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도도하기로 유명한 이희연의 마음을 얻었다. 이희연과 결혼하기 위해 내 커리어까지 전부 포기하고 기꺼이 전업주부가 되었다. 심지어 이희연이 아이 낳는 건 아플 것 같아서 무섭다는 한마디에 나는 바로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정관수술까지 받았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평생 서로 사랑하며 백년해로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결혼 5주년 기념일인 오늘,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변호사이자 내 절친인 최민환이 몇 번이고 내게 되물었다. [진심이야? 아내랑 결혼하겠다고 부그잡지에서 온 제안도 단칼에 거절했던 네가! 이제 와서 이혼을 하겠다고?] 나는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억지로 참았다. “이혼 합의서 좀 작성해 줘. 최대한 빨리.” 그러자 최민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대체 왜?] 식탁 위에 놓인 화려하게 포장된 검은 만다라 꽃다발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대답했다. “꽃다발 때문에.”
View More“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부터.”나는 이희연을 바라봤고 목소리는 깊은 물처럼 고요했다.“우리에겐 애초에 그다음이 있어서는 안 됐어.”이희연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한참 뒤 이희연이 피식 웃었다. 씁쓸하면서도 처연한 웃음이었다.마치 손에 쥐고 있던 패를 마침내 전부 잃어버린 도박꾼 같았다.“알겠어.”이희연이 고개를 끄덕였고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앞으로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게.”말을 마친 이희연은 몸을 돌려 떠났다.걸음은 느렸지만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나는 그 자리에 서서 이희연이 한 걸음씩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마침내 복도 끝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봤다.홀가분하지도 슬프지도 않았고, 마음속에는 그저 아주 옅고 잔잔한 평온함만 남아 있었다.마치 한 권의 책이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친 것처럼 느껴졌다.5년 후.F국 P시.나는 최민환과 강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5년이라는 시간은 최민환을 더욱 날카롭고 노련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이제 최민환은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스타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몸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빈틈없이 정확하고 단호한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나 역시 다시 촬영 스튜디오를 차렸다.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풍경과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고, 출품하는 작품마다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이번에 P시에 온 것도 국제사진예술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최민환이 내 잔에 자신의 잔을 가볍게 부딪치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그런데 너 희연 씨 요즘 어떻게 사는지 알아?”나는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노란 술이 조명 아래에서 천천히 일렁였다.“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최민환은 내 태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말을 이어 갔다.목소리에는 조금 고소하다는 기색까지 묻어 있었다.“유한천은 실형까지 받았어. 직장도 잃었고. 완전히 끝난 거지.”“그런데 제일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사람 부모가 매일 희연 씨
어머니는 결국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해외 전문가팀이 치료 계획을 다시 조정했고, 일주일 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무사히 옮겨졌다.그 소식을 들은 날, 나는 병실 밖 의자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그동안 쌓여 있던 모든 두려움과 초조함,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오빠.”양희영이 휴지를 내밀며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서툴러 하는 기색이 목소리에 묻어났다.“어머님도 이제 괜찮아지셨는데 왜 울어요?”나는 휴지를 받아 눈가를 닦았다.그래도 눈시울은 여전히 붉었다.“고마워요. 희영 씨. 희영 씨는 정말 착한 사람이네요.”양희영이 없었다면, 지난 며칠을 어떻게 버텼을지 정말 알 수 없었다.그러자 양희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쑥스러운 듯 시선을 돌렸다.“사실 제가 이렇게까지 한 게 전부 착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내가 멈칫하며 양희영을 바라보자, 여자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맑고 솔직한 눈빛이었다.“오빠를 좋아하니까요.”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졌고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랐다.양희영의 눈빛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고,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맑았다.“사실 그때 길에서부터 오빠를 눈여겨봤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며칠이나 따라다니다가 겨우 가까워질 기회를 잡은 거예요.”“오빠가 정말 멋있었어요. 혼자 차를 몰고 많은 곳을 누비는 모습이 자유롭고 거침없어서... 그게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그때 오빠 차에 타고 있으면서, 그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오빠 곁에 있을 수 있게요.”양희영의 고백을 다 듣고도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희영 씨,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문가들을 이렇게 쉽게 부를 수 있을 정도면 희영 씨 집안도 상당히 좋을 것 같거든요?”“희영 씨처럼 예쁘고 착한 집안의 귀한 딸이라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요.”“나는 이혼도 했고 정관수술도 받았어요. 나중에 복원수술
내가 경찰에 신고하자, 유한천은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다.수술 직후의 환자를 고의로 자극해 상태를 악화시킨 일에 더해서, 앞서 발생한 수술 후 출혈 사건의 조사 결과까지 더해져 함께 책임을 묻게 됐다.유한천을 기다리는 건 단순한 해고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제 유한천이 어떤 결말을 맞든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어머니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고, 중환자실 밖에서 의사는 몇 번이고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나는 꼬박 이틀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유리창 너머로 온몸에 수많은 관을 꽂은 채 누워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모니터 위의 숫자가 한 번씩 바뀔 때마다, 무딘 칼날이 신경을 조금씩 베어 내는 것 같았다.며칠 동안 이희연도 계속 병원을 지켰다.나보다 잠을 더 적게 잤는지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하지만 그런 이희연을 바라봐도 고마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떨쳐 낼 수 없는 혐오감만 남아 있었다.이희연이 몇 번이고 유한천을 감싸면서 제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두지만 않았어도, 어머니에게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여보.”이희연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나한테 한번 맡겨 봐.”나는 차갑게 눈을 들었다.“뭘?”“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진에게 연락해서 치료 계획을 다시 세울게. 내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믿어 줘.”나는 눈을 감았다. “내 눈앞에서 좀 사라져 주면 안 돼? 지금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너야.”하지만 이희연은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으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지금 나 말고 당신이 의지할 사람이 누가 있어?”반박하고 싶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지금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희연뿐이었다.나는 힘없이 이희연이 내 어깨에 기대도록 내버려둔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다.“누가 오빠한테 교수님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대요?”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양희영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그 뒤에는 금발에
“수술은 성공적이었어요. 원래대로라면 갑자기 상태가 악화될 이유가 없는데요?”의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만, 강한 충격을 받았다면 얘기가 달라지죠.”그러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충격이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수술 후에는 환자의 감정이 크게 동요해서는 안 돼요. 특히 심장과 혈압 수치가 원래부터 불안정했으니까요. 오늘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특별한 일?’어머니는 막 수술을 마친 상태였다.의료진과 우리 가족 몇 명을 제외하면, 어머니를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잠깐...’나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CCTV 확인해 주세요.”30분 뒤, CCTV실에서 당시 영상이 재생됐다.병실 앞 복도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고, 간호사들은 트레이를 들고 병실을 드나들었다.그러다 오후 3시 20분, 한 사람이 화면에 나타났는데 바로 유한천이었다.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하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이희연을 바라봤다.이희연은 내 뒤에 서 있었다.모니터에서 흘러나온 빛이 이희연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여자의 턱 근육은 팽팽하게 굳어져 있었다.CCTV에는 소리가 없어서 화면만 확인할 수 있었다.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 유한천이 침대 옆으로 다가가더니 몸을 숙이고 뭔가를 말했다.처음에는 어머니도 대답하는 듯했다.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의 움직임이 갑자기 격해졌다.손으로 몇 번이고 침대 난간을 두드렸고, 모니터의 파형도 거칠게 요동쳤다.유한천은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입술을 움직여서 또 뭔가를 말했다.어머니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가 잿빛으로 변하고 나서야, 유한천은 느긋하게 손을 뻗어 호출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여기에서 영상이 멈췄다. CCTV를 확인하는 보안통제실에는 기계가 돌아가는 낮은 소리만 남았다.“유한천을 만나야겠어.”나는 몸을 돌려서 곧장 나갔다.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가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고 난 증오심에 치가 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차역에서 떠나려던 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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