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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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보육원에서 소위 자신의 아들이라는 아이를 보았을 때, 심유진은 잠시 멍해졌다.한참 동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심유진은 그제야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강희연이 이혼한 뒤로, 박진성은 줄곧 딸을 데리고 강희연과 만나 왔다.그리고 오랜 시간 강희연의 부추김과 이간질을 받아온 박수정은 점점 심유진을 혐오하게 됐다.성격도 날이 갈수록 제멋대로 변했다.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어린아이답지 않게 서슴지 않고 손부터 썼다.그날도 그랬다.당시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 박수정은 옆에 서 있던 한 소년을 그대로 차도로 밀어버렸다.다행히 심유진의 반응이 빨라서, 곧바로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그래도 차에 부딪힌 아이는 병원에서 보름이나 누워 있어야 했다.그동안 박진성과 딸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줄곧 강희연 곁에만 머물며 심유진의 생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박수정은 오히려 심유진에게 빨리 죽어 버리라고 소리쳤다.그래야 자신이 새 엄마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때 심유진을 찾아온 사람이 바로 이 소년 준호와 유일하게 함께 살던 할머니였다.이야기를 나누면서, 심유진은 이 할머니와 손자의 불행한 사연을 알게 되었다.준호의 부모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가 폐지를 주우며 손자를 키워 왔다.두 사람은 심유진의 병실에 몇 차례 찾아왔었다. 심유진이 퇴원한 뒤 도움을 주고 싶어서 찾아갔지만, 두 사람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수소문 끝에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준호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때는 박진성에게 시달리느라 너무나 힘든 시기여서, 아이를 찾아볼 여력조차 없었다.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어쩌면 정말 인연이었던 걸까?준호가 달려와 심유진을 꼭 끌어안았다.“엄마, 드디어 저 데리러 왔군요!”준호를 안아든 심유진은, 보육원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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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함박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눈앞의 두 사람을 보는 순간 심유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준호가 다가와 심유진의 손을 잡아 주었다.그 손길 덕분에 심유진은 조금이나마 힘을 낼 수 있었다.박진성이 심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이제 꽤 시간이 지났잖아. 고집부리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이제 나랑 같이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박진성의 말투는 마치 별일 아닌 일을 이야기하듯 가벼웠다.심유진이 그저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심유진은 냉소를 지으며 무표정하게 박진성을 바라보았다.“똑바로 알아둬. 우리는 이혼한 지 이미 반년이 넘었어.”그렇게 말해도 박진성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굴었다.“네가 아직 화가 난 건 알아. 내가 이렇게 수정이까지 데리고 직접 찾아와 줬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체면을 세워준 거야. 이제 그만하고 따라와.”“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그동안 네게 준 돈이 너무 적었던 것 같아. 앞으로는 용돈도 더 넉넉히 줄게. 예전처럼 빠듯하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야.”이 말을 할 때 박진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만한 태도였다.마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보였다.심유진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박진성이 끝도 없이 그런 말을 늘어놓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분명히 말했잖아.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제발 내 삶에 끼어들지 마!”박진성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밖에서 몇 달 지냈다고 성격이 이렇게나 변하다니.그때 박수정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못난이, 나랑 아빠가 이렇게 직접 데리러 왔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뻔뻔하게 굴지 마!”심유진이 자신을 무시하자, 박수정은 만들어진 눈사람을 부수기 시작했다.어린 나이에 이를 악물고 화를 내는 모습은 마치 작은 악마와도 같았다.준호는 그 모습에 겁을 먹고 심유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심유진은 겁에 질린 준호를 품에 꼭 안고 등을 다독여 주었다.“엄마 여기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준호는 워낙 겁이 많아서 작은 자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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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박진성은 줄곧 확신해 왔다.심유진은 자신을 미칠 듯이 사랑하기에,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버리고 어떤 고통도 감내할 여자라고.그 확신이 있었기에, 박진성은 마음대로 심유진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힐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심유진은 박진성을 쓰레기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피하려고만 했다.자존심 강한 박진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특히 그동안 심유진 앞에서는 언제나 군림하듯 굴어 왔던 박진성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면서,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버렸다.“나는 지금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좋게 말할 때 그만해. 네가 아무리 억울한 게 많아도, 이제 그만 화 풀 때도 됐잖아.” “게다가 자기 친딸을 때리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네가 그렇게 집을 나가면서 아이까지 나한테 떠넘기고 아무것도 안 했지만, 나는 네 잘못을 묻지도 않고 이렇게 직접 찾아왔어”.“그만하면 됐으니까 적당히 해. 너무 기어오르지 마.”“이번에 돌아가면 우리한테 제대로 사과해. 그러면 지난 일은 다 덮어줄게. 대신 너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똑똑히 알아둬. 더 이상 끝도 없이 이러지 마.”말을 마친 박진성은 일부러 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는 척했다.심유진이 울면서 붙잡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그러면 그때 제대로 벌을 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몇 걸음을 뗄 때까지도 심유진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뒤를 돌아보니, 심유진은 준호를 안고 조용히 달래고 있을 뿐이었다.박진성이 상상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박진성은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심유진을 바라보았다.“내가 어떤 성격인지 너도 잘 알잖아. 이번에 내가 가면, 너는 정말 끝이야.”박수정도 고개를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거들었다.“우리한테 사과하고 잘못을 빌지 않으면, 너도 다시는 집에 오지 마!”그러자 심유진이 준호를 내려놓고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그 모습을 본 박진성은 입꼬리를 올렸다.역시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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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앉았다.심유진이 자신을 대하던 그 차갑고 혐오스러운 태도를 떠올리자,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지난 반년 동안, 박진성은 심유진이 그저 삐쳐서 잠시 숨어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화가 풀리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심유진이 돌아오면 그때 제대로 혼을 내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하지만 상황은 박진성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심유진이 집을 나간 첫날부터, 박진성은 그녀의 모든 경제적 수단을 차단했다.이전에 줬던 카드도 전부 정지시켜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박진성은 가정주부에 불과한 심유진은 밖에 나가도 직업을 구하지 못할 것이고, 수중에 돈도 없으니 분명 순순히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했다.그때가 되면 반드시 무릎 꿇고 비굴하게 잘못을 빌게 만들 생각이었다.처음에는 버틸 만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서는 이유 모를 불안감이 점점 커져 갔다.심유진을 잃을까 봐 두려워진 박진성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심유진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여러 경로로 수소문한 끝에 심유진이 북쪽의 작은 도시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자신을 떠난 뒤에도 심유진은 길거리에서 노숙하거나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오히려 유명한 만화가가 되어 있었다.그때야 박진성은 서서히 깨달았다.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심유진을 완전히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곧바로 표를 끊은 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밤새 달려서 북쪽의 작은 도시로 향했다.박진성은 자신 나름대로 최대한 자세를 낮춰서 심유진을 데리러 갔다.예전에는 결코 한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당연히 심유진이 울면서 감동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을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면 자신은 대인배답게 모든 걸 용서해 줄 생각이었다.그렇게 하면 심유진은 죄책감을 품고,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모든 것이 박진성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심유진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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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별장 안으로 들어선 강희연은 소파에 앉아 있는 박진성을 보았다.강희연의 머릿속에는 벌써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일부러 딸을 따로 내보낸 건가? 둘만의 시간을 만들고, 그 사이 다른 일도 벌어질 수 있게 하려는 거겠지?지난번 자신이 배가 아픈 척한 이후로, 강희연이 온갖 구실로 박진성을 불러내도 매번 거절하기만 했다.예전처럼 강희연을 세심하게 챙겨 주지도 않았다.가끔 만나도 아주 건성으로 대했다.나중에 박수정에게 물어서 그 못난이가 이미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제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지금 강희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박진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드는 일이었다.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했다.박진성은 강희연을 바라보는 눈빛에 아무런 온기가 없었다.박진성은 갈수록 자신의 지난 잘못이 후회스러웠다.눈앞의 여자를 가만히 살펴보았다.몸매든 얼굴이든, 심유진보다 나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말은 그럴듯하게 해놓고, 정작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정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심유진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그런데도 자신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강희연에게 푹 빠져서, 지금의 이 지경까지 만든 것이다.박진성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강희연은 조금 의아한 듯이 물었다.“왜 그래? 몸이 불편해? 전화해서 구급차 부를까?”하지만 박진성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박진성을 보자, 강희연은 마음이 몹시 불쾌했다.예전 같았으면 자기가 한마디 하면 박진성은 열 가지를 해냈다.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열 마디를 해도 한 가지조차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강희연이 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을 때, 박진성이 갑자기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강희연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환희에 차올랐다.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하지만 강희연이 다음 행동을 하기도 전에, 박진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때 유진이는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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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강희연은 이 사람들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법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강희연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김 사장님, 며칠만 더 시간을 주세요. 최대한 빨리 돈을 마련할게요. 절대 오래 끌지 않겠습니다.”김강인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늦었어. 그래도 걱정 마. 처음부터 너무 심하게 괴롭히진 않을 테니까. 우선 즐겁게 해 줄 거야.”김강인이 말을 마치자 밖에서 노숙자 십여 명이 들어왔다.노숙자들은 오랫동안 다리 밑이나 쓰레기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몸에서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하나같이 나이 든 독신자들이었고, 그런 노숙자들을 따르는 여자도 없었다.그런 노숙자들이 강희연을 보자 눈빛이 반짝 빛났다.강희연은 그 순간 김강인이 자신에게 어떤 벌을 내리려고 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이 남자들에게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강희연은 바닥에 떨어진 쇠막대기를 집어서 자신을 지키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의 손을 발로 밟아 버렸다.그리고 쇠막대를 집어 올리더니, 강희연의 두 팔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었다.이어서 두 다리까지 부러뜨려서, 도망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노숙자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강희연을 집어삼켰다.한 차례 또 한 차례 고통을 견뎌낸 뒤에도, 강희연에게는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강희연은 망고 알레르기가 있었다.그런데 바로 지금 갓 짜낸 망고 주스가 한 병씩, 또 한 병씩 강희연의 입에 강제로 부어졌다.강희연은 온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극심한 가려움이 밀려왔고, 숨 쉬는 것조차 점점 힘들어졌다.강희연은 병원에 가고 싶었다.이번에는 진짜였다. 연기가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도 강희연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았다.이 모든 것이 박진성이 시킨 일이었으니까.지난번 병원에서 강희연과 딸의 대화를 들은 뒤, 박진성은 사립 탐정을 고용해 조사를 시작했고 곧 문제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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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두 사람이 알게 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사적으로 만나 식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심유진이 회사에 들어온 뒤로, 대표 소경훈은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에 이끌렸다.심유진의 얼굴에는 늘 옅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전에도 몇 번 심유진에게 식사를 제안했지만 그때는 모두 거절했었다.그런 심유진이 이번에는 먼저 약속을 받아들였으니, 소경훈으로서는 뜻밖의 기회나 다름없었다.소경훈은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었다.심유진이 그려낸 만화 속에서 소경훈은 단지 뛰어난 그림 실력만 본 것이 아니었다.그 안에는 심유진만의 감각과 미적 안목,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 담겨 있었다.보통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작가라면 적어도 마흔은 훌쩍 넘었을 법했다.심유진처럼 젊은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게다가 심유진은 많은 일에 대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과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생각도 분명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리낌 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심유진은 마치 한 권의 소설책과도 같았다.읽으면 읽을수록 더 궁금해지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안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그런 책처럼.식사를 마친 뒤, 소경훈은 원래 심유진과 함께 저녁 시간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그녀가 거절했다.“죄송해요. 조금 있다가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신사답게 행동하기 위해, 소경훈은 심유진이 가고 싶어 하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그곳은 바이올린 학원이었다.이내 한 소년이 뛰어나오더니 심유진을 끌어안았다.“엄마!”그 말을 들은 순간, 소경훈은 마음속에 실망감이 밀려왔다.심유진이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있다니.그동안 자신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살짝 한숨을 내쉬면서 소경훈의 마음은 씁쓸했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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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박진성 부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심유진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지난번과 달리, 두 사람에게서 기세등등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특히 박진성의 눈빛은 확실히 부드러워져 있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심유진은 두 사람을 대할 때 여전히 혐오감부터 앞섰다.박수정이 심유진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엄마.”심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정을 한 번 바라본 뒤, 준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박진성은 급히 심유진을 불러 세웠다.“잠깐, 우리한테 시간 조금만 줘. 몇 분이면 돼. 부탁할게.”박진성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심유진으로서는 의외였다.하지만 심유진이 그 악몽 같던 집으로 다시 돌아갈 리는 없었다.심유진의 마음은 이미 하루하루 반복된 고통 속에서 완전히 죽어 버렸다.박진성이 어떤 약속을 하든, 심유진은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부녀에게서 멀어진 뒤에야 비로소 심유진의 삶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딱 3분이야.”박진성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용기를 내어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지난번에 널 찾아왔을 때 내 태도가 잘못됐어. 심한 말도 많이 했고.” “이제 나도 수정이도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어. 그리고 이 집에는 네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심유진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왜? 집에 또 가사도우미가 필요해졌어?”박진성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니야.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내가 너무 몹쓸 놈이었어. 그래서 너한테 계속 상처만 준 거야.”“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신을 차렸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강희연과는 완전히 연락을 끊었고, 딸도 잘못을 고치도록 교육했어. 이제 절대 예전처럼 너한테 말하지 않을 거야.”“우리 예전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심유진은 눈앞의 박진성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마치 아주 오래 전, 두 사람이 처음 함께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때의 박진성은 집안이 가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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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 대신 이곳에 남아서 심유진의 일상을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박진성은 감히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가까이 가면 더 미움을 살 것만 같아서, 멀리서 몰래 심유진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자신을 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고, 몸서리칠 만큼 자신을 혐오하는 심유진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박진성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자신이 한 짓이 심유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기에, 그렇게 밝던 여자가 자신을 악몽처럼 여기게 된 것일까?박진성은 비로소 깨달았다.심유진은 이곳에 온 뒤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더 우아해지고 더 매력적이었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밤이 깊어질 때마다, 박진성은 이렇게나 좋은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을 후벼파는 듯이 아팠다.박진성은 필사적으로 심유진을 붙잡고 싶었지만, 동시에 잘 알고 있었다.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박수정은 제법 얌전해졌다.어린아이는 옆에서 조금만 이끌어 주면 옳고 그름을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자신의 엄마가 다른 아이를 그렇게나 사랑스럽게 보살피는 모습을 보자, 박수정은 질투가 났지만 아빠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엄마가 용서하기 전까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사실 박수정은 가끔 궁금했다.‘엄마는 왜 아빠를 용서해 주지 않는 걸까?’박진성은 복잡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근처의 고깃집에 갔다.자리에 앉아 천천히 딸에게 고기를 구워 주며, 심유진과 함께했던 지난 시절을 이야기해 주었다.박수정은 아직 어려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 사이의 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부녀가 했던 행동이 엄마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그리고 엄마는 못난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박수정은 문득 어릴 적 일들이 떠올랐다.엄마가 자신을 정성껏 돌봐 주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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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소경훈이 갑자기 자신에게 자주 만나서 식사하자고 하는 것이 심유진은 조금 의외였다.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지난번 두 사람의 만남이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난 뒤로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기 때문이다.심유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아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심유진 같은 여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혼한 데다 얼굴에 흉터까지 있고, 게다가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데.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식사를 마친 뒤, 준호는 한 손으로는 심유진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소경훈의 손을 잡고 무척이나 신나 했다.심유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심유진도 몰랐다. 이런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분했다.어떤 일이 있어도 심유진은 준호를 포기할 수 없었다.아이는 자신이 의지하는 곳이자,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사실 조금 전 고깃집에 갔을 때, 심유진은 박진성 부녀를 보았다.하지만 일부러 못 본 척했다.이미 할 말은 다 했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이곳에 눌러앉아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어떻게 매달리든, 심유진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을 것이다.이제 겨우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했는데, 지난 일이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돌아오는 길에 소경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요? 혼자 준호를 키우는 건 문제는 없겠지만, 아이가 계속 아빠 없이 자랄 수도 없잖아요.” “아이가 자라는 데는 아빠의 존재도 중요하니까요.”심유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제 상황도 아시잖아요. 이혼녀에 얼굴에 흉터도 있어요. 준호까지 입양하려고 하는데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어요? 조건도 복잡하고 걸리는 게 너무 많잖아요.”소경훈은 심유진을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물었다.“내가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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