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폐위된 황후가 새 황제를 고른다: Chapter 31 - Chapter 40

138 Chapters

제31화. 다시 꿰매는 자리

백연전 행랑의 문을 열자 볕보다 먼저 먼지가 들어왔다.단비는 창호를 받치고 서련은 빈 궤짝을 밀었다. 두 사람이 아무리 힘을 주어도 궤짝은 움직이지 않았다. 채운이 와서 밑을 보더니 바닥 못 하나를 뽑았다. 궤짝이 허무하게 미끄러졌다.“우리는 지금 무엇과 싸운 거지?”서련이 묻자 단비가 손등으로 코를 닦았다.“나무와 졌습니다.”작게 웃는 소리에 문밖의 궁인들도 긴장을 풀었다. 전날 온 두 사람 외에 세 사람이 더 찾아왔다. 서련이 궁인을 새로 모은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한 사람은 바느질 대신 음식을 잘했고, 다른 사람은 눈이 침침해 큰 이불 바느질만 할 수 있다고 먼저 말했다.서련은 모두를 고용하지 않았다. 자리가 넷뿐이라는 말에 행랑이 조용해졌다. 단비는 자기 자리를 빼면 하나가 더 생긴다고 했지만 채운이 고개를 저었다.“천을 놓을 곳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만 앉힐 수는 없어요.”서련은 첫 사흘 동안 시험으로 맡길 일을 나눴다. 자기 옷 한 벌, 객사 이불 덮개 두 장, 찢어진 방풍 덮개였다. 완성해야만 돈을 주는 방식 대신 일한 시간과 필요한 재료를 먼저 정했다. 눈이 침침한 궁인은 이불 일을 택했다.“일을 못 마치면 돈을 돌려드려야 합니까?”“솜씨를 속이지 않았다면 고치는 데 든 시간도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늦게 바꾸면 그 값도 내겠습니다.”채운이 서련을 보았다.“그 말씀은 적어 주십시오.”음식을 잘한다던 궁인이 조용히 일어섰다. 바느질은 못하지만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와 보았다고 했다. 서련은 그를 붙들어 잘하지 못하는 일을 맡기지 않았다. 대신 부엌 할멈에게 객사 손님이 늘 때 하루씩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지 물었다. 할멈은 지금은 아니고 큰 빨래를 하는 날에는 필요하다고 했다.그 궁인은 날짜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빈말이라도 오늘부터 오라 할 줄 알았습니다.”서련은 그러면 그가 다른 일자리를 놓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행랑의 먼지를 한번 털고 갔다. 나중에 쓸 이름과 연락할 곳만 단비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제32화. 문턱을 넘는 수레

비단은 받았지만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채운은 치수표를 보고 세 벌을 사흘 안에 만들려면 밤을 새워야 한다고 했다. 겉에는 단순한 모양으로 그려 놓고 안감에는 손이 많이 가는 곡선이 들어 있었다. 서련은 필요한 사람 수와 시간을 적어 귀비전으로 보냈다. 답이 오기 전에는 천을 자르지 않기로 했다.“가위 한번 대면 물건을 망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채운이 가위집을 닫았다. 단비는 비단을 덮어 한쪽에 옮겼다. 대신 예정된 객사 이불부터 손질했다.오전에는 새 솜과 실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서련이 문풍지 값을 계산하는 동안 단비가 뛰어왔다. 수레가 안쪽 물품 문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이었다.“후궁 처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면 내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답니다.”서련은 명선이 내준 객사 반입 허가를 챙겼다. 문에 도착하니 수레꾼이 솜 자루 하나를 내려놓고 있었다. 문지기는 그것을 통행 몫이라고 불렀다.“늘 내던 것입니다.”수레꾼이 작게 말했다. 그는 해가 지기 전에 다른 물건도 옮겨야 했다. 실랑이를 오래 할 여유가 없었다.서련은 그가 내려놓은 솜 자루를 수레로 돌려놓았다.“이 자루를 내가 샀습니다. 별도 통행료가 있다면 내가 보겠습니다.”문지기는 공주의 객사에서도 규칙을 따라야 한다며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서련은 규칙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문 옆 판자를 가리켰다. 판자에는 식량과 연료, 작업용 물품을 따로 확인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솜을 떼어 받으라는 말은 없었다.“확인은 하십시오. 다만 확인할 물건이 사라지면 곤란하겠지요.”뒤에 기다리던 수레꾼이 웃음을 참았다. 문지기가 그쪽을 노려보자 서련은 다음 수레까지 붙잡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자신의 수레를 옆으로 빼게 하고 마당 한쪽에서 기다렸다.바람이 세게 불었다. 단비는 솜에 눈이 묻지 않도록 덮개를 눌렀다. 서련은 수레꾼에게 기다린 시간의 삯을 따로 치르겠다고 했다. 그 돈이 아까웠지만 남의 하루를 빌려 자기 다툼을 할 수는 없었다.이현은 안쪽 문에서 나오다가 그들을 보았다. 서련이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제33화. 값을 묻는 여자

서련이 연화전으로 돌려보낸 것은 비단이 아니라 견적서였다.세 벌을 사흘 안에 짓는 데 필요한 사람 수, 재단과 자수에 드는 시간, 실의 양. 손이 많이 가는 안감을 단순하게 바꾸면 값이 얼마나 줄어드는지까지 적었다. 귀비의 호의에 감사한다는 문장은 없었다.답은 종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왔다.“매향이라 합니다.”연화전의 상궁은 문턱을 넘기 전에 먼저 웃었다. 마흔을 넘긴 얼굴에 주름 하나 없이 웃는 사람이었다. 서련은 그 웃음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여섯 해 동안 보아 왔다.“귀비마마께서 이 종이를 보시고 한참 웃으셨습니다. 황후였던 분이 손일 값을 세고 계시다니.”“일한 사람이 못 받았다는 말보다는 낫겠지요.”매향은 대답 대신 품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인계표였다. 물품 난에 비단 세 필, 그리고 그 옆에 단정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전 황후 서씨가 귀비께 올리는 예물.채운의 가위가 탁자 위에서 멈췄다.“예물을 드린다고 약속한 적 없습니다.”“비단은 이미 받으셨잖습니까.”“그래서 자르지 않았습니다.”서련이 단비에게 눈짓했다. 비단 세 필이 탁자 위에 올랐다. 붉은 봉인 끈은 처음 묶인 길이 그대로였다. 확인하느라 풀었던 매듭도 도로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매향의 눈이 끈의 끝을 따라갔다. 한 치라도 잘렸으면 옷값을 물릴 생각이었다는 것을, 서련은 그 눈으로 알았다.“그럼 돌려주셔야지요.”“그러겠습니다. 주문 조건을 받지 않으시면 이대로 돌려드리지요.”단비가 정말로 보자기를 펼치자 매향이 손을 들었다. 연회는 닷새 뒤였다. 침방에 새로 맡기면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그 순서를 앞당기려면 귀비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옷을 밀어내야 했다. 그것은 소문이 되었다.“좋습니다. 값을 받으신다면 어느 이름으로 받으시겠습니까.”서련은 견적서를 펼쳤다. 재단은 채운. 안감과 마무리는 옥분과 소례. 물품 구입과 전달은 단비. 서련 자신의 이름 옆에는 작업 관리와 공간 사용료만 적혀 있었다.“이름이 이렇게 많으면 보기 사납습니다.”“지급할 때 빠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34화. 불러도 가지 않는 밤

이겸의 전갈에는 오라는 말만 짧게 적혀 있었다. 예전의 서련은 그 빈자리를 이유로 채웠다. 급한 일이 있으시겠지, 어디가 편찮으신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오늘은 채우지 않는다.“내수고 담당자에게 목록을 보내 달라 하십시오. 확인은 담당자 앞에서 하겠습니다.”단비가 붓을 든 채 올려다보았다.“그것뿐입니까?”“그것뿐이야.”답은 아침에 나갔다. 점심 전에 상자가 왔다.내관 둘이 메고 온 상아 옷함이었다. 목록에 없는 물건이었다. 단비가 뚜껑을 열자 옛 중궁의 향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여섯 해 동안 아침마다 옷깃에서 나던 향. 서련은 뚜껑을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서련 님?”단비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서련은 뚜껑을 닫는 대신 창을 열었다. 늦겨울 바람이 방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향은 남았다. 다만 바람 냄새가 그 앞에 섰다.“이것도 돌려보내실 겁니까?”“담당자가 오는 날에. 담당자를 통해서.”“그때까지는요?”“열지 마.”채운이 문가에서 옷함을 오래 보았다.“저 함 하나면 수선방 석 달 품삯입니다.”“그래서 열지 않는 겁니다. 담당자가 올 때까지.”“팔아도 되는 물건인데요.”“제 것이 아닙니다. 제 것이었던 적도 없고요.”채운은 더 말하지 않고 가위를 집었다. 서련은 창을 닫지 않았다. 방이 식어 갔고 그편이 나았다.해가 기울 무렵 부엌 할멈이 뛰어왔다. 말을 못 하고 대문 쪽으로 손만 흔들었다.대문 밖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시종도 없고 일산도 없었다. 남빛 평복이었다. 서련은 그 어깨를 등 뒤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여섯 해가 그렇게 만들었다.“폐하.”“짐이 오라 했다, 서련.”“담당자를 통해 답을 올렸습니다.”“그 종이를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다.”이겸은 문턱을 넘지 않았다. 서련도 문을 더 열지 않았다. 그는 대문 안쪽을 보았다. 행랑 한 칸, 마당의 빨랫줄, 문턱의 새 목재.“이런 데서 사느냐.”“제가 골랐습니다.”“짐이 잘못했다 하지 않았느냐.”“하셨습니다.”“그럼 언제까지 그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35화. 후한 사람의 선물

돈상자 안의 은자보다 그 위에 놓인 종이가 더 무거웠다.서련은 은자를 세어 영수를 썼다. 선금 스무 냥, 받은 날짜, 받은 사람. 그리고 붓을 인사문 위로 가져가지 않았다.“이건 서명하지 않겠습니다.”“선금은 받으시고요?”“선금은 옷값입니다. 이 종이는 옷값이 아니지요.”매향의 눈썹이 올라갔다. 서련은 인사문을 옆으로 밀고 새 종이를 폈다. 맨 위에 한 줄을 썼다. 구매 계약. 그 아래 옷 세 벌, 값, 인도 날짜. 재단 채운, 안감 옥분과 소례, 운반 단비. 운반 중 손상은 인수 서명 전까지 수선방이, 그 뒤는 연화전이.“계약이라니요. 귀비마마께서 언니라 부르시며 아끼시는데.”“아끼시는 분께 드리는 옷일수록 값이 분명해야지요. 나중에 서운한 말이 나오지 않게.”“운반 중 손상을 연화전이 진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인수 서명을 하신 뒤부터입니다. 서명 전에 상하면 저희가 집니다.”“귀비마마께 도장이라도 받으라는 겁니까.”“받는 분이 누구든 받았다는 표시면 됩니다. 상궁의 이름이어도 좋습니다.”매향이 서련을 보았다. 자기 이름이 종이에 남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 받겠다고 하면 옷도 없었다. 그녀는 이름을 적었다. 붓이 무거운 사람처럼 적었다.매향은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웃음이 얼굴의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한 가지 더요. 치수는 저희가 직접 재겠습니다.”채운이 문가에서 말했다.“치수표를 보내 드리지 않았습니까.”“종이는 숨을 안 쉽니다. 사람은 쉬고요.”그날 오후 연화전에서 세 사람이 왔다. 후궁 둘과 궁인 하나. 귀비의 옷은 귀비 대신 치수가 같은 궁인이 재고 입어 보는 것이 법도였다. 채운은 궁인의 손목에 실을 감아 표를 하고 손끝으로 어깨를 짚어 가며 쟀다. 실이 풀린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아프냐?”“아닙니다. 처음 재 봐서요.”“이 자국은 내일까지 남을 게다. 가봉 때 그걸 보고 내가 너를 알아본다.”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궁 둘은 재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36화. 바늘을 든 손

옷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었다.서련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윤소하에게 청했다.“어제 치수를 재 준 궁인을 불러 주십시오. 한 번만 더 입혀 보겠습니다.”“왜요? 옷이 안 맞는 걸 다들 봤는데.”“그러니 한 번 더 보자는 겁니다. 값을 물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손해는 아니지요.”“그 아이는 오늘 일이 있어요.”부채가 다시 펴졌다. 후궁들의 웃음이 조금 남아 뜰에 떠 있었다. 한 후궁이 거들었다.“귀비마마 말씀이 맞지요. 옷이 안 맞는 걸 다들 봤는데 또 볼 것이 있습니까.”“다들 보셨으니 다시 보셔도 손해는 없지요.”윤소하가 부채로 무릎을 쳤다.“그만 끝내지요. 매향아, 옷 걷어라.”“옷은 아직 제 것입니다. 인수 서명 전이니까요.”매향의 손이 멈췄다. 어제 자기 이름을 적어 넣은 종이가 떠올랐을 것이다. 서련은 단비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단비는 이미 없었다. 치맛자락이 문을 돌아 사라지는 것만 보였다.“언니, 사람을 어디로 보내세요?”“구경하실 분을 한 분 더 모시러요.”명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객사에서 연화전까지 오는 길을 공주는 서둘러 걷지 않았다. 다만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귀비가 옷 구경을 한다기에 왔소. 내 객사에서 지은 옷이라 하니 나도 볼 자격이 있겠지.”윤소하가 일어섰다. 앉아 있던 후궁들이 따라 일어났다.“공주마마께서 이런 자리까지.”“이런 자리라 온 거요. 귀비는 앉으시오. 나는 구경 온 사람이라 서서 보겠소.”윤소하는 앉지 않았다. 앉으면 지는 것처럼 보였다. 서 있어도 마찬가지였다.“치수 잰 궁인을 불러 달라 했다고? 부르지. 내가 부르면 오늘 일이 있어도 오겠지.”궁인은 왔다. 뛰어왔는지 숨이 거칠었다. 채운이 먼저 그 손목을 잡아 뒤집었다. 어제 실이 남긴 붉은 자국이 그대로 있었다.“자국이 있구나.”“예. 어제 그대로예요.”병풍 뒤에서 옷이 바뀌었다. 견습 아이가 벗은 옷을 그 궁인이 입었다.병풍이 걷혔다.어깨가 어깨에 앉았다. 소매 끝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37화. 돌려받을 앞치마

세탁터의 밤은 김과 잿물 냄새로 시작했다.궁 외곽 담 아래 가마솥 여섯 개가 끓고 있었다. 김 속에서 여자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놓았다. 서련은 그 발부터 보았다. 얼음이 남은 마당에 발 스무 개가 맨발이었다.“저기요.”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마솥 앞에서 허리를 구부린 여자. 박씨였다. 발등이 붉다 못해 검었다.담 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서련은 돌아보지 않았다. 야간 순찰이라고 했다. 순찰이 백연전 앞에서 시작해 세탁터 담에서 끝나는 까닭을 그녀는 묻지 않았다.“누구요?”곽 관리가 등불을 들고 나왔다. 배가 앞서고 얼굴이 뒤따랐다.“백연전 서련입니다. 박씨의 신발을 돌려주십시오.”“신발? 아, 빚진 것들 말이오. 그건 담보요. 빚을 갚으면 돌려주지.”“빚 문서를 보여 주십시오.”“전 황후라 하셔도 여긴 세탁터요. 궁의 규정이 따로 있소.”“그럼 그 규정을 함께 읽지요.”곽이 코웃음을 치고 종이를 가져왔다. 안 보여 줄 이유가 없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서련은 등불 아래 종이를 폈다. 박씨의 빚. 원금은 은 한 냥이 못 되었다. 그 아래로 줄이 길었다. 파손 배상, 파손 배상, 파손 배상.“파손이 무엇입니까?”“빨래하다 옷을 태우거나 찢으면 물어야지. 당연한 것 아니오.”“무엇에 탔습니까?”곽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박씨가 대답했다. 작은 소리였다.“솥이요. 바닥이 얇아서 빨래가 눌어요. 저희가 태운 게 아니라…”“솥은 누구 것입니까?”“…세탁터 것이지요.”서련은 문서를 곽에게 돌려주었다.“세탁터 솥이 태운 값을 일한 사람이 물고 있습니다. 궁의 규정을 말씀하셨지요. 내수고 규정 셋째 조. 궁 소유 기물의 파손은 기물 관리 책임자가 먼저 보고하고, 사용자의 과실이 확인된 뒤에 배상을 정한다. 보고하셨습니까?”곽의 등불이 흔들렸다.“어찌 그런 것을.”“여섯 해 동안 밤마다 베꼈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단비가 옆에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규정을 아시면 아실수록 좋소. 그래도 빚은 빚이오. 여기 여자들 빚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38화. 연회 직전의 빈 걸이

연회를 세 시진 앞두고 옷걸이 세 개가 비어 있었다.서련은 해 뜨기 전에 준비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준비방 궁인은 울 것 같은 얼굴로 걸이를 가리켰다. 저녁에 분명히 걸었다고 했다. 새벽에 문을 여니 없었다고 했다.“누가 문을 열었느냐.”“밤에… 침방에서 오셨습니다. 상궁마마께서.”“그때 왜 알리지 않았느냐.”“상궁마마께서 알리지 말라고… 저는 준비방 궁인이라 침방 상궁께 거역을…”궁인의 목소리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서련은 더 묻지 않았다. 이 아이 잘못이 아니었다.문이 열렸다. 대답이 들어왔다. 민서경이었다. 물품과 인력을 쥔 상궁은 걸음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뒤따르는 궁인 둘이 옷 세 벌을 받쳐 들고 있었다.“수선방은 인계한 적이 없소. 어젯밤 연화전에서 옷이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침방이 밤새 세 벌을 새로 지었소.”옷이 걸이에 걸렸다. 서련은 한 걸음 다가가 보았다. 채운의 재단이었다. 어깨선이 그렇게 떨어지는 옷을 침방은 짓지 않는다. 다만 옷깃 안쪽에 침방의 꼬리표가 새로 달려 있었다. 실밥이 아직 뻣뻣했다.“밤새 세 벌을요.”“침방에는 손이 많소.”서련은 꼬리표를 손끝으로 눌렀다. 실이 옷의 실과 달랐다. 굵고 새것이었다.“꼬리표 실이 옷 실과 다릅니다.”“꼬리표는 꼬리표 실로 다오. 그것도 모르시오?”“그 손이 남의 옷에 꼬리표만 달았군요.”민서경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증거가 있소? 바늘땀이 말을 하오?”밖에서 후궁의 시녀가 문을 두드렸다. 후궁 두 분이 오셨다고, 입으실 시간이라고 했다.채운이 서련을 보았다. 서련이 고개를 끄덕였다.“안감부터 입혀. 겉옷은 마지막이야.”“겉옷이 누구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는데요.”“그러니까 마지막이지.”채운과 단비가 옆방으로 갔다. 속옷, 속치마, 안감 저고리. 옷이 한 겹씩 올라가는 동안 시간이 한 겹씩 벌렸다.민서경이 종이를 꺼냈다.“대금 청구서요. 수선방 선금은 귀비마마께서 이미 치르셨고, 침방 야간 제작비는 별도로 올렸소. 두 곳이 일했으니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39화. 자수를 뒤집으면

바늘땀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듭은 주인을 안다.서련은 채운의 손끝을 보았다. 실이 감긴 손가락이 허공에 작은 원을 세 번 그렸다.“안감 솔기 끝마다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짓는 버릇이라 안 지을 수가 없어요.”“침방 사람들도 압니까?”“아는 사람은 압니다. 흉내는 못 냅니다. 손이 따로 배워야 하는 거라.”귀빈 대기실에는 이미 사람이 차 있었다. 태후가 상석에 있었고 후궁들이 양쪽으로 앉았다. 윤소하는 태후 곁에서 부채를 접었다 폈다. 명선이 창가 자리에서 서련을 보고 눈썹을 한 번 올렸다.서련은 문턱에서 절했다.“언니, 또 오셨어요? 오늘은 제가 옷 입는 날인데.”윤소하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달았다.“그래서 왔습니다. 마마께서 누구 옷을 입으시는지 알고 입으셔야지요.”“누구 옷이긴요. 제 옷이지.”“지은 사람 말입니다.”서련은 태후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마마, 소란은 피우지 않겠습니다. 한 가지만 청합니다. 옷 세 벌의 자수를 뒤집어 보게 해 주십시오.”“물러나 있으라 했소.”“뒤집어 보는 데 값이 들지 않습니다.”명선이 말했다.“어차피 입히기 전이니 잠깐이지요. 저도 궁금합니다. 제 객사 옷인지 침방 옷인지.”태후의 손이 찻잔 위에 잠깐 머물렀다.“뒤집게.”옷이 들어왔다. 채운이 첫 벌의 안감을 뒤집었다. 솔기 끝, 자수가 끝나는 자리에 작은 매듭이 있었다. 둥글게 세 번. 두 번째 옷에도, 세 번째 옷에도.“이 매듭은 제가 짓는 것입니다. 침방에서 열두 해를 일했으니 아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민서경이 나섰다.“침방에도 그런 매듭을 짓는 손이 있소.”“누가 지었습니까?”서련이 물었다.“밤새 지었다는 손 말입니다. 이름이 있겠지요.”민서경은 잠깐 망설이고 이름을 댔다.“민유정. 침방 작업 책임자요.”민유정이 불려 왔다. 젊고 손이 희었다. 서련은 바늘과 실을 내밀었다.“같은 매듭을 여기 하나만 지어 주십시오. 지으신 손이면 어렵지 않겠지요.”민유정이 바늘을 받았다. 실을 꿰는 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제40화. 우리의 품삯

첫 진짜 품삯은 은자 한 닢씩이 아니라 종이 한 장씩이었다. 각자의 이름과 한 일과 값이 적힌 종이. 은자는 그 아래 있었다.“옥분.”나이 든 궁인이 앞으로 나왔다. 눈이 침침해 이불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서련이 종이를 건넸다. 옥분은 종이를 눈앞까지 가져갔다. 한참 보았다.“제 이름입니까?”“그렇습니다. 안감 세 벌, 이레치.”“제 이름이 적힌 종이는 처음입니다. 명부에 있는 건 제 이름이 아니라 제 자리라서.”옥분이 종이를 가슴에 대었다. 눈이 젖었는데 침침한 눈이라 그런지 눈물이 오래 걸려 내려왔다. 소례가 옆에서 소매로 자기 눈을 닦았다. 채운은 자기 종이를 받고 값을 다시 더해 보았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맞습니다.”“다행이군요.”단비가 마지막이었다. 종이를 받고 눈을 깜박였다.“저도요?”“운반했잖아. 밤에 뛰기도 하고.”“저는 서련 님 사람인데요.”“일한 사람이야.”단비는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읽었다. 세 번을 그랬다.명선이 마루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시종이 문서 두 장을 들고 있었다.“지급 구경은 끝났나? 그럼 내 것도 하지. 시장 간판은 내 시종이 보고 왔네. 새벽에 없어졌다더군. 없어진 게 아니라 옮긴 거지.”객사 급료와 공간 약정이었다. 수선방이 쓰는 행랑 한 칸의 값, 객사가 수선방에 맡길 일의 값,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조항. 명선이 붓을 서련에게 넘겼다.“공짜는 없지만 새장도 없다. 그대가 늘 하던 말을 내가 종이로 썼을 뿐이오.”“제가 늘 하던 말은 아닙니다.”“그럼 내가 늘 하던 말이군. 서명하오.”서련이 서명했다. 명선이 서명했다. 시종이 사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명선은 마당의 상아 옷함을 보았다.“저건 언제 가나.”“오늘 갑니다. 내수고 담당자가 옵니다.”담당자는 정오에 왔다. 서련은 옷함을 열지 않고 넘겼다. 목록에 없는 물건, 받은 날짜, 돌려보내는 날짜. 담당자가 인수 서명을 했다. 옷함이 대문을 나갈 때 향이 조금 따라 나갔다. 서련은 창을 닫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PREV
123456
...
1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