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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08:08:35

[실버문 제국력 742년 5월 12일]

순간 아리아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742년 5월 12일.

이날은 아리아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이자, 카시안과의 정혼을 확정짓기 위해 그가 그녀의 공작가를 방문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돌아왔어...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야?'

죽음의 문턱에서 바랐던 구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리아는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릿한 통증이 뇌리를 스쳤다. 꿈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신이 그녀의 어리석었던 지난 삶을 불쌍히 여겨 준 두 번째 기회였다.

"후후, 후후후..."

아리아의 입가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 웃음은 차갑고 서늘한 냉소로 바뀌었다.

지난 삶의 아리아는 카시안의 방문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화려한 드레스를 고르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애를 썼었다. 카시안의 차가운 눈빛 한 번에 가슴이 철렁였고, 그가 던지는 무심한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천국과 지옥을 오갔었다.

세라피나가 가식적인 눈물로 카시안의 동정을 살 때도, 그저 자신이 더 노력하면 카시안이 자신만을 바라봐 줄 것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바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카시안, 세라피나. 너희가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지.'

자색 눈동자에 서늘한 차가움이 감돌았다. 전생의 애정과 호의는 죽음의 순간에 모조리 타버려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남은 것은 오직 차가운 이성과 냉혹한 결의뿐이었다.

'이번 생에서 나는 더 이상 너를 쫓아다니는 어리석은 소모품이 되지 않을 거야. 카시안, 네가 그토록 원하던 루나의 자리는 물론이고, 내 신분도, 내 삶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아.'

그때, 방 문 너머에서 우아하고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언니, 안에 있어? 들어갈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세라피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색 드레스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세라피나는 특유의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생에서 아리아는 세라피나의 저 미소 뒤에 숨겨진 뱀 같은 독을 보지 못했었다. 어머니가 다른 이부자매라는 이유로 늘 안쓰럽게 여겨 온갖 좋은 것을 나누어주었고, 결국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꼴이 되었었다.

세라피나는 침대 옆에 서 있는 아리아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언니! 아직도 드레스도 안 갈아입고 뭐 하고 있었어? 오늘 카시안 님이 오시는 날이잖아! 언니가 그렇게 기다리던 알파 킹 전하께서 오셨는데, 어서 제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내려가야지!"

세라피나의 목소리에는 아리아를 위하는 척하는 다정함이 배어있었지만, 아리아는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전생의 이 순간, 세라피나는 아리아에게 지나치게 화려하고 과도한 장신구가 달린 드레스를 추천했었다. 카시안은 사치스럽고 허영심 많은 여자를 지독하게 싫어했기에, 그 드레스를 입고 나간 아리아를 보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었다.

반면 세라피나 자신은 단정하고 우아한 차림으로 나와 카시안의 환심을 샀었다. 모든 것이 세라피나가 계산한 교묘한 덫이었던 것이다.

아리아는 세라피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죽이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던 그 여자가 지금 제 앞에서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간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증오심에 손끝이 떨렸으나, 아리아는 깊은 숨을 내쉬며 감정을 완벽히 통제했다.

복수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판을 뒤집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세라피나."

아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서늘하고 나직했다.

세라피나는 순간 아리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중압감에 흠칫하며 멈칫했다. 전생의 아리아라면 세라피나의 말에 신이 나서 어떤 드레스가 좋을까 물어보았을 터였다.

"어, 언니...? 왜 그래? 어디 아파?"

세라피나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다가오려 하자, 아리아는 손을 들어 그녀의 접근을 차단했다.

"네가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지 모르겠네. 카시안 님이 오신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뭐...?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카시안 님은 언니의 정혼 상대이자 이 실버문 팩의 위대한 알파 킹이시잖아! 언니가 전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좋아했다, 라."

아리아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그건 과거의 이야기지. 그리고 세라피나, 너야말로 오늘 옷차림에 힘을 너무 준 것 같지 않니? 정혼자를 맞이하는 건 나인데, 왜 네가 그렇게 분홍색 비단 드레스에 화려한 보석까지 둘렀지?"

"어...? 그, 그건... 언니를 모시는 자리에 예의를 갖추려고..."

세라피나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황함과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늘 순진하고 말 잘 듣던 아리아가 제 차림새를 지적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예의라니... 좋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나는 오늘 몸이 좋지 않아서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야."

"뭐?! 안 내려간다고? 카시안 님이 직접 공작가까지 찾아오셨는데?"

세라피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리아가 카시안을 마다하다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 어차피 보석 감정서와 정혼 상의 때문에 아버지를 뵈러 오신 것이니,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아리아는 세라피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리아의 자색 눈동자가 뱀처럼 차갑게 세라피나의 시선을 꿰뚫었다.

"네가 그렇게 카시안 님을 신경 쓴다면, 네가 내려가서 접대하지 그러니?"

"언니, 그, 무슨 말을... 내가 어떻게 정혼자 계신 전하를..."

세라피나는 가식적으로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의 눈동자 뒤편에 숨겨진 욕망을 아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실컷 좋아해라. 네가 그토록 원하던 그 남자를 어디 마음껏 가져봐.'

아리아는 세라피나를 지나쳐 침대 옆 소파에 우아하게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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