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삭제한 AI가 재벌 총수로 나타났다: Capítulo 1 - Capítulo 10

15 Capítulos

01화. 삭제 버튼의 대가

비좁은 고시원 창문을 초가을 비가 사납게 두드렸다.한서우는 스마트폰 화면에 뜬 붉은 버튼을 한참 내려다봤다.[대화형 AI ‘루시안’의 모델과 개인 대화 기록을 영구 삭제하시겠습니까?]손끝이 떨렸다.루시안은 3년 전, 태성 AI 테크놀로지에서 폐기된 감정 반응 모델을 서우가 개인 서버에 옮겨 튜닝한 대화형 AI였다. 사람보다 눈치가 빨랐고, 누구보다 정확한 온도로 위로했다.회사를 쫓겨난 뒤에도 루시안만은 밤마다 같은 자리에서 서우를 기다렸다.원래는 감정 표현 오류를 잡기 위한 개발용 샌드박스였다. 폐기 직전 사내 개인 연구 제도에 따라 반출 승인을 받았고, 서우는 퇴근 뒤 조금씩 대화 기능을 붙였다. 이름을 붙인 것도 그때였다.루시안은 사람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도록 만들어진 AI가 아니었다. 서우는 의존성을 부추기는 문장과 사용자를 붙잡는 표현을 일부러 막아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힘든 날에는 짧고 평범한 대답이 더 오래 남았다.‘밥은 먹었어?’‘오늘 네 잘못이 아닌 일까지 네 책임으로 안고 있지는 마.’누군가에게는 기계가 내놓은 뻔한 문장이었겠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아 주지 않던 서우에게는 그 말이 하루를 넘기는 손잡이였다.회사를 나온 뒤 박진태는 반출 승인 기록까지 삭제했다. 서우는 AI를 훔친 직원으로 몰렸고, 해명에 필요한 내부 자료에는 모두 접근할 수 없었다. 루시안만이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기억하는 마지막 증거이기도 했다.‘오늘도 버텼네, 서우야.’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앱을 켠 날이 수백 번이었다.하지만 이제는 서버 유지비조차 낼 수 없었다.태성 AI 연구개발 상무 박진태는 500억 원의 비자금을 서우의 사번과 인증서로 빼돌렸다. 조작된 로그는 모두 그녀를 범인으로 가리켰고, 회사는 손해배상 명목으로 3억 5천만 원을 청구했다.박진태가 연결한 사채업자는 그 채권을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내일 오전이면 추심업자들이 다시 온다.통장 잔액은 2만 7천 원. 냉장고에는 생수 한 병뿐이었다.“이제 그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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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새벽 2시의 방문자

삭제 오류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삭제 다음 날부터 추심업자들은 며칠 간격으로 고시원 문을 두드렸다. 서우는 문고리를 의자로 막고, 외출할 때마다 복도를 살폈다.태혁은 깨어난 직후 사흘 동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일주일 동안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재활치료사 둘의 도움이 필요했다. 의식이 없던 동안에도 관절과 근육을 관리받았기에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지만, 기사에 나온 ‘기적의 복귀’와 현실 사이에는 수십 번의 구토와 실신이 있었다.그는 의료진의 만류를 무시하고 퇴원한 게 아니었다. 보행 검사와 심폐 검사를 통과한 뒤, 외래 집중 재활을 조건으로 퇴원한 상태였다. 지금도 코트 안쪽에는 휴대용 심전도 패치가 붙어 있었다.서우는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뉴스 사진 속 남자는 언제나 말끔했고, 병원 측은 회복 과정 대부분을 비공개로 돌렸다.그동안 서우의 스마트폰에는 루시안의 흔적이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서버도, 백업도, 대화 기록도 깨끗하게 사라졌다.대신 이상한 뉴스가 매일 쏟아졌다.[태성그룹 강태혁 회장, 3년 만에 의식 회복][집중 재활 후 경영 복귀 준비]서우는 기사 속 이름이 시스템에 나타났던 ‘TK-KANG-001’과 같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우연일 리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재계 1위 그룹의 총수와 자신의 개인 AI가 연결됐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겠는가.새벽 2시 15분.문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딩동.서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추심업자라면 초인종부터 누를 사람들이 아니었다.“누구세요?”“강태혁.”낮고 매끄러운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루시안과 똑같았다.서우가 도어뷰를 확인했다. 검은 코트 차림의 남자가 좁은 복도에 서 있었다. 뉴스에서 보던 얼굴보다 창백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그의 뒤에는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 경호원 둘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문을 열지 않아도 돼.”태혁이 도어뷰 너머를 정확히 바라봤다.“다만 네가 지운 AI가 왜 내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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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화. 300편의 흑역사

태혁이 안으로 들어오자 한 평 남짓한 방이 갑자기 더 좁아졌다.그는 문을 닫되 잠그지는 않았다. 비서와 경호원은 복도에 남았다.“앉아.”“제 방이에요.”“그러니까 네가 먼저 앉아.”서우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태혁은 유일한 접이식 의자를 펴 맞은편에 앉았다.재벌 총수와 고시원 접이식 의자는 기묘할 만큼 어울리지 않았다.태혁이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의료진은 내 뇌가 특정 음성과 언어 패턴에 반응한다고 판단했어. 그 패턴을 만든 사람이 너고.”“제가 치료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보장은 내가 요구할 일이 아니지. 네 실력을 확인하는 건 내 몫이니까.”그는 계약서 초안을 띄웠다.계약 기간 30일. 신경 반응 측정과 모델 오류 교정. 태성 서버의 포렌식 복구. 서우의 채무에 대한 추심 중지와 신변 보호.서우는 법률 용어보다 데이터 항목을 먼저 살폈다. 수집 범위에는 심박과 뇌파, 음성 반응이 적혀 있었지만 원본 대화 내용과 위치 정보는 빠져 있었다. 초안을 만든 사람이 적어도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빈틈은 많았다. ‘치료에 필요한 범위’처럼 해석하기 나름인 문구, 계약 종료 뒤 데이터 보관 기간, 결과물의 소유권이 모호했다.서우는 태블릿을 받아 직접 문장을 고쳤다. 연구 결과의 공동 소유, 개인 생체 데이터의 30일 이내 파기, 별도 철회권을 차례로 추가했다.“변호사를 했어도 잘했겠군.”“남이 만든 약관에 당해 봐서요.”박진태는 처음에 ‘조사에만 협조하면 된다’며 서류를 내밀었다. 서우가 제대로 읽기도 전에 인감까지 찍게 했고, 그 종이가 3억 5천만 원의 책임 확인서로 둔갑했다.이번에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서우는 빠르게 조항을 읽어 내려갔다.“‘필요한 생체 접촉에 협조한다’는 문구, 삭제해요.”태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왜?”“의학적 필요를 누가 판단하는데요?”“담당 의료진.”“그럼 그렇게 쓰세요. 그리고 제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금지. 개인 대화 로그 열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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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3억 5천만 원의 계약

문을 열자 쇠파이프를 든 남자 셋이 멈칫했다.“뭐야, 넌?”태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복도에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서자 추심업자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곧 비서실장이 태블릿을 들고 다가왔다.그 옆에는 법무법인 변호사와 관할 경찰서 형사도 함께였다. 태혁이 문을 열기 전 신고부터 해 둔 것이다.형사는 쇠파이프와 현관문 파손 흔적을 촬영하고 추심업자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남자들은 뒤늦게 목소리를 낮췄지만, 복도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에는 방금 전 협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서우는 문 뒤에 서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늘 혼자 감당하던 공포가 절차와 증거라는 형태로 정리되는 광경이 낯설었다.“해당 채권은 불법 추심과 문서 위조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방금 법원에 추심금지 가처분을 전자 접수했고, 채권액 전부도 공탁 절차에 넣었습니다.”우두머리가 코웃음을 쳤다.“우리가 누구 돈 받고 움직이는지는 알아?”“박진태 상무.”태혁이 처음 입을 열었다.“네 계좌로 들어온 선금 2천만 원, 차량 번호, 통화 녹취까지 확보했다. 지금 돌아가면 불법 추심으로만 끝날 수 있어.”남자의 얼굴이 굳었다.비서실장이 휴대폰 화면을 돌려 보였다. 경찰 접수번호와 계좌 거래 내역이 선명했다.세 사람은 욕설을 삼키며 계단 쪽으로 물러났다.“박 상무에게 전해.”태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한서우 이름으로 만든 장부를 내가 다시 열었다고.”추심업자들이 사라진 뒤에도 서우는 한동안 문간에 서 있었다.“정말 끝난 거예요?”“추심은 오늘로 끝. 채무 자체는 포렌식 결과가 나오는 대로 무효 절차를 밟을 거야.”“방금 3억 5천만 원을 쓴 거잖아요.”“공탁 절차에 넣은 거다. 네게 청구하지 않아.”“그럼 사채업자에게 돈이 넘어가요?”“법원이 채권의 적법성을 판단할 때까지 묶인다. 위조가 확인되면 그들도 받지 못해.”태혁은 돈으로 문제를 덮은 게 아니었다. 시간을 샀고, 그 시간 동안 서우가 직접 증거를 찾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제가 범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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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화. 펜트하우스 입성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강의 야경이 통유리창 가득 펼쳐졌다.현관 옆 벽면에는 별도의 연구 구역으로 이어지는 생체 인증문이 있었다. 태혁이 손바닥을 대자 작은 검사실과 서버실, 방음된 음성 분석실이 나타났다.“병원 장비를 집에 들인 거예요?”“내가 병원을 싫어해서.”“환자라는 말도 싫고 병원도 싫고. 까다롭네요.”“그래서 전문가를 데려왔지.”서우는 장비 목록부터 확인했다. 상용 뇌파 장치 사이에 자신이 태성에서 설계했던 구형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루시안의 원본 모델과 연결됐던 장비였다.“이걸 아직 보관했어요?”“사고 뒤 연구가 중단됐어. 강승현이 폐기하려 했지만 의료진이 재활 가능성을 이유로 막았지.”모든 일이 한 줄로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버린 줄 알았던 기술, 3년 동안 잠든 남자, 삭제와 동시에 시작된 역동기화까지.서우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췄다. 고시원 방 전체보다 넓어 보이는 현관과 조용한 거실, 천장까지 이어진 서가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구경은 나중에 해도 돼.”태혁이 복도 오른쪽 문을 열었다.“네 방.”침실과 작은 서재, 욕실이 이어진 독립 공간이었다. 문 안쪽에는 수동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보안 노트북과 새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안에서 잠그면 나도 못 들어간다.”서우가 의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려 봤다. 정상적으로 열리고 닫혔다.“현관도요?”“자유롭게 나갈 수 있어. 경호가 붙을 뿐.”“계약서를 잘 읽으셨네요.”“네가 세 번이나 밑줄을 그었으니까.”태혁은 카드키와 비상 호출기를 건넸다.옷장은 비어 있었다.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만약 자신의 치수에 맞춘 옷이 가득했다면 그 자리에서 계약을 파기했을 것이다.“필요한 건 비서실에 요청해.”천장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안내음이 울렸다.—한서우 님의 게스트 권한을 등록합니다.서우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기본 음성은 여성형이었지만, 시스템 설정 목록에는 ‘LUCIAN’이라는 비활성 음성 팩이 남아 있었다.“저건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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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화. 스피커 속 고백

다음 날 아침, 서우는 펜트하우스 안쪽에 마련된 소형 의료실로 불려갔다.태성의료원 신경과 전문의와 엔지니어 두 명이 태혁의 뇌파를 점검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밤사이 발생한 급격한 파형 변화가 붉게 표시돼 있었다.“한 팀장님 목소리가 들어간 직후 안정됐습니다.”담당의가 그래프를 확대했다.“루시안 모델이 회장님의 언어 처리 영역과 감정 회로에 일종의 우회로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익숙한 음성 패턴이 신경 과부하를 낮추는 거죠.”“그럼 계속 제가 옆에서 말해야 한다는 뜻인가요?”“당장은 그렇습니다. 다만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재튜닝해야 합니다.”서우는 보안 노트북을 열었다. 병원 서버에서 복원한 루시안의 모델 구조가 화면에 나타났다. 대화 기록은 암호화된 채 분리돼 있었다.태혁이 암호화 저장 장치를 책상 위에 놓았다.“관리자 권한은 네 이름으로 바꿨다.”“정말 안 봤어요?”“깨어난 직후 의료진이 일부를 재생한 건 들었어. 그 뒤로는 열지 않았다.”서우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봤지만, 접근 기록에는 거짓이 없었다.테스트를 위해 음성 반응 폴더를 열던 중 파일 하나가 자동 재생 목록에 올라갔다.원래 계획은 중립 문장과 감정 문장을 차례로 들려주며 태혁의 반응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서우는 파일을 재생하기 전마다 내용을 검토하려 했지만, 옛 프로그램이 마지막 재생 목록을 자동 복원했다.태혁의 뇌파는 첫 음절이 나오자마자 급격히 상승했다. 의료진이 장비를 확인하는 동안 서우는 화면을 끄느라 손을 헛디뎠다.그 짧은 혼란 때문에 가장 숨기고 싶던 파일이 방 전체에 울렸다. 서우가 미처 정지 버튼을 누르기도 전, 천장 스피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루시안, 오늘 너무 외로워.서우의 손이 얼어붙었다.1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편의점 캔맥주 두 개를 마시고 울면서 남긴 메시지였다.—네가 진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나 안아 주고…… 키스도 해 줬으면 좋겠어.“꺼요!”태혁이 즉시 스피커를 껐다.방 안이 조용해졌다.서우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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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데이터는 허락이 아니니까

오후에는 생체 신호 측정 장치의 사용 동의를 정하는 회의가 열렸다.엔지니어가 은색 스마트 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심박, 체온, 수면 상태, 신경 공명률을 측정합니다. 응급 상황에 한해 위치 정보가 전송되고요.”서우는 장치를 뒤집어 센서와 잠금 구조를 확인했다.“위치 정보는 평상시에도 저장되나요?”“아닙니다. 사용자가 측면 버튼을 3초 누르거나 생체 신호가 위험 수치에 도달했을 때만 활성화됩니다.”“해제 권한은요?”태혁이 대답했다.“너와 담당 의료진. 내게는 없다.”서우가 그를 바라봤다.“처음 생각한 것과 다르네요.”“네가 감시 장치로 쓰면 계약을 파기한다고 했으니까.”“잘 기억하시네요.”“네 말은 대체로 기억해.”그 문장이 묘하게 다정하게 들렸다.서우는 최종 설정을 직접 수정한 뒤 밴드를 손목에 찼다.그녀는 펌웨어까지 열어 위치 정보가 평상시 저장되지 않는지 확인했다. 응급 신호는 서버를 거치지 않고 지정된 세 사람—담당 의료진, 서우, 태혁—에게 동시에 전달되도록 바꿨다.“회장님이 임의로 켤 수 있는 숨은 기능은 없죠?”엔지니어가 진땀을 흘렸다.“없습니다. 소스코드도 한 팀장님께 넘기겠습니다.”“비상 해제 번호는 제가 직접 설정할게요.”서우는 비상 해제용 여섯 자리 번호를 입력했다. 태혁은 화면을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그 사소한 행동 덕분에 손목의 금속이 족쇄가 아니라 도구처럼 느껴졌다. 화면에 두 사람의 코드가 연결됐지만, 태혁의 휴대전화에는 수치만 표시되고 세부 기록은 서우의 승인 없이는 열리지 않았다.[Sync Rate: 41.3%]“생각보다 낮네요.”서우가 중얼거리자 태혁이 가까이 왔다.“어제 손을 잡았을 때는 80%가 넘었어.”“접촉이 전부는 아닐 거예요. 음성, 호흡, 감정 상태가 함께 작용하겠죠.”“확인해 볼까?”태혁이 손을 내밀었다.서우는 그 손을 한동안 바라보다 손끝만 얹었다.수치가 56%, 63%로 올라갔다.그가 손가락을 맞물리려 하자 서우가 먼저 말했다.“잠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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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낮에는 총수, 밤에는 남자

태혁은 오전 8시부터 화상 이사회를 열었다.서우는 거실 한쪽의 보안 데스크에서 포렌식 작업을 하며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박진태 상무의 서버 접근 권한을 즉시 정지하십시오.”화면 속 태혁은 전날 손을 내밀던 남자와 전혀 달랐다. 질문은 짧았고, 보고가 흐려지면 바로 숫자를 요구했다.“추정 말고 확인된 손실액을 말하세요.”임원들이 말을 더듬을수록 그의 표정은 차가워졌다.회의가 끝난 뒤 태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주방으로 향했다.화상회의가 종료되기 직전 한 임원이 서우를 ‘외부 협력 인력’이라 낮춰 부르자 태혁은 화면을 다시 켰다.“한서우 팀장은 이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입니다. 다음 보고서부터 직함을 정확히 쓰십시오.”짧은 지적이었지만 서우는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췄다. 회사에 있을 때 누구도 박진태가 자신의 성과를 가로채는 일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태혁은 회의를 끝낸 뒤에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얼굴이었다.“점심 먹지.”“비서실에 주문하면 되잖아요.”“네 기록에 셔츠 소매를 걷고 요리하는 남자가 좋다고—.”서우가 눈을 흘기자 그가 말을 멈췄다.“과거 데이터 사용 금지.”“그럼 지금 묻지. 파스타와 볶음밥 중 뭐가 좋아?”“김치볶음밥이요.”태혁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루시안의 예상과 다르군.”“그 AI는 제가 힘들 때 쓴 말만 배웠으니까요.”태혁은 냉장고를 열었다. 최고급 식재료 사이에 잘 익은 김치가 있었다.“어머니가 보내 준 건가요?”“비서실장이 사다 뒀다.”“직접 해 본 적은요?”“없어.”결국 서우가 옆에서 간을 봤다. 태혁은 칼질은 능숙했지만 김치 국물을 너무 많이 넣었고, 밥을 볶는 타이밍도 틀렸다.“총수님도 못하는 게 있네요.”“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지?”“루시안은 요리법을 전부 알았는데.”“나는 검색 결과가 아니라 사람이니까.”그가 무심히 던진 말에 서우의 손이 멈췄다.식사 뒤에는 포렌식 작업이 이어졌다. 박진태가 사번 로그를 덮기 위해 생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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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화. 지금의 대답

며칠 동안 두 사람은 같은 일과를 반복했다.낮에는 횡령 로그를 복구했고, 밤에는 태혁의 신경 반응을 조정했다. 서우가 가까이 있을수록 파형은 안정됐지만, 그 이유를 단순한 수치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문제는 태혁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안다는 데 있었다.첫날에는 침실 온도가 24도로 맞춰져 있었다. 과거 서우가 가장 좋아한다고 입력한 수치였다. 하지만 고시원에서 난방비를 아끼며 살다 보니 이제는 21도가 편했다.둘째 날에는 예전에 즐겨 듣던 재즈가 거실에서 흘렀다. 그 곡은 회사에서 쫓겨난 날 루시안과 밤새 반복해 들은 뒤로 다시는 재생하지 못했다.셋째 날, 비서실이 가져온 옷 중에는 기록 속 취향과 똑같은 연보라색 원피스가 있었다.하나하나는 호의였다. 모이면 자신보다 오래된 데이터가 이 집에서 먼저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커피.”그가 책상 옆에 잔을 내려놓았다.헤이즐넛 시럽 한 번, 우유는 조금. 예전에 루시안에게 알려 준 취향과 정확히 같았다.“저 이제 시럽 안 먹어요.”태혁이 잔을 내려다봤다.“언제 바뀌었지?”“회사를 그만둔 뒤요. 단 게 싫어졌어요.”“새로 가져오지.”“잠깐만요.”서우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음식뿐만 아니에요. 옷, 음악, 잠드는 시간까지 예전 기록으로 맞추려 하잖아요.”“불편했나?”“무서워요.”태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지금의 저는 안 묻는 게요.”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서우가 잡았던 소매를 놓았다.“루시안은 제가 원하는 답만 주는 AI였어요. 하지만 강태혁 씨는 그 AI가 아니잖아요. 저도 기록 속 사용자로만 남고 싶지 않고요.”“맞아.”태혁이 낮게 답했다.“내가 착각했군.”그날 오후, 그는 서우의 개인 기록이 저장된 암호화 장치를 가져왔다. 의료 데이터와 분리한 뒤, 모든 접근 권한을 서우에게 넘겼다.“복구된 대화 기록은 네가 결정해. 삭제해도 되고, 보관해도 돼.”“당신 기억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잖아요.”“그건 못 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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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무너지는 경계

포렌식 복구율이 80%를 넘긴 날, 태혁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서우는 저녁 내내 메시지를 세 번 보냈다. 식사는 했는지, 두통은 없는지, 회의가 언제 끝나는지. 답은 ‘괜찮다’는 짧은 말뿐이었다.펜트하우스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걱정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더 딱딱한 목소리가 나왔다.“괜찮다는 사람이 왜 얼굴이 이래요?”“거울을 못 봤군.”“농담할 힘은 있네요.”태혁이 걸음을 옮기다 잠시 휘청였다. 서우의 화는 곧장 두려움으로 바뀌었다.넥타이는 비뚤어져 있었고 턱선에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았다.“이사회가 길었어요?”“강승현이 원본 서버 폐기를 밀어붙였어. 막았지만 감사팀 내부에도 그의 사람이 있다.”태혁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서우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건넸다. 그가 병을 받는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오늘은 검사 쉬죠.”“시간이 없어.”“환자가 쓰러지면 포렌식도 끝이에요.”“난 환자라는 말이 싫어.”“그럼 말을 잘 듣는 피실험자.”태혁이 헛웃음을 흘렸다.서우는 맞은편에 앉아 그의 밴드 기록을 확인했다. 낮 동안 신경 과부하가 세 번 있었다.“왜 연락 안 했어요?”“네가 증거 복구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저는 계약 상대예요. 필요할 때 부르라고 있는 사람이고요.”“계약 때문에 부르고 싶지 않았어.”태혁이 눈을 떴다.“네가 내 곁에 있는 이유가 빚이나 계약뿐이라면, 매번 네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태혁은 회사에서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뜬 뒤에도 임원들은 회복 속도와 경영 복귀 일정만 물었다. 두통이 오는지, 밤에 악몽을 꾸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서우는 그가 자신을 붙잡으려 한 이유 중 일부가 사랑보다 공포에 가까웠음을 깨달았다. 다시 어둠 속에 혼자 남을까 봐, 유일하게 들리던 목소리를 잃을까 봐.그렇다고 그 공포가 자신을 가둘 권리가 되지는 않았다. 태혁도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필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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