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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하지만 조금 내버려두면 송연서는 곧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먼저 찾아와 사과하는 사람이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송연서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지성훈이 겨우 여유가 생겨 송연서와 지민호를 찾아간 것은 무려 한 달이 지난 뒤였다.윤서희도 지성훈과 같이 따라왔다.“조금 있다가 언니를 만나면 차분하게 이야기해. 언니는 나처럼 성격이 순한 사람이 아니잖아. 괜히 자극했다가 또 화내기라도 하면 어떡해.”“잘못한 건 송연서인데, 내가 허리 굽혀 사과하기라도 해야 해? 그래도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아예 지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도 필요 없어.”지성훈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송연서가 잘못한 일이 그렇게 많은데도 지성훈은 그동안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오히려 윤서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수습했다.그렇게까지 송연서를 위해 애썼는데, 송연서는 도리어 자신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지성훈은 잔뜩 굳은 얼굴로 먼저 송연서와 지민호가 전에 묵었던 호텔을 찾았다.하지만 호텔 직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송연서 씨와 아드님은 한 달 전에 이미 체크아웃하셨습니다.”송연서가 원래 검소한 성격인 걸 생각하면 비싼 호텔에 계속 머물 리 없었다.지성훈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현재 송연서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지 못했던 지성훈은 곧장 송연서가 예전에 일하던 웨딩 회사로 향했다.그 회사는 송연서의 아버지가 세운 곳이었다.비록 송연서가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고 해도 그곳을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지성훈은 그 점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그런데 새로 회사를 인수한 대표는 뜻밖의 말을 했다.“송연서요? 한 달 반쯤 전에 이미 퇴사했는데요. 제가 연봉도 세 배로 올려주겠다고 했는데 끝내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실력 좋은 웨딩 플래너를 놓치다니, 정말 아깝죠.”지성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퇴사했다고요? 왜 저한테 아무 말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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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한편, 송연서는 지민호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했다.고향에 돌아온 뒤에도 송연서는 지성훈과 윤서희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이 ‘불륜남과 상간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또다시 그놈의 은혜 타령을 늘어놓았다.지성훈은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윤서희를 그저 여동생으로 생각합니다. 윤서희 아버지가 내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잘해준 것뿐이에요. 나와 윤서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선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윤서희 역시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연서 씨는 원래 속이 좁고 질투가 심한 사람이에요. 제가 상간녀라는 소문까지 여기저기 퍼뜨렸어요. 저와 성훈이도 정말 어쩔 수 없이 가짜 결혼을 하게 된 거예요!”이런 말은 송연서에게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송연서가 조금이라도 두 사람의 행동을 따지기만 하면 곧바로 철이 없다느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네티즌들도 두 사람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대체 어떤 은혜를 갚으려면 호텔에서 같이 자는 거야?][그렇게 은혜를 갚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어야지. 왜 송연서한테 피해를 줘?][상간녀라는 오명을 벗으려고 원래 아내와 이혼하고 둘이 혼인신고를 해? 너희는 그런 말을 하고 부끄럽지도 않냐?][윤서희가 무슨 피해자 코스프레야? 너희 모녀가 여기저기서 원래 아내와 그 아들의 것을 빼앗아 놓고 무슨 억울한 소리를 해?]윤서희는 연예계에서 평판이 완전히 망가졌다.광고 계약은 줄줄이 끊겼고, 출연이 예정돼 있던 작품에서도 모두 하차하게 됐다.지성훈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지성훈의 평판이 크게 떨어지면서 지선그룹의 주가까지 급락했고, 주주들의 불만도 날이 갈수록 커졌다.게다가 송연서가 자신이 가진 지분을 지승준에게 넘긴 탓에, 지승준은 지성훈을 누르고 지선그룹의 최대 주주가 되어 있었다.지성훈은 회사에서도 사사건건 견제를 받으며 하루하루가 순탄치 않았다.송연서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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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지성훈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지민호였다.아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황급히 송연서의 뒤로 숨어버렸다.“엄마, 무서워...”“괜찮아. 이제 엄마가 절대 네가 그 사람한테 다시 끌려가게 두지 않을 거야.”송연서는 지성훈을 바라봤다.한때는 지성훈을 누구보다 더 사랑했다.하지만 이제 다시 마주한 지성훈에게 남은 감정은 오직 뼈에 사무치는 증오뿐이었다.지성훈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화난 얼굴로 다가왔다.“너 정훈이랑 그렇게 가까이 지내면서 나를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송연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전남편.”지성훈의 걸음이 순간 멈췄다.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우린 진짜 이혼한 거 아니야! 형식상으로만 이혼한 거라고!”“이혼 합의서도 진짜고 이혼 절차도 법적으로 끝났는데, 그걸 어떻게 형식상 이혼이라고 해?”송연서가 비웃듯 말했다.지민호는 송연서의 손을 잡은 뒤 정훈의 손까지 잡아당겼다.“엄마, 훈이 아저씨, 우리 가자. 나 이제 놀기 싫어...”그 모습을 본 지성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지민호! 똑똑히 알아둬. 내가 네 아빠야! 저 남자가 아니라고!”지성훈이 소리를 지르자 지민호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원래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던 송연서는 이제 화가 극에 달했다.송연서는 차갑게 지성훈을 바라봤다.“너는 윤서진 때문에 몇 번이나 민호를 내팽개쳤잖아.”“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외면했던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아버지라고 해?”송연서는 지민호의 손을 잡고 그대로 돌아섰다.지성훈이 뒤쫓으려 하자 정훈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적당히 좀 해.”“착각하지 마. 연서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야.”“예전에는 그랬겠지. 지금은 아닐 수도 있고.”“남의 아내와 아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넘보고도 부끄럽지 않냐?”지성훈은 화를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정훈은 비웃었다.“송연서가 너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얼굴조차 마주친 적이 없어.”“그런데 너는 은혜를 갚는다는 핑계로 다른 여자와 호텔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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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변호사 팀은 송연서에게 간단히 설명한 뒤 명함을 건넸다.“송연서 씨, 현재 넘겨받으신 모든 자산은 전문 관리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변호사는 그렇게 말한 뒤, 팀원들을 이끌고 우르르 자리를 떠났다.정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이제부터 내가 당신 밑에서 일하는 평생 직원이 됐네.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해줘야 해.”“계약서도 안 보고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거야? 정말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해?”정훈이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을 벌인 탓에 송연서는 아직도 얼떨떨했다.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모르겠는 상태였다.정훈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내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다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네가 지성훈의 청혼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이미 준비해 둔 거야. 다만 그때는 너한테 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예전의 송연서는 이성 간의 감정에 워낙 둔했고, 정훈 역시 감정을 돌려 말하는 사람이었다.송연서가 지성훈의 청혼을 받아들였던 그날이 되어서야 정훈은 술에 잔뜩 취한 채, 송연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그제야 송연서는 정훈이가 자신을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 후 정훈은 송연서의 결혼식에 참석한 그날 밤, 곧장 해외로 떠났다.그리고 석 달 전에 비로소 다시 돌아왔다.송연서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네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충동적인 것 같아. 만약 네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두 분 다 찬성하셨어.”정훈이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8살 때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그때 네가 나를 꺼내줬고. 우리 가족 넷이 가스에 중독돼 거의 몰살당할 뻔했을 때도 네가 울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을 불러줬고. 그랬던 널 두 분이 싫어하실 리가 있겠어?”이번에는 송연서도 정말 할 말이 없었다.그래, 정훈은 원래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이었다.정훈이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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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토요일에 송연서는 지민호의 시력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윤서희 모녀와 마주쳤다.윤서희가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나랑 성훈이는 이미 결혼했는데, 너는 아직도 우리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어. 송연서,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어?”송연서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네가 스스로 상간녀를 자처하면서 무슨 낯짝으로 나를 욕해?”“나...”윤서희는 한마디를 내뱉다가 지성훈을 보고는 곧바로 말을 바꿨다.“나는 그저 언니와 오빠가 나 때문에 오해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설명해 주려고 온 거야. 언니가 나를 욕하고 모욕해도 참았는데, 어떻게 서진이한테 손을 댈 수 있어?”윤서진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더니 목이 터져라 울기 시작했다.“민호 오빠, 아줌마, 나 때리지 마. 너무 아파!”지성훈이 황급히 달려왔다.지성훈은 송연서와 지민호를 거칠게 밀쳐내고 윤서진을 품에 안았다.지민호는 지성훈이 밀치는 힘에 휘청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 송연서가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철제 의자에 부딪힐 뻔했다.송연서는 놀라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런데 송연서가 따져 묻기도 전에 지성훈이 새파란 얼굴로 그녀를 몰아붙였다.“그만해!”“다 큰 어른이 어떻게 서희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겨우 5살인 아이까지 괴롭혀?”“자기 혼자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서 민호한테까지 남을 괴롭히라고 가르치다니.”“너희 모자는 너무 악독해. 나는 이제 너희 같은 가족은 필요 없어!”지성훈은 늘 송연서와 지민호를 엄하게 꾸짖기만 하면 두 사람이 잘못을 고치고 바르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성훈은 잊고 있었다.어떤 사람의 악함은 뼛속까지 배어 있어서 절대 고칠 수 없다는 것을!윤서희와 윤서진은 지성훈의 생명의 은인의 후손이었다.지성훈은 더 이상 윤서희와 윤서진이 송연서와 지민호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이번에 지성훈은 정말로 송연서에게 마음을 접었다.아무리 송연서를 사랑해도, 송연서와 지민호가 돌아오길 빌지는 않을 것이었다!지성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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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송연서는 이제 지성훈 일행의 얼굴만 봐도 지긋지긋했다.송연서는 지민호의 손을 잡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그런데 뒤에서 머리를 다쳐 피까지 흘리고 있던 윤서희가 억울한 목소리로 송연서를 불렀다.“언니! 어떻게 나랑 오빠한테 이럴 수 있어? 우린 계속 언니를 생각해서 행동했는데, 착한 게 죄라도 돼?”송연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윤서희의 뺨을 때렸다.“사람 질리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다른 사람도 지성훈처럼 네 말이면 다 믿어줄 거라고 생각해?”송연서는 지민호의 손을 잡고 그대로 걸어갔다.뒤에서 지성훈이 분노에 차 소리쳤지만, 송연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지성훈은 머리에 상처를 입은 윤서희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윤서진을 바라봤다.마음이 아프면서도 죄책감이 밀려왔다.지성훈은 두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했다.“미안해. 내가 송연서를 제대로 막지 못해서 너랑 서진이까지 고생하게 했네.”윤서희가 훌쩍이며 말했다.“나는 괜찮아. 나야 좀 다쳐도 괜찮지만, 서진이는 아직 이렇게 어린데...”“언니는 너무 심해. 우리 모녀가 너그럽게 참고 넘어가 주면 이렇게 우리를 괴롭혀도 되는 거야?”“아저씨, 나쁜 아줌마랑 민호 오빠가 나 때렸어. 너무 아파...”윤서진도 옆에서 울음을 터뜨렸다.모녀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지성훈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한참을 고민하던 지성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차라리... 신고하자.”자신이 더 이상 그 악마 같은 모자를 감싸서는 안 됐다.그 때문에 윤서희와 윤서진이 계속 피해를 보고 있었다.그건 두 사람에게 너무 부당한 일이었다!지성훈이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윤서희의 몸이 순간 굳었다.“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어.”지성훈은 휴대폰을 꺼내 힘겹게 말했다.“그래도 신고해서 법적으로 처벌할 건 해야 해. 이제는 더 이상 두 사람을 감싸주지 않을 거야.”지성훈이 이미 번호를 눌러 신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순간이었다.윤서희가 지성훈의 휴대폰을 낚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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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윤서희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지성훈을 보는 순간 윤서희는 굳어진 얼굴로 당황한 채 걸어 나왔다.“오빠...”지성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를 악물었다.“난 너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늘 챙겨 줬어. 너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혼까지 했어.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지성훈의 눈은 분노로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윤서희는 겁에 질려 말을 더듬었다.“내 말 좀 들어봐.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난...”윤서희는 지성훈의 손을 붙잡으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지성훈은 윤서희를 거칠게 밀쳐 냈다.윤서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예전 같았으면 윤서희가 이렇게 넘어지는 순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걱정했을 사람이 지성훈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눈앞에서 약하고 가련한 척하는 윤서희의 모습은, 오히려 자신을 어떻게 속여왔는지를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지성훈은 윤서희를 원망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방금 네 입으로 다 인정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말을 바꿔? 또 나를 속이려는 거야?”지난번 윤서희가 송연서에게 보낸 도발적인 메시지를 봤을 때부터 그녀의 위선과 악의를 알아차려야 했다.그런데 자신은 어리석게도 또 윤서희에게 속아 넘어갔다.지성훈은 생각할수록 후회가 밀려왔다.그때 옆에 있던 윤서진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성훈 아저씨, 엄마한테 화내지 마.”“닥쳐! 이 거짓말쟁이 꼬마! 너도 네 엄마처럼 악독하고 비열해. 너희 때문에 내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어!”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모녀를 끔찍이 아꼈던 만큼, 지금은 같은 깊이의 증오가 자리 잡았다.윤서진은 겁에 질려 울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윤서희 역시 다급해져 자리에서 일어나 지성훈을 붙잡았다.“내가 예전에 거짓말했던 건 인정해. 하지만 난 그저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지성훈은 윤서희의 손을 뿌리쳤다.“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송연서뿐이야!”“너는 내 가정을 깨뜨렸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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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콜록!”송연서는 그만 사레가 들려서 기침했다.아들이 고작 5살인데 벌써 어지간한 어른 못지않게 눈치가 빠르다니!정훈의 잘생긴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민호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나는 불륜남이 되더라도 착한 불륜남이 될 거야.”정훈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지민호는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불륜남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어?”송연서가 정훈을 흘겨보았다.“아니, 불륜은 다 나쁜 거야!”송연서는 정훈이 그런 생각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정훈이가 어색하게 웃었다.“맞아, 네 엄마 말이 맞아. 가자. 내가 민호 주려고 산 2미터짜리 트랜스포머가 도착했어. 가서 마음에 드는지 한번 볼까?”“아빠가 주는 거면 뭐든 좋아.”“말은 또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아빠한테 배웠지.”두 사람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나랑 아빠 사진 찍어 줘!”“지금 갈게.”송연서가 밖으로 나가자, 정훈은 지민호를 무등 태우고 이미 포즈를 잡고 있었다.송연서는 두 사람을 연달아 여러 장 찍어 주었다.저녁을 먹고 나서 밖에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지민호가 또 정훈과 같이 자겠다고 떼를 쓰길래, 송연서는 아예 정훈을 하룻밤 묵게 했다.다만 밤에 송연서가 어둠 속에서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정훈과 부딪혔다.“아!”송연서가 소리치며 정훈에게 부딪혀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정훈은 얼른 송연서를 붙잡아 품으로 끌어당기며 다급하게 물었다.“왜?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괜찮아. 이제 놔.”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작은 촉감 하나하나가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송연서는 정훈의 불룩한 가슴 근육을 느꼈다.옷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까지 고스란히 느껴지자, 송연서는 몹시 불편해졌다.정훈은 그제야 송연서를 놓아주었다.송연서는 곧바로 옆으로 여러 걸음 물러나 불을 켰다.그제야 정훈이 상의를 벗고 있다는 걸 알았다.넓은 등과 잘록한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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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지민호는 두 사람의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지, 벌써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월남쌈 맛있어!”“만두도 맛있어! 아빠, 사랑해!”정훈은 지민호에게 다가가 뺨에 뽀뽀했다.“착한 아들, 아빠도 아들 사랑해!”송연서는 지민호가 이렇게 행복한 모습을 오래간만에 보았다.이 순간 송연서는 어렴풋이 세 사람이 한 가족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밥을 다 먹고 정훈이 운전해서 송연서와 지민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오늘은 가족 운동회라서 지민호가 일부러 두 사람을 모두 불러 함께 가자고 했다.가는 길에 지민호는 신이 나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이번엔 나도 엄마 아빠랑 같이 가니까, 누가 나한테 아빠 없다고 놀리나 볼 거야! 흥!”“엄마, 아빠, 새 유치원에는 서진이가 없어서 아무도 민호를 괴롭히지 않아. 민호는 매일매일 정말 행복해.”“이번엔 다른 애들이 아빠가 있다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어. 민호에게도 엄청 멋진 아빠가 있으니까!”지민호는 무척 기뻐했다.그런데 송연서는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어린 아들이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피아노 학원 제자 자리를 빼앗겼던 일 말고는, 늘 좋은 일만 말하고 힘든 일은 숨겼다.송연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지민호는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겪었을까...정훈은 백미러로 송연서와 지민호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슬퍼하지 마. 네가 나를 받아들이든 말든, 나는 평생 민호의 아빠가 되어 줄게!”지민호는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좋아, 좋아! 민호는 훈이 아빠가 엄청 좋아. 아빠는 최고의 아빠야!”“말 참 예쁘게 하네. 그럼 상으로 울트라맨 로봇 하나.”정훈이가 선물 상자를 꺼내 지민호에게 쥐여 주었다.지민호는 자기보다 큰 선물 상자를 안고 엉덩이를 흔들며 말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지민호는 최근에 이가 하나 빠져서 발음이 새어 나왔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했지만, 이가 빠진 발음 탓에 웃기게 들렸다.송연서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크게 웃었다.유치원에 도착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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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송연서가 비꼬듯 말했다.“입만 열면 잘못했으니 나와 민호에게 보상하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말하는 보상이 대체 뭔데?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지성훈이 송연서의 손을 붙잡으며 애절하게 말했다.“난 서희랑 서진이한테 복수할 수는 없어. 하지만 앞으로 너랑 민호한테 정말 잘할게.”“원래 남편과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보상이라고 포장하다니... 지성훈, 너 정말 뻔뻔하구나!”송연서가 손을 힘껏 뿌리치며 말했다.“난 너랑 재혼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헛된 기대는 버려.”지성훈은 매사에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계속 그와 엮여 있다가는 결국 자신과 아들만 상처받을 게 뻔했다.정훈에게서 걱정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송연서가 그쪽으로 가려는데, 지성훈이 뒤에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지성훈의 뜨거운 눈물이 송연서의 목덜미에 떨어졌다.“난 그저 남에게 속아서 몇 가지 잘못을 저질렀을 뿐이야. 그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 건 아니잖아. 나도 이제 잘못을 깨닫고 정신 차렸으니까 제발 용서해 줘!”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몰라도, 지성훈이 그 말까지 하자 송연서는 화가 치밀었다.“놔!”송연서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내 말 좀 들어봐... 아!”송연서가 힘껏 지성훈의 발을 밟았다.지성훈이 아파서 손을 놓는 틈을 타, 송연서는 몸을 빼내더니 그의 뺨을 후려쳤다.“아들이 죽을 뻔했는데, 이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아니면 뭐야? 지성훈, 네 눈에는 우리 모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야?”송연서의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본 지성훈은 다급하게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야. 나는...”“꺼져! 너만 보면 구역질 나니까 다시는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마!”송연서는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이번에는 제발 눈치껏 물러나기를 바랐다.그런데 가족 운동회가 시작되자, 지성훈이 정훈 대신 지민호와 게임을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지민호가 울음을 터뜨렸다.송연서는 아이를 안고 큰 소리로 외쳤다.“자, 다들 보세요. 이 사람이 바로 바람피운 제 전남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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