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약혼자의 형과 결혼했습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20 Chapters

제11화: 알고도 말하지 않은 남자

서재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이현은 도겸을 바라봤다.“몇 달 전부터 알고 계셨다고요?”“예.”“현욱 씨가 다른 여자와 호텔을 드나드는 것도, 회사 돈을 그 여자에게 쓰는 것도?”“감사 과정에서 확인했습니다.”이현은 헛웃음을 삼켰다.“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 준비를 했어요. 양가 행사에 참석하고, 그 사람 대신 사과하고, 약혼녀 역할을 계속했고요.”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제가 3201호 문을 열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신 겁니까?”도겸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감사 자료가 완성되기 전에 현욱이 알면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있었습니다.”“불륜 사실까지 숨겨야 할 이유는 아니잖아요.”“맞습니다.”즉각적인 인정에 이현이 멈칫했다.도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건 내 판단이 잘못됐습니다.”“왜 그러셨어요?”“내가 말하면 당신이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제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였나요?”“아니요. 오히려 책임감이 지나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도겸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그리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보고 있는지 들킬까 두려웠습니다. 동생의 약혼녀에게 접근하려는 형으로 보이면, 사실을 말해도 내 욕심을 위한 모함이라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감사가 끝난 뒤 객관적인 자료와 함께 알리겠다고 미뤘습니다.”“그동안 제가 결혼해 버렸다면요?”“막았을 겁니다.”도겸의 대답은 낮고 단호했다.“어떤 방식으로든.”이현은 그 대답에서 모순을 느꼈다. 선택을 존중해 기다렸다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방식으로 막을 생각이었다.도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은 6년 동안 가문과 사업을 위해 참았습니다. 확실한 물증 없이 내가 동생의 불륜을 알렸다면, 당신은 내 의도를 의심했을 겁니다. 설령 믿더라도 합작 사업을 지키려고 덮었을 가능성이 컸고요.”“그래서 제가 직접 상처받기를 기다렸어요?”“그날 당신에게 익명 문자를 보낸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나도 호텔 보안팀 보고를 받고 3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2화: 처음부터 당신이었습니다

HJ호텔 최고층 스위트룸에서 지낸 지 사흘째였다.이현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내려다봤다.도겸은 찾아오지 않았다.첫날 밤, 메시지 한 통만 왔다.[도착한 건 확인했습니다.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식사는 거르지 마십시오.]그 뒤로는 조용했다.아침이면 이현이 좋아하는 수프와 과일이 룸서비스로 올라왔지만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의 배려는 언제나 한 발 물러난 자리에 있었다.이현은 낮 동안 평소처럼 업무를 했다. 회의를 주재하고, 리조트 투자 조건을 검토하고, 준법지원팀에서 올라온 추가 보고서를 읽었다.도겸과 떨어져 있어도 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붙잡고 있을 때만 머릿속이 조용해졌다.그런데 퇴근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펜트하우스의 불 켜진 거실과 식탁 맞은편의 빈 의자가 떠올랐다.그래서 더 마음이 복잡했다.도겸이 자신을 이용한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그가 보여준 모든 다정함까지 거짓이었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오후가 되자 호텔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차도겸 부회장이 저녁 여덟 시에 만나기를 원한다는 정중한 요청이었다.이현은 한참 망설인 끝에 1층 프라이빗 라운지에서 만나겠다고 답했다.***약속 시간보다 십 분 먼저 라운지로 내려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도겸이 아니었다.현욱이 소파에서 일어섰다.“이현아.”이현의 표정이 굳었다.“어떻게 들어왔어?”“여긴 예전에 우리도 자주 왔잖아. 잠깐 얘기만 하자.”“나갈게.”현욱이 앞을 막았다.“형 집에서 나온 거 맞지? 거봐. 결국 형도 널 이용한 거야.”“비켜.”“지금이라도 이혼해. 내가 아버지 설득해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이현은 믿기지 않아 그를 바라봤다.“원래대로?”“내가 잘못한 건 알아. 채원도 정리할게. 우리 결혼은 양가에 필요한 일이잖아.”“아직도 그 말을 하네.”“뭐?”“당신은 내가 왜 떠났는지 끝까지 이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3화: 첫 키스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시각은 자정을 조금 넘겼다.사흘 동안 비어 있던 집은 그대로였다. 이현이 소파에 두고 간 책도, 현관 옆에 벗어 둔 실내화도 손댄 흔적이 없었다.거실 한쪽에는 매일 새로 갈아놓은 듯한 꽃만 놓여 있었다. 이현은 떠나 있는 동안에도 도겸이 이 집의 시간을 멈춰 두었다는 기분이 들었다.도겸은 그녀의 코트를 받아 걸었다.“피곤할 텐데 쉬십시오.”“부회장님은요?”“서재에서 조금 더 일하겠습니다.”평소라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을 것이다.이현은 거실을 가로지르는 도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불렀다.“도겸 씨.”그가 돌아봤다.처음으로 직함 없이 이름을 부른 순간이었다.“잠깐 이야기해요.”도겸은 말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뒤 따뜻하게 데운 뱅쇼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두 사람은 통창 앞에 나란히 섰다. 서울의 야경이 유리 너머로 펼쳐졌지만 이현의 시선은 옆에 선 남자에게 머물렀다.“아까 처음부터 저였다고 했죠.”“예.”“그게 무슨 뜻이에요?”도겸은 잔을 내려놓았다.“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 결혼이 내게 오래된 선택이라는 뜻입니다.”“얼마나요?”“지금은 정확히 말하지 않겠습니다.”“또 숨기시게요?”“숨기는 게 아니라 순서를 지키려는 겁니다.”도겸이 이현을 정면으로 바라봤다.“당신이 내게 화가 난 이유를 압니다. 이 자리에서 감정을 고백해 용서를 받아내려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그럼 왜 말하려는 거예요?”“당신이 내 행동을 후계 싸움으로만 오해하는 건 바로잡고 싶어서입니다. 용서는 그 뒤에도 당신이 결정할 일이고요.”이현은 말없이 기다렸다.“다만 이것만은 믿어주십시오.”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현욱을 무너뜨리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선택도 아니었습니다.”“그럼요?”“내 삶에서 처음으로 욕심낸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도겸답지 않게 직선적인 말이었다.이현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그런 사람이 상처받는 걸 보고만 있었네요.”“평생 후회할 겁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4화: 진짜 부부

아침 햇살이 마스터룸의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이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허리 위에는 도겸의 팔이 놓여 있었고, 등 뒤로 그의 체온이 닿았다. 지난밤의 기억이 차례로 돌아오자 뺨이 뜨거워졌다.이현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자 도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어디 갑니까.”잠이 덜 깬 낮은 목소리였다.“출근 준비요.”“아직 일곱 시도 안 됐습니다.”“아홉 시 회의가 있어요.”도겸은 눈을 뜨고 침대 옆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이현의 허리를 다시 끌어당겼다.“십 분만 더.”“차도겸 부회장님이 지각을 권하시네요.”“남편으로서 권하는 겁니다.”이현이 웃자 그가 목덜미에 짧게 입을 맞췄다.침대 밖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한 남자가, 둘만 남으면 놀라울 만큼 다정했다.그 변화가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이현은 돌아누워 도겸과 마주 봤다.“어제 일로 계약 조건이 달라진 건 아니에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그렇게 만족한 얼굴이에요?”“당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달라졌으니까.”“어젯밤까지 없었던 사람처럼 말하네요.”“사흘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도겸은 이현의 손가락을 끼워 잡고 한동안 놓지 않았다.이현은 처음으로 이 남자를 복수의 동맹이 아닌 자신의 남편으로 생각했다.아침 식탁에는 두 사람 몫의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도겸은 회의 자료를 보면서도 이현의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밀어줬다.“오늘은 커피 안 돼요?”“어제 거의 못 잤잖습니까.”“누구 때문인데요?”도겸이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이현은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이런 평범한 농담이 가능한 관계가 된 것이 오히려 더 낯설고 설렜다.***오후, 태성 본사에서 HJ와의 합작 프로젝트 실무회의가 열렸다.이현은 전날 발견한 의심 거래를 제외한 사업 안건을 정리해 회의를 이끌었다. 도겸은 회의 내내 그녀의 판단을 존중했고, 의견이 다를 때도 근거부터 물었다.회의가 끝난 뒤 실무진이 회의실을 나가며 이현에게 따로 인사를 건넸다.“서 팀장님, 오늘 의사결정이 빨라서 일정이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5화: 맞바람

화요일 오전 아홉 시, 주요 포털과 경제지 메인에 같은 기사가 걸렸다.[단독] 차도겸 부회장·서이현, 동생 약혼 기간부터 부적절한 관계였나기사에는 6년 전 HJ호텔 사업 설명회에서 도겸과 이현이 대화하는 사진, 결혼 발표 전 태성호텔 32층에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나란히 실렸다.서로 다른 시기의 사진을 교묘하게 이어 붙인 뒤,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비밀 관계였다는 익명의 증언을 덧붙였다.사진 설명에는 날짜가 빠져 있었다. 태성호텔 복도 사진도 이현이 불륜 현장을 목격한 뒤 도겸과 함께 내려가는 장면이었지만, 기사에서는 ‘밀회를 마친 뒤’라고 왜곡했다.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허술한 조작이었다. 그러나 제목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자극적이었다.현욱 측 홍보대행사는 그가 형과 약혼녀에게 동시에 배신당한 피해자라는 자료를 언론에 뿌렸다.민채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이현이 먼저 차도겸에게 접근했다’는 글을 여러 계정으로 퍼뜨렸다.사실보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빠르게 번졌다.태성홀딩스와 HJ호텔 주가는 장중 한때 5퍼센트 가까이 떨어졌고, 합작 리조트 금융주관사는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심사를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양가의 반응도 거셌다.차중만은 도겸에게 해외 출장을 핑계로 한동안 모습을 감추라고 요구했다. 한명숙은 언론 앞에서 현욱을 감싸야 한다고 주장했다.HJ 원로들은 이현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진실이 어떻든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단 별거 발표라도 해.”“합작 사업 하나 때문에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아버지는 직접 이혼을 말하지 않았지만, 침묵 끝에 물었다.“도겸 부회장과의 결혼을 계속할 생각이냐?”“아버지도 기사 내용을 믿으세요?”“믿는 것과 시장이 반응하는 건 별개다.”이현은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경영자는 숫자를 봐야 했다. 하지만 딸에게조차 먼저 숫자를 내미는 태도는 쓰렸다.이현은 잠시 숨을 골랐다.“계속할 거예요.”전화를 끊은 뒤 손이 떨렸다.6년 동안 가문의 체면을 위해 참았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6화: 내 복수의 끝

“어떻게 끝낼 생각입니까?”도겸의 물음에 이현은 노트북을 열었다.“현욱 씨는 사생활 논란으로 판을 좁히고 싶어 해요. 누가 먼저 바람을 피웠는지만 다투면 결국 진흙탕이 되니까요.”그녀는 화면에 자료 목록을 띄웠다.“그러니 사생활과 범죄를 분리해서 밝힐 겁니다. 파혼 책임은 객관적인 자료로 정리하고, 회사 자금 문제는 감사 결과로 제시해요.”첫 번째 폴더에는 태성호텔 3201호 사건 자료가 들어 있었다.이현의 휴대폰 원본 녹음 파일과 생성 시각, 현욱과 채원의 객실 출입 기록, 이현이 두 사람보다 늦게 32층에 도착한 복도 CCTV였다.두 사람이 과거에도 같은 객실을 반복해서 이용한 예약·결제 기록도 함께 확보했다.이현은 음성 파일 전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사생활과 무관한 부분만 법무팀이 선별하고, 원본은 공증을 거쳐 수사기관에 제출할 예정이었다.두 번째 폴더에는 자금 자료가 담겼다.엠씨아트어드바이저리로 지급된 용역비, 현욱의 전자결재 기록, 민채원 측과 연결된 법인 등기, 법인카드 사용 내역, HJ 합작 법인에 같은 업체를 끼우려 한 계약 초안.도겸의 지시로 확대된 태성 감사팀 조사에서, 채원의 한남동 빌라 보증금 일부가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거쳐 지급된 사실도 확인됐다.태성 감사팀은 현욱이 결재 한도를 피하려고 계약을 여러 건으로 쪼갠 사실도 확인했다. 이메일에는 ‘이사회 보고선 아래로 맞추라’는 지시가 남아 있었다.세 번째 폴더에는 이번 허위 기사와 현욱 측 홍보대행사의 계약서가 있었다.현욱 측 자문 법인과 홍보대행사 사이에는 기사 보도 사흘 전 체결된 ‘위기관리 및 평판 대응’ 용역 계약이 남아 있었다. 익명 제보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계획된 공격이었다는 정황이었다.“이 정도면 반박하기 어렵겠군요.”도겸이 말했다.“감정적인 표현은 최대한 뺄 거예요. 확인된 사실만 말할 겁니다.”“좋습니다.”도겸은 자료를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발표자 이름은 당신으로 하겠습니다. 태성 감사팀 자료는 공식 확인서를 붙이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7화: 후계자 자격 박탈

프레스센터 화면에 태성호텔 32층 복도 CCTV가 재생됐다.현욱과 채원이 먼저 객실에 들어가는 모습, 한 시간 뒤 이현이 혼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장면이 시간 표시와 함께 이어졌다.“제가 차도겸 부회장과 함께 객실을 이용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이현이 리모컨을 눌렀다.다음 화면에는 휴대폰 녹음 파일의 공증 확인서와 일부 녹취가 떴다. 현욱이 정략결혼이니 이현은 파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었다.기자석이 술렁였다.“사생활 전체를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파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수사기관과 법원에 제출할 예정입니다.”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차도겸 부회장과의 결혼이 복수 목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십니까?”이현은 피하지 않았다.“당시 제 선택에 복수심이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하지만 감정과 사실은 별개입니다. 제가 누구와 결혼했는지는 차현욱 씨가 회사 자금을 유용했는지 여부를 바꾸지 않습니다.”화면이 바뀌었다.엠씨아트어드바이저리로 흘러간 용역비와 결재 기록, 차명 업체의 관계도, 현욱이 결재 한도를 피하라고 지시한 이메일이 차례로 제시됐다.“태성 감사팀은 현재까지 52억 원 상당의 부당 지출을 확인했습니다. 이 중 일부는 민채원 씨의 주거 보증금과 개인 물품 구입에 사용된 정황이 있습니다.”이번에는 질문이 이어졌다.“차현욱 상무가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합작 법인 자금도 유용됐습니까?”“민채원 씨의 입장은 확인했습니까?”이현은 확인된 내용만 답했다.“합작 법인의 실제 손실은 막았습니다. 제가 실사 과정에서 계약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다른 기자가 물었다.“차도겸 부회장이 감사 자료를 이용해 동생을 제거하려 했다는 의혹에는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감사는 제 결혼 전부터 진행됐습니다. 외부 회계법인의 착수일과 조사 기록을 함께 배포했습니다. 판단은 자료를 확인한 뒤 내려주십시오.”이현은 도겸을 대신 변호하지 않고 사실만 제시했다.온라인 생중계에서도 ‘맞바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8화: 형수님, 마지막 부탁

이사회가 끝난 지 사흘 만에 현욱의 일상은 무너졌다.태성은 그를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했다. 검찰 수사팀은 태성유통과 문화재단을 압수수색했고, 현욱에게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차중만도 더는 아들을 감싸지 않았다.허위 기사들은 정정 보도로 바뀌었고, 금융주관사는 중단했던 합작 리조트 심사를 재개했다. HJ 이사회도 이현이 손실을 사전에 막은 공로를 공식 회의록에 남겼다.며칠 전까지 별거를 권하던 원로들은 태도를 바꿔 이현의 결단을 칭찬했다. 그녀는 그 말에 기뻐하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필요할 때 자신을 지켜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한명숙은 이현에게 전화를 걸어 고발만은 취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현은 짧게 답했다.“회사가 입은 손해와 범죄 수사는 제가 흥정할 일이 아닙니다.”***목요일 저녁, 한남동 펜트하우스 지하 주차장.차에서 내린 이현의 앞에 현욱이 나타났다. 한때 가족 차량으로 등록됐던 차를 이용해 지하까지 들어온 모양이었다.며칠 전까지 맞춤 수트와 수행원을 거느리던 남자는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초췌했다. 셔츠는 구겨졌고 눈 밑은 검게 꺼져 있었다.경호원이 즉시 앞을 막았지만 이현은 멀찍이 선 채 말했다.“할 말 있으면 거기서 해.”현욱은 비틀거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고발 취하해 줘.”“싫어.”“형한테 말 한마디만 하면 되잖아. 네 말은 듣잖아.”“그래서 더 안 해.”“이현아, 우리 6년이 있잖아.”“그 6년 동안 내가 좋아한 음식 하나는 알아?”현욱이 입을 다물었다.“내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 집안 행사 뒤에 혼자 울었던 날이 몇 번인지 알아?”“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그러니까 끝난 거야.”이현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그 6년을 먼저 버린 건 당신이야.”“내가 미쳤었어. 채원한테 속은 거야.”“민채원은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었고, 회사 돈을 보낸 것도 당신이야.”현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너도 복수하려고 형이랑 결혼했잖아. 나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19화: 이혼해 드리겠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도겸은 재킷을 벗으며 서재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혼전계약서와 이혼 합의서를 발견한 순간 그의 걸음이 멈췄다.“이게 뭡니까.”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 있었다.이현은 맞은편에 섰다.“계약서 마지막 조항을 정리하려고요.”도겸이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었다.“정말 떠나고 싶습니까?”“아니요.”즉시 나온 대답에 그의 눈이 흔들렸다.“그런데 왜 이걸 준비했죠?”“복수도 끝났고, 양가 문제도 거의 정리됐어요. 이제 계약 때문에 부부로 남을 이유는 없잖아요.”“이유가 계약뿐이라고 생각합니까?”“그래서 묻고 싶은 거예요.”이현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현욱 씨를 무너뜨릴 필요가 없어진 뒤에도 저와 결혼하고 싶은지.”도겸은 서류를 내려놓았다.“그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았군요.”“도겸 씨가 저를 원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마음이 언제부터였는지, 왜 저였는지 제대로 들은 적은 없어요.”“말하면 부담이 될까 두려웠습니다.”“이번에는 제가 듣고 판단할게요.”그가 천천히 이현에게 다가왔다.“6년 전, HJ호텔 신규 사업 설명회에서 당신을 처음 봤습니다.”이현은 말없이 들었다.“당시 당신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원이었고, 임원들이 반대하는 기획안의 실무 발표를 끝까지 맡았습니다. 숫자 하나 틀리지 않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도 않았죠.”“회의가 끝난 뒤 상사가 당신에게 실패 책임부터 묻더군요. 당신은 변명하지 않고 수정 일정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팀원들의 실수는 자기 책임이라고 했고요.”이현의 기억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일이었다. 신입에 가까운 자신이 밤을 새워 만든 지역 호텔 재생안이었다.“그때부터 지켜봤어요?”“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잘되지 않았지만.”도겸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그날부터 기억했습니다.”“그게 사랑이었어요?”“처음에는 관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이후 양가 혼담이 오갔을 때 HJ에서 처음 검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제20화: 약혼자의 형과 결혼했습니다(完)

이현은 이혼 합의서를 양손으로 잡았다.도겸의 시선이 종이를 따라 움직였다.그는 붙잡지 않았다.이현은 서류를 반으로 접어 천천히 찢었다.종이가 갈라지는 소리가 조용한 서재에 울렸다.도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떠날 생각 없어요.”이현은 찢은 조각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다만 계약을 다시 쓰고 싶었어요.”그녀는 옆에 놓아둔 새 문서를 도겸에게 건넸다.종이에는 조항이 세 개뿐이었다.[서로에게 중요한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상대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혼인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도겸은 마지막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기한 없음.”“마음에 안 들어요?”“아닙니다.”늘 입꼬리만 희미하게 움직이던 남자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내가 원한 조건입니다.”“추가할 건 없어요?”도겸이 잠시 생각했다.“한 가지.”그는 빈칸에 직접 문장을 적었다.[다툰 날에도 같은 집에서 잔다.]이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이건 누구에게 유리한 조항이죠?”“우리 둘 다에게.”“각방은 가능해요?”“문은 열어두십시오.”이현이 결국 웃었다.“검토해 볼게요.”이현이 펜을 내밀었다.“그럼 서명하세요, 남편.”도겸은 망설이지 않고 이름을 적었다.이현도 그 옆에 서명했다.공증도 법무팀도 없는, 두 사람만의 약속이었다.도겸이 문서를 내려놓고 이현의 뺨을 감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습니까?”“한 번은 후회했어요.”그의 표정이 굳자 이현이 웃었다.“왜 진작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고.”도겸은 더 묻지 않았다.그는 이현을 끌어안고 천천히 입을 맞췄다. 서두르지 않는 키스였지만, 안도와 기쁨이 숨길 수 없이 전해졌다.이현은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사랑해요.”도겸의 움직임이 멈췄다.“다시 말해주십시오.”“사랑한다고요.”“한 번만 더.”“차도겸 씨.”이현이 웃으며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사랑해요, 여보.”그날 밤 두 사람은 계약결혼을 끝냈다.이혼해서가 아니라, 계약 없이도 함께 있기로 선택했기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Read more
PREV
1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