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건이 떠나고 난 뒤, 시계 침은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적만이 무겁게 내려앉은 어두운 거실.철컥, 쾅-!현관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술에 잔뜩 취한 진우가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독한 위스키 냄새와 담배 찌든 내가 맑았던 거실 공기를 단숨에 역하게 오염시켰다. 진우는 넥타이를 홱 풀어헤쳐 바닥에 내팽개치며, 어둠 속에 서 있는 은수를 향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쏘아붙였다."야, 김은수. 물 한 잔 떠와. 목구멍 타들어가니까 빨리빨리 움직여."은수는 동요 없는 서늘한 눈으로 조용히 걸어 나와 얼음물 한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진우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소파에 털썩 쓰러지듯 누워 그대로 드르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그의 무방비하고 추악한 모습을 내려다보는 은수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은수는 소파 아래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진 진우의 명품 정장 재킷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바스락. 재킷 안쪽 깃에서 코를 찌르는 낯선 향기가 훅 끼쳐왔다. 결코 은수의 것이 아닌, 달콤하고 화려한 백화점 명품 니치 향수 냄새.그리고 흰 와이셔츠 깃 안쪽에는 선명하게 뭉개진 진분홍빛 립스틱 자국이 추잡하게 번져 있었다. 은수의 입가에 서늘한 실소가 번졌다. 손목을 비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완벽과 결벽을 강요하며 은수를 쥐잡듯 잡던 남편의 비열한 민낯이었다.은수는 숨을 죽인 채 진우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묵직한 가죽 지갑을 꺼냈다.드르륵. 지갑의 지퍼 포켓과 카드 수납칸을 낱낱이 열어젖히자, 빳빳하게 접힌 영수증 서너 장과 명함 한 장이 손끝에 걸려 나왔다. 은수는 스마트폰의 조도를 낮추어 영수증에 찍힌 활자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확인했다.[그랜드 하얏트 서울 스위트룸 / 1,480,000원][청담동 하이엔드 오마카세 2인 코스 / 680,000원][갤러리아 백화점 다이아몬드 목걸이 / 5,200,000원]지난주, 본사 지방 공장 출장이라며 1박 2일 외박했던 날짜와 정확히 일
Last Updated : 2026-08-2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