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청담동 지하 라운지.출입구가 따로 있는 룸에서 윤서린이 태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썼지만, 며칠 사이 수척해진 얼굴은 가려지지 않았다.“이대로 있으면 둘 다 끝나요.”태혁은 보드카를 단숨에 비웠다.“서버 로그가 다 나왔어. 내가 경고문을 지운 것까지 이사회가 확인했다고.”“로그의 의미를 바꾸면 되죠.”서린이 태블릿을 밀었다.화면에는 한여진의 퇴사일과 미완성 포뮬러 파일 생성일, 이혼 소송 접수일이 시간순으로 정리돼 있었다.“한여진은 양산 직전에 나갔어요. 그 직후 이혼 소송을 걸고 회사 재산을 요구했고.”서린은 두 사건 사이에 붉은 선을 그었다.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 의심스러운 이야기처럼 보였다.“그래서?”“앙심을 품고 일부러 결함 처방을 남긴 뒤, 문제가 터질 걸 알고 도망쳤다고 주장하는 거예요.”태혁의 눈빛이 흔들렸다.“경고문은?”“자기 책임을 피하려고 형식적으로 남긴 거라고 하면 돼요. 진짜 위험했다면 공장 앞에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한다고 몰아가면 되고.”억지였다.여진은 결함을 숨기기는커녕 반복해서 경고했다. 태혁은 그 문서를 직접 읽었고, 서린은 수정된 승인서에 서명했다. 둘은 사실을 모르는 피해자가 아니라 사실을 지운 당사자였다.하지만 태혁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500억 원이 넘는 청구와 수사 가능성 앞에서 그는 진실보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언론이 믿겠어?”“믿게 만드는 게 홍보예요.”서린의 목소리에는 이상할 만큼 확신이 있었다. 기술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의심하게 할지는 잘 알았다.서린은 이미 준비한 보도자료 초안을 열었다.[ 전임 수석 조향사의 고의적 품질 훼손 가능성 ]한여진이 작성한 테스트 파일 제목과 퇴사일만 강조하고, 삭제된 경고문과 관리자 로그는 뺐다. 사실 일부를 잘라 거짓 결론에 붙인 문서였다.“친한 경제부 기자들이 있어요. ‘익명 내부 제보’로 먼저 띄우고, 회사가 수사 의뢰를 검토한다고 발표하면 됩니다.”
Última atualização : 2026-08-17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