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갈 때 문은 닫고 나가줘. 쉬고 싶으니까."
세라피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아리아의 방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리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살짝 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공작가 중앙 정원에 화려하게 장식된 고위 귀족의 마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차 문이 열리고,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내렸다.
칠흑 같은 머리칼, 넓은 어깨, 그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알파 킹의 기품.
카시안이었다.
그는 마차에서 내려 공작가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문득 고개를 들어 2층 창가를 향해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그 창가에는 카시안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손을 흔드는 아리아가 있었어야 했다. 카시안은 항상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었다.
하지만 지금, 창가에 서 있는 아리아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올려다보는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똑바로 마주쳤다.
카시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항상 자신을 보면 강아지처럼 기뻐하던 여자의 눈에서 이토록 메마르고 냉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시안은 순간 걸음을 멈추고 아리아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 언뜻 의아함과 낯선 혼란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리아는 그의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그 어떤 미련도, 애정도 남아있지 않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커튼을 쳐버렸다.
창문 너머의 시야가 완벽히 차단되었다.
커튼 뒤에 선 아리아는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가슴이 뛰지 않았다. 카시안을 볼 때마다 터질 것처럼 설레고 떨리던 심장은 이제 거짓말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됐어. 이걸로 충분해.'
카시안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가문 간의 결합을 위한 도구이자, 팩의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형식적인 정혼자에 불과했다. 전생의 자신이 얼마나 처절하게 구걸했든, 그에게 아리아라는 존재는 단 한 번도 특별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서는 자신이 먼저 그 줄을 끊어내면 그만이었다.
파혼.
그것이 아리아가 이번 생에서 이루어야 할 첫 번째 목표였다.
카시안과의 인연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실버문 팩 내에서 자신의 고유한 입지를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세라피나와 그 뒤에 숨어있는 흑막 세력이 자신을 모함하고 해치려 하기 전에, 그들의 본색을 세상에 폭로하고 철저히 짓밟아줄 것이다.
아리아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깃펜을 들었다. 깨끗한 양장지 위에 깃펜이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버문 팩 알파 킹, 카시안 전하께. 본인은 두 가문의 오래된 약조이자 무의미한 정혼 관계를 공식적으로 종결짓고자 합니다...]
정갈하게 써 내려가는 파혼서의 문장들.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가 차가운 은빛으로 번뜩였다.
"카시안, 네가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버려주마."
과거의 비극적인 단죄는 끝났다. 이제는 판을 바꿀 차례였다. 아리아의 두 번째 삶이, 차가운 정막 속에서 힘차게 그 막을 올리고 있었다.
깃펜 끝에서 사각거리는 마찰음이 고요한 방 안을 날카롭게 채웠다. 두꺼운 양장지 위로 새겨지는 검은 먹물은 전생의 아리아가 지하 감옥 바닥에 흘렸던 차가운 피처럼 선명하고 기괴했다.
'파혼 요청서.'
짧은 제목 아래로 정갈하고 오차 없는 글씨들이 빼곡하게 써 내려갔다.
실버문 팩의 전통에 따른 가문 간 약조의 해제 조건, 그리고 서로에게 더 이상 어떠한 의무도 지지 않는다는 완벽한 법적 절차였다. 아리아는 초를 녹여 붉은 왁스를 양장지 하단에 떨어뜨린 뒤, 전 대 루나였던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인장 반지를 깊게 눌렀다.
선명하게 찍힌 붉은 문양을 바라보는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카시안, 당신이 내게 준 것은 비참한 단죄와 죽음뿐이었지?'
아리아는 손가락으로 왁스 인장의 테두리를 천천히 더듬었다. 회귀하기 전, 그녀는 카시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의 취향에 자신을 맞추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카시안이 화려한 것을 싫어한다면 무채색의 옷을 입었고, 그가 단정한 여성을 좋아한다면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며 조신한 영애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어머니의 고결한 순혈 루나 혈통을 물려받았음에도 스스로를 낮춘 끝에 돌아온 것은 의붓아버지와 이부동생의 모함, 남편의 서늘한 외면, 그리고 심장을 꿰뚫는 차가운 칼날뿐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입맛에 맞춘 인형으로 살지 않아.'
아리아는 완벽하게 봉인된 편지를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시각, 공작가 1층의 중앙 응접실.
응접실 내부를 채우고 있는 공기는 손이 베일 듯이 날카롭고 무거웠다. 실버문 팩의 최고 지배자이자 최강의 알파 킹인 카시안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방 안의 모든 하인과 기사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카시안은 찻잔을 들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찻물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저택 정원에서 올려다보았던 2층 창가의 풍경이 잔상처럼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은발을 늘어뜨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던 아리아의 눈빛.
언제나 자신을 바라볼 때면 기대감과 애정으로 미세하게 떨리던 그 눈동자가, 오늘은 마치 타인을 보듯, 혹은 오래된 시체를 보듯 무감각하고 차가웠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커튼을 쳐버리던 그 단호한 손길.
'어째서지?'
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가 좁혀졌다. 알파로서의 뛰어난 감각은 그 찰나의 순간 아리아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투정이나 화가 아니었다. 모든 미련을 완전히 태워버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정적이었다.
"전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리아 언니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 하여 대신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세라피나가 분홍색 비단 드레스 자락을 우아하게 쥐며 카시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특유의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차를 따르는 하인의 손길을 제지하고 직접 찻잔을 들어 카시안의 앞으로 건넸다.
아리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회귀 직후 완벽하게 각성한 아리아의 루나 영적 감각은, 카시안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문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식별해 냈다.그것은... 자신의 영혼에 걸려있던 흑마법 저주를 누군가가 제 영혼으로 대가 없이 끌어안았을 때만 생겨나는 '영혼 대속(代贖)의 낙인'이었다."이... 이게 무슨..."아리아의 손이 떨려왔다.카시안이 아리아의 떨리는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피로 물든 단단한 손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죔쇠처럼 얽어 쥐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으나, 오직 아리아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서늘할 정도로 맑고 절박했다."괜찮아... 아리아..."카시안의 낮게 떨리는 목소리가 피범벅이 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다치지... 않았다면... 되었다...""전하, 당신 몸에 있는 이 낙인은 대체..."아리아가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카시안의 가슴팍을 더듬으려 할 때였다.카시안의 몸 안에서 사나운 알파 마력과 흑마법 독기가 충돌하면서, 카시안의 영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파편들이 은빛 인광이 되어 공중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각성한 루나의 마력과, 대속의 낙인이 반응하여 아리아의 뇌리 속으로 직접 흘러 들어가는 전생의 차가운 진실이었다.파아앗—!아리아의 자색 눈동자 속으로 거대한 전생의 잔상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전생의 그 어둡고 음습했던 지하 감옥.아리아는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몸의 감각은 이미 마비되어 있었고, 가슴을 죄어오는 흑마법 저주의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감옥 문이 열리며 칠흑 같은 로브를 두른 카시안이 걸어 들어왔었다.전생의 아리아는 카시안이 자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알아서 처리해라"라는 한마디만 남긴 채 뒤돌아섰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완벽한 무심함과 방관이었다고 믿었었다.그러나 아리아의 뇌리 속으로 흘러 들어온 카시안 시점의 전
"내가 왜 너희 따위에게 그것을 밝혀야 하지? 어차피 내 가문은 몰수당했고, 내 권력은 무너졌다. 하지만 아리아... 네가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착각하지 마라."발타자르의 황금빛 눈동자에 미친 듯한 광기가 피어올랐다."네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아느냐? 네 영혼에 걸린 그 사악한 저주가 겨우 남부의 성석 하나를 정화했다고 완벽히 사라졌을 것 같으냐? 멍청한 계집 같으니!"아리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그때, 아리아의 옆에 서 있던 카시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지옥의 유황불처럼 사납게 타오르고 있었다.카시안의 거대한 손이 철창 문을 거칠게 쥐어잡았다. 고대 룬 문양이 새겨진 굵은 흑철 문이 카시안의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오도독 소리를 내며 이그러졌다."입 다물어라, 발타자르."카시안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공기를 얼려버렸다."네놈의 미천한 입에서 내 여인의 이름을 함부로 올리지 마라. 네가 혀를 놀릴 때마다 네 뼈마디를 하나씩 부러뜨려 주마.""하하하! 카시안! 불쌍한 애송이 황제!"발타자르는 카시안의 살벌한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기 어린 소리로 웃어댔다."네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네놈이 그 영애를 제 품에 안으려 할수록 그 영애가 얼마나 비참하게 찢겨나가는지... 네놈의 그 사나운 알파 마력이 오히려 그 영애의 영혼을 가로막는 독이라는 것을!""뭐라고?"
기사단장 베른 경과 영주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어 가슴에 대고 무릎을 꿇었다.아리아는 오만하고 고결한 표정으로 왕관을 집어 들어 제 머리 위에 스스로 올려놓았다. 남의 손에 의해 씌워지는 왕관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힘과 지략으로 일구어낸 진정한 '두 번째 왕관'이었다.그때, 저택 정원 입구에서 웅장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며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호위 기사도 없이 홀로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왔다.카시안이었다.그는 황제의 화려한 로브도, 오만한 태도도 모두 내려놓은 채, 오직 아리아를 수호하는 개인 기사의 검을 차고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카시안은 아리아의 발치 아래 다가가, 기사로서의 예를 갖추어 깊이 고개를 숙였다."축하합니다, 내 여왕이시여."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오직 아리아만을 향한 영원한 집착과 복종이 서려 있었다."당신이 쓴 그 두 번째 왕관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내가 당신의 가장 강한 방패이자 무자비한 검이 될 것입니다."아리아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알파 킹 카시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전생의 비극과 무심함, 지하 감옥의 오한을 완벽하게 딛고 일어선 아리아의 입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냉혹한 승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기대하겠습니다, 카시안 전하."아리아의 서늘한 음성이 푸른 하늘을 울렸다."내 두 번째 왕관 아래
"네가 나 없이도 완벽한 지배자라는 것을 안다. 내 도움 따위는 단 한 조각도 필요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카시안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붉은 눈물이라도 흘러내릴 듯이 절박한 빛이 피어올랐다."그러니 내가 네 기사가 되겠다, 아리아.""예?"아리아의 자색 눈동자가 순간 당황으로 크게 벌어졌다.카시안은 대강당 복도 한가운데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제국의 모든 귀족들과 황실 기사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한복판에서, 제국 최고 지배자인 알파 킹이 단 한 여인의 발치 아래 다시 한번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카시안은 아리아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올려 제 이마에 대었다. 늑대 부족에 있어 이것은 지배자가 신하에게 행하는 치욕이 아니라, 한 사내가 자신의 영혼과 목숨을 바쳐 여왕에게 바치는 가장 고결하고 절대적인 복종의 맹세였다."네가 내 루나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네 발치 아래 무릎을 꿇는 정식 수호 기사가 되겠다."카시안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복도를 울렸다."네가 구축한 그 완벽한 왕국에서, 네 발끝을 더럽히는 모든 사악한 것들을 베어내는 가장 사나운 검이 되어주마. 그러니 네 곁을 떠나라는 말만은 하지 마라... 제발, 아리아."그것은 알파 킹 카시안의 오만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이전의 오해와 무심함에 대한 참회, 그리고 이번 생에서 그녀를 절대 잃지 않겠다는 처절한 구걸이었다.복도 멀리서 이 광
아리아가 손끝을 들어 올리자, 가주 직인이 찍힌 정식 교지가 서기관들에 의해 제국 전역으로 발송되기 시작했다.귀족석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어쩜 이리 완벽할 수가...''원로원의 사욕을 부수고 제국 전체의 이익으로 환원하다니!''알파 킹 전하의 정혼자라는 수식어 따위는 필요치 않다. 저분이야말로 제국이 기다려온 진짜 루나 여왕이시다!'전생에서 아리아를 멸시하고 세라피나의 가식에 놀아나던 귀족들이, 이제는 아리아의 발치 아래 무릎을 꿇고 그녀의 입에서 떨어지는 어조 한마디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저주를 끊어내고 가문과 제국을 바로 세운 완전한 자립이었다.하지만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는 조금의 자만심도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그녀는 의장석 옆, 칠흑 같은 제복 차림으로 서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남자를 흘깃 바라보았다.알파 킹 카시안.그는 제국의 최고 지배자이자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아리아의 옆자리에 그림자처럼 서서 그녀를 호위하는 근위대장처럼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칠흑 같은 머리칼 사이로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는 오직 아리아의 일거수일투족에만 고정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흉포한 지배욕 대신 오직 지독한 후회와 안달이 일렁이고 있었다.아리아는 회의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우아하게 대강당을 걸어 나왔다.그녀의 뒤를 따라 카시안이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의 걸음 소리가 고요한 성채 회랑을 울렸다.&nb
모든 귀족들이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알파 킹의 이 성대한 구애 앞에, 그 어떤 여인이라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응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그러나 아리아는 카시안이 잡고 있던 드레스 자락을 차갑게 털어냈다.아리아의 자색 눈동자에는 단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아리아는 품 안에서 마침내 완성된, 붉은 인장이 찍힌 파혼서를 내밀었다."전하."아리아의 서늘한 음성이 무릎을 꿇은 카시안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약조를 이행할 시간입니다. 발타자르가 단죄되고 내 가문의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이 파혼서에 친필 서명을 내어주십시오."카시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해를 씻어내고 그녀의 앞에 무릎까지 꿇었건만, 아리아의 눈빛 속에는 여전히 그를 향한 완벽한 단념과 서늘한 경계만이 남아 있었다."아리아... 아직도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인가?"카시안의 목소리가 불쌍할 정도로 낮게 떨렸다."용서라니요."아리아는 오만하게 입가를 말아 올렸다."용서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전하. 저는 전하를 향한 미련이나 애정을 이전의 마지막 순간에 완벽하게 태워 없앴으니까요."아리아는 파혼서를 카시안의 가슴팍에 똑바로 밀어 넣었다."이제 전하와 나 사이에는 그 어떤 약조도, 정치적 결합도 존재하지 않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