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그만 자자."데브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정적을 깨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엘린은 고개를 들어 적의 대신 깊은 피로만이 서려 있는 그의 매서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발코니에서 품었던 용기는 이제 온화한 복종으로 변해 있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의지해야만 하는 간절함에 이끌려 같은 침대에 누웠다.데브는 엘린의 글래머러스한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뒤에서 단단히 안아주었다. 엘린은 억만장자의 거대한 몸이 풍기는 온기가 자신을 감싸 안으며, 온갖 더러운 추악함의 흔적을 막 씻어낸 방 안의 온기를 쫓아내는 것을 느꼈다.같은 이불 아래에서 엘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이 남자… 생각보다 그리 무서운 사람은 아니지도 몰라.'엘린은 데브의 품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기 직전, 아늑한 생각을 떠올렸다.다음 날 아침, 맨해튼의 높은 빌딩 숲 사이로 이제 막 햇살이 비쳐 들기 시작했다.엘린은 데브의 개인실 문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열고, 먼저 머리를 내밀어 복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했다.1층 저택은 벌써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하인들은 청소를 하고 화병을 닦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 거대한 메인 식당에서는 빅토리아와 레이몬드가 화려한 아침 식사를 즐기며, 엘린의 귀에는 역겹게만 들리는 낮은 웃음소리를 나누고 있었다.젊은 여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그녀는 간호사 유니폼 주머니를 슬쩍 건드려, 단추 모양의 작은 물건—어제 데브의 심복들이 전달해 준 미니 CCTV—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식당 근처의 장식용 화초를 살피는 척하며, 엘린은 은밀하고 빠르게 그 작은 장치를 잎사귀 사이에 감추었다. 카메라의 렌즈는 메인 식탁과 거실 소파를 정확히 향하고 있었다.'첫 번째 포인트 확보.' 엘린은 만족스럽게 생각했다.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주방 쪽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야, 뚱보! 거기 서서 왜 멍하니 있는 거야?"
Last Updated : 2026-09-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