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하자보수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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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By:  6jay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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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로 살아가며 남편의 폭언과 통제에 지쳐가던 은수. 어느 날 집의 하자를 고치러 온 기사 태건은 그녀가 숨기던 상처와 위축된 눈빛을 단번에 알아챈다. 처음엔 우연이었던 만남은 은수가 일부러 고장을 만들며 이어지고, 두 사람은 금지된 감정에 빠져든다. 남편의 외도까지 드러나자 은수는 더 이상 망가진 결혼을 붙들지 않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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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 1화. 물비린내와 멍든 손목

유리창을 거칠게 때리는 장대비 소리 사이로, 싱크대 하부장에서 퀴퀴한 물비린내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은수는 젖은 행주를 쥔 손끝에 하얗게 힘을 주었다. 손잡이를 비틀어 짤 때마다 왼쪽 손목 안쪽에서 찌릿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

긴 셔츠 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자, 연하고 흰 살갗 위에 짙은 보랏빛으로 멍울진 손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젯밤의 일이었다.

"내가 집안에 먼지 한 톨, 물기 한 방울 남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남편 진우는 은수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 쥐어틀며 뺨 바로 옆에 대고 낮게 짓씹듯 쏘아붙였다. 숨통을 조이는 결벽과 가스라이팅. 그의 차가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릴수록 손목을 파고드는 악력은 잔인해졌고, 은수의 자존감은 매일 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조금만 더 완벽하게 하면 돼.'

은수는 메마른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떨리는 손으로 셔츠 소매를 바짝 끌어내려 상처를 덮었다.

하지만 그녀의 다짐과 달리, 싱크대 수전 아래 어두운 틈새에서는 여전히 뚝, 뚝 규칙적인 낙수음이 이어졌다. 마치 이 겉만 번지르르한 집의 균열을 조롱하듯 알리는 서늘한 초시계 같았다.

결혼 3년 차.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강남의 번듯한 아파트와 대기업 임원인 남편이었지만, 그 안에서 은수가 누린 것은 숨 막히는 통제와 얼음장 같은 냉대뿐이었다. 진우는 집안의 사소한 삐걱거림조차 은수의 나태함과 무능 탓으로 돌렸고, 은수는 햇빛을 받지 못해 말라 죽어가는 화초처럼 매일 서서히 시들어갔다.

철컥.

현관 도어록이 풀리는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서늘한 복도 공기가 거실 안쪽으로 훅 밀려들었다. 은수는 반사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굳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왔어."

진우는 현관 중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틀어쥐었다. 그의 서늘한 눈매가 은수를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

"하, 집안 꼴 하고는. 이 썩은 내는 뭐야? 너 하루 종일 집에서 대체 뭐 하고 자빠졌어?"

"배수관 쪽에서 물이 조금 새는 것 같아서… 계속 닦아내고 있었어요. 냄새 안 나게 하려고 락스도 뿌렸는데…"

은수가 조심스럽게 대답하며 다가가 외투를 받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진우는 은수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찰싹, 하는 마찰음과 함께 멍든 손목에 찌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사람을 불러서 고치든가 했어야지, 미련하게 걸레질이나 하고 앉아 있어? 냄새 역겨워서 숨도 못 쉬겠네. 밖에서 온갖 스트레스 다 받고 들어왔는데 집구석 꼬라지가 이 모양이야?"

진우는 거실 소파에 무거운 서류 가방을 거칠게 내던지더니,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은수를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씻고 나올 테니까 냄새부터 당장 어떻게 해 놔. 저녁 먹을 생각도 싹 사라지니까."

쾅!

안방 욕실 문이 부서질 듯 닫히고, 거실에는 다시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은수는 공중에 쳐내진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손등 아래로 손목의 멍이 맥박에 맞춰 욱신거렸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하수구 냄새처럼, 진우와의 결혼 생활은 이미 보이지 않는 깊은 속부터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은수는 그 썩어가는 냄새를 혼자 틀어막으며 질식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은수는 힘없이 싱크대 앞에 다시 주저앉아 하부장 문을 활짝 열었다. 어둠침침한 틈새에서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은수의 맨발등 위로 툭 떨어졌다.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차갑고 축축했다.

'더 이상은… 나 혼자 닦아낼 수 없어.'

무언가 부서져 버린 은수는 떨리는 손으로 싱크대 상부장 서랍 깊은 곳을 뒤졌다. 지난달 아파트 우편함 옆 게시판에 꽂혀 있던 하자보수 업체의 명함 한 장이 손끝에 걸렸다.

[한결종합보수 / 하자보수팀장 차태건]

매끄러운 검은색 명함에 정갈하고 힘 있는 필체로 박힌 하얀 글씨. 은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홀린 듯 휴대폰 화면에 적힌 번호를 꾹꾹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차분한 저음이 수화기를 타고 귓가에 곧장 닿았다.

"네, 한결종합보수 차태건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숨소리가 섞인 그 목소리에 은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숨결마저 울리는 깊은 음성이었다.

"저… 여기가 센트럴파크 104동 702호인데요. 싱크대 하부장에서 물이 자꾸 새서요. 냄새도 너무 심하고 역류하는 것 같아요."

은수의 떨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모님, 내일 오전 10시쯤 방문 점검 가능한데 댁에 계십니까?"

"네. 있어요. 제발… 그때 꼭 좀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10시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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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물비린내와 멍든 손목
유리창을 거칠게 때리는 장대비 소리 사이로, 싱크대 하부장에서 퀴퀴한 물비린내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은수는 젖은 행주를 쥔 손끝에 하얗게 힘을 주었다. 손잡이를 비틀어 짤 때마다 왼쪽 손목 안쪽에서 찌릿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긴 셔츠 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자, 연하고 흰 살갗 위에 짙은 보랏빛으로 멍울진 손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젯밤의 일이었다."내가 집안에 먼지 한 톨, 물기 한 방울 남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남편 진우는 은수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 쥐어틀며 뺨 바로 옆에 대고 낮게 짓씹듯 쏘아붙였다. 숨통을 조이는 결벽과 가스라이팅. 그의 차가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릴수록 손목을 파고드는 악력은 잔인해졌고, 은수의 자존감은 매일 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조금만 더 완벽하게 하면 돼.'은수는 메마른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떨리는 손으로 셔츠 소매를 바짝 끌어내려 상처를 덮었다.하지만 그녀의 다짐과 달리, 싱크대 수전 아래 어두운 틈새에서는 여전히 뚝, 뚝 규칙적인 낙수음이 이어졌다. 마치 이 겉만 번지르르한 집의 균열을 조롱하듯 알리는 서늘한 초시계 같았다.결혼 3년 차.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강남의 번듯한 아파트와 대기업 임원인 남편이었지만, 그 안에서 은수가 누린 것은 숨 막히는 통제와 얼음장 같은 냉대뿐이었다. 진우는 집안의 사소한 삐걱거림조차 은수의 나태함과 무능 탓으로 돌렸고, 은수는 햇빛을 받지 못해 말라 죽어가는 화초처럼 매일 서서히 시들어갔다.철컥.현관 도어록이 풀리는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서늘한 복도 공기가 거실 안쪽으로 훅 밀려들었다. 은수는 반사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굳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왔어."진우는 현관 중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틀어쥐었다. 그의 서늘한 눈매가 은수를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하, 집안 꼴 하고는. 이 썩은 내는 뭐야? 너 하루 종일 집에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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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낯선 시선과 서늘한 손길
오전 10시 정각.딩동-정적을 가르고 울린 맑은 초인종 소리에 은수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거울 앞에 서서 얇은 니트 가디건의 소매를 손등까지 완전히 덮이도록 바짝 끌어내린 뒤, 도망치듯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손잡이를 쥔 손바닥에 축축하게 식은땀이 맺혔다. 문을 열기 전, 은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철컥.도어록을 풀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문밖의 복도 햇살을 등진 채 낯선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한결종합보수 하자보수팀 차태건입니다."짙은 네이비색 작업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남자, 태건이었다. 작업복 상의 깃 사이로 드러난 단단하고 굵은 목선, 짙은 눈썹 아래로 날렵하게 뻗은 콧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은수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더 큰 압도적인 체격 탓에, 그가 문턱에 서자 은수의 위로 짙고 묵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아… 들어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은수가 반 걸음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자, 태건이 묵직한 검은색 공구함을 한 손에 가볍게 쥐고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 은수의 코끝으로 서늘하고 낯선 향이 훅 끼쳐왔다.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쾌한 물비린내를 단숨에 밀어내는 청결한 비누 향, 그리고 희미한 섬유유연제와 기계 기름 냄새.은수는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스스로의 낯선 반응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심장이 이유 없이 세차게 뛰었다."주방 싱크대 쪽이라고 하셨죠?""네, 하부장 배수관 연결 부위에서 물이 계속 떨어져요."태건은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로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앞에 멈춰 선 그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하부장 문을 양옆으로 활짝 열어젖혔다. 작업복 바지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단단한 허벅지와 넓은 등판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은수는 조금 떨어진 조리대 옆에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남편 진우에게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묵직하고 거친 남성성이 좁은 주방의 공기를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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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좁은 보일러실의 숨결
"사모님. 손목은… 어디서 그렇게 다치셨습니까?"태건의 나직한 음성이 은수의 귓바퀴를 뜨겁게 긁어내렸다. 은수는 마치 죄를 짓다 들킨 사람처럼 숨을 턱 멈추었다. 황급히 가디건 소매를 끌어내려 손목을 감추려 했지만, 태건의 묵직한 손길이 한발 빠르게 은수의 여린 손목 언저리를 가볍게 가로막았다.상처를 압박하지 않는, 그러나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서늘하고 단단한 악력. 거친 굳은살이 닿은 살갗 아래로 찌릿한 전율이 번졌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랍장에 세게 부딪혀서 그래요."은수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거짓말이라는 것이 뻔히 드러나는 어설픈 변명이었다.태건은 멍 자국을 덮은 은수의 가디건 소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그는 한 발 물러나 은수가 스스로 소매를 내릴 시간을 주었다. 다친 이유를 추궁하는 대신 작업 위치와 현관 방향을 한 번 훑었다. 말보다 먼저 위험을 가늠하는 태도였다. 은수는 그 조심스러운 거리 두기가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웠다. 태건은 그 뒤로 손목을 다시 잡지 않았다. 진우에게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배려가, 멍을 들킨 수치심과 뒤섞여 가슴을 세게 조였다."싱크대 배수관 누수는 패킹 교체로 잡혔습니다. 다만 아까 수전을 틀 때 급수관에서 압력 진동음이 들렸습니다. 보일러실 쪽 감압 밸브와 고정 브래킷을 확인해야 합니다."태건이 일어나며 작업복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가 일어서자마자 주방 천장의 조명이 가려지며 은수의 머리 위로 다시 짙은 그림자가 졌다."보일러실 메인 밸브 확인해야 합니다. 어디 있습니까?""다용도실 안쪽에… 좁아서 짐이 좀 쌓여 있는데, 안내해 드릴게요."은수는 도망치듯 앞장서서 주방 구석의 다용도실 문을 열었다. 세탁기와 건조기, 계절 지난 수납 상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좁은 보일러실은 성인 두 명이 간신히 서 있을 만큼 협소했다.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 안으로 먼지 섞인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다."저기 안쪽 구석에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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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남겨진 체온과 서늘한 공백
끼이익, 묵직한 쇠 밸브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배관을 흔들던 날카로운 소음이 멎었다."이제 수압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싱크대 하부장도 더 이상 물 안 샐 겁니다."태건이 도구를 챙겨 들고 보일러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벽에 기대어 겨우 숨을 고르던 은수는 붉게 달아오른 뺨을 감추려 연신 마른세수를 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좁은 밀실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방으로 나온 공기는 여전히 태건의 묵직한 체온과 서늘한 잔향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태건은 싱크대 주변에 떨어진 부품 찌꺼기와 먼지를 챙겨온 마른 천으로 말끔히 닦아냈다. 그의 손길은 거칠고 단단해 보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정갈했다. 남편 진우가 어지럽히고 폭언으로 짓밟고 간 자리를, 낯선 남자가 묵묵히 원래대로 치유해 놓고 있었다."수리비는 관리사무소 지정 하자보수 무상 기간이라 따로 청구되지 않습니다."태건이 공구 가방의 지퍼를 채우고 허리를 폈다. 단정하게 정돈된 싱크대 위로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검은색 명함 한 장이 놓였다."또 물이 새거나, 문이 삐걱거리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그의 시선이 은수의 눈에 다시 한번 묵직하게 머물렀다.'도움이 필요하시면.'단순한 영업용 멘트가 아니라는 것을 은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말은 폭력과 고립 속에 방치된 은수를 향해 던진 조용하지만 위험한 닻이었다."…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은수가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짜 내어 인사했다. 태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현관으로 향했다.철컥.현관문이 열리고 복도의 밝은 햇살이 거실 바닥을 잠시 비추었다가, 문이 닫히며 다시 무거운 정적이 집안을 집어삼켰다. 남자가 떠나간 집. 은수는 멍하니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홀로 서 있었다.분명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아 있던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공기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물비린내가 사라진 자리에는 태건이 남기고 간 은은한 비누 향과 희미한 기계 기름 냄새가 흩어지지 않고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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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서랍 속의 흑심
"어이, 김은수. 내가 말한 와이셔츠 왜 아직도 드라이 안 맡겨 놨어?"현관문이 거칠게 열리자마자 쏟아진 진우의 날카로운 질책에, 은수는 싱크대 앞에서 저녁 찌개를 끓이다 말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은수는 가스레인지 불을 급히 약하게 줄이고 황급히 거실로 걸어 나왔다. 긴장으로 바짝 굳어버린 손가락을 앞치마 자락에 가만히 문질렀다."그 셔츠… 세탁소 사장님이 오늘까지 집안일로 휴가시라 내일 아침 일찍 맡기겠다고 어제 말씀드렸잖아요.""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지껄여? 다른 세탁소를 찾아갔어야지! 넌 대가리가 장식이냐?"진우는 신고 있던 묵직한 가죽 구두를 거칠게 벗어 던지며 은수의 턱밑까지 바짝 다가왔다. 180cm가 넘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살기와 차가운 한기. 그의 서늘한 눈빛이 은수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짓누르고 있었다."밖에서 남들이 나 보고 셔츠 깃 하나 제대로 못 다려 입고 다니는 무능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너 같은 거 거둬서 사람 꼴 만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졌지?"진우는 들고 있던 두꺼운 가죽 서류 가방으로 은수의 마른 어깨를 툭, 툭 거칠게 밀쳐냈다. 둔탁한 충격이 은수의 어깨뼈를 타고 날카롭게 울렸다. 은수는 흔들린 몸을 식탁 끝으로 겨우 받쳤다. 사과부터 꺼내려던 입술은 이번에는 닫힌 채였다.과거의 은수였다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은수의 가슴속에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감정이 차갑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무기력한 공포와 자괴감 대신, 치밀어 오르는 서늘한 경멸이었다.'더러워.'진우의 정장 깃 사이로 역하게 풍기는 낯선 독한 여자 향수 냄새와 담배 찌든 내. 은수의 코끝은 지난 이틀 동안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태건의 깨끗한 비누 향과 서늘하고 묵직한 체온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그것은 단순히 남자의 향기가 아니었다. 은수를 통제 대상이 아닌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손목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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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스패너와 배수관의 일탈
오후 2시.진우가 출근하고 난 뒤, 완벽한 적막과 서늘한 침묵이 내려앉은 아파트 거실. 은수는 싱크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세차게 요동치며 귓가를 먹먹하게 울렸다.손에 쥔 묵직한 몽키 스패너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은수의 손바닥에서는 축축하고 뜨거운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정말… 내가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평생을 부모의 엄격한 통제에 순종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 진우의 완벽주의 결벽에 짓눌려 숨죽여 살아온 은수였다. 단 한 번도 일탈이라는 것을 꿈꿔본 적 없던 정숙하고 유순한 주부의 손에, 지금 파괴와 균열의 도구가 단단히 들려 있었다.끼이익.하부장 문을 양옆으로 활짝 열어젖히자, 태건이 말끔하게 교체해 둔 새하얀 주름관 호스와 번쩍이는 황동 너트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돈된 배관. 그것은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이 번듯하지만 속은 곪아 터져 악취를 풍기던 은수의 결혼 생활과 소름 돋도록 닮아 있었다.은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스패너의 금속 입을 벌려 하부 배수관 체결 너트에 물렸다.짤깍.차가운 쇳덩이끼리 맞물리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텅 빈 주방에 울려 퍼졌다. 은수는 두 손으로 스패너의 묵직한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목의 보랏빛 멍이 욱신거리며 날카로운 통증을 보냈지만, 손끝을 멈추지 않았다.'이건 미친 짓이야. 되돌릴 수 없는 파멸로 걸어 들어가는 짓이야.'머릿속 한구석에서 마지막 남은 이성이 날카롭게 경고했다. 만약 진우가 알게 된다면, 혹은 태건이 고의성을 눈치채고 경멸 어린 눈빛으로 돌아선다면 그녀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 위험과 파멸의 공포보다, 태건을 다시 마주하고 그 남자의 뜨거운 체온과 서늘한 시선을 느끼고 싶다는 갈망이 은수의 온 신경을 지배했다."으읏…!"손잡이에 힘을 줄수록 손바닥의 살이 밀려 따끔거렸다. 은수는 한 번 손을 놓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스패너를 물렸다. 우연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이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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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사모님, 공구 쓰실 줄 압니까?
딩동-정적을 날카롭게 찢는 초인종 소리에 은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몸을 흠칫 떨며 일으켰다. 통화를 끊고 정확히 8분 만이었다. 은수는 싱크대 하부장 구석으로 흘러내린 오수를 발끝으로 조심스레 피해 가며 서둘러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손바닥에서는 여전히 스패너의 차가운 금속 감촉과 축축하고 뜨거운 식은땀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철컥.도어록 레버를 내리고 문을 열자, 계단을 급하게 뛰어 올라온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태건이 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짙은 남색 작업복 차림의 그는 한 손에 묵직한 공구 가방을 쥔 채, 은수의 얼굴과 차림새를 위아래로 급하게 훑어내렸다."다치신 곳은 없습니까."낮고 거친 숨결이 섞인 그의 음성이 복도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은수의 귓가에 닿았다."네… 전 다친 데 없어요. 그런데 싱크대 아래쪽에서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나와서요."은수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며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그를 다시 마주했다는 낯선 흥분이 뒤엉켜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태건은 군더더기 없는 걸음으로 주방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그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훅 끼쳐오는 깨끗한 비누 향과 희미한 기계 기름 냄새가, 물비린내로 가득 찼던 거실의 공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주방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구정물을 확인한 태건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싱크대 하부장 문을 양옆으로 활짝 젖혔다.작업복 상의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붙이자, 단단하게 솟아오른 팔뚝의 전완근과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치익-태건이 헤드랜턴을 켜 어두운 배관 체결 부위를 비추었다. 빛이 닿은 황동 너트 주변에는 풀려버린 나사산 사이로 여전히 오수가 뚝, 뚝 굵은 방울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은수는 조리대 모퉁이를 손으로 짚은 채, 바닥에 엎드리듯 상체를 숙인 남자의 넓은 등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남편 진우의 차가운 폭언과 숨 막히는 통제 속에서 메말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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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기름때 묻은 손끝의 전율
"사모님, 몽키 스패너 쓰실 줄 압니까?"태건의 나직하고 단단한 질문은 은수의 귓바퀴를 뜨겁게 긁어내리며 가슴속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은수는 숨을 턱 멈춘 채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파리하게 굳어버렸다. 눈앞에 바짝 다가선 남자의 단단하고 넓은 흉곽이 고른 숨을 내쉴 때마다 미세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완벽한 정적 속에서, 은수의 요동치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귓전을 사납게 때려댔다. 고의로 부순 배관. 억지로 스패너를 물려 짓이겨놓은 나사산의 상처.그 모든 거짓과 비틀린 일탈이 이 남자의 서늘한 시선 아래 낱낱이 발가벗겨져 있었다.'다 들켰어.'그런데도 태건은 경멸하지도, 돌아서지도 않았다.수치심과 당혹감이 은수의 뺨과 귓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방 바닥으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저… 저는… 그냥 조금 조여보려고…"은수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변명을 내뱉으며 도망치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은수의 등 뒤에는 차가운 주방 조리대 상판 모서리가 단단히 버티고 서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벽이었다.태건은 은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떨어뜨렸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하얗게 질린 채 앞치마 자락을 꽉 쥐고 있는 은수의 작고 가녀린 손. 그 손등과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배관을 억지로 풀 때 튄 검붉은 하수구 찌꺼기와 거친 기계 기름때가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손에 기름때가 다 묻으셨네요."태건의 목소리는 은수를 몰아세우는 질책이나 비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수의 곪아 터진 상처와 속내를 부드럽게 덧만지는 듯 은밀하고 나직했다. 태건이 작업복 주머니에서 깨끗하게 접힌 면 수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은수의 떨리는 오른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부드럽게 올려놓았다."앗…!"은수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내려 뒤로 젖혔지만, 태건의 굵고 단단한 손가락이 은수의 손목 안쪽을 단단히 감싸 쥐었다. 남편 진우의 손길처럼 살갗을 멍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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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하부장 앞의 은밀한 첫 키스
"제가 손봐드리겠다고 했잖습니까. 집이든, 사모님이든."태건의 낮은 목소리가 은수의 귓바퀴를 뜨겁게 긁어내렸다. 은수는 터질 듯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지 못한 채 파르르 떨리는 숨을 들이켰다.피할 틈도, 피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등 뒤에 닿은 차가운 조리대 상판의 서늘한 냉기와, 눈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남자의 화끈거리는 체온이 은수의 온몸을 꼼짝 못 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스스륵, 태건의 서늘한 시선이 은수의 흔들리는 속눈썹을 거쳐 붉게 달아오른 입술 위로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남자의 굵은 엄지손가락이 은수의 떨리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짓누르며 쓸어내렸다. 거친 굳은살이 여린 살갗을 마찰할 때마다 찌릿한 전류 같은 전율이 은수의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숨 쉬십시오."그 나직한 한마디가 은수의 귓가에 a닿는 순간이었다. 태건은 마지막 한 뼘을 남겨두고 멈췄다. 은수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의 작업복 깃을 먼저 움켜쥐자, 그제야 태건의 상체가 단숨에 거리를 지웠다. 남자의 묵직한 손바닥이 은수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쥐어 꺾어 올렸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뜨겁고 거친 입술이 은수의 메마른 입술 위를 집요하게 덮쳐왔다."읍…!"은수의 입술 틈새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태건의 입술은 좁은 주방의 공기를 단숨에 집어삼킬 듯 뜨겁고 농밀했다. 은수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거칠고 뜨거운 숨결이, 수년간 얼어붙어 있던 은수의 혀끝을 사정없이 얽어맸다.그의 입 안에서 훅 끼쳐오는 서늘한 민트 향과 희미한 기계 기름 냄새. 그것은 남편 진우의 찌든 담배 냄새와 역한 알코올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태건만의 생생하고 낯선 향이었다. 태건은 깍지 낀 손을 더욱 강하게 쥐어짜며 은수의 손목을 조리대 상판 위로 밀어붙였다.단단한 전완근의 힘줄이 팽팽하게 솟구치며 은수의 가녀린 손가락 사이를 빈틈없이 파고들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으스러질 듯 얽혀드는 감각에 은수의 발끝이 오싹하게 오그라들었다.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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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화. 명함 뒤에 남겨진 은밀한 번호
"…이러려고 고장 내신 겁니까."태건의 나직한 물음에 은수는 대답 대신 잘게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남자의 짙은 체향과 서늘한 비누 냄새, 그리고 희미한 기계 기름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칠게 얽혔던 입술의 열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태건은 은수의 목덜미를 받치고 있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살갗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서늘한 주방 공기가 닿자, 은수는 저도 모르게 얕은 탄식을 내뱉으며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남자의 체온이 사라진 자리가 서글플 만큼 시렸다. 하지만 태건은 조금 전의 격정적인 맹수 같던 눈빛을 정갈하게 갈무리하고, 바닥에 뒹굴던 공구 가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일단 물부터 잡아야 합니다. 더 늦으면 하부장 바닥 합판 다 썩습니다."그는 주방 바닥에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공구함에서 워터펌프 플라이어와 새 황동 너트, 고무 패킹을 꺼냈다. 조금 전 은수의 입술을 탐하던 손과 같은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동작이 침착하고 정교했다. 태건은 스패너에 뭉개진 너트와 패킹을 통째로 분리하고, 나사산을 닦아낸 뒤 새 부속을 정확히 물렸다.은수는 조리대에 멍하니 기댄 채, 남자의 묵직한 어깨와 등판이 근육을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내가… 정말 무슨 짓을 한 거지.'남편 진우와 함께 사는 이 신혼집에서, 대낮에 낯선 수리 기사와 입을 맞추었다. 상식적인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배덕과 일탈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은수의 가슴속에서는 죄책감보다 아찔한 해방감이 먼저 차올랐다. 진우의 멸시와 폭언 속에서 먼지처럼 사라져 가던 자신의 존재가, 태건의 거친 손길 아래에서 비로소 살아 숨 쉬는 한 명의 여자로 복원된 기분이었다.짤깍, 짤깍. 라쳇 렌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헐거워졌던 배수관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며 조여졌다. 태건의 팔뚝에 불거진 푸른 힘줄이 단단하게 솟구쳤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그는 배관 체결 부위에 방수 마감재를 꼼꼼하게 덧바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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