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가지 마, 내 허락 없이: Bab 11 - Bab 20

164 Bab

11화.

11화.“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그리고 이거 놔!”은별이 그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려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반항처럼 보였나 보다. 더 센 힘이 그녀의 살결을 눌렀다.“고은별! 나 말고 딴 새끼랑 살림 차렸냐고!”그의 손에 들려 있던 물건들이 주방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은별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기태의 흔적이었다.몇 분 전.욕실에 들어선 재훈은 콧노래를 불렀다.사실, 은별의 집에 무작정 쳐들어왔을 때 그녀가 자신을 받아줄까 반신반의했었다.차선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동거는 안 된다고 하면, 현관에 드러누울 작정이었다.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은별은 포기가 빨랐다.보수적인 줄 알았더니 이런 건 아닌가 보다. 아니면, 자신을 무진장 좋아하는 건가?후자일 거라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칫솔을 찾기 위해 선반을 열었다. 그런데 칫솔보다 재훈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있었다.바로 남성용 면도크림과 에프터 쉐이브.이게 뭐지? 아까 마트에서 은별이 나를 위해 산 건가?그런 깜찍한 생각은 허무맹랑한 착각에 불과했다.면도크림과 에프터 쉐이브는 이미 개봉이 된 채 절반은 쓴 상태였다.하지만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은별이 쓰는 칫솔과 똑같은 색깔의 칫솔이 선반 위에 곱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름까지 써진 채.‘기태.’네임펜으로 칫솔 손잡이에 꾹꾹 눌러 써진 이름이었다.재훈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칫솔을 집어 들 때, 그의 손에 비닐의 느낌이 스쳤다. 그가 번득이는 눈으로 그것을 확인했다.젠장, 콘돔이었다.‘기태’라는 남자가 썼을 물건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쾅!재훈이 욕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제발… 고은별은 내 엄마 같은 사람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랐다.‘딴 새끼랑 살림 차렸냐고!’설마, 내 입에서 아버지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 뱉어질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재훈의 손에 내동댕이쳐진 물건들….면도크림과 에프터 쉐이브, 칫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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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화.은별이 욕실로 들어갔을 때, 재훈은 이미 안경을 벗고 상의를 탈의한 채였다.어처구니없는 그의 행동에 기가 막혀 은별이 헛웃음을 뱉어냈다.더 이상의 신경전은 하고 싶지 않아 그의 말에 순응했더니, 정재훈. 이 어린 남자가 날 아주 우습게 봤다.“너, 지금 뭐하니?”“보면 모르겠어? 나 당신, 여기서 안을 거야.”“하아….”은별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래, 백번 양보해서 여기서 그에게 안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처음도 아니었다. 재훈은 장소 불문,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었으니까.하지만 이런 기분으로, 이런 이유로, 그에게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적어도 은별은 그 행위가 사랑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단지, 기태의 흔적을 보고 화가 난 재훈의 화풀이일 뿐이다. 그 화풀이에 장단 맞춰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홀리듯 넘어가고, 바보처럼 넋을 잃었더니, 머리 위로 야금야금 기어오르는 어린 남자였다.“정재훈, 너 내 집에서 나가.”“뭐라는 거야?”“나가라고. 못 알아들어?”“하! 고은별 씨,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나, 당신한테 무진장 화난 거 안 보이냐고!”“그래서?”“뭐?”“그래서 네가 원하는 데로 여기서 몸을 썩어야 하는 거니?”“뭐? 몸을 썩어?”“그래. 나한테는 여기서 너랑 하는 섹스, 그 정도 의미밖에 안 돼.”“당신 진짜!”“여기서 그러길 원한다면 해줄게. 단, 마지막이란 것만 알아둬.”좀 전까지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재훈의 얼굴이 마지막이라는 말에 삽시간에 새파랗게 굳어져 갔다.하지만 그의 성난 눈빛만큼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은별이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는 그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재훈아,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거야? 너 이렇게 막무가내일 때마다, 사실 나 지쳐.”“은별아, 난….”“그래. 알아. 사랑이겠지. 날 사랑해서 그렇겠지. 하지만, 재훈아. 나한테는 이거 사랑 아니야. 그냥, 투정이야. 어린아이 투정 같다고.”재훈은 어린아이 투정이라고 단정 짓는 그녀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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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화.그가 어린 왕자 책을 손에 든 채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Voulez vous prendre un café? (커피 한잔하실래요?)”은별은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기태와 첫 만남도 이곳이었다.국내 최정상급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유럽 지사 파견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불어를 공부했었다.이미 수준급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가 가길 원했던 곳은 불어의 본고장, 프랑스.꿈과 이상이 높은 사람에게 삼 개 국어 이상의 언어는 꼭 필요한 관문과 같았다.그때도 지금처럼 이 서점에서 ‘어린 왕자’ 책을 빼다가 은별을 만났었다.그때는 은별이 기태보다 빨랐다.은별이 어린 왕자 책을 손에 든 채 기태를 향해 말했었다.‘이 책, 필요하세요?’‘….’새하얀 피부에 흑진주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은별의 눈동자에 마취된 듯 기태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내가 이 책이 필요했던가?기태는 할 말을 잃은 채 은별을 빤히 응시했다.‘저기요. 이 책, 제가 가져가도 되죠?’‘아… 아, 네, 네.’바보 같은 대답이 기태의 입에서 나왔다.‘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비켜주실래요?’여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어야 하는데, 그는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도통 남자가 비켜줄 생각이 없자 은별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쳐다봤다.조금 전까지 어벙벙하게 대답하던 사람이 저를 보고 엷게 미소 짓고 있었다.젠틀한 인상이 아니었다면,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았으리라.은별이 기태에게 물었다.‘혹시, 저한테 무슨 용건 있으세요?’‘저기, 생각해보니 저한테 필요한 책이네요.’‘네?’‘괜찮으시면, 제가 그 책 가져가도 될까요?’‘아니, 아까는 필요 없다고….’‘아닙니다. 필요합니다.’처음과는 너무 다른 남자의 단호한 대답에 은별은 황당했다.사실 이 책을 먼저 집은 사람은 자신이기에 굳이 이 남자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순전히 예의상 물어본 말이었는데 이렇게 덥석 낚아챌 줄이야.‘아, 저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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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14화.택시가 멈춰 섰다.은별이 사는 오피스텔 근처 마트 앞이었다.한참이 지나도록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그러면 손님, 전 요 앞에 마트에서 시원한 거 한잔 마시고 오겠습니다.”“그러세요.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기태가 택시 기사를 향해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이미 택시 기사에게 양해를 구한 터였다.일행이 잠을 자고 있으니, 깨어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은별의 얼굴이 기태의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었다.대낮부터 술을 먹었다.오히려 시차로 피곤해했던 사람은 기태였다. 택시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스르륵, 은별의 머리가 기태의 다리에 닿았다.서점에서 오피스텔까지는 차로 이십여 분 거리였다.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오랜만에 제 다리에 누워 새근새근 자는 은별을 보는 것도 기태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기태가 손을 들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었다.작년 가을, 은별은 긴 생머리였는데.여름이라서일까. 그녀의 머리가 짧은 단발로 변해있었다. 은별은 자신과 사귈 때는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한 적이 없었다.하긴, 자신이 긴 생머리를 좋아해 은별이 머리를 일부러 길렀다는 사실을 안다.기태는 어색해진 그녀의 짧은 단발머리를 쓸어 넘겼다.변해버린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으으음….”은별이 잠에서 깨어나려는지 기태의 허벅지 위로 얼굴을 비비며 신음과 같은 소리를 냈다.하아… 은별아, 내가 너와 왜 헤어졌을까.난 참, 바보같은 놈이다.널, 어떻게든 설득해서 같이 프랑스에 가는 거였는데.이제 와서 너를 붙잡으면, 넌 내게 올까?기태가 제 허벅지 위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에 긴 한숨을 뱉어내었다.그때 은별이 기태의 다리에 얼굴을 더 깊이 묻은 채,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웅얼거렸다.“무을.”“응? 은별아, 뭐라고?”“으음… 물.”잠에서 깬 줄 알았는데 그녀는 아직 꿈속인가 보다.“은별아, 일어나봐.”기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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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화.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택시 안에 옅은 습기가 들어찼다. 아니면, 냉기였을까.은별은 생수로 마른 목을 축였다. 기태는 그 모습을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았다.생수병을 닫으며 은별이 입을 열었다.“기태 씨, 데려다줘서 고마워. 나 이제 가볼게.”“집 앞까지 데려다줄게.”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기태가 그답지 않게 질척대고 있었다.“괜찮아. 여기서 집까지 가까워.”은별이 거절했지만, 기태는 표정을 숨기며 다시 한번 질척댔다.“비 오잖아. 집 앞까지만 갈게.”은별은 기태의 호의를 두 번 거절할 수는 없었다.“알았어. 그리고… 기태 씨, 미안해.”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은별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당황해했다.뭐가 미안하지? 내가 기태 씨한테?“뭐가?”기태도 그녀와 생각이 같았나 보다. 자연스러운 반문이었다.뭐가 미안해? 은별아, 뭐가 미안하니?너와 헤어짐을 결정한 것은 나였는데,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미안한 거니?아니면, 그 사랑이 너무 어려서?그러게….내가 아는 고은별은 그런 취향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내가 너에게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은별아, 나 왜 이렇게 서운하지?새파랗게 어린 남자가 너의 붉은 입술에 키스하고, 너의 새하얀 살결에….하아….“은별아. 행복, 하니?”맥락 없는 말이, 속으로 삼키려 했던 말이, 기어이 뱉어져 버렸다.은별은 기태의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그에게 뭐가 미안한지, 그리고 행복한지, 대답할 수 없었다.그러게… 고은별. 너, 행복하니?그녀도 알지 못했으니까.***재훈은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마트를 나왔다.갑자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들린 마트였다.우산을 사면서도 은별을 걱정했다.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 그녀는 이 빗속에 어디에 있는 것일까.아직도 서점에 있나? 아니면 집에 있나?은별이 집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다시금 재훈의 기분이 좋아졌다.초록색 우산을 활짝 폈다. 싱그러운 초록 잎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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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16화.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설명하지?언제 기태의 향수 냄새가 나에게 배인 것일까.아, 택시! 그의 다리 위에서 잠을 잤었지.‘기태를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같이 왔다.’이 길지 않은 문장이 차마 그녀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어떻게 달랠까. 이 어린 남자를….“서점에 갔다가, 오랜만에 회사에 들렀어. 홍보팀 사람들과 점심 먹었고, 간단하게 술 한잔한 거야.”은별의 설명에도 의심을 거두지 않은 남자의 눈동자가 그녀를 꿰뚫듯 바라봤다.어디 계속해 봐, 그런 표정으로.“향수 냄새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홍보팀 남자 직원하고 우산을 같이 썼는데… 아마도 그때 배인 것 같아.”피식.분명한 조소였다.은별은 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재훈을 향해 미간을 구겼다. 이내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사실이야.”“진짜, 사실이야?”“그래, 진짜야.”벽과 제 사이에 은별이를 가두고 무섭게 내려다보던 재훈의 눈이 그제야 조금 느슨해져 갔다.거인처럼 은별을 누르던 그림자가 점점 사라져갔다.“뭐, 기자님이 사실이라니까 사실이겠지.”그 말이 뭐라고, 은별은 깊은 안도의 숨을 속으로 내쉬었다.“다시 원점으로.”“뭐?”은별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웬만해선 쉬이 넘어가는 법이 없는 남자다.재훈의 끈질김에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었다.“핸드폰 내놔.”“너 진짜.”재훈이 손바닥을 펼쳐 그녀 눈앞에 두었다. 재촉하듯 손을 까닥거렸다.은별은 어서 빨리 현관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그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그제야 재훈의 입가가 올라갔다.핸드폰 잠금 패턴을 익히 알고 있기에 쉽게 핸드폰 패턴을 풀었다.잠시 뒤, 그의 입가가 다시금 만족스럽게 올라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별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난… 왜, 이 남자한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말로는 지친다, 어리다, 피곤하다 하면서.정작 이 남자가 이 집을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내가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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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17화.일주일만인가.은별이 저도 모를 반가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은별 씨, 기태 한국 들어왔다는 소식 듣고 제가 잠깐 불렀습니다. 괜찮으시죠?”팀장은 이미 두 사람이 한 차례 만난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물어오는 말이 자연스러웠다.은별은 특별한 말 없이 팀장을 향해 짧게 웃어 보였다. 그녀 또한 기태를 다시 만날 거라 생각지 못했기에 그저 반가웠다.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기태를 그렇게 보내고 그녀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지만, 광기 가득했던 재훈을 떠올리며 애써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었다.세 사람이 근처 일식당으로 향했다.기태와 오랜만에 만난 팀장도 할 말이 많은지 은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대화를 이끌어갔다.굳이 그렇게 앉으려고 앉은 것은 아니지만, 기태와 은별이 나란히 앉아 곱게 차려진 일식을 먹었다.은별의 식성을 잘 아는 기태가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제 앞으로 놓인 음식들을 보며 은별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서로를 잘 안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기태 넌, 일찍 좀 연락하지. 며칠 뒤에 떠난다고?”“네. 선배 인사이동 때문에 바쁠 거라 생각했어요.”“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홍보팀에 있으면서 은별 씨랑 일해서 좋았는데. 미안해요, 은별 씨. ”팀장이 기태에게 있던 시선을 은별에게 돌리며 겸연쩍은 듯 말했다.은별은 저를 보며 미안해하는 팀장에게 그런 말씀 마라며 손사래를 쳤다.따박따박 잘 나온 원고료가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보수적인 기자님’ 소리는 이제 못 듣겠구나 싶었다.“그런데 갑자기 일 그만두는 건데, 제가 다른 회사 홍보팀에 연결해 드릴까요?”“아, 아니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번역일도 맡고 있고, 간간이 통역도 들어오거든요.”“하긴, 은별 씨 실력에 사보에 묶여 있기엔 아깝죠.”두 사람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기태가 은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만약 은별이 자신과 프랑스로 함께 갔다면, 그곳에서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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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18화.그 모습에 은별은 객실까지 따라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아마도 호텔 로비에서 이런 것을 받았다면 온전히 감동하지 못했으리라. 무엇보다 기태에게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도 못 했겠지.기태가 두 번째로 주는 선물을 받아든 은별이 포장지를 뜯자 그 안에 초콜릿 상자가 있었다.“초콜릿?”“응. 한국 들어오기 전에 벨기에를 갔었거든. 그곳 초콜릿 중 가장 유명한 초콜릿이야. 왕실 인증까지 받은.”은별은 이 순간, 기태가 선물한 고급스러운 초콜릿을 보며 재훈을 떠올렸다. 재훈은 은별의 집에 초콜릿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다 놓는 남자였다.원래 그녀는 단것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는 자주 곁들여 먹었다.어느새 정재훈식 길들이기에 어느새 길들어졌는지, 초콜릿은 요즘 그녀가 자주 먹는 간식이 되었다.“그렇게 쳐다만 보고 있지 말고, 어서 꺼내서 먹어봐.”“어? 어. 고, 고마워. 기태 씨.”은별이 재훈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상자 안에 든 초콜릿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두툼한 초콜릿이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급스러운 초콜릿 맛이었다.“너무 맛있다. 기태 씨도 먹어.”그녀가 상자를 기태에게 건넸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을 뻗어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은별아, 너와 내가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초콜릿을 나눠 먹게 될 줄 알았을까.싸구려 초콜릿을 비닐봉지 가득 담던 어린 남자에게 혹시나 네가 길들어지진 않았을까, 난 걱정했는지도 모른다.기태는 자신이 선물한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은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래도 아직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고은별이었다.초콜릿을 몇 개 더 나눠 먹는 동안 은별은 기태의 프랑스 생활에 관해 물었다.기태도 은별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아마도 지금이 그때일 거라 생각했다.자신이 원하는 건, 그저 고은별의 행복이니까.은별이 초콜릿 상자 뚜껑을 닫았다. 이젠, 진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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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19화.기태는 은별과 헤어지고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고자 외출하기 위해 객실을 나서는 길이었다.엘리베이터 경고음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잡고 있고, 그곳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한 은별이 있었다.기태는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엘리베이터를 가로막고 있는 남자가 얼굴을 뒤로 돌리는 순간,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았다.“…!”은별이,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은별의 입에서 나오는 ‘기태’라는 단어에 재훈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던 손을 미련 없이 놓았다.그가 기태를 향해 몸을 완전히 돌렸다.하, 고은별. 설마, 설마 했다.오늘 은별이 홍보팀과 마지막 점심을 먹을 거라는 것을 재훈은 이미 알고 있었다.혹시나 그녀가 일을 그만두는 것에 서운해할까 봐, 출근 전 그녀를 부둥켜안고 ‘고은별 기자님’ 소리만 백번은 해 주고 왔다.장난 그만하라며 자신을 밀어내는 그녀를 더 꼬옥 안아 주었다.앞으로는 자신이 먹여 살릴 테니, 걱정 말라고. 이래 봬도 건물주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었다.제 애교에 살풋 웃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 예뻐, 한참 동안 빨간 입술에 키스하며 숨결을 나눴었다.그랬는데…. 온갖 아양 다 떨어가며 위로해 주었건만, 보란 듯이 날 배신한 고은별이다.그것도, 범인이 기태란다. 기태.네임펜으로 꾸욱, 꾹, 눌러 적혀 있던 칫솔의 주인.면도크림과 에프터 쉐이브의 주인.그리고… 씨발! 빌어먹을, 콘돔의 주인이었다.어라? 그런데, 이 새끼 낯이 익었다.하! 일주일 전, 마트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우산 아저씨였다.그럼, 그날도 이 새끼랑!뭐야, 고은별. 그날 현관에서 날 때린 것도 이 새끼 때문이었어?재훈이 7층으로 은별을 데리고 간 이유는, 7층에 객실을 잡아서였다.같이 온 직원을 먼저 보내고, 두 시간을 호텔 로비에서 초조한 마음 반, 화를 억누르는 마음 반으로 은별을 기다렸다.두 시간.너무 긴 시간이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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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20화.은별은 지금 이 상황이 그저 지치고 피곤했다.이런 상태로 계속 재훈을 만나다가는 자신이 미쳐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물론 재훈을 향해 정리할 감정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 말을 뱉어낼 때, 제 심장이 욱신거리며 아팠으니까.기태를 보내는 마음과는 다른 통증이었다. 하지만 은별은 제 감정을 애써 외면했다.두어 달 같이 산 것도 정이라고 매몰차게 끊기가 어려운가 보다. 은별은 그렇게 생각했다.어쩌면 그녀는 재훈이 주던 구속감을 은근히 즐겼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군가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하고 집중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처음엔 그것이 정재훈식 사랑이겠지 생각했었다.그런데 집에서 기태의 물건이 발견된 그 날 이후, 자신을 향한 재훈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특별할 것 없이 평온했던 그녀의 삶에, 정재훈은 제 일상을 흩트려 놓는 덫이자 늪이었다.그녀의 몸과 생각을 지배하고 옭아매는, 심지어 벗어나지도 못하게 하는 독재자와 같았다.독재자인 그에게, 정재훈에게 길들어지기 전에 벗어나야 했다. 그것이 은별이 내린 결론이었다.은별이 몸을 숙여 쏟아진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소지품을 넣고, 책을 넣고, 사방에 흩어진 초콜릿……. 하아, 그걸 주워 담으려 하는데.탁!손목을 옥죄는 강력한 악력에 그녀는 행동을 멈췄다.“버려.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걸 왜 주우려는 거야.”“신경 쓰지 마.”은별이 재훈에게 잡힌 손목을 힘주어 빼내며 떨어진 초콜릿을 다시 주우려 했다.탁!다시금 그녀의 손목이 잡혔다.“버리라고! 내가 더 좋은 거 사줄 테니까 버려! 줍지 마!”재훈이 눈을 부릅뜨며 은별의 행동을 막았다.고은별 취향이 언제 이렇게 고급이었나? 처음 카페에서 제가 준 초콜릿은 잘 먹지도 않던 여자였다.함께 사는 동안, 집을 비우고 오랜만에 돌아오면 그녀는 자신이 사다 놓은 초콜릿을 야금야금 잘도 챙겨 먹고 있었다.이제야 자기에게 길들어진 그녀의 입맛에 내심 기뻤었다.그런데 고은별이,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초콜릿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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