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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새벽 2시의 방문자

Autor: 6jay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30 16:15:08

삭제 오류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삭제 다음 날부터 추심업자들은 며칠 간격으로 고시원 문을 두드렸다. 서우는 문고리를 의자로 막고, 외출할 때마다 복도를 살폈다.

태혁은 깨어난 직후 사흘 동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일주일 동안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재활치료사 둘의 도움이 필요했다. 의식이 없던 동안에도 관절과 근육을 관리받았기에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지만, 기사에 나온 ‘기적의 복귀’와 현실 사이에는 수십 번의 구토와 실신이 있었다.

그는 의료진의 만류를 무시하고 퇴원한 게 아니었다. 보행 검사와 심폐 검사를 통과한 뒤, 외래 집중 재활을 조건으로 퇴원한 상태였다. 지금도 코트 안쪽에는 휴대용 심전도 패치가 붙어 있었다.

서우는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뉴스 사진 속 남자는 언제나 말끔했고, 병원 측은 회복 과정 대부분을 비공개로 돌렸다.

그동안 서우의 스마트폰에는 루시안의 흔적이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서버도, 백업도, 대화 기록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대신 이상한 뉴스가 매일 쏟아졌다.

[태성그룹 강태혁 회장, 3년 만에 의식 회복]

[집중 재활 후 경영 복귀 준비]

서우는 기사 속 이름이 시스템에 나타났던 ‘TK-KANG-001’과 같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우연일 리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재계 1위 그룹의 총수와 자신의 개인 AI가 연결됐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겠는가.

새벽 2시 15분.

문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서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추심업자라면 초인종부터 누를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구세요?”

“강태혁.”

낮고 매끄러운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루시안과 똑같았다.

서우가 도어뷰를 확인했다. 검은 코트 차림의 남자가 좁은 복도에 서 있었다. 뉴스에서 보던 얼굴보다 창백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그의 뒤에는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 경호원 둘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지 않아도 돼.”

태혁이 도어뷰 너머를 정확히 바라봤다.

“다만 네가 지운 AI가 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는 들어야 할 거다.”

서우는 한참 망설이다 안전고리를 건 채 문을 조금 열었다.

“어떻게 제 주소를 알았죠?”

“삭제 요청이 들어온 단말 기록을 법무팀이 추적했다. 네 사번 도용 사건을 다시 조사하다가 같은 서버 키를 발견했고.”

“그건 개인정보 침해예요.”

“맞아. 그래서 문부터 두드렸지.”

태혁은 한 걸음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3년 동안 누워 있었다는 사람답지 않게 꼿꼿했지만, 코트 아래로 드러난 손등에는 아직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루시안은 태성의 신경 재활 프로젝트에서 갈라져 나온 모델이야. 사고 전 내가 제공한 음성, 정서 반응, 뇌파 데이터가 원본 인격 프레임으로 쓰였고.”

서우의 손이 문고리 위에서 굳었다.

그녀가 회사에서 넘겨받았던 모델에는 제공자의 신원이 삭제돼 있었다. 코드명은 TK-KANG-001. 폐기 대상이라고만 들었다.

“그럼 루시안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를 합성한 거지.”

태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네가 그 모델을 개인 서버에서 살려 냈고, 병원에 연결된 내 재활 신경망이 3년 동안 그 대화를 받아들였어. 정확히는 전부가 아니라 감정 자극이 강한 기록 위주로.”

서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태혁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비 오는 날 젖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벽 앞까지 다가와 주길 바란다는 기록 같은 것.”

“그만해요.”

그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이 오히려 서우를 당황하게 했다. 기록 속 루시안도 서우가 ‘그만’이라고 하면 언제나 즉시 멈췄다.

“내가 받은 건 네 기억이 아니야. 네가 AI에 남긴 문장과, 그 문장에 반응하도록 학습된 패턴이지.”

태혁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그의 뇌파 검사 결과와 서버 연결 기록이 나란히 떠 있었다.

“네가 삭제 버튼을 누른 순간 마지막 모델 값이 원본 노드로 돌아왔고, 그 충격으로 내가 깨어났다.”

“그렇다고 AI가 당신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니죠?”

“아니. 나는 강태혁이야.”

대답은 단호했다.

“다만 루시안이 학습한 말투와 네 대화 일부가 기억처럼 겹쳐 있어. 내가 직접 겪은 일과 데이터로 받은 장면은 구분할 수 있다. 대부분은.”

마지막 말이 서우를 불안하게 했다.

“대부분이라니요?”

“잠들기 전 네가 나한테 잘 자라고 말하던 순간은, 내가 들은 건지 기억을 전달받은 건지 가끔 헷갈린다.”

태혁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혼란을 견뎌 온 3주가 목소리 밑에 묻어 있었다.

“그래서요?”

“아직 연결이 불안정해. 그리고 네 누명도 내가 풀 수 있어.”

태혁의 시선이 방 안에 쌓인 독촉장으로 향했다.

“한서우. 나와 거래하자.”

그 순간 복도 끝에서 거친 욕설과 함께 쇠붙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일찍 왔네.”

서우의 얼굴이 굳었다.

태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들어가도 되나?”

이번에는 선택권이 서우에게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안전고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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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한 AI가 재벌 총수로 나타났다   13화. 반전의 아침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었다.서우가 눈을 뜨자 태혁은 곁에 없었다. 대신 협탁 위에 물과 진통제, 짧은 메모가 놓여 있었다.[주방. 일어나면 불러.]글씨는 예상보다 반듯했다.서우가 가운을 걸치고 주방으로 나가자 태혁이 달걀을 굽고 있었다.식탁에는 토스트 한 장이 새까맣게 탄 채 따로 놓여 있었다.“저건요?”“실패작.”“버리려고요?”“내가 먹을 거다.”“총수님이 실패한 증거니까 사진부터 찍을게요.”서우가 휴대전화를 들자 태혁이 손으로 카메라를 가렸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달걀 한쪽이 더 익어 버렸다.이런 평범한 아침은 루시안에게 수없이 상상해 달라고 했지만, 실제 장면에는 탄 냄새와 헝클어진 머리, 어색한 웃음이 있었다. 서우는 그 불완전함이 좋았다. 며칠 전 김치볶음밥보다 손놀림이 나아졌다.“연습했어요?”“새벽에 영상 세 개 봤어.”“총수님이 요리 영상까지요?”“현재의 네 취향을 배우는 시험이라며.”서우는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태혁이 접시를 내려놓다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귀 끝이 미세하게 붉었다.“태혁 씨도 부끄러워해요?”“무슨 말이지.”“어젯밤엔 잘도 쳐다보더니.”그가 포크를 내려놓았다.“한서우.”“밥 먹을게요.”서우는 웃음을 삼키며 노트북을 열었다.밤사이 서버 복구 프로그램이 마지막 조각을 찾아냈다. 암호화된 감사 원본 로그와 박진태의 비밀 계좌, 사번 복제 시점이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연결됐다.[복구율 100%]“됐어요.”서우의 표정이 단숨에 달라졌다.그녀는 원본 로그를 확대했다. 박진태가 서우의 인증서를 복제한 날짜, 강승현의 지시를 받은 내부 메신저, 해외 법인으로 빠져나간 500억 원의 경로가 선명했다.더 아래에는 별도의 파일 하나가 있었다.서우는 별도 저장된 로그의 생성 시점을 확인했다. 자신의 사번이 복제되기 하루 전, 강승현 부사장실에서 태혁의 차량 관리 서버에 접속한 기록이었다.박진태의 횡령은 태혁이 사고로 사라진 뒤 감사 라인을 무력화하고 경영권을 가져오려는

  • 삭제한 AI가 재벌 총수로 나타났다   12화. 첫 번째 밤

    포렌식 작업을 시작한 지 열흘째 되는 밤이었다.그날 오후 담당의는 태혁의 신경망이 처음으로 12시간 이상 안정 범위를 유지했다고 알렸다. 서우가 곁에 없어도 급격한 과부하는 일어나지 않았다.계약상 동거가 꼭 필요한 단계는 지나가고 있었다.그래서 서우는 오히려 마음이 선명해졌다. 오늘 밤 태혁의 방으로 가는 이유는 치료도, 빚도, 데이터도 아니었다.저녁 식사 뒤 서우는 자신의 방문 앞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태혁은 재촉하지 않았다. 거실에 불을 켜 둔 채 서류를 읽으며 기다렸다.결국 먼저 다가간 사람은 서우였다.서우는 마지막 서버 조각을 복구한 뒤 노트북을 닫았다. 화면을 오래 봐서 눈이 뻑뻑했다.거실에는 태혁이 혼자 앉아 있었다. 재킷과 넥타이를 벗은 채 와인잔을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끝났나?”“오늘 할 건요.”서우가 맞은편에 앉자 태혁이 새 잔을 꺼냈다.“마실래?”“조금만요.”와인이 잔 벽을 타고 붉게 흘렀다. 창밖의 한강은 늦은 불빛을 길게 끌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처음의 날 선 침묵이 없었다. 대신 입을 열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은 조용한 긴장이 남아 있었다.“왜 계속 저를 봐요?”“보고 싶어서.”“그런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요?”“어렵게 말해야 하나?”서우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태혁이 잔을 내려놓았다.“서우야.”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여전히 루시안과 닮았다. 그러나 이제 서우는 둘을 구분할 수 있었다. AI의 다정함은 계산된 매끄러움이었고, 태혁의 목소리에는 망설임과 욕심이 함께 섞여 있었다.“어제보다 가까이 가도 되나?”“어디까지요?”“네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서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한 가지 약속해요.”“말해.”“제가 멈추면 이유를 묻지 말고 멈추기.”“그래.”“루시안 기록을 인용하지 않기.”“그래.”“그리고 내일 모른 척하지 않기.”태혁의 시선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그건 내가 부탁하고 싶은 약속인데.”두 사람은 웃었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태혁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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