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연을 다시 만난 건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며칠 전 최민환에게 전화했을 때 이희연의 목소리를 들었다.그때 이희연이라면 어떻게든 나를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알아요.”나는 이희연을 바라보며 양희영에게 담담하게 대답했다.“전처예요.”양희영은 안도한 듯했지만, 그와 달리 이희연의 미간은 더욱 깊게 일그러졌다.이희연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여보, 우리 얘기 좀 하자.”오랜 세월 함께한 사이인 만큼 제대로 마무리할 필요는 있었기에, 그 요청에 나도 동의했다.우리는 함께 숙소 밖 전망대로 올라갔다. 긴 강처럼 이어진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이희연이 입을 열었고,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여보, 내가 미안해.”나는 조금 비꼬듯 웃었다.“뭐가?”이희연은 멈칫했다. 아마도 내 질문에 말문이 막힌 듯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유한천과 너무 가깝게 지내서 당신 힘들게 한 거,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나는 말없이 이희연을 바라봤다.저녁 바람이 이희연의 고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문득 오래전, 주머니에 늘 내 위장약을 챙겨 다니던 이희연이 떠올랐다.하지만 그때의 이희연은 이미 없어졌다.눈앞의 이 사람은 나를 외면했고 나의 마음을 저버렸다. 그리고 내가 건넨 진심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나는 이희연 때문에 방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하기도 했다.“이희연.”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고, 목소리는 바람 소리 때문에 더 낮았다.“뭐가 제일 우스운지 알아?”“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나는 죽을힘을 다해 스스로에게 네 탓을 하면 안 된다고 되뇌었어. 너한테는 너만의 원칙이 있으니까.”“그런데 나중에야 알았어. 넌 그냥 나를 위해서는 예외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야.”“유한천이 말 한마디만 해도 넌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갔잖아.”이희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아버님이 돌아가신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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