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끝내 내 차례가 왔다: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하유가 승호를 올려다봤다.“난 받아들일 수 없어. 재산은 절반씩 나누는 조건만 받아들일 거야.”승호는 차갑게 비웃었다.“네가 받아들이고 말고 할 일이 아니야.”두 걸음 앞으로 다가온 승호가 하유를 내려다봤다.“네가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엄정숙이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재산 절반을 달라고? 꿈도 야무지네!”“어디 작은 동네에서 온 가난한 애가 우리 집안에 시집온 것만 해도 평생 운 다 쓴 줄 알아. 2억 원도 넘치게 주는 거야. 욕심 부리지 마.”하유는 엄정숙을 바라봤다. 옆으로 내린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그때 채화경이 소파 팔걸이를 강하게 내리쳤다.“그만!”엄정숙이 놀라 목을 움츠렸다.채화경은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정말 이혼한다면 하유도 재산 절반을 받을 권리가 있어.”채화경은 엄정숙을 똑바로 바라봤다.“잊었니? 예전에 네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하유가 바로 발견해서 응급처치하고 직접 업어서 내려갔어. 의사가 10분만 늦었어도 위험했다고 했지.”엄정숙은 입을 열었다. 잠깐 어색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 목에 힘을 줬다.“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죠! 하유가 아니었어도 의사가 치료했을 거예요. 오히려 더 잘했을지도 모르고요.”하유는 어이없다는 듯 살짝 웃었다.3년 전, 엄정숙은 한밤중에 갑자기 심장 쪽에 이상이 생겼다. 마침 지연에게 물을 주려고 일어났던 하유가 상태를 가장 먼저 발견했다.그날 집에는 다른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하유는 그동안 익혀 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응급처치를 해서 엄정숙의 상태를 일단 안정시켰다. 그런 뒤 체격이 큰 엄정숙을 3층에서 직접 업고 내려와서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시어머니의 목숨까지 지켜 냈다.그런데 결국 돌아온 말은 그저 운이 좋았다는 소리였다.채화경은 화가 나 손까지 떨었다.“그게 사람이 할 말이니?”“어머님, 자꾸 하유 편만 들지 마세요.”엄정숙이 다시 말하려 했다.“됐어!”채화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너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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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하유는 딸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실은 피한다기보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지연은 겨우 5살이지만 주변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줄 알았다. 할머니가 엄마를 싫어하고, 아빠도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모까지 엄마를 무시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니까 나도 엄마를 좋아하면 안 돼.’‘엄마는 창피하니까.’지연은 고개를 들고 통통한 팔로 엄정숙의 목을 감았다.“할머니.”“그래, 우리 예쁜 손녀.”엄정숙은 지연의 볼에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웃었다.지연도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면서 다시 엄정숙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엄정숙은 지연을 안고 살짝 흔들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우리 손녀는 다행히 아빠를 닮았네. 누구처럼 뻔뻔하고 궁상맞은 성정은 안 물려받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 집안에 그런 사람이 들어온 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었지.”일부러 하유 쪽을 흘겨보며 한 말이었다.하유의 손이 꽉 쥐어졌다.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듯 아팠다.자신이 낳은 딸이었다.직접 키우며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던 아이였다.그 아이가 이제는 매일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 품에서 더 편하게 웃고 있었다.하유는 숨을 고른 뒤 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주변을 둘러보니 저택은 어디를 봐도 화려하고 부유해 보였다.하지만 그중 하유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됐어.’‘이제 정말 상관없어.’하유는 벽시계를 올려다봤다.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채화경과 승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을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2억 원만 받고 나가는 조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승호와 다시 이야기해야 했다.하유는 가방을 챙기고 위층으로 올라가서 서재 쪽으로 향했다.하지만 서재는 비어 있었다. 채화경도, 승호도 보이지 않았다.하유는 미간을 좁히고 밖으로 나왔다. 쿵!어디로 갔는지 찾으려던 때 채화경의 안방 쪽에서 소리가 났다.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였다.하유는 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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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가장 먼저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승호였다.눈을 감고 누워 있는 할머니를 보자 승호의 눈이 커졌다.“무슨 일이야?”하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엄정숙이 뒤에서 밀고 들어왔다.눈앞의 상황을 보고 잠깐 멈췄다.“어머님 왜 이래? 심하유, 네가 무슨 짓을 한 거야?”하유는 채화경의 손을 놓고 일어났다.“중독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최 원장님 불렀고 곧 도착하실 거예요.”“중독?”엄정숙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유를 똑바로 노려봤다.“멀쩡하시던 분이 왜 갑자기 중독이 돼?”맞는 말이었다.‘멀쩡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중독됐을까?’하유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엄정숙을 바라봤다.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엄정숙은 몸을 살짝 움츠렸다. 시선도 피하면서 하유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아주 짧게 불안한 기색이 눈에 스쳤다.하유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가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승호는 몸을 숙여 할머니의 맥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최 원장님 오셨습니다.”가사도우미가 문 앞에서 알렸다.최빈이 가방을 들고 빠르게 들어와 채화경을 진찰했다.눈 상태를 보고, 맥을 짚고, 혈압도 측정했다.몇 분 뒤 최 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표정은 진지했다.“중독이 맞습니다. 섭취한 양이 많지는 않아서 심각한 단계는 아니고, 이미 독성 작용을 늦추는 약을 복용하셔서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가방을 열어 주사제를 꺼냈다.“우선 해독 처치부터 하고 경과를 보겠습니다.”주사제가 들어간 뒤 채화경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됐다.최빈이 몸을 바로 세웠다.“지금 상태는 안정됐지만 병원으로 옮겨서 추가 검사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모두가 한숨을 돌렸다.엄정숙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원장님, 무슨 독 때문에 이러신 거죠?”최빈은 잠시 생각하고 답했다.“음식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증상만 보면 식물성 알칼로이드 계열 독성 물질과 비슷합니다.” “관상식물 수액이나 특정 약초류에서 나올 수 있는데, 정확한 성분은 검사해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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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하유의 가슴이 꽉 움켜쥐어진 듯 아팠다. 딸을 바라보며 목이 메는 걸 억눌렀다.“지연아, 엄마가 독을 타는 걸 네가 직접 봤어?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엄마한테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거야?”지연은 멈칫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곧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가 그랬어! 할머니가 엄마 나쁜 사람이랬어. 그러니까 엄마가 나쁜 사람이야!”하유는 가슴 위로 무거운 돌이 내려앉은 듯 숨이 탁 막혔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정리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지연을 보며 씁쓸하게 웃은 뒤 방 안 사람들을 바라봤다.“CCTV 확인하죠.”엄정숙이 당황했다가 곧 비웃었다.“뭘 확인해? 네가 독을 탄 증거가 이렇게 뻔한데.”“다들 제가 했다고 확신하잖아요.”하유가 또박또박 말했다.“그럼 CCTV를 확인하면 되죠. 누가 한 건지 정확히 보게.”승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CCTV는 고장 났어.”‘고장이라고?’하유는 승호의 눈을 바라봤다.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눈에는 아무 흔들림도 없었다.하유가 조용히 웃었다.“그럼 경찰 부르죠.”엄정숙의 표정이 변했다.“미쳤니?”세진도 소리쳤다.“경찰을 왜 불러? 우리 집안 망신을 더 시키려고?”승호도 미간을 더 깊게 찌푸렸다.“집안일을 밖으로 끌고 나갈 필요 없어.”하유는 승호를 바라보다 웃었다.“집안 망신? 나한테 독을 탔다고 몰아갈 때는 집안 망신 걱정이 안 됐어?”“난 내가 하지 않았다고 했어. 다들 못 믿겠다면 경찰이 확인하게 하면 돼. 누가 독을 넣었는지 조사하면 끝날 일이야. 잘못한 사람이 책임지면 되고.”하유는 핸드폰을 꺼내서 신고 번호를 누르려 했다.“감히!”엄정숙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경찰 부르면 승호한테 너한테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할 거야!”하유는 엄정숙을 바라봤다.“상관없어요.”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때였다.“제가 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가사도우미 장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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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하유는 입술을 다물었다.“할머니, 이 일은...”“알아.”채화경이 하유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을 끊었다.“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채화경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몸을 바로 세웠다.“김 집사.”오래 일한 김숙이 밖에서 들어왔다.“장미란 급여 정산해 주고 오늘 안으로 내보내.”무릎 꿇고 있던 장미란이 급히 머리를 숙였다.“회장님,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내쫓지 말아 주세요.”채화경은 손을 들고 그만하라는 뜻을 보였다.김숙은 장미란을 일으켜 거의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울음소리는 점점 멀어졌다.채화경의 시선이 다시 엄정숙에게 향했다.“승호 에미야.”엄정숙의 얼굴이 하얘졌다. 억지로 웃었다.“어머님, 지금은 쉬세요. 말씀하지 마시고...”“내일부터.”채화경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 하나하나에 힘이 있었다.“회사에 이름만 걸어 두고 있는 자리, 전부 정리해.”엄정숙의 웃음이 굳었다.“어머님! 저도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어요. 공이 없더라도 고생한 건 있잖아요.”“무슨 고생을 했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 내가 자료까지 꺼내 보여줘야 하니?”채화경이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자 엄정숙은 더 말하지 못했다.“세진아.”세진이 몸을 움찔했다.“할머니...”“지금부터 내년 오늘까지 용돈은 전부 끊는다.”세진의 눈이 커졌다. 입을 벌리고 항의하려다가 채화경의 표정을 보고 억지로 삼켰다.“하나 더.”채화경은 더 엄한 눈으로 세진을 봤다.“네 새언니한테 사과해.”세진의 표정이 굳어졌다.“지금. 바로.”거절할 수 없는 어조였다.세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억울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래도 채화경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는 더 버티지 못했다.한참 뒤에야 하유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미... 안... 해.”목소리는 작고 딱딱했다.사과라기보다는 억지로 굴욕을 참는 태도에 가까웠다.말을 마치자 하유를 매섭게 노려봤다.하유는 눈도 들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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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하유는 잠깐 망설였지만 곧 다가가서 침대 옆에 앉았다.채화경은 안쓰러운 눈으로 하유를 바라봤다.“많이 힘들었지?”하유가 고개를 저었다.“할머니, 저 괜찮아요.”“뭐가 괜찮아.”채화경은 손을 뻗어 하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네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6년이야. 이 늙은이가 다 봤어. 넌 좋은 아이야. 잘못한 건 우리 우씨 집안이야.”하유의 눈가가 따끔해졌다. 눈을 내리깔고 감정을 눌렀다.“그 못난 녀석.”채화경은 승호 이야기를 꺼내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내 손자니까 성격을 내가 잘 알지. 본성은 나쁜 놈이 아닌데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누가 진심으로 잘해 주는지는 못 보고, 문제 일으키는 사람을 또 그렇게 감싸.”하유는 입술을 다물었다.채화경은 한숨을 쉬고 하유의 손을 잡아 토닥였다.“네가 이혼하고 싶다면 할머니는 네 편이야.”하유가 고개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채화경은 진지한 눈으로 하유를 바라봤다.“승호는 네 인생을 다 걸 만큼 좋은 남자가 아니야. 우씨 집안을 떠난 뒤에는 네 삶을 살아. 할머니는 네가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하유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6년 동안 시어머니에게 모욕을 당하고, 시누이에게 무시당했다. 남편에게 외면받고, 딸에게까지 싫다는 말을 들어도 절대 울지 않았다.그런데 채화경의 몇 마디에 6년 동안 마음 안에 쌓아 둔 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채화경이 하유의 손등을 두드렸다.“고맙기는.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지. 내 목숨을 네가 살렸잖니.”하유가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할 일이었어요.”“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채화경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넌 내 목숨을 살려줬는데 나는 널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어. 할머니가 미안하다.”하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손으로 얼굴을 닦고 숨을 고른 뒤 일어났다.“할머니, 푹 쉬세요. 저는 먼저 갈게요.”채화경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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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지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참 생각하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엄마 둘 다 있으면 안 돼? 혜원 엄마는 나랑 놀아 주고, 엄마는 맛있는 거 해주면 되잖아. 그게 왜 안 돼?”하유의 가슴이 깊게 베이는 듯 아팠다.아이답고 솔직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오히려 하유의 마음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열 달 동안 품어 낳은 딸을 바라보며 하유는 살짝 웃었다.“사람이 원하는 걸 전부 가질 수는 없어. 엄마도 하나뿐이야. 너도 하나만 골라야 해.”지연은 멍하니 서 있었다. 눈가가 천천히 붉어졌다.하유의 눈을 바라봤지만 무서울 만큼 차분했다. 예전처럼 자신만 바라보는 온기가 보이지 않자 지연은 겁이 났다.입을 열고 ‘엄마를 고를래’라고 하려 했다.하지만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혜원은 사탕을 사 줬다. 밤늦게까지 애니메이션도 같이 봐 줬고 맛있는 곳에도 데려갔다. 그리고 지연에게 잔소리하지도 않았다.반면 하유는... 사탕도 못 먹게 하고, 애니메이션 보는 시간도 정해 놓고,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았다.‘엄마는 너무 귀찮게 해.’지연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하유는 잠시 기다리다가 몸을 돌렸다.“알았어.”더는 딸을 보지 않고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갔다.지연은 제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엄마의 등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다. 엄마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이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엄마는 다시 오겠지?’예전에는 지연이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가 늘 돌아왔다.‘이번에도 분명 돌아올 거야.’지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코를 훌쩍였다. 몸을 돌려 할머니 방으로 뛰어갔다....하유가 막 택시를 잡았을 때 뒤에서 승호가 따라왔다.“심하유, 아직 서명 안 했어.”평소와 다름없이 차가운 목소리였다.하유의 마음도 차갑게 굳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두 사람 중 딸은 다른 여자를 엄마로 삼고 싶어 했고, 남편은 첫사랑을 위해 자신과 이혼하려고 했다.‘됐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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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하지만 하유는 정말 예전 같은 삶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승호도, 지연도 더는 붙잡지 않기로 했다.승호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네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알아. 아이는 당신이 맡아. 잘 키워.”하유는 망설이지 않았다.승호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심하유, 나한테는 밀당 안 통해.”하유는 작게 웃었다.‘이 사람은 정말 자기 중심적이네.’하유가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재산 조건 다시 정리하고 아이 양육권은 당신이 갖는 걸로 작성해. 다 만들면 나한테 보내.”말을 마친 하유는 택시 문을 열고 올라탔다.승호는 멀어지는 차를 계속 바라봤다. 눈빛이 싸늘하게 굳었지만 표정은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하유는 뒷좌석에 앉은 채 반쯤 열린 창문 밖을 바라봤다. 가로등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되풀이됐다.숨을 깊게 쉬었지만 가슴은 답답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하유가 화면을 내려다봤다.임정한.이름 세 글자를 잠시 바라보다 받지 않았다.친가에 돌아간 뒤부터 그 집에 갈 때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갈 때마다 누군가의 편을 가르는 싸움이 벌어졌다.혜원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하유를 나쁜 사람으로 보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고, 친부모는 늘 혜원 편이었다.전화가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하유는 숨을 고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유야, 어디니? 오늘 저녁 집에 와서 밥 먹자.]친모 문혜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투는 다소 무심했다.“엄마, 요 며칠 일이 좀 있어요. 다음에 갈게요.”하유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 너머로 친부 임정한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집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어? 밥 한 끼 먹을 시간도 없다는 거야?]하유는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정말 시간이 없어서...”[네 양아버지 직장 말이야. 내가 거기 윗사람하고 좀 친하거든.]임정한이 하유의 말을 끊었다. 느긋한 말투였다.[요즘 내부 승진 심사를 한다던데. 네 양아버지도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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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문혜령이 말을 이어 갔다.“혜원이 드레스를 네가 가져갔다며? 혜원이 공모전에서 입으려고 한 옷인데 왜 굳이 동생이랑 싸워? 네 옷장에 옷도 많잖아.”하유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 드레스는 제 거예요. 혜원이가 제 걸 가져가려고 한 거고요.”혜원의 눈가가 바로 붉어졌다.“언니 말이 맞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오랫동안 언니 자리에서 살았으니까 언니가 날 싫어하는 것도 당연해...”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문혜령은 마음이 아픈 듯 혜원을 품에 안고 하유를 노려봤다.“혜원이 뭘 잘못했는데? 그동안 이 아이가 우리 곁에 있어 줬으니까 우리가 버틴 거야!”하유는 가만히 선 채 손가락을 하나씩 움켜쥐었다.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가슴은 여전히 아팠다.하유가 문혜령을 바라봤다.“그래서 저는 언제나 다 양보해야 해요? 예전에는 아버지랑 엄마를 양보했고, 지금은 제 딸까지 그랬어요.” “맛있는 것, 좋은 물건, 집에서 저한테 준 차도 혜원이 한마디 하면 다 가져갔잖아요. 아직도 부족해요?”“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임정한이 식탁을 세게 쳤다.“네가 언니니까 동생한테 양보하는 게 당연하지. 드레스 한 벌 가지고 왜 이렇게 속이 좁아?”하유는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남자를 바라봤다. 마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식어 갔다.“그 드레스는 저한테도 중요해요.”하유는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저도 참가할 공모전이 있어요. 그 옷은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너...”임정한이 화가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유야, 이제 정말 제멋대로 하겠다는 거냐?”문혜령도 표정을 굳혔다.“너 예전에는 안 이랬잖아. 왜 이렇게 철이 없어졌니?”하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이 집에서는 하유가 틀린 사람이 될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임정한은 하유가 말없이 서 있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이렇게 말도 안 들을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널 찾지 말 걸 그랬다! 네 양아버지가 대체 너를 어떻게 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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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임정한은 입을 열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혜령도 침묵했다. 입술만 가볍게 떨렸다.혜원도 무슨 문서인지 궁금해서 가까이 오려고 했다. 하지만 임정한이 바로 서류를 접어 치우면서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다.혜원은 물어보려다가 분노한 임정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하유가 임정한을 제대로 화나게 만들었다.‘진짜 미쳤나 봐. 어떻게 부모한테 저럴 수 있어.’하지만 혜원의 속마음은 달랐다.‘그래. 더 미쳐 봐. 그래야 좋지.’임정한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래서 대체 뭘 원하는 거야?”하유가 임정한을 바라봤다.“원하는 거 없어요. 제 양아버지한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이 자료도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거예요.”“너...”임정한은 손가락으로 하유를 가리켰다. 손이 심하게 떨리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지만, 한참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문혜령도 화가 나 온몸을 떨었다. 입술을 떨며 날카롭게 말했다.“하유야, 너... 너 정말 부모도 모르는 애구나!”하유는 입술을 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 곧바로 돌아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뒤에서는 임정한이 찻잔을 내던지는 소리와 문혜령의 울음 섞인 날카로운 욕설 소리가 들렸다. 하유는 옷깃을 여미고 계속 걸었다.임정한이 양아버지 문제로 하유를 협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친가에 처음 돌아온 뒤부터, 임씨 가족은 갖가지 말로 하유를 가스라이팅하면서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유가 말을 듣지 않으면 늘 양부모를 건드렸다. 하유도 결국 언젠가는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임정한의 노트북 시스템에 몰래 접속해 계정 기록과 내부 자료를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불법·규정 위반 증거를 찾아 따로 보관해 뒀다.예전에는 그래도 친부모라는 생각 때문에 그 증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이제는 너무 지쳤다.툭하면 임씨 가족의 협박을 받고, 아무 조건 없이 혜원에게 모든 걸 양보하라는 요구도 더는 견디고 싶지 않았다.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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