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내 차례가 왔다

끝내 내 차례가 왔다

By:  마음봄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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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사고를 계기로, 심하유는 자신의 재능을 숨긴 채 파산 직전이던 우승호와 결혼했다. 세상에 알리지 않은 결혼 생활이 어느덧 5년. 집안일과 어린 딸을 홀로 돌보는 동안에도 하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승호를 도왔고, 결국 정상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교통사고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하유는 자신의 손으로 키운 딸을 구하려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남편과 딸은 손가락에 가벼운 상처를 입은 여동생부터 봐 달라며 의사를 데리고 가 버렸다. 5년 동안 딸에게 밥을 해 주면서도 맛있다는 말 한마디 들어 본 적 없던 하유. 그런데 딸은 직접 이모에게 죽을 떠먹여 주고, 심지어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승호는 아예 하유의 방까지 비워서 여동생에게 내주라고 했다. 그날, 하유는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하유는 곧바로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이혼합의서를 준비했다. 하지만 승호는 또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유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왔잖아.” 승호가 흔들리는 사이, 하유는 오래전에 내려놓았던 꿈을 다시 붙잡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세월이 흘러, 기술 문제로 마비된 승호의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몰렸을 때. 하유는 이미 세계적인 무대에서 여러 최고 권위의 상을 휩쓴 뒤였다. 새 집 앞에서, 한때 엄마는 아무것도 못 한다며 싫어하던 딸이 울면서 달려들었다. “엄마, 나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하유를 받아 주겠냐고 말했던 전남편 역시 초라한 몰골로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 돌아와 주면 안 될까?” 하지만 하유는 미소를 지으면서 곁에 선 남자의 팔을 잡았다. 왼손 약지에는 새 결혼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소개할게. 내 남편이야.” 그리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이제 SW그룹의 새 주인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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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삼하유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몸속의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듯했다.

눈이 시릴 만큼 밝은 수술등 탓에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지만, 하유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출입문만 바라봤다.

30분 전, 하유는 유치원에서 딸 우지연을 데리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가 그대로 돌진해 왔을 때 하유는 본능적으로 딸을 밀쳐 냈다.

지연은 살았지만 대신 하유가 차에 치여서 날아갔다. 핏속에 쓰러진 뒤,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지금 하유는 병원 응급처치실에 실려 와 있었다.

침상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연도 보이지 않았다.

‘지연이는 괜찮을까? 어디 다친 데는 없겠지...’

딸을 확인하러 가려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온몸이 침대에 못 박힌 듯 움직일 때마다 살이 찢기는 고통이 밀려왔다.

“엄마...”

어디선가 지연이 우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하유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막 대답하려는데, 커튼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쪽입니다. 빨리 와주세요.”

남편 우승호의 목소리였다.

늘 그렇듯 차갑고 낮았지만 평소와 달리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곧이어 지연의 어린 목소리도 들렸다.

“선생님, 거기 아니에요. 이쪽이에요...”

하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은 힘을 짜내서 커튼을 걷었다.

승호와 지연은 의사를 붙잡고 옆 병상 쪽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1번 병상의 환자 상태가 더 위급합니다. 먼저 저쪽 환자부터...”

“안 돼요!”

지연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우리 엄마는 괜찮아요. 피도 조금밖에 안 났고 엄마는 엄청 튼튼해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이모가 저 차에 태워 주다가 손가락을 다쳤단 말이에요. 엄청 아플 거예요. 이모부터 봐 주세요...”

‘이모?’

하유는 기억을 더듬었다. 사고 직후 딸을 밀쳐 냈을 때, 한 여자가 달려와 지연을 일으켜 세웠다. 아마도 그때 다친 모양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흐릿한 시야 너머로 사람들이 문 앞을 지나갔다.

키 큰 승호의 실루엣,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지연의 작은 머리가 보였다.

두 사람은 의사를 재촉하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결국 끝까지 누구도 하유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유는 입을 벌리고 부르고 싶었다.

자신은 아직 여기 누워 있다고, 의사가 필요하다고.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이 꽉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비릿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치솟더니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 뒤로 의식이 끊어졌다.

...

다시 눈을 뜬 건 이틀 뒤였다.

하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병실은 텅 비어 있었다. 여전히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도 온몸이 산산이 부서졌다가 다시 붙인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몸 곳곳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팔과 다리에는 깁스까지 되어 있었다.

목이 말랐다. 침대 옆 탁자에 물컵이 놓여 있었다.

손을 뻗어서 손끝으로 컵을 건드렸지만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몸을 일으켜 보려다 극심한 통증에 식은땀이 쏟아졌다.

결국 하유는 다시 침대 위로 무너졌다.

문밖으로 누군가 지나갔다. 사람을 부르려던 하유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먼저 듣게 됐다.

“VIP 병실 임혜원 씨는 정말 복도 많지. 손가락만 살짝 까진 정도라던데 우승호 대표가 최고 의료진을 다 붙여 줬대. 해외에서 전문의까지 불렀다더라.”

“그러게. 그 어린애도 이제 5살쯤 됐나? 직접 임혜원 씨한테 죽을 먹여 주는데 뜨거울까 봐 한 숟갈씩 후후 불어서 주더라고. 나까지 괜히 뭉클했다니까.”

“임혜원 씨가 우 대표 아내 아니야? 부녀가 그렇게 챙기는 거 보면 완전 한 가족이던데.”

“그런가 봐. 수간호사한테 들었는데, 며칠 뒤 임혜원 씨 퇴원하면 셋이 유럽으로 여행 간대. 가족여행처럼 쉬고 온다던데.”

“...”

발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하유는 사람을 불러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물컵을 향해 뻗었던 손은 허공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반쯤 열린 병실 문을 바라보던 하유는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손가락만 살짝 다친 여자는 VIP 병실에 누워서 최고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아내 하유는 일반 병실에 버려진 채 물 한 모금조차 혼자 마실 수가 없었다.

하유가 손수 키운 딸은 엄마에게는 죽 한 숟갈 불어 준 적도 없으면서, 다른 여자에게는 직접 죽을 먹여주고 있었다.

분명 승호와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는 하유였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눈에는 혜원이야말로 승호가 손안에 품고 아끼는 여자처럼 보였다.

비슷한 일은 이미 수도 없이 많았다.

하유는 진작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이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승호는 하유를 사랑하지 않았다.

결혼한 날부터 승호가 하유에게 보인 건 무관심과 냉담함, 귀찮다는 태도뿐이었다.

하유는 한때 승호가 원래 웃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혜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얼음장 같던 남편이 혜원 앞에서는 웃는 모습을 직접 봤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정했다.

심지어 승호가 쪼그려 앉아 혜원에게 직접 구두를 신겨 주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유는 승호와 6년을 살면서 물 한 잔 받아 본 적도 없었다.

하유도 몇 번이나 이 결혼을 끝내려고 했다.

승호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가 집안의 압박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날의 사고 같은 하룻밤으로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승호는 지금까지도 하유가 약을 써서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믿었다. 하유를 그저 계략만 꾸미는 여자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하유 역시 피해자였다.

설명도 수없이 했지만 승호는 한 번도 믿지 않았다.

하유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진실을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사랑하지 않는 건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오해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합의서까지 작성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끝내 지연을 놓을 수 없었다. 딸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유가 예상하지 못한 건, 딸마저 점점 엄마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유가 열 달 동안 품었고 직접 키운 아이였다.

열이 40도까지 오른 밤에는 하유가 혼자 지연을 안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상대 부모와 따졌다.

편식이 심한 지연을 위해서 매일 메뉴를 바꿔 연구했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죽을 끓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딸의 마음은 점점 멀어졌다.

하유가 사탕을 제한하면 지연은 엄마가 나쁘다며 울었다. 이모는 사탕을 잔뜩 사 준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보는 시간을 정해 두면 엄마가 싫다면서, 이모는 밤새 같이 봐 준다고 했다.

심지어 이모가 자기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하유는 자신을 달랬다.

‘아직 어리니까 그래. 차근차근 가르치면 돼.’

하지만 오늘 하유는 병상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그런데도 딸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하유가 목숨 걸고 구해 낸 딸은 겨우 손가락만 조금 다친 여자를 위해 의사를 데리고 가 버렸다.

하유는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수액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얼굴을 훔친 하유는 숨을 길게 고른 뒤 침대 옆 호출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수액을 갈아주며 상태를 물었다.

하유는 괜찮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간호사가 나간 뒤 하유는 핸드폰을 들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이혼합의서 하나 준비해 주세요. 저 이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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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유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몸속의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듯했다.눈이 시릴 만큼 밝은 수술등 탓에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지만, 하유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출입문만 바라봤다.30분 전, 하유는 유치원에서 딸 우지연을 데리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차가 그대로 돌진해 왔을 때 하유는 본능적으로 딸을 밀쳐 냈다.지연은 살았지만 대신 하유가 차에 치여서 날아갔다. 핏속에 쓰러진 뒤,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지금 하유는 병원 응급처치실에 실려 와 있었다.침상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연도 보이지 않았다.‘지연이는 괜찮을까? 어디 다친 데는 없겠지...’딸을 확인하러 가려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온몸이 침대에 못 박힌 듯 움직일 때마다 살이 찢기는 고통이 밀려왔다.“엄마...”어디선가 지연이 우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하유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막 대답하려는데, 커튼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선생님, 이쪽입니다. 빨리 와주세요.”남편 우승호의 목소리였다.늘 그렇듯 차갑고 낮았지만 평소와 달리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곧이어 지연의 어린 목소리도 들렸다.“선생님, 거기 아니에요. 이쪽이에요...”하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남은 힘을 짜내서 커튼을 걷었다.승호와 지연은 의사를 붙잡고 옆 병상 쪽으로 데려가고 있었다.“하지만 1번 병상의 환자 상태가 더 위급합니다. 먼저 저쪽 환자부터...”“안 돼요!”지연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우리 엄마는 괜찮아요. 피도 조금밖에 안 났고 엄마는 엄청 튼튼해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이모가 저 차에 태워 주다가 손가락을 다쳤단 말이에요. 엄청 아플 거예요. 이모부터 봐 주세요...”‘이모?’하유는 기억을 더듬었다. 사고 직후 딸을 밀쳐 냈을 때, 한 여자가 달려와 지연을 일으켜 세웠다. 아마도 그때 다친 모양이었다.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흐릿한 시야 너머로 사람들이 문 앞을 지나갔다. 키 큰 승호의 실루엣,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지연의 작은 머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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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혜원은 멀어지는 하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억지로 불만을 삼켰다.어금니를 살짝 깨문 뒤 승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형부, 언니가 나랑 옷 가지고 다툰 건 괜찮아. 나는 그냥 언니가 형부랑 지연이한테 저러는 게 마음 아파.”혜원은 눈을 내리깔았다.“오늘 언니는 사람들 앞에서 형부 체면도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잖아. 형부 돈을 쓰면서 그렇게까지 하고...”말을 다 잇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승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시선은 하유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쪽에 머물러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혜원은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곧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면서 지연 쪽으로 몸을 돌렸다.쪼그려 앉으면서 지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지연아, 울지 마. 이모가 집에 가서 맛있는 거 해 줄까? 닭강정이랑 감자튀김, 지연이 좋아하는 콜라도.”지연의 눈이 바로 반짝였다.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었다.“진짜? 나 지금 먹을래!”지연은 혜원의 손을 덥석 잡고 승호의 소매도 끌었다.“아빠, 빨리 집에 가자! 나 맛있는 거 먹을래!”승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지난번 배 아팠던 거 벌써 잊었어?”지연의 웃음이 그대로 굳어졌다. 목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말하지 못했다.혜원은 바로 말을 바꿨다.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이모가 소고기야채죽 끓여 줄게. 잘게 다진 채소도 넣고 고기도 부드럽게 익혀서. 지연이도 분명 좋아할 거야.”승호는 시계를 한 번 봤다.“시간이 늦었어. 너는 먼저 들어가.”혜원은 멈칫했다. 표정이 무너지려는 걸 가까스로 감추고 지연을 내려다봤다.지연은 혜원의 손을 놓지 않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승호가 무심하게 시선을 보내자 지연은 마지못해 손을 놓았다.“이모, 잘 가.”혜원은 멀어지는 부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꽉 쥐었다. 눈에는 억눌린 증오가 번졌다.‘별빛 나라는 반드시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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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갑자기 룸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을 보면서 하유와 현주 모두 멈칫했다.세진은 하유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새언니, 진짜 뻔뻔하시네. 나는 아래에서 줄 서고 있는데 언니는 여기서 벌써 밥을 먹고 있어?”세진은 다리를 꼬고 턱을 높이 들었다.“빨리 일어나. 나랑 나경이 밥 먹게 좀 챙겨. 눈치가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살아?”나경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유를 곁눈질하며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는 표정이었다.지난 몇 년 동안 하유는 시댁에서 온 가족의 시중을 들었다. 누구나 하유에게 이래라저래라 했고, 세진의 친구인 나경조차 하유를 제대로 대접한 적이 없었다.하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지만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현주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나려 했다.하유가 고기 한 점을 집어서 현주의 그릇에 놓았다.“괜찮아. 넌 먹어. 내가 할게.”현주가 하유를 돌아봤다. 침착한 눈빛을 확인하자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세진은 하유가 굼뜨게 움직이는 줄 알고 짜증을 냈다. 미간을 찌푸리며 식탁을 세게 쳤다.“말하잖아. 안 들려? 그릇이랑 수저 가져오라고.”하유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세진을 바라봤다. 눈빛은 평온했지만 싸늘했다.“나가.”세진이 멍하니 바라봤다.“뭐?”“나가 달라고.”하유는 또박또박 말했다.“친구랑 식사 중이라 너를 접대할 생각 없어.”세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벌떡 일어나 하유의 코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너? 새언니, 진짜 미쳤어? 돈 한 푼 안 버는 전업주부가 우리 오빠 돈으로 이런 데서 호화롭게 먹으면서 이제 시누이한테 나가라고 해?”목소리는 점점 커졌다.“내가 지금 오빠한테 전화해서 새언니 우리 집안에서 쫓아내라고 할까? 잘해 주니까 분수를 모르네!”현주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입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하유가 손으로 막았다.현주는 말하려다 하유의 뜻을 알아차리고 다시 꾹 참았다.세진은 그걸 하유가 겁먹은 걸로 착각하고 비웃었다.“진짜 자기가 우리 집안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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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하유가 웃었다.“그래서 이제 제대로 봤잖아. 어떤 사람들인지 알았으니까 떠나려고.”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맞아.”잠깐 뒤 현주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그래도 저 둘 때문에 기분 완전 망쳤어. 내가 사람을 불러서 처리할게.”현주가 호출 버튼을 누르려던 때 문밖은 이미 조용했다.소란을 듣고 올라온 호텔 관리자가 직원들을 데리고 와서 세진과 나경에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손님의 식사를 방해하지 말고, 식사를 원하면 아래층에서 차례를 기다리라고 했다. 계속 문제를 일으키면 퇴장 조치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세진은 분해서 화를 내고 싶었다. 우씨 집안의 딸로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그때 고개를 들었다가 한 사람을 봤다.바로 구남훈이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수행원 두 명과 함께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걸이는 느긋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표정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었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묵직한 위압감이 있었다.수도 울태시 재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구씨 집안의 후계자.돈과 권력을 함께 가진 인물이었다.세진은 몇 년 전 승호를 따라 울태시 쪽 모임에 갔다가 남훈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그 남자의 냉담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그런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곧 집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훈은 강림시에도 여러 사업체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서 일 년에 몇 차례 들른다고 했다. 이 호텔 역시 구씨 집안의 소유였다.세진도 자신이 이렇게 운 좋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말이라도 한번 섞으면 여기서 밥 먹고 사진 찍는 것보다 훨씬 부러움을 사겠지.’‘잘하면 심하유와 심하유의 그 친구도 내쫓게 만들 수도 있을 거야!’세진은 바로 화난 표정을 지우고 환하게 웃으며 남훈 쪽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남훈 옆 수행원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세진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금세 다시 미소를 만들었다.“외삼촌!”우씨 집안과 구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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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남훈 일행은 계속 복도를 걸었다.하유가 있는 룸 앞을 지날 때 남훈의 걸음이 미세하게 느려졌다. 고개를 살짝 돌려 유리 벽 너머를 바라봤다.따뜻한 조명이 비치는 룸 안에서 하유는 갈비를 들고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맛이 괜찮았는지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살짝 올라갔다.남훈의 시선은 그 미소에 짧게 머물렀다가 곧 거뒀다.표정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여전히 침착하고 냉정했다....같은 시각, 승호는 지연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은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가사도우미가 다가와서 승호의 코트를 받아 들었다.“대표님, 오셨어요. 저녁 준비해 뒀습니다.”승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한 듯 집 안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아무것도 없었다.표정이 어두워졌다.‘이 여자가... 우리가 일부러 일찍 들어왔는데도 아직도 저러고 있다고?’승호에게는 하유가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가사도우미는 승호가 누구를 찾는지 알아차린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사모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승호는 짧게 대답하고 지연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식탁에는 몇 가지 음식이 놓여 있었고 아직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그런데 보고 있어도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지연이 승호의 손을 당겼다.“아빠, 나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승호는 딸을 내려다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지연을 데리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몸을 기댔다.소파는 부드러운데도 이상하게 불편했다.“혼자 좀 놀고 있어.”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고개를 끄덕인 지연은 장난감을 안은 채 카펫으로 달려갔다.승호는 핸드폰을 들고 하유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신호가 간 뒤 연결됐다.“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승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이 정도 했으면 들어와서 밥해. 애가 배고프대.”전화기 너머에서 하유가 잠깐 말이 없었다. 곧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난 안 돌아가. 이혼합의서나 빨리 서명해. 서명한 뒤 나한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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