 그 누구도 감히 너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야."거짓없는 따스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덕분에 다소 굳어 있던 임서아도 그녀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며 금세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하지만 심씨 가문 저택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나도록 심태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하인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그가 중대한 일을 처리하러 강북으로 떠나 석 달 뒤에야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때, 어린 몸종이 살짝 덧붙였다."도련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서아 아가씨께서 오시면 저택의 또 다른 주인이나 다름없으니, 그 누구도 소홀히 모셔서는 안 된다고요."이후 숙부 역시 그녀가 강남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직접 심씨 가문으로 찾아오기도 했다.침상에 누워 있는 송씨를 보며 임정철이 한숨을 내쉬었다."얼마 전에 세자 저하께서 강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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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임서아는 고개를 돌려 심태건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강북의 일은 잘 마무리되셨습니까?""예."심태건이 나지막이 대답했다.그리고 잠시 묵직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돌아오는 길에 신의 한 분을 모셔 왔습니다. 이따가 어멈의 다리를 진찰해 보라 할 생각입니다."임서아는 순간 멍해졌다. 그가 송씨의 일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고맙습니다.""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심태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마침내 신의가 임서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심태건이 데려온 이는 다름 아닌, 과거 그녀가 닷새 밤낮을 무릎 꿇고 빌어도 만나주지 않았던 그 은거 신의였다.그의 괴팍한 성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담담한 표정의 심태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왔다. 그를 모셔 오기까지 이 남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그렇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심태건을 향한 고마움이 또 한 겹 짙게 자리 잡았다.한편, 신의가 송씨의 맥을 짚고 다리를 한참 살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별일 아니오. 며칠 침을 놓고 탕약을 좀 쓰면 머지않아 일어설 수 있을 게요.”그후 일주일 동안 심태건은 매일같이 송씨의 처소를 찾았다. 항상 임서아의 곁을 지키며 그녀와 함께 송씨를 정성껏 보살피곤 했다.보름 뒤.송씨는 심태건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거닐 수 있게 되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임서아의 시야가 이내 흐릿해졌다. 걷잡을 수 없이 벅차오른 눈물이 볼을 타고 자꾸만 흘러내렸다."도련님, 정말 고맙습니다... 도련님이 아니셨다면 어멈은 평생 누워만 계셨을 거예요."심태건의 시선은 한 순간도 임서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낭자의 가족이 곧 제 가족이거늘, 고마워할 것 없습니다."다정하기 그지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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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바로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요란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큰일 났다! 불이야! 어서 피하십시오!”사람들이 밀물처럼 엉키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경황없이 도망치기 바빴다.혼란에 빠진 인파 속에서 누군가 임서아를 강하게 밀쳐 냈다."아...!"발끝이 공중에 붕 떴다. 중심을 잃은 임서아의 몸이 그대로 차가운 연못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얼음처럼 가시 돋친 물줄기가 순식간에 임서아를 삼켜 버렸고 사방에서 숨 막히는 한기가 피부를 짓눌렀다.순간, 지옥 같았던 그날, 장공주부의 기억이 물밀듯이 덮쳤다.차도진에 의해 차가운 물속에 온종일 방치되었던 그때.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절망적인 추위였다.손끝부터 서서히 마비가 찾아왔다. 심지어 사지가 굳어 가며 몸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바로 그때.거친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쾅!심태건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임서아를 향해 곧장 헤엄쳐 왔다.번져 가는 물빛 너머로 임서아는 심태건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날 자신을 향해 헤엄쳐 오던 차도진의 잔상이 눈앞의 사내와 겹쳐졌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이 사내는 제 곁을 싸늘하게 지나쳐 가지 않았다.오직 그녀만을 향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오고 있었다.거친 물결을 헤치고 다가온 심태건이 굳건하게 그녀의 몸을 받쳐 들었다. 이윽고 가라앉던 몸이 단단한 온기에 떠올랐다.임서아는 그의 날카로운 옆선에 시선을 고정했다.어렴풋이 전생의 환영이 스쳤다. 단단히 잠겨 있던 문을 부수듯 열어젖히고, 망설임 없이 달려와 자신을 끌어안아 주던 그 사내의 모습이.의식이 덧없이 아득해졌다.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는 단 한 조각의 두려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심태건.그가 자신을 절대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한편, 임서아를 품에 안고 뭍으로 올라온 심태건은 곧장 심씨 가문 저택을 향해 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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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약사발을 들고 있던 심태건의 손이 공중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입술을 떼었으나, 새어 나온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엉망으로 흩어지고 있었다."그게... 정말입니까?"임서아의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배어 나왔다.그를 향한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다정함이 짙게 흘렀다."앞으로의 날들도, 도련님께서 내내 제 곁에 계셔 주셨으면 합니다."순간 심태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벅차오르는 감정에 손끝마저 파르르 떨렸다.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멈, 낭자 곁에 잠시만 같이 있어 주십시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그럽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말을 마친 심태건은 황급히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그때,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침상 곁에 서 있던 송씨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가씨, 도련님께서... 너무 기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모양입니다."임서아는 황급히 처소를 벗어나는 심태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한편, 밤이 깊어서야 심태건이 다시 임서아의 처소 문앞에 모습을 나타냈다.사흘간의 찌든 기색을 털어내려는 듯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이전보다 훨씬 단정하고 기품 있는 얼굴이었다.이윽고 그가 침상 곁에 앉으며 평소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낭자의 몸이 조금 더 회복되면, 그때 차근차근 혼례를 준비하지요."임서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심태건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임서아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소식을 들은 이보화가 찾아와 임서아의 손을 다정하게 꼭 쥐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얘야, 네가 몰라서 그렇지. 며칠 전에 태건이가 눈시울이 벌개진 채로 내 방으로 달려왔단다. 네가 혼인을 수락했다면서 내 앞에서 울다 웃다 하는데, 내 평생 녀석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니까."임서아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자신의 앞에서는 언제나 의연하고 든든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였기에, 선뜻 상상이 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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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혼례복 자수를 모두 마친 날이었다.임서아가 정성스레 접은 혼례복을 궤짝 안에 막 넣으려던 순간, 문밖에서 하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바깥에 뵙기를 청하는 손님이 계십니다. 아가씨와 예전부터 아는 사이라 하시는데..."임서아의 손끝이 순간 멈칫했다.누구인지 짐작이 갔다.강남에서 지인이라 부를 만한 이는 숙부뿐이었다.차도진이 아니라면 달리 제 발로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만나지 않겠다 전해라."임서아가 나지막이 답을 내리자, 하인은 조용히 물러갔다.하지만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밖에서 급박한 발소리와 함께 하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아가씨께서 나오시지 않는다면 문앞에서 계속 기다리겠다 하옵니다."임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의 뒤를 따라 대문으로 향했다.대문 밖.심씨 가문의 가솔들이 한 남자를 막아서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차도진이었다.얼마 못 본 사이, 그의 안색은 몰라보게 파리해져 있었다. 몸집은 눈에 띄게 줄었고 며칠 밤을 지새운 듯 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서려 있었다.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억지로 밀고 들어서려던 차도진의 움직임이 뚝 멈추어 섰다. 이윽고 자신을 막아선 가솔들 너머로 그의 눈빛이 임서아에게 닿았다. 차도진이 입술을 달싹였다. 푹 쉰 목소리에는 서글픈 애틋함이 묻어났다."서아야..."임서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차분히 그를 바라보았다."들어오게 하거라."가솔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거두었던 손을 물리고 옆으로 비켜섰다.차도진이 성큼 다가와 임서아의 두 걸음 앞에 멈춰 섰다. 울화와 죄책감으로 목이 턱 막힌 듯,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이전의 일들을... 전부 알게 되었다. 연희가 물에 빠진 건 네가 밀친 게 아니었고, 소문 역시 네가 퍼뜨린 게 아니었어. 전부 그 아이가 날 속이려 혼자 꾸며낸 짓이었어. 숙부님께 들었다. 그때 나를 구한 사람 역시 너였다는 것을. 그동안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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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이대로 못 간다! 서아야..."차도진이 가솔들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임서아의 옷자락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하지만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옆에서 뻗어 나온 손 하나가 그의 손목을 억세게 잡아챘다.임서아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돌아온 심태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차도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심태건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분노가 넘실거렸다.이윽고, 심태건은 조용히 손을 놓으며 반 걸음 물러섰다. 그 움직임 하나로, 임서아의 몸이 어느새 그의 등 뒤에 자연스레 가려져 있었다."세자 저하, 경성에 머물지 않으시고 강남에는 어찌 오셨습니까? 이곳은 저하께서 계실 곳이 아닌 듯합니다만. 서아 낭자께서도 방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더 이상 찾아와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요. 이만 돌아가시지요."차도진이 이를 악물었다."이건 저 아이와 나 사이의 일이다. 외인 따위가 참견할 바 아니니 비키거라!"그러나 심태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서아 낭자는 제 정혼자입니다. 아가씨의 일은 곧 제 일이지요.""너희는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다!"차도진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다음 달 초아흐렛날, 저희는 혼례를 치를 것입니다."심태건이 담담히 그의 말을 끊었다."세자 저하께서 원하신다면 오셔서 축하주 한 잔 드셔도 좋습니다."잠시 후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곁에 서 있던 가솔들이 즉시 달려들어 차도진을 바짝 붙잡았다."하지만 지금은 이만 나가주셔야겠습니다."차도진이 거칠게 몸부림쳤지만, 단단히 붙들린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붉게 충혈된 눈으로 심태건을 노려보며 그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네놈이 감히 내게 손을 대느냐? 내가 너를 처벌하지 못할 줄 알고!"그러나 심태건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저는 그저 저하께 나가달라 청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저희 심씨 가문은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이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일을 두려워하지도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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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임서아는 격렬하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눈을 떴다.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손목과 발목은 부드러운 면끈으로 촘촘히 묶여 있었다.맞은편에는 차도진이 앉아 있었다.금방이라도 그녀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며칠 사이 그의 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짙게 서 있었다. 거칠게 자란 수염이 턱밑을 덮고 있어, 특유의 고귀함과 기품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몰락과 집착만이 남아 있었다.임서아가 눈을 뜨자, 차도진의 죽어 있던 눈동자에 찰나의 희열이 번졌다.이윽고 거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정신이 드느냐? 지금 경성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도착하면 바로 혼례를 올리자. 지난일은 다 내 잘못이었어. 내가 다 보상하마. 앞으로는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 것이다. 그러면 너도 언젠가 날 다시 받아줄 테지."임서아는 마차 벽에 기댄 채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래서요? 이렇게 억지로 데려가 제 몸을 가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자 저하, 저는 오래전에 저하를 향한 마음을 접었습니다. 저하의 잘못도, 보상도, 이제 제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그 한마디는 차도진의 희열을 단숨에 짓밟아 버렸다.그가 주먹을 꽉 쥐며 조급하게 말을 내뱉었다."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아?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날 위해 그 많은 걸 바쳤던 네가 어찌 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그저 홧김에 이러는 거잖아, 맞지? 날 원망하니까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냐."자아도취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이 실로 가소로웠다.더 이상 말조차 섞기 싫었던 임서아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아버렸다. 단 한 순간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차도진은 그렇게 단호히 외면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조여드는 듯했다.한참 뒤 그가 탁한 숨을 내뱉으며 광기 어린 눈빛을 띠었다."상관없다. 경성에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테니까."마차는 덜컹거리며 경성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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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절체절명의 순간, 수풀을 헤치고 나온 차도진의 눈에 위태로운 광경이 들어왔다.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임서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어 양팔을 벌려 그녀를 제 품 아래 단단히 감싸 안았다.바로 그때, 살점이 찢겨 나가는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차도진의 온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목구멍 너머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녀를 굳건히 지켜 내는 그의 두 팔만큼은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잠시 후, 머리 위에서 지독한 통증을 머금은 차도진의 목소리가 흘러내렸다."두려워 마라... 내가 있으니..."그의 품 아래 꼼짝없이 갇힌 그녀는 눈앞의 광경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 처참함에 마음이 거세게 요동쳐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이어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타격을 입은 늑대 무리가 낮게 울부짖으며 경고를 보내더니,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사방으로 흩어져 깊은 숲속으로 사라졌다.차도진의 몸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그는 임서아의 위로 털썩 쓰러지며 완전히 의식을 잃고 말았다.온몸을 파르르 떨던 임서아가 황급히 손을 올려 차도진을 받쳐 들었다. "저하? 정신 차리십시오! 사람 겁주지 마시고요!"조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그의 숨결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약했다. 임서아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차도진은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그때, 급박한 발소리와 함께 심태건이 수많은 호위를 이끌고 달려왔다.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심태건이 초조하게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보았으나 차마 어디 곳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피가 이렇게나 많이... 어디 다치신 겁니까?"임서아는 고개를 저었다. 목이 턱 막혀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지, 그녀는 제 위에 엎드려 있는 차도진을 떨리는 손끝으로 가리킬 뿐이었다.차도진의 몸에는 성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옷은 갈가리 찢겨 나갔고,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피범벅 상처가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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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얼마 지나지 않아, 여종이 고개를 살짝 밀어 넣으며 아뢰었다."아가씨! 꽃가마가 대문 앞에 도착했습니다!"송씨가 손수 임서아의 머리 위에 붉은 너울을 씌워 주었다.순간, 임서아의 눈앞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시녀의 조심스러운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선 그녀는, 제 손을 심태건의 손 위에 가만히 얹었다.붉은 너울 너머로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손바닥에 배어난 옅은 땀기운만큼은 또렷하게 전해졌다.늘 대범하고 침착하던 심태건이, 오늘만큼은 마치 풋풋한 소년처럼 긴장하고 있었다.임서아는 그의 세심한 호위를 받으며 꽃가마에 몸을 실었다.강남의 혼례 풍습에 따라, 꽃가마는 온 성안의 백성들에게 경사를 알리기 위해 도심을 한 바퀴 빙 돌았다.한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한적한 모퉁이.마차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차도진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마차에 기대고 있었다.그는 아득히 멀리 보이는, 눈이 부시다 못해 쓰라린 붉은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홀한 환각처럼, 눈앞의 광경이 얼마 전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과 천천히 겹쳐 들었다.꿈속의 임서아는 붉은 혼례복을 입고 자신과 맞절을 올리며 혼례를 치렀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다른 이가 준비한 혼례복을 입고 기쁨에 가득 찬 채 다른 사람의 곁에 서 있었다.심장 깊은 곳에서 통증이 사정없이 휘몰아쳤다.그는 문틀을 부서뜨릴 듯 움켜쥐었다. 하얗게 질린 마디마디가 사정없이 떨렸다.지난 며칠간, 그는 그녀를 위해 중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헤매었건만, 임서아는 단 한 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완전히 지워 버리고, 다른 이의 아내가 되었다.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된 그에게, 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 달려가 그녀를 빼앗아 올 수 있단 말인가.한참 뒤, 차도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눈동자에는 깊고 어두운 쓸쓸함만이 남아 있었다.이윽고 그가 쉰 목소리로 하인에게 나지막이 명령했다."가자."성을 한 바퀴 돌아온 꽃가마가 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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