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얼어붙은 마음, 남겨진 그리움: Chapter 11 - Chapter 20

26 Chapters

제11화

유치원을 떠난 뒤 송건호는 자기도 모르게 신유진과의 대화창을 클릭했다.알고 지낸 지 10년이 되었지만 두 사람의 채팅 기록은 많지 않았다.대부분은 신유진이 뭔가 얘기를 꺼내면 송건호가 며칠 뒤에야 짧게 대답하는 식이었다.예전에 송건호는 신유진이 귀찮기만 했다.그러나 이제 신유진은 송건호를 차단했고, 앞으로 그를 귀찮게 할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송건호는 또다시 영문 모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그때 마침 휴대폰이 울렸고, 곧 박정순의 억눌린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장 본가로 돌아와!”영문을 알지 못한 채로 본가에 도착하자 서류 뭉치가 송건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눈 똑바로 뜨고 봐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송건호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주워서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확인해 보니 재무제표 곳곳에 문제가 있었다.송건호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누가 이런 짓을 한 거예요?”박정순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정하윤 아니면 누구겠어? 너 완전히 미쳤구나? 걔가 귀국하자마자 회사에 입사시키는 거도 부족하고, 심지어 재무팀장이라는 중요한 직책까지 맡겨? 우리 세우 그룹을 망칠 셈이야?”박정순이 호되게 꾸짖자 송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제가 이렇게 많이 생길 줄은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하윤이는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에요.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그 말을 듣자 더욱 화가 난 박정순은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내던졌다.“네 나이를 생각해.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랑 만나고 다니는 건 내가 간섭할 수 없지만 회사에까지 피해를 주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박정순은 그렇게 말한 뒤 가슴을 움켜쥔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유진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하필 눈이 멀어서 그 여우 같은 애를 좋아하고 말이야.”송건호는 박정순의 말을 듣자 뭔가를 깨닫고 물었다.“어머니, 혹시 뭔가 알고 계시는 거예요?”박정순은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다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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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신유진은 일찌감치 멜버른에 도착했다.신유진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해외에 집을 구해 두었고 은서는 빠르게 적응하여 새 학교에서 친구들도 사귀었다.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신유진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가끔은 밖에 나가 스케치를 했다.그날 신유진은 외출하여 그림을 그렸다.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유진.”신유진은 단번에 그것이 송건호의 목소리임을 눈치챘다.순간 손이 떨려 엉뚱한 곳에 물감이 묻었다.10년 동안 사랑한 사람이다 보니 신유진은 송건호의 모든 것에 더없이 익숙했다.지난 1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다시 신유진을 덮쳐왔다.송건호는 신유진에게 다가가며 조금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 너를 찾았어.”송건호는 3개월 동안 신유진을 찾아 헤맸다.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수많은 나라들을 뒤져보다가 결국 이 이름 없는 마을에 신유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실제로 신유진이 이곳에 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그러나 뜻밖에도 신유진은 송건호를 보자 뒤로 물러났다.신유진은 본능적으로 송건호의 손길을 피하며 냉담하게 물었다.“여긴 왜 온 거야?”신유진은 이곳에서 송건호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송건호가 자신을 찾을까 봐 걱정한 신유진은 근처 도시에서 살고 있는 부모님을 찾아가지 않고 이 이름 없는 마을에 정착했다.그런데 결국 송건호가 찾아오고야 말았다.송건호는 움직임을 멈추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화 풀렸어?”지난 3개월 동안 송건호는 처음에 분노를 느꼈다가 천천히 초조해졌고 마지막에는 겁이 났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신유진을 본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송건호는 신유진이 자신과 정하윤의 일을 매우 신경 쓰는 걸 고려해서 조금은 양보할 생각이었다.“화가 다 풀렸으면 나랑 같이 돌아가자.”송건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신유진을 향해 다시금 손을 뻗었다.신유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너 정하윤 씨랑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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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신유진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송건호에게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예전에 신유진은 송건호에게 잘 보이려고 했고 송건호가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길 바랐다.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마음속에 이토록 많은 원망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송건호, 우리는 이미 끝났어. 앞으로는 내 삶을 방해하지 마.”말을 마친 뒤 신유진은 화판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집에 도착한 뒤에야 신유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움켜쥐고 천천히 쭈그려 앉았다.뺨이 차가워 손으로 만져 보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아직도 눈물이 흐를 줄은, 여전히 송건호 때문에 슬퍼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아무리 자신을 위로해 봐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지난 10년 간의 감정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는 어려웠다.송건호를 위해 헌신한 10년은 마치 낙인처럼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에는 흉터가 되어 버렸다.아무리 외면하려고 애써봐도 송건호의 등장이 또다시 상처를 들춰냈다.송건호는 왜 항상 이렇게 잔인한 걸까?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은서가 돌아왔을 것이다.신유진은 서둘러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가 은서의 밥을 차려주었다.은서는 얌전히 식탁에 앉아 숙제를 했고, 숙제를 끝낸 뒤에는 마당으로 나가 놀았다.신유진은 은서를 위해 작고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고, 은서는 그 강아지를 무척 좋아했다. 은서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송건호가 나타났다.갑작스러운 송건호의 등장에 은서는 깜짝 놀랐다.송건호는 은서가 자신을 무서워하는 걸 눈치채고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은서야, 아빠야.”송건호가 은서 앞에서 자신을 ‘아빠’라고 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송건호는 은서가 그 말을 들으면 신난 얼굴로 달려와 자신의 품에 안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은서는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눈빛에서는 예전 같은 간절함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은서는 한참 뒤에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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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송건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걸까?송건호는 전화를 끊은 뒤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눈빛으로 신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회사 일을 다 처리하게 되면 그때 다시 잘 설명할게.”귀국한 후 송건호는 곧장 회사로 달려갔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주주들이 와 있는 것이 보였고, 박정순은 더없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베이문 프로젝트 보고서에 오류가 있어요. 알고 있었나요?”송건호는 깜짝 놀랐다.베이문 프로젝트는 올해 세우 그룹의 핵심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한 주주가 송건호의 앞에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직접 확인해 보세요.”보고서를 펼친 송건호는 곳곳에 허점과 오류가 있는 서류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그러다 서류 맨 아래에 적힌 정하윤의 서명을 발견한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주주가 책상을 두드리며 경고했다.“우리가 회사를 송 대표님에게 맡긴 건 송 대표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송 대표님이 발탁한 인재 때문에 회사 프로젝트를 망칠 뻔했어요.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송건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 뒤에야 말했다.“제가 사람을 시켜 제대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주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무슨 오해가 있다는 거죠? 그 정하윤이라는 여자, 제가 다 조사해 봤어요. 해외에서 별 볼 일 없는 대학교에 다니다가 졸업하고는 늙은 남자한테 빌붙어서 살았더군요. 제대로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는 무능한 여자인데 그런 여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큰 권한을 줄 수 있죠? 정말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군요.”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먹은 것이 처음이었던 송건호는 얼굴이 굳어졌다.하지만 눈앞에 증거가 버젓이 놓여 있으니 정하윤을 대신해 변명할 수도 없었다.“인사이동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책임은 제가 전부 감당하겠습니다.”이렇게 큰 문제가 터진 이상 정하윤이 책임을 지기는 어려웠다.송건호는 이미 정하윤과 파혼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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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건호야.”정하윤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왜 갑자기 돌아온 거야?”송건호는 술 냄새를 풍기며 어두운 표정으로 정하윤을 바라보았다.“내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 거야?”정하윤은 송건호가 술에 취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얼른 다가가 겉옷을 벗겨 주었다.“그럴 리가. 그냥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서 놀란 것뿐이야. 다음부터는 돌아오기 전에 미리 연락 줘.”송건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정하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하윤의 목을 움켜쥐었다.“나를 사랑하는 건 맞아? 아니면 돈 때문에 나랑 만나는 거야?”벽 쪽으로 밀쳐진 정하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송건호가 무언가를 알아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시선을 들어 애처로운 눈빛으로 송건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사랑하니까 만나는 거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다민이를 데리고 귀국했을 리가 없잖아.”송건호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자 정하윤은 송건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번 생에 내가 사랑한 남자는 너뿐이야. 우리는 첫사랑이잖아. 내가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정하윤은 눈물을 글썽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진실해 보였다. 결국 송건호는 잠시 갈등하다가 정하윤을 거칠게 밀쳐 소파 위로 넘어뜨렸다.“연기는 그만해!”정하윤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데 송건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허리를 끊었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얼마 안 남은 정까지 다 떨어지게 하지는 마.”정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위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정다민이 잠에서 깨어 재빨리 달려가 송건호를 끌어안았다.“아빠, 아빠 저 버릴 거예요?”예전에 송건호는 정다민 앞에서는 항상 마음이 약해졌다.그러나 이제는 정다민을 볼 때마다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본 적 없는 은서가 떠올랐다.얼마나 괴로웠을까?송건호는 정다민을 밀어내며 또박또박 말했다.“오늘부터는 아빠라고 부르지 마. 나는 너희 엄마랑 결혼하지 않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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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멜버른.송건호가 떠난 뒤, 신유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신유진은 평소처럼 스케치를 했고, 은서는 평소처럼 등교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송건호를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신유진은 자신의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신유진의 그림은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었지만, 작은 마을에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림을 사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신유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갤러리로 갔다. 그리고 갤러리 사장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그 사람은 바로 송건호였다.송건호는 말없이 신유진의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송건호의 옆모습에 신유진은 순간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송건호는 단 한 번도 신유진의 그림을 이렇게 세심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예전에 송건호는 신유진에게 늘 무관심했다.신유진이 송건호와 관련된 그림을 수없이 그렸을 때도 송건호는 그 그림들을 쓰레기처럼 여겼다.그러나 이제는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림을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유진아, 나 이 그림 사고 싶어.”신유진은 더 이상 송건호와 엮이고 싶지 않아 단호히 거절했다.“미안하지만 이 그림은 팔지 않을 거야.”신유진은 송건호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에는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지금은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찾아오는 걸까?갤러리 사장이 신유진을 설득했다.“이분이 유진 씨 그림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세요. 무려 10만 달러에 사고 싶으시대요.”신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안 팔아요.”말을 마친 뒤에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때 등 뒤에서 송건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20만 달러.”송건호는 가까이 다가가서 신유진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30만, 40만, 50만 달러도 줄 수 있어.”신유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건호를 바라봤다.“나는 그렇게 유명한 화가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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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갤러리를 나서자 송건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쫓아왔다.송건호는 신유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마치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려는 듯 다급하게 말했다.“나 정하윤이랑 파혼했어.”신유진은 조금 놀랐다.정하윤을 그렇게 좋아해서 10년 동안 기다린 사람이 이제 와서 이렇게 쉽게 파혼을 결정하다니 의외였다.그러나 신유진은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갑게 송건호를 밀어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신유진은 송건호와 더는 얽히지 않기로 결심했다.송건호가 누구와 결혼하든, 누구와 결혼하지 않든 이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신유진은 이제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신유진의 냉담한 반응에 송건호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신유진의 앞을 가로막았다.“내가 그렇게 원망스러워?”신유진은 송건호를 바라보았다.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내 신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원망스럽지 않아.”신유진의 목소리는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평온했다.“송건호, 나는 예전에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기꺼이 네 곁에 있었어. 그건 내 선택이니까 너를 원망한 적은 없어. 하지만 사랑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면서 너무 힘들었고 괴로웠어. 그래서 이제는 너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신유진은 이미 마음을 접었고 지난 사랑을 내려놓았다.사람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신유진은 송건호를 원망하지 않았다.원망이라는 감정은 너무 강렬했기에 송건호에게 더 이상 그런 감정을 품고 싶지도 않았다.말을 마친 뒤 신유진은 차에 올라탔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갔다.송건호는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길가의 나무를 세게 내리쳤다.순식간에 손마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한참 뒤, 눈시울이 붉어진 송건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도 안 돼.”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무려 10년 동안 이어진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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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그날 밤, 신유진은 밤새 은서를 데리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집 밖에는 경호원들이 순찰하고 있었고 신유진이 원하지 않는 한 송건호는 그곳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다음 날 다시 찾아온 송건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텅 빈 정원뿐이었다.송건호는 자신이 또다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공포와 분노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송건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휴대폰을 꺼내 해외에 있는 세우 그룹의 모든 인맥과 자원을 총동원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유진을 찾아내려 했다.아직 두 사람에게서 용서받지 못했는데 이렇게 사라지게 놔둘 수 없었다.한편, 신씨 가문.신유진은 식탁 위에 수북이 놓인 사진들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은서 아직 어려요. 그리고 저 아직은 결혼할 생각 없어요.”신유진의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너 대신 다 알아봤어. 이 사람들은 기꺼이 은서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했어. 그리고 다 훌륭한 청년들이야. 이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신유진은 못 말린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신유진은 오늘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면 엄마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중 아무나 한 사람을 가리켰다.“이 사람으로 할게요.”신유진의 엄마는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그래. 얘도 괜찮지. 명문대를 졸업했고 전공도 예술 쪽이라서 너랑 말도 잘 통할 거야. 얼굴도 잘생겼고. 엄마가 당장 약속 잡아 줄게.”다음 날, 신유진은 카페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최지욱 씨?”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유진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저기, 저는 가족들이 하도 잔소리를 해서 나온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누구랑 만날 생각이 없어요.”최지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신사적으로 말했다.“그럼 오늘은 간단하게 식사만 하죠. 그래야 집에 가서 할 말이 있을 거 아니에요.”신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최지욱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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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 말을 마친 뒤 신유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최지욱과의 식사 자리는 꽤 즐거웠다. 식사를 마친 뒤 최지욱이 먼저 신유진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신유진은 거절하려 했지만 최지욱이 워낙 적극적으로 권하는 바람에 결국 받아들였다.그런데 집 앞에 도착하자 송건호의 모습이 보였다.신유진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송건호가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낯선 남자의 차에서 내리는 신유진을 본 순간, 송건호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신유진, 저 남자는 누구야?”최지욱 역시 송건호를 유심히 살폈다.신유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송건호,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야. 나는 앞으로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은서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송건호는 그 말을 듣더니 다급하게 신유진의 손을 붙잡았다.“아니, 난 끝내기 싫어! 이제야 깨달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였고, 내가 가장 놓치면 안 됐던 사람도 너야. 예전에는 내가 어리석었어. 너와 은서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됐어. 제발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신유진은 짜증이 치밀어 올라 최지욱을 가리키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나 지금 남자 친구 있어.”최지욱은 조금 놀랐지만 곧 상황을 파악하고 송건호에게 말했다.“들었죠? 유진 씨는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찾아오지 말아요. 이러는 거 정말 추하잖아요.”최지욱이 말을 끝맺자마자 화가 난 송건호가 주먹을 휘둘렀다.신유진은 깜짝 놀랐다. 송건호가 폭력을 쓸 줄은 몰랐던 신유진은 황급히 막아섰다.“미쳤어?”송건호는 최지욱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며 마치 분노한 짐승처럼 외쳤다.“신유진은 내 거야!”최지욱은 입가의 피를 닦으면서 웃음을 흘리더니 신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 씨가 왜 저 사람을 떠났는지 이제 알겠어요.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네요.”그 말에 송건호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 또다시 최지욱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현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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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이곳에 온 이후 신유진은 사람을 시켜 정하윤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그리고 그제야 정하윤이 해외에서 전과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살인 혐의로 체포된 적까지 있었다.정하윤이 용의자로 지목된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정하윤의 첫 번째 남편이었으며 여든이 넘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정하윤의 침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그 사건 이후 정하윤은 남편의 재산을 전부 상속받아 한동안 마음껏 돈을 쓰며 호의호식했다.그러나 돈을 물 쓰듯 쓰는 성격이었던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다시 다른 남자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정하윤은 남자를 일곱, 여덟 명이나 갈아치우면서 매번 그들에게서 돈을 뜯어냈다.그러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게 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귀국해 송건호를 찾아온 것이었다.그런데 마지막에는 송건호에게 쫓겨나 다시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그토록 돈을 물 쓰듯 쓰는 사람이 종업원의 월급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지욱은 정하윤의 다음 타깃이었을 것이다.이야기를 다 들은 최지욱이 말했다.“그렇다면 나는 운이 좋았네요. 유진 씨를 만나서 화를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신유진은 최지욱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최지욱을 현관까지 배웅했다.그런데 송건호가 여전히 밖에 서 있었다.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진정된 모습이었다. 송건호는 신유진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우리 이야기 좀 하자.”신유진은 송건호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사이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래?”신유진은 그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싶었고, 송건호와는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송건호가 눈시울을 붉히며 애절하게 빌었다.“그냥 앉아서 얘기 좀 나누자는 건데 그것조차 안 되는 거야?”신유진은 단호히 거절했다.끊어야 할 때 제대로 끊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당할지도 몰랐다. 신유진은 송건호가 단념하도록 해야만 했다.그렇지 않으면 송건호는 계속 자신과 은서를 따라다닐 것이다.신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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