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끝내 내 차례가 왔다: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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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승호야, 나 돌아왔어.]...한편, 하유는 불이 꺼진 핸드폰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전화 너머로 들려온 승호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네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그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 깊숙이 박혔다.하유는 문득 웃음이 났다.‘자격이라니...’6년 동안 매일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면서 가족을 돌봤다. 결국 그 끝에 돌아온 말은 고작 자격이 있냐는 질문이었다.하유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현주가 옆에서 몸을 기울이며 미간을 찌푸렸다.“또 뭐래?”하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내가 일부러 밀당하는 거래. 재산 절반을 받을 자격도 없대.”현주가 손바닥으로 식탁을 탁 쳤다.“미친 거 아니야?”하유는 한숨을 쉬면서 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따뜻한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속에 맺힌 쓰라림이 조금 가라앉았다.현주가 하유의 손을 잡았다.“하유야, 속상해하지 마.”현주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우승호는 네 눈물 한 방울조차 받을 가치도 없어.”하유는 눈을 깜빡였다. 눈가가 따끔했지만 울지는 않았다.“안 울어. 그냥... 너무 허무해서 그래.”6년이었다.하유는 자기 인생을 우스운 꼴로 만들어 버렸다.현주는 하유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우리 집으로 가자. 새로 산 집 인테리어가 끝나서 계속 보여 주고 싶었는데, 너는 한 번도 못 왔잖아.”하유가 고개를 들었다.현주가 시원하게 웃었다.“지금 가자. 오늘은 거기서 자고. 관리해 주시는 분한테 단호박죽이라도 끓여 달라고 할게.”하유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그래.”두 사람은 호텔을 나왔다....20분 뒤, 차는 명온재에 도착했다.현주가 차창을 내리고 출입카드를 태그해서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하유는 밖을 바라보다 조금 놀랐다.‘명온재...’강림시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주거단지로 알려진 곳이었다.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재력가나 유명 인사였고, 한 평의 가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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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하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선 현주의 표정은 이미 잔뜩 굳어 있었다. 하유가 팔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 세진에게 달려들 기세였다.세진은 그런 분위기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더 날카롭게 말을 이어 갔다.“왜, 우리 오빠가 여기 새집 샀다는 얘기 듣고 와서 같이 살겠다고?”세진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아쉽지만 그 집은 우리 오빠가 민정 언니 주려고 산 거야. 새언니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하유의 손가락이 살짝 말렸다.‘새집... 우승호가 명온재에 집을 샀다니...’‘조민정에게 주려고...’‘조민정이 돌아온 건가?’하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민정은 승호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다.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하유가 아니었다면 원래 승호와 결혼했을 사람은 민정이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그때 하유와 승호가 한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직접 본 민정은 바로 비행기표를 끊고 해외로 떠났다.그리고 6년이 지났다.‘이제 정말 돌아오는구나.’하유는 놀랄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올 사람이었다.승호는 6년 동안 하유에게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민정만큼은 잊지 못한 듯했다. 집까지 마련해 주는 것도 승호이라면 충분히 할 일이었다.그래도 직접 그 말을 듣자 가슴을 거세게 얻어맞은 듯 아팠다.하유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감정을 눌렀다.세진은 하유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웃음을 더 크게 지었다.“왜? 속상해? 마음 아파? 그럼 잘됐네.”세진은 고개를 기울여 하유를 바라봤다.“민정 언니가 곧 돌아와. 돌아오자마자 관리사무소에서 키 받아서 바로 들어와 살 거야.” “새언니는 진짜 인생 실패했다. 눈치 있으면 제 발로 먼저 나가. 쫓겨난 뒤에 창피당하지 말고.”하유가 고개를 들었다. 악의로 가득한 세진의 눈을 바라보자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해졌다.현주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그러자 하유가 곧바로 팔을 잡았다.현주는 답답하다는 눈으로 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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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하유가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남편이 혼인 중에 구입한 부동산입니다. 법적으로 부부 공동재산에 해당하고, 저에게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시스템을 확인해 보시면 소유자의 혼인 상태도 등록이 돼 있을 겁니다.”직원은 잠깐 망설인 뒤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에 정보가 떴다.화면을 확인한 직원은 하유를 다시 보면서 태도가 한층 공손해졌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새 키 한 개가 하유에게 건네졌다.현주는 키고리에 적힌 호수를 보고 엄지를 치켜들었다.“대박이다, 하유야. 이건 진짜 만점.”하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키를 손안에 쥐었다.“가자. 나한테 여기 새집이 있으니까 오늘은 내 집 구경이나 하자.”현주가 하유의 팔짱을 끼며 밝게 말했다.“좋지. 네가 집주인이고, 나는 먹는 담당.”둘은 관리사무소를 나와서 포장된 산책로를 따라 해당 동으로 향했다.세진은 화단 옆에 서서 하유와 현주가 관리사무소에서 나오는 걸 보고 있었다. 하유의 손에는 번쩍이는 키까지 들려 있었다. 세진의 표정이 곧바로 확 변했다.아까 세진도 두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안쪽 보안 구역으로 들어가는 지점에서 출입카드 요구를 받으면서 막혔다.그저 집 구경이나 하려고 왔을 뿐이라 출입카드가 필요한지도 몰랐다. 결국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했다.세진은 경비 직원에게 소리를 질렀다.“눈이 어디 달렸어요? 앞에 간 여자는 안 막고 왜 나만 막는데요?”직원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앞선 사람은 출입 권한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그 말을 듣자 세진은 더 화가 났다.‘심하유가 어떻게 출입 권한이 있어?’‘오늘은 왜 하는 일마다 내 앞을 막는 건데!’하유 일행이 다시 보이자 세진이 곧바로 소리쳤다.“그 키 돌려줘! 우리 오빠가 산 집 키를 새언니가 왜 가져가!”하유는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키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세진은 화가 나서 얼굴까지 하얘졌다. 발을 구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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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새집 앞에 도착한 하유와 현주는 아까 받은 키로 문을 열었다.문을 열고 들어간 하유는 현관에서 발을 멈췄다.실내는 이미 인테리어가 모두 끝나 있었다. 가구와 생활용품까지 갖춰져 있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따뜻한 집처럼 보였다.하유는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거실은 넓었다. 통유리창 밖으로 강림시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도시의 불빛이 끝없이 이어졌다.소파는 옅은 회색 패브릭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갓 꽂은 흰 백합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TV 벽은 대형 세라믹 패널로 마감돼 있었고 군더더기 없는 직선이 깔끔했다.하유는 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살짝 만졌다. 소재부터 고급스러웠다.집 안 곳곳에서 세심하게 준비한 흔적이 느껴졌다.하유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채소, 과일, 생선과 고기까지 종류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리도 완벽했다.하유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민정이 즐겨 마시는 수입 생수까지 한 줄 가득 들어 있었다.하유는 냉장고 앞에 서서 안을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어 안방으로 향했다.안방은 넓었다. 침구는 안개 낀 듯한 푸른빛 실크 세트였고 베개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협탁에는 따뜻한 노란빛 스탠드가 있었고 옆에는 책까지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누군가 이미 살다 간 것 같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누가 들어와 살기만을 기다리는 공간 같기도 했다.드레스룸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는 이번 시즌 새 옷들이 가득했고 택도 그대로 달려 있었다.하유는 몇 벌을 대충 넘겨봤는데, 사이즈는 전부 M이었다.하유에게 맞는 치수가 아니었다.하유는 S 사이즈를 입었다. 손을 거두고 드레스룸에서 나왔다.복도 끝에는 서재가 있었다. 책상 위에 노트북과 만년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펜 뚜껑에는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민.’하유는 만년필을 들어 잠깐 바라보다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서재에서 나와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현주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어때?”하유는 소파에 앉았다.“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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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하유는 집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노트북을 켜서 부동산 거래 플랫폼에 접속한 뒤 이 집을 매물로 등록했다.처리를 모두 끝내고 키와 가방을 챙겨서 문을 나섰다.하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곳에서는 단 하루도 자고 싶지 않았다. 집 안의 모든 것이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편하게 차지하게 두고 싶지도 않았다.자기 집으로 돌아오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명온재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마음만큼은 훨씬 편했다.곧바로 욕실에서 씻고 침대에 누웠다.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자 가슴 한쪽은 여전히 아렸다.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새 메일 알림이 떴다.하유가 확인하자 눈이 바로 밝아졌다.지원 서류가 통과됐다는 안내와 함께 면접 일정이 적혀 있었다.GB그룹.강림시에도 핵심 계열사가 있고, 본사는 울태시에 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사업 영역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었고 주얼리 디자인은 수많은 부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 작은 부문조차 업계 최상위권이었다.GB그룹에 들어가는 건 수많은 디자이너가 꿈꾸는 일이었다.‘내가 서류를 통과했다고?’하유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불을 끈 뒤 눈을 감았다.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했다.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지나간 일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다음 날.하유는 약속된 시간에 GB그룹 사옥에 도착했다.강림시에서도 가장 번화한 업무 지구였다.하유는 건물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숨을 고른 뒤 안으로 들어갔다.로비에서 안내 직원에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담당 직원이 하유를 23층 면접실로 데려갔다.안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여자 두 명, 남자 한 명. 모두 정장을 입고 표정은 진지했다.가운데 앉은 안경 쓴 여성이 하유를 위아래로 살폈다.“심하유 씨, 이력서는 확인했습니다. 울태대학교 주얼리디자인 전공, 4년 연속 수석이네요.”여성은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 하유를 봤다.“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관련 업계 경력이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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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면접실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안경을 쓴 면접관이 파일을 덮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심하유 씨, 합격입니다.”“잠시 후 인사팀 직원이 입사 절차를 안내할 겁니다.”하유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지만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했다.“감사합니다.”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한 뒤 면접실을 나왔다.문이 닫히자 하유는 주먹을 꼭 쥐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됐어!”...면접실 안.안경 쓴 면접관은 책상 위 자료를 정리해 파일철에 넣었다.잠시 뒤 대표실 비서팀 직원이 들어와서 대표가 요청한 자료가 준비됐는지 물었다.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파일철에서 얇은 서류 한 묶음을 꺼냈다.“이것도 같이 전달해 주세요.”비서팀 직원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GB그룹 사옥 최상층 대표실.남훈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앞쪽 대형 모니터에는 분기 실적 보고가 떠 있었다.남훈의 전담 비서 박현준이 노크한 뒤 들어왔다. 손에는 여러 서류가 들려 있었다.“대표님, 오늘 직접 확인하셔야 할 안건입니다.”남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두고 가.”현준은 서류를 책상 위에 놓고 하나씩 펼쳤다.그중 신입사원 면접 평가표 한 장이 섞여 있었다.현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왜 여기 들어왔지?”혼잣말을 하면서 빼내 다른 파일에 끼우려던 때였다.남훈이 고개를 들었다. 평가표에 붙은 사진이 시야에 들어오자 손가락이 멈췄다.큰 종이에는 목걸이 디자인 스케치도 첨부돼 있었다.디자인 선은 단정하고 과감했고, 세부적으로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정교함도 배어 있었다.남훈이 손을 내밀었다. 현준은 바로 뜻을 알아듣고 평가표를 건넸다.남훈은 앞뒤로 서류를 넘기고 완성품 사진까지 봤다.사파이어와 문스톤 조합 자체는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체인의 곡선과 전체 비율은 완벽에 가까웠다.보석 하나하나의 위치가 세밀하게 계산돼 있었다. 만약 여기에 하나만 더해도 답답하고, 하나를 빼면 허전할 정도였다.남훈의 시선이 디자인 스케치 오른쪽 아래 서명에 머물렀다.두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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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하유는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에 손을 올리고 곧바로 수정에 들어갔다.곡선 비율을 조금 바꾸고, 보석이 들어갈 위치도 2밀리미터 정도 뒤로 옮겼다.수정한 뒤 다시 봤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되돌리고 또 손을 봤다.한 번, 두 번, 세 번.창밖의 빛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사무실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다.하유는 그것도 모른 채 작품을 계속 고쳤다.수없이 수정한 끝에 화면 속 시안이 마침내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졌다.하유는 길게 숨을 내쉬고 출품 페이지를 열어서 수정본을 올렸다.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비로소 페이지를 닫고 일어나 짐을 챙겼다.사무실은 이미 대부분 비어 있었다.하유는 가방을 들고 자기 자리의 조명을 끈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하유는 고개를 들었다가 멈칫했다.안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검은 정장, 큰 키,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이목구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함부로 마주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구남훈...’하유는 잠깐 사고가 멈춘 듯했다.TV와 기사에서 본 얼굴이었다.GB그룹 대표이자 구씨 집안의 후계자.승호의 먼 친척이기도 했고, 우씨 집안 사람들이 입만 열면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하유는 우씨 집안에 들어가 6년을 살았지만 남훈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승호는 집안 모임에는 하유를 거의 데려가지 않았다.우씨 집안에서 하유는 밥하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일 뿐이었다.하유는 생각을 거두고 반걸음 옆으로 비켰다.“대표님, 안녕하세요.”남훈의 시선이 하유에게 닿았다가 곧 떨어졌다.“응.”조용히 답했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남훈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하유는 남훈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아래로 내려가는 숫자를 바라봤다.묘하게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우씨 집안에 들어간 6년 동안 승호의 친척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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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전화를 끊은 하유는 별생각 없이 핸드폰 알림을 확인했다.부재중 전화도, 읽지 않은 메시지도 없었다.승호는 연락하지 않았다.딸 지연에게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하유는 화면을 잠깐 바라보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욕실에서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웠다.불을 끄자 방 안은 완전히 어두워졌다.하유는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다음 날.깨끗한 셔츠를 입고 옅게 화장한 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택시를 타고 우씨 집안 본가로 곧장 향했다.요금을 내고 차에서 내렸다.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검은 고급 세단 한 대가 옆을 지나서 대문 반대편에 멈췄다.차 문이 열리며 지연이 내렸다.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는 모습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몇 걸음 가던 지연은 하유를 발견하자 눈을 반짝였다.하지만 곧 입을 꼭 다물고 표정을 굳혔다.‘역시 엄마가 오늘은 왔네.’‘본가에 오는 날이면 엄마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잖아.’‘할머니 말도 잘 듣고 고모가 시키는 것도 다 해 줬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만들었는데...’‘그런데 엄마는 며칠째 나에게 밥도 해 주지 않았어!’지연은 화가 났다.‘할머니랑 고모한테 엄마가 얼마나 나쁜지 다 말할 거야. 그럼 엄마도 곤란해지겠지.’지연은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렸다. 턱을 든 채 하유 앞을 그대로 지나갔다.하유는 그 자리에 서서 아이의 작은 뒷모습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봤다.손끝에 힘이 들어갔고 가슴이 얇게 베이는 듯 아팠다.한참 뒤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심하유.”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하유가 멈춰 돌아봤다.승호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검은 코트를 입은 모습은 차갑고 단정했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거리감이 묻어났다.“그 집, 네가 팔 수 있는 물건 아니야.”하유는 자연스럽게 주먹을 쥐었다.하유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마음대로 처분하기 어렵다는 걸.매물로 올린 건 작은 반항에 가까웠다.승호가 화가 났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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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하유가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 소파에는 시어머니 엄정숙이 지연을 품에 안고 있었고, 옆에는 세진이 기대 앉아 있었다.승호는 옆의 1인용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가끔 딸을 바라볼 때마다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렸다.누가 봐도 화목한 가족의 풍경이었다.하유는 숨을 고르고 다가가 말했다.“어머님, 저 왔습니다.”엄정숙은 하유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지연만 바라봤다.“우리 지연이 참 착하지. 할머니는 지연이가 제일 좋아.”엄정숙은 지연의 볼을 잡고 뽀뽀했다.지연도 하유 쪽은 보지 않았다. 통통한 팔로 엄정숙의 목을 안았다.“저도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세진이 가까이 붙었다.“지연아, 고모도 좋아한다고 해 줘. 고모가 사탕 사 줄게.”“고모도 좋아.”지연이 얌전히 말했다.세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착하네. 네 엄마보다 훨씬 낫다.”말을 마친 뒤 하유 쪽을 힐끗 봤다.하유는 손에 힘을 주었지만 상대하지는 않았다. 빈자리를 찾아 조용히 앉았다.세진은 하유를 한번 보고 비웃었다.“엄마, 새언니 요즘 진짜 대단해. 밖에서 우리 집안 이름 팔고 다니는 데 재미 붙였나 봐. 태온호텔에서 밥 먹으면서 줄도 안 섰다니까?”엄정숙의 눈이 커졌다.“뭐? 태온호텔? 거기는 1인당 수백만 원은 기본인 곳이잖아. 돈도 안 버는 사람이 무슨 낯으로 거기서 밥을 먹어?”“여자가 집안 살림을 맡았으면 분수를 알아야지. 앞으로 집 돈 한 푼도 함부로 쓰지 마.”하유는 눈을 내리깔았다.매일 일찍 일어나 늦게 자고, 요리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봤다. 6년 동안 이 집에서 돈 한 푼 받지 않는 가사노동자로 살았다.그 끝에 듣는 말은 돈도 못 버는 사람이라는 비난이었다.하유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웃음은 희미했다.반박할 생각은 없었다.이 집 사람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한마디 받아치면 끝도 없이 이어질 뿐이었다.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었다.엄정숙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인상을 썼다. 컵을 내려다보다 하유를 향해 말했다.“차 식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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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하유가 고개를 들었다. 채화경이 계단 쪽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채화경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엄정숙과 세진을 차례로 바라보며 매섭게 말했다.“시어머니면 시어머니답게 굴고 시누이면 시누이답게 굴어야지. 매일 며느리 흠을 잡는 것밖에 할 줄 모르니? 남들이 알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엄정숙이 입을 열려고 했지만 채화경의 시선 한 번에 곧바로 말을 삼켰다.채화경은 콧방귀를 뀌고 승호를 바라봤다.“네 아내가 저렇게 무시당하고 있는데 넌 앉아서 보고만 있어? 한 마디도 못 해?”승호는 핸드폰을 쥔 손이 멈칫하면서 표정이 어두워졌다.하유는 ‘네 아내’라는 말에 가슴이 찔리는 것 같았다.예전에는 누군가 두 사람을 부부라고 부르면 혼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이제는 오히려 듣기 불편했다.엄정숙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어머님, 승호는 제 아들이에요. 당연히 제 편을 들어야죠. 남의 편을 들 이유가 어디 있어요?”채화경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남이라고?”“하유가 승호랑 결혼했으면 둘은 한 가정이야. 네가 며느리를 괴롭히는 게 네 아들 괴롭히는 것과 뭐가 달라?”“아내가 밖에서 욕을 먹으면 남편도 같이 욕먹는 거야. 너도 이 집에 시집온 며느리면서 누구더러 남이라는 거니?”엄정숙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하유가 일어나 채화경에게 다가가 부축했다.“할머니, 화내지 마세요.”채화경은 하유의 손을 토닥이며 한숨을 쉬었다.하유는 채화경을 소파에 앉히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올려다봤다.“할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하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무슨 일이니?”하유는 승호를 한 번 바라봤다.승호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쪽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시선을 거둔 하유가 숨을 고른 뒤 말했다.“할머니, 저 승호 씨와 이혼하려고 해요.”채화경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급히 소파 팔걸이를 붙잡았다.“뭐라고?”하유가 채화경의 팔을 받치고 다시 말했다.“할머니, 저 승호 씨하고 이혼할 겁니다.”거실이 조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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