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이희연은 꽃다발을 품에 안고 꽃집을 나섰다.꽃다발 한가운데에는 자동차 열쇠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이렇게 먼저 고개를 숙이면, 고도겸의 비위를 너무 맞춰 주는 건 아닐까 싶었다.하지만 꽃을 받고 기뻐할 고도겸의 표정을 떠올리자,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집 문을 열고 이희연이 나지막이 불렀다.“여보.”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집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의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이희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 고도겸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그 음성에 이희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곧 이희연은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으나 역시 텅 비어 있었다.고도겸이 5년 동안 정성껏 가꿔 온 꽃들이 모두 사라졌었다.텅 빈 화분 받침대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서 쓸쓸함을 더했다.이희연은 순간 멍하니 굳어지면서, 마음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빠른 걸음으로 드레스룸에 가서 문을 열고, 이희연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자신이 고도겸에게 선물했던 물건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손목시계도, 넥타이도, 옷도 모두 없었다.이희연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다시 전화를 걸었다.연결이 안 된다고 했지만 몇 번이고 다시 걸었다.안내음이 여전히 똑같자, 이건 분명 차단당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불안감이 점점 커지면서 이희연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고도겸...”이희연은 나지막이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침실을 향했다.고도겸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었다.마치 처음부터 이희연의 삶에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사람처럼 말이다.문득 시야 끝에 침대 옆의 탁자가 들어왔는데, 그 위에는 서류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장이 거세게 뛰면서 이희연은 홀린 듯이 그쪽으로 다가갔다.맨 위에 놓인 서류 표지에는 선명하게 몇 글자가 적혀 있었다.[이혼 합의서]숨이 턱 막히면서, 이희연은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을 펼쳤다.그곳에는 놀랍게도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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