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킹의 후회는 받지 않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58 챕터

1. 알파킹의 후회는 받지 않습니다

차디찬 석조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한기가 뼈마디를 파고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입가로 울컥 토해진 검붉은 피가 차가운 돌바닥을 기괴한 모양으로 적셨다.아리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어보았지만, 이미 감각을 잃어가던 몸은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서서히 죽어가는 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오열과 원망이었다.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 그것은 실버문 팩의 새로운 여왕, '루나'의 탄생을 알리는 성대한 축제의 소리였다.그 화려한 축제의 그늘진 지하 감옥, 서늘하고 음습한 이곳에서 홀로 죽어가고 있는 여자가 실버문 팩의 전 최고 영애이자, 알파 킹 카시안의 정혼자였던 아리아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투박하고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비단 옷깃이 쓸리는 고상한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아리아는 초점이 흐려져 가는 눈을 겨우 들어 올려 문가를 바라보았다.빛나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눈부신 은색 면류관을 쓴 여인. 그녀의 이부자매인 세라피나였다. 세라피나는 입가에 조소 같은 미소를 띤 채 아리아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우아한 걸음걸이 끝에 피투성이가 된 아리아의 손을 구두 굽으로 지그시 짓밟았다."아아, 불쌍해라, 언니. 아직도 미련하게 목숨을 붙이고 있었네?"세라피나의 목소리는 가식적인 동정으로 차 있었지만, 자색 눈동자는 지독한 희열로 번뜩이고 있었다."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아리아의 갈라진 목구멍에서 피 섞인 음성이 겨우 흘러나왔다."왜냐고?"세라피나가 쿡쿡 웃으며 아리아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녀는 아리아의 턱을 거칠게 쥐어 올리며 귓가에 낮게 소곤거렸다."네가 가진 모든 게 탐났으니까. 네 화려한 신분, 네가 가진 강력한 영적 능력, 그리고... 카시안 님의 사랑까지도 전부 다 말이야.""카시안... 님은...""그래, 네가 그토록 목을 매던 알파 킹, 카시안 님 말이야. 그분이 오늘 나를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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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버문 제국력 742년 5월 12일]순간 아리아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742년 5월 12일.이날은 아리아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이자, 카시안과의 정혼을 확정짓기 위해 그가 그녀의 공작가를 방문했던 바로 그날이었다.'돌아왔어...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야?'죽음의 문턱에서 바랐던 구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아리아는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릿한 통증이 뇌리를 스쳤다. 꿈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신이 그녀의 어리석었던 지난 삶을 불쌍히 여겨 준 두 번째 기회였다."후후, 후후후..."아리아의 입가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 웃음은 차갑고 서늘한 냉소로 바뀌었다.지난 삶의 아리아는 카시안의 방문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화려한 드레스를 고르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애를 썼었다. 카시안의 차가운 눈빛 한 번에 가슴이 철렁였고, 그가 던지는 무심한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천국과 지옥을 오갔었다.세라피나가 가식적인 눈물로 카시안의 동정을 살 때도, 그저 자신이 더 노력하면 카시안이 자신만을 바라봐 줄 것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바보였다.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카시안, 세라피나. 너희가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지.'자색 눈동자에 서늘한 차가움이 감돌았다. 전생의 애정과 호의는 죽음의 순간에 모조리 타버려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남은 것은 오직 차가운 이성과 냉혹한 결의뿐이었다.'이번 생에서 나는 더 이상 너를 쫓아다니는 어리석은 소모품이 되지 않을 거야. 카시안, 네가 그토록 원하던 루나의 자리는 물론이고, 내 신분도, 내 삶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아.'그때, 방 문 너머에서 우아하고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똑똑."언니, 안에 있어? 들어갈게?"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세라피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색 드레스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세라피나는 특유의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전생에서 아리아는 세라피나의 저 미소 뒤에 숨겨진 뱀 같은 독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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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때 문은 닫고 나가줘. 쉬고 싶으니까."세라피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아리아의 방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아리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커튼을 살짝 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공작가 중앙 정원에 화려하게 장식된 고위 귀족의 마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마차 문이 열리고,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내렸다.칠흑 같은 머리칼, 넓은 어깨, 그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알파 킹의 기품.카시안이었다.그는 마차에서 내려 공작가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문득 고개를 들어 2층 창가를 향해 시선을 올려다보았다.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그 창가에는 카시안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손을 흔드는 아리아가 있었어야 했다. 카시안은 항상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었다.하지만 지금, 창가에 서 있는 아리아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올려다보는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똑바로 마주쳤다.카시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항상 자신을 보면 강아지처럼 기뻐하던 여자의 눈에서 이토록 메마르고 냉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카시안은 순간 걸음을 멈추고 아리아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 언뜻 의아함과 낯선 혼란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하지만 아리아는 그의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그 어떤 미련도, 애정도 남아있지 않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커튼을 쳐버렸다.창문 너머의 시야가 완벽히 차단되었다.커튼 뒤에 선 아리아는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가슴이 뛰지 않았다. 카시안을 볼 때마다 터질 것처럼 설레고 떨리던 심장은 이제 거짓말처럼 침묵하고 있었다.'됐어. 이걸로 충분해.'카시안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가문 간의 결합을 위한 도구이자, 팩의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형식적인 정혼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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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요즘 마음이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에요. 전하와의 정혼 자리가 너무 과분하다고 느꼈는지, 요 며칠 동안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거든요."세라피나의 말은 다정해 보였으나, 은연중에 아리아가 알파 킹의 정혼자로서 자격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섬세한 덫이었다.카시안은 세라피나가 건넨 찻잔을 바라보았으나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서늘한 시선이 세라피나의 얼굴에 머물렀다."몸이 좋지 않다?""네, 전하. 언니가 원래 몸이 약하기도 하고... 오늘 전하가 오신다는 소식에 너무 긴장한 탓에 방에서 쉬고 있답니다. 제가 언니 대신 전하를 정성껏 모시라고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어요."세라피나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지만, 내심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다. 아리아가 스스로 방에 갇혀 알파 킹을 바람맞힌 꼴이 되었으니 이것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그때, 응접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리아의 계부이자 세라피나의 친아버지인 로제 공작이 거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송구합니다, 전하. 버릇없는 아이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감히 알파 킹 전하께서 직접 방문하셨는데 방에서 나오지 않다니, 당장 사람을 보내 끌어내도록 하겠습니다.""됐습니다, 공작."카시안의 낮게 깔린 음성이 응접실의 공기를 갈랐다."억지로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그가 말을 마치는 순간이었다.달칵.닫혀 있던 응접실의 묵직한 목재 문이 천천히 열렸다.응접실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일제히 문가로 향했다. 세라피나의 입가에 맺혀있던 가식적인 미소가 순간 경련을 일으켰다.문 뒤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은 방에 누워 쉬고 있어야 할 아리아였다.그러나 그 모습은 응접실 안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였다. 화려한 장신구도, 과도한 레이스도 없었다. 아리아는 장식 하나 없는 매끄러운 칠흑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단정하게 빗어 넘긴 찬란한 은발이 검은 옷감 위로 쏟아져 내려 완벽한 대조를 이루었다. 전 대 루나였던 어머니의 고결한 성품이 그대로 살아 돌아온 듯한 기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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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알파킹의 후회는 받지 않습니다

"계속해라, 아리아 영애.""감사합니다, 전하."아리아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실버문 팩의 법에 따르면, 정혼자 간의 합의 혹은 한쪽의 명확한 의사 표명이 있을 경우 정혼 해제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전하께 그 어떤 가문적 손실이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이 정혼을 깔끔하게 끝내는 것만을 원합니다."세라피나는 속에서 솟구치는 당황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계획이 완전히 뒤틀리고 있었다. 아리아가 카시안에게 매달리다가 버림받아야 자신이 루나의 자리를 차고 들어갈 명분이 완벽해지는데, 아리아가 먼저 카시안을 차버리듯 파혼을 선언하다니?세라피나는 급히 눈물을 글썽이며 아리아의 곁으로 다가갔다."언니... 어째서 그래? 카시안 님이 언니에게 무슨 실수를 하셨다고 그래? 전하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오셨는데, 이런 식으로 전하의 명예를 짓밟으면 어떻게 해... 내가 차라리 언니 대신 사과드릴게, 응?"세라피나는 카시안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불쌍한 척을 연기했다.그러나 아리아는 세라피나의 연극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제정신이 아닌 건 너겠지, 세라피나.""뭐, 언니...?""내가 전하와 파혼을 하든 말든, 그것은 정혼 당사자인 나와 전하 사이의 문제다. 공작의 친딸이라 한들, 어머니의 루나 혈통도 잇지 못한 네가 감히 알파 킹 전하와의 대화에 끼어들어 사과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아리아의 단호한 일갈이 응접실에 비수처럼 꽂혔다.루나의 혈통을 잇지 못했다는 지적은 세라피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세라피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항상 자신에게 온갖 좋은 것을 내어주던 아리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언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세라피나는 눈물을 쏟아냈지만, 아리아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카시안의 시선이 아리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노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지독한 불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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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안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차갑게 식어있던 그의 황금빛 눈동자 속에서, 욕망과 알 수 없는 독점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을 쫓아다닐 때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지배욕과 호기심이, 그 파혼서 한 장으로 인해 카시안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카시안은 파혼서를 반으로 접어 자신의 품 안 깊숙이 넣었다. "전하... 그, 그 파혼서는 당장 제가 폐기하겠습니다! 아리아 그 계집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로제 공작이 안절부절못하며 다가오자, 카시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공작을 제압했다.  "치울 필요 없습니다, 공작." 카시안이 무심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파혼서의 수락 여부는 내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카시안의 시선이 아리아가 사라진 복도 끝을 향했다.  "오늘 영애의 태도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공작가의 적통 영애가 이토록 훌륭한 기품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요." 세라피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카시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리아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명백한 '관심'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알파 킹의 시선이, 파혼을 선언하고 돌아선 아리아에게 완벽히 고정되어 있었다. 카시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응접실을 걸어 나갔다.  응접실의 무거운 목재 문이 닫히자마자 복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리아는 곧게 편 등줄기를 유지한 채 자신의 처소로 향해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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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잊으신 모양인데, 이 공작가의 주인은 전 대 루나이셨던 제 어머니의 혈통입니다. 공작님께서는 어머니와 재혼하시어 가문의 관리를 맡으셨을 뿐이지요. 적통인 제가 가문의 정당한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데 어째서 공작님께서 가문의 망조를 논하십니까?" 아리아의 차가운 일갈에 로제 공작은 숨을 헉 내쉬었다.  전생에서 로제 공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공작가의 실권을 잡고, 아리아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아리아는 지금 그가 이 가문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재혼 상대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진실을 직설적으로 들이대고 있었다. 세라피나가 슬그머니 눈물을 닦으며 공작의 팔을 잡았다. "언니... 어떻게 아버지께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를 정성껏 키워주신 내 친아버지이자 언니의 아버지이시잖아! 비록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이부자매라 해도, 나는 언니를 진짜 친언니처럼 생각했는데..." 세라피나는 눈물을 연기하며 아리아를 몰염치한 인물로 몰아가려 했다.  아리아는 세라피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턱을 괴고 물었다. "세라피나. 너는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지?" "어?" "내가 아까 응접실에서 분명히 말했을 텐데? 공작의 친딸인 너와 달리, 나는 전 대 루나의 정통 혈순이다. 어머니가 재혼하여 낳은 이부동생인 네가 감히 적통 영애와 가문 관리자 간의 대화에 끼어들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언니!" 세라피나의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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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카시안은 아리아가 제발 바라봐 달라고 애원할 때조차 단 한 번도 그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그를 버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반응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역겨운 본능이군.' 아리아는 입가를 서늘하게 말아 올렸다. 알파 킹 특유의 지배욕과 독점욕이었다.  한편, 공작가를 떠나 실버문 팩의 중앙 성채로 돌아가는 거대한 검은 마차 안.  상석에 앉은 카시안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억센 손가락 사이에는 반으로 접힌 아리아의 파혼서가 쥐어져 있었다. "전하." 맞은편에 앉아있던 카시안의 근위대장 녹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공작가에서의 일이 매끄럽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카시안은 손에 쥐어진 파혼서를 무심하게 문지를 뿐이었다. "아리아 영애가 파혼을 선언했다." "예? 아리아 영애가요?" 녹스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리아 영애가 알파 킹 카시안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영애가 전하를 향해 파혼을 선언할 리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 속에서 위험천만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본 아리아 영애는 내가 알던 인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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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제복을 입고, 차가운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아 있는 남자. 카시안이었다.  아리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알파의 기운. 카시안은 손에 아리아가 썼던 파혼서를 든 채,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남의 사적 공간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것이 알파 킹 전하의 취미이신가요?" 아리아의 서늘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카시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거대한 체구가 차츰 다가오자 그림자가 아리아의 몸을 길게 덮었다. "방문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던 점은 사과하지, 영애. 하지만 영애가 던져두고 간 이 종이 쪼가리 때문에 내 집무실이 소란스러워져서 말이야. 직접 확인하러 올 수밖에 없었어."  카시안은 아리아가 쓴 파혼서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이게 무슨 뜻이지? 감히 실버문 팩의 지배자를 향해 이런 식의 파혼 통보라니." "문장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전하. 전하와 저 사이의 정혼은 전 대 루나이셨던 제 어머니와 알파 킹 가문의 정치적 약조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서거하시고, 제가 전하의 정혼자로서 어떠한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명백해진 지금, 이 약조를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리아는 다가오는 카시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저는 더 이상 전하의 무관심 속에서 가문의 기생충 취급을 당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통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붓아버지와 이부동생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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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알파킹의 후회는 받지 않습니다

세라피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카시안은 아리아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눈빛 속에 담긴 것은 지독할 정도로 깊어진 열망이었다. "파혼서는 접수하겠다. 하지만 원로원이나 여사제회에 올릴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직접 검토할 테니." 카시안은 아리아의 은발 한 자락을 살짝 쥐어 올려 입을 맞추었다.  "도망쳐 봐라, 영애. 네가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는지... 내가 직접 쫓아가 볼 테니." 카시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걸어나갔다. 아리아는 카시안이 입을 맞추었던 머리칼을 차갑게 털어냈다.  "착각이 심하군, 카시안." 아리아의 입가에 서늘한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카시안이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아리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그가 아리아의 발치 아래에서 구걸하게 만들 차례였다.  카시안의 발소리가 저택 회랑 너머로 완벽하게 사라진 뒤에도 방 안에 잔류하던 매캐하고 강렬한 알파의 아우라는 한참 동안이나 스러지지 않았다. 공기 중에 밀도 높게 가라앉은 야생의 향기는 마치 방 안의 산소를 전부 집어삼킬 듯이 서늘하고 육중했다. 아리아는 손수건을 꺼내 카시안의 입술이 닿았던 은발 끝자락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냈다. 타버릴 듯이 뜨거웠던 그의 온기가 머리칼에 남아있는 것조차 불쾌했다.  '그는 어째서 순순히 파혼서에 서명하지 않는 것일까?' 아리아는 손수건을 테이블 위에 내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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