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Chapter 11 - Chapter 20

195 Chapters

제11화. 남편의 질투

“형 사진 붙들고 첫사랑 타령할 거면, 나랑 결혼은 왜 했어?”유건이 쏟아낸 말에 세령은 가방 지퍼를 잠그던 손을 멈췄다. 방금까지 무슨 거짓말을 숨겼느냐고 묻던 남자가 오히려 아내를 몰아세우고 있었다.“내가 당신한테 바람피우라고 했어?”“그 소리가 아니잖아!”“그럼 라온 씨랑 침대에 누울 때도 형 생각했어? 나보다 형한테 들킬까 봐 겁났니?”유건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이도가 거실에서 헛기침을 하자 그는 대뜸 동생에게 삿대질했다.“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당장 나가.”“형, 바람은 형이 피웠는데 왜 내가 이혼당할 분위기야?”“문이도!”“아, 미안. 이혼 얘기 먼저 꺼낸 것도 형수님이었지?”세령은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를 삼켰다. 더는 형제의 말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이도야, 사진은 고마워. 그런데 오늘은 돌아가.”“형수님 혼자 괜찮겠어요?”“내가 괜찮아지는 건 너희가 조용히 해주는 거야.”이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신발을 신었다. 나가기 전 유건을 향해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으나 세령은 보지 않았다.문이 닫히자 유건은 다시 애처로운 얼굴을 했다.“자기야, 미안해. 내가 정신이 나갔었어. 근데 제발 형 얘기는 하지 말자. 그 사진도 버리고.”“사과하면서 조건을 거네?”“조건이 아니라 부탁이야. 과거 꺼내서 우리 둘 다 다치는 게 싫어.”“당신은 내 과거가 싫은 거야, 아니면 형한테 졌다는 생각이 싫은 거야?”“누가 졌대!”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유건도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세령은 그 틈에 안방으로 들어갔다. 옷장 오른쪽에는 유건의 잠옷과 셔츠가, 욕실에는 그의 면도기와 향수가 있었다. 함께 사는 게 행복하다며 둘이 골랐던 침구가 새삼 낯설었다.유건의 잠옷에서는 세령이 좋아하던 비누 향이 났다. 세탁물을 개며 그를 기다리던 밤이 셀 수 없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냄새마저 다른 여자에게도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손가락이 굳었다. 화를 내면 낼수록 사랑했던 기억이 함께 따라와 더 지독했다.세령은 유건의 옷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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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놓친 사람

“형은 이미 한 번 놓쳤잖아. 이번에도 놓쳐.”“문유건. 내가 네 형제들끼리 돌려 갖는 물건이야?”복도 끝에서 세령이 걸어 나왔다. 유건은 그 자리에서 굳었고, 태겸은 천천히 그녀를 돌아봤다. 세령의 품에는 아직 가져가지 못한 도면 상자가 들려 있었다.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내려놓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세령아, 네가 왜 거기 있어?”“내가 내 물건 찾으러 왔잖아. 그것도 허락받아야 해?”“아니, 방금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 형이 날 놓쳤으니 네가 주웠다는 뜻이야?”유건이 태겸을 향해 턱짓했다.“형, 뭐라도 말해봐. 형 때문에 세령이가 오해하잖아.”태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네 아내야. 그 말은 네가 할 게 아니야.”“하, 이제 와서 신사인 척하네?”유건이 헛웃음을 터뜨렸다.“형은 그때도 잘난 척했지. 사람 혼자 기다리게 해놓고 이제야 불쌍한 척하면 뭐가 달라져?”“유건아.”“왜? 틀린 말이야? 형이 먼저 놓은 손이잖아!”세령은 두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태겸이 자신을 놓쳤다는 말, 유건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한 태도. 두 사람 사이에는 그녀가 끼어들 틈조차 없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둘 다 그만해.”그러나 유건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세령에게 다가와 상자를 받으려 손을 뻗었다.“자기야, 내가 들어줄게. 우리 그냥 집에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당신 좋아하는 케이크도.”세령은 상자를 뒤로 물렸다.“내가 애야? 케이크 사주면 남편 바람이랑 형제싸움이 다 잊혀?”“그런 뜻 아니라고. 네가 우니까…….”“나 아직 안 울었어. 그런데 네 말은 듣다 보면 울고 싶어져. 화가 나서.”유건이 입술을 깨물었다. 태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세령이 상자를 잠깐 바닥에 내리자 그가 무심코 손을 움직였지만, 그녀가 괜찮다고 고개를 젓자 더 다가오지 않았다.그 작은 멈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7년 전 태겸은 전시장을 정리하는 세령을 보면 먼저 사다리를 붙잡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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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때 왜 안 왔어

“문태겸, 네 동생이랑 결혼하는 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다면, 7년 전 사랑한다던 말은 다 개소리였어?”태겸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세령은 그 침묵이 7년 전 마지막 밤과 닮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언제나 가장 듣고 싶은 말 앞에서, 이 남자는 입을 닫았다. 아래층에서 누가 듣든 상관없었다. 그의 침묵이 7년 동안 자신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이제는 한 번쯤 듣게 하고 싶었다.“그래, 대답하지 마. 당신 특기잖아. 말없이 사라지는 거.”“세령아.”“그 이름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세령이 바닥에 놓인 도면 상자를 집어 들자 태겸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젓자 그는 곧장 물러났다. 붙잡지도 못하면서 걱정만 하는 그 모습이 더 얄미웠다.“딱 하나만 대답해. 7년 전 마지막 약속, 왜 안 왔어?”태겸의 얼굴이 굳었다.“전시장 뒤 골목. 비가 엄청 왔던 날. 내가 거기서 몇 시간 기다린 줄 알아?”그날 세령은 귀국한 뒤 만나자던 약속을 믿고 우산도 없이 달려갔다. 태겸이 좋아하던 빵이 든 종이봉투는 빗물에 젖었고, 신발 안으로 스며든 물 때문에 발가락이 얼얼했다. 휴대전화 화면만 밝힐 때마다 그가 '조금 늦어'라고라도 말해주기를 바랐다.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날 나눈 농담까지 기억났다. 세령이 그에게 늦으면 벌금을 내라고 했더니, 태겸은 벌금 대신 평생 아침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세령은 평생이란 말에 먼저 웃었다.“당신이 오면 화낼 생각이었어. 늦게 왔으니까, 내 손 잡아주기 전에는 용서 안 하려고.”말을 뱉는 순간 목이 메었다.“근데 안 왔잖아. 난 마지막 버스까지 놓치고 집에 갔어. 씨발, 바보처럼.”태겸이 계단 난간을 짚었다.“난 네가 오지 말라고 한 줄 알았어.”“뭐?”“그날 약속을 취소했잖아.”세령은 한참 그를 바라봤다. 짐을 든 손에서 힘이 빠져 상자가 바닥에 닿았다.“내가 약속을 취소했다고?”“네 이름으로 문자가 왔어. 만나지 않겠다고.”“똑바로 말해. 지금 나한테 책임 떠넘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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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서로가 보낸 적 없는 문자

“날 버린 건 당신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먼저 버렸다고?”세령은 태겸을 똑바로 노려봤다. 복도 저편에서 유건의 구두 소리가 들렸지만, 이번만큼은 말을 삼킬 수 없었다.“그날 당신 이름으로 이렇게 왔어. ‘더는 기다리지 마. 우린 여기까지야.’”태겸의 얼굴이 굳었다.“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한 글자도 안 잊었어. 읽고 또 읽었으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달라고 답장도 했어. 전화도 했고.”“그런 답장 받은 적 없어.”태겸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세령은 그 버릇까지 기억했다. 초조한 걸 들키기 싫을 때면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그럼 내가 새벽마다 걸었던 전화는? 당신 번호로 수십 번 걸었어. 통화 연결조차 안 됐다고.”“난 그때 네 연락을 받지 못했어. 왜 그러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하지만 뭐? 집안에서 말렸어? 또 장남이니까 참아야 한다고 했어?”태겸은 고개를 저었다. 세령은 더 묻지 않았다. 이제 그의 사정이 궁금한 게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었다.“아주 편하네. 못 받았다고 하면 다 없던 일이 돼?”태겸이 성큼 다가서려다가 발을 멈췄다. 세령이 물러서지 않자 그는 손을 내려놓고 입술을 문질렀다.“난 네가 먼저 보낸 줄 알았어. ‘오늘 오지 마. 이제 당신 만나고 싶지 않아.’ 정확히 그 말이었어.”세령의 손에서 상자 손잡이가 미끄러졌다.“뭐라고?”“약속 장소에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끝내자고 하는데 무작정 찾아가면 더 상처 줄까 봐…….”“웃기지 마. 난 그날 거기서 3시간이나 기다렸어.”“알아. 이제야 알겠어.”“아니,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비에 젖은 구두 신고 돌아와서, 당신이 보냈다는 문자 한 통을 밤새 들여다봤어.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이 고작 2줄이었나 싶어서.”태겸이 고개를 숙였다. 예전이라면 세령이 울기 전에 먼저 품에 안았을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둘 다 알았다.“난 너한테 답장했어. 무슨 일인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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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위로의 시작점

“문유건, 네가 내 눈물을 닦아준 그날부터 전부 짜고 친 거였어?”세령은 오래된 메일을 열어놓고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제목은 ‘이제 그 사람 기다리지 마.’ 발신인 문유건. 약혼을 앞둔 시절, 자신이 가장 다정하다고 믿었던 남자가 보낸 글이었다.[세령아, 지난 일 때문에 또 울지 마. 네가 웃는 날까지 내가 기다릴게.]그때는 이 문장을 읽고 울었다. 누군가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준다는 사실이 고마워서.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문장보다 발송 날짜가 마음에 걸렸다. 세령은 메일 목록을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주고받은 안부, 전시 일정에 관한 짧은 질문, 함께 저녁 먹자는 초대. 날짜들을 종이에 적다 보니 이상한 순서가 드러났다.한때는 그가 보내온 짧은 안부까지 고이 보관했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사 들고 왔고, 세령이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날에는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런 사람을 의심하게 될 줄은 몰랐다.태겸과 연락이 끊긴 직후부터 유건은 이미 자신의 곁에 있었다.7년 전, 비에 젖어 약속 장소에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세령은 전시장 뒤편 작은 카페에서 철수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짐을 싣는 동안 혼자 구석에 앉아 식어버린 차를 붙잡고 있었는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맞은편에서 말을 걸었다.‘이 자리 비었어요?’‘네. 앉으세요.’‘그렇게 울면 차가 식는 줄도 모르겠는데.’세령이 얼굴을 가리자 남자는 종이 냅킨을 내밀었다.‘죄송해요. 남의 일에 참견했네요.’‘원래 모르는 여자한테 그렇게 말 걸어요?’‘아뇨. 오늘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첫 경험이죠.’뻔뻔한 대답에 그날 처음으로 웃음이 났다. 유건은 주문대에서 따뜻한 차를 새로 사 왔다. 세령이 거절하자 찻잔을 제 쪽으로 당기며 눈썹을 들었다.‘그럼 제가 두 잔 다 마시죠. 밤새 잠 못 자면 책임져요.’그렇게 시작된 만남이었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남자. 세령은 그 우연에 여러 번 감사했고, 나중에는 그를 사랑했다. 적어도 결혼하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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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처음부터 알았던 얼굴

“봤어. 네가 나를 처음 만나기 전부터, 나는 네 얼굴을 알고 있었어.”유건의 대답에 세령의 숨이 멎었다. 프라이팬을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식탁에서는 달걀이 식어갔고, 휴대전화에는 7년 전 메일이 켜져 있었다.“뭐라고?”“형이 갖고 있던 사진에서 봤어. 그게 다야.”“그게 다라고?”세령은 첫 데이트를 떠올렸다. 유건은 차가운 그녀의 손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 '난 한세령만 본다'며 웃었다. 그 다정함을 얼마나 믿었던가.“세령아, 일단 앉아. 아침도 못 먹었잖아.”유건은 접시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 노른자가 터져 식탁 가장자리로 흘렀지만 그는 닦지도 않았다. 세령은 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럼 우리가 카페에서 만났을 때,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네.”“얼굴만 알아봤어. 그날 거기 있을 줄은 몰랐고.”“잠깐. 형 사진을 봤으면 내가 형이 사귀던 여자라는 것도 알았겠네?”유건이 대답을 고르는 동안 세령의 속이 뒤집혔다. 태겸에게 버림받았다고 믿던 시절, 낯선 남자가 자신에게 건넨 따뜻한 차. 그걸 받아 마시며 얼마나 고마워했던가.“응. 형이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정도는.”“그 정도? 태겸 씨가 누구를 좋아했고, 그 여자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다는 거네?”“그 사진 한 번 본 걸 가지고 왜 이렇게까지 몰아붙여?”“한 번 본 사람 얼굴을 정확히 알아보고, 하필 그 여자가 우는 자리에서 나타난 게 신기해서 그러지.”“미친 새끼.”그 말이 저절로 나왔다. 유건이 얼굴을 찌푸렸다.“욕해도 돼. 내가 먼저 말 안 한 건 잘못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우연히 마주친 거야.”“내가 그 카페에서 운 것도 우연이고, 당신이 전시 철수 날짜를 알고 있었던 것도 우연이고?”“행사 안내를 보고 갔어.”“안내에는 철수 날짜 안 적혀 있었어.”세령이 당시의 작업 일정표를 보여줬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철수 시간이었다. 유건은 화면을 훑더니 고개를 돌렸다.“꼭 그날이 아니어도 전시가 끝날 때쯤 지나갈 수 있잖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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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우연을 사러 온 남자

“우연? 둘째 형은 형수님 만나겠다고 전시장 철수 시간까지 캐물었잖아.”이도의 말에 유건이 프라이팬을 탁 내려놓았다. 식은 달걀이 접시 위에서 흔들렸지만 누구도 식탁을 보지 않았다. 세령은 현관에 기대 선 이도를 바라봤다.“방금 뭐라고 했어?”“들으셨잖아요. 둘째 형이 나한테 물었다고요. 형수님이 일하던 전시장, 언제 문 닫고 언제 마지막 짐 빼는지.”유건이 코웃음을 쳤다.“너 또 기억을 멋대로 꾸미냐? 그때 넌 장난삼아 아무 말이나 떠들던 놈이었어.”“그래서 형이 문자로 두 번이나 확인했나? ‘철수하는 날 맞지?’ 하고.”세령은 식탁 모서리를 잡았다. 7년 전 그날, 전시가 끝난 뒤에도 혼자 남아 상자에 목록표를 붙였다. 차가 식도록 울고 있던 자신에게 유건이 다가와 냅킨을 건넸다. 지독하게 우연 같은 위로였다.당시 세령은 작업복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며 유건에게 웃어 보였었다. 그가 놓아준 따뜻한 찻잔 때문에 울음을 멈췄고, 이름을 묻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우연을 선물처럼 기억했던 순간이 이제 와서는 누군가 미리 정해둔 시간표처럼 느껴졌다.“이도야. 정확하게 말해. 네가 날짜를 알려줬어?”“응. 형이 전시 보러 간다길래요. 그때는 왜 굳이 철수 날에 가는지 별생각 없었어요.”유건이 이도의 팔을 움켜쥐었다.“네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도 못 하면서 입은 잘도 나불거린다?”이도는 붙잡힌 팔을 내려다보고 싱긋 웃었다.“형, 거짓말하다 걸리면 손부터 나가는 버릇 좀 고쳐. 형수님 앞이잖아.”“둘 다 닥쳐.”세령의 한마디에 두 사람이 멈췄다. 그녀는 유건을 향해 돌아섰다.“카페에서 나한테 뭐라고 했지? 우연히 들렀다고. 내가 우니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사실이야. 철수 날짜를 알았다고 네가 거기 있을 줄 어떻게 알아?”“몰랐으면 물어봤겠지. 어디서 울고 있냐고. 하지만 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 일정을 알고 있었잖아.”“형이랑 헤어진 여자란 걸 알았어도, 널 만나고 사랑한 건 진짜야.”유건이 다가오며 손을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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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세령이라고 부르는 사람

“형, 씨발. 내 아내 이름 그렇게 부르지 마. 형수라고 불러!”유건이 태겸의 손을 뿌리쳤다. 방금까지 이도의 멱살을 쥐고 있던 남자가 이제는 형의 호칭 하나에 얼굴을 붉혔다. 태겸은 유건보다 먼저 세령을 살폈다. 부엌 식탁에는 식어버린 달걀이 놓여 있었고, 세령의 손목에는 남편을 말리다 생긴 붉은 자국이 남았다.“세령아, 괜찮아?”그 이름은 너무 익숙하게 들려서 오히려 아팠다. 비 오는 밤이면 우산을 세령 쪽으로 기울여주고, 손이 시리다 하면 자기 주머니에 넣어주던 남자. 그가 다시 자신을 부르는 동안에도 남편은 손목의 상처보다 호칭부터 따지고 있었다.“형!”유건의 고함이 거실 천장을 때렸다.“일부러 그러는 거지? 나 보라고, 내 앞에서!”“네가 아내 앞에서 동생 멱살을 잡으니까 부른 거야.”“그럼 형수라고 해야지. 왜 세령아인데?”태겸은 물러서지 않았다.“이름 부르는 게 그렇게 거슬리면, 네가 왜 그 이름을 울리고 있는지부터 생각해.”이도가 구겨진 옷깃을 펴며 휘파람을 불었다.“와, 둘째 형. 호텔에서 들킬 땐 멀쩡하더니 큰형이 이름 한 번 부르니까 사람 잡겠네.”“문이도, 닥쳐!”“나 오늘 몇 번 닥쳐야 해? 형수님, 횟수 세주실래요? 나중에 벌금 청구하게.”세령은 웃지 않았다. 세 남자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쏠리자 참아왔던 분노가 뒤늦게 치밀었다. 하나는 거짓말로 시작한 만남을 우연이라 우겼고, 하나는 알고도 방관했다. 나머지 하나는 7년 전 떠난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그녀를 두고 서로의 목소리를 높였다.“셋 다 그만해.”유건이 먼저 다가왔다.“자기야, 형이 먼저 이상하게 굴잖아. 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이상하게 구는 건 당신이야. 남편 자격은 호텔에 벗어놓고 왔으면서, 이름 부르는 자격은 따져?”유건이 굳자 이도가 옆에서 중얼거렸다.“형수님, 오늘 대사 진짜 살벌하다. 저도 조금 반했는데.”“너도 입 다물어. 네가 그날 전시장 얘기를 왜 이제야 했는지 아직 안 끝났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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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선택한 적 없는 선택

“내가 네 동생을 선택했다고? 문태겸, 그딴 핑계로 날 두 번 버리지 마.”현관문을 붙잡은 태겸의 손이 멈췄다.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이 아직 세령의 귀에 남아 있었다.‘난 네가 유건을 선택한 줄 알았어. 그래서 물러난 거야.’세령은 웃음이 터지려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7년 전 자신이 선택한 것은 태겸과의 약속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골목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린 뒤에야, 그 약속이 혼자만의 것이었다고 믿게 됐다.“내가 언제 당신한테 유건이랑 살겠다고 했어?”“네가 약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그 전에 물었어야지. 기다리던 나한테 직접 찾아와서.”태겸은 문밖으로 나가려던 발을 거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신발 두 켤레가 놓일 만큼의 거리만 남았다.“네가 끝내자고 보낸 문자를 믿었어.”“나도 당신 문자를 믿었지. 그래서 어땠는데? 서로 미친 듯이 기다리다가, 서로가 먼저 버렸다고 생각했잖아.”“맞아.”“그런데 내가 약혼했다는 소문까지 들었다면서 왜 확인 안 했어? 한 번만 물었으면 됐잖아. ‘세령아, 너 정말 행복해?’ 딱 그 한마디.”태겸이 턱을 굳혔다. 평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빈틈 하나 보이지 않던 남자가 세령 앞에서만 자꾸 말을 잃었다.“동생 약혼녀가 된 너한테 찾아가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옳아? 당신 집안 규칙이 그렇게 중요했어?”“그때는 그게 네 삶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어.”“씨발, 내 삶을 왜 당신이 지켜? 나한테 한 번도 묻지 않았으면서.”세령이 헛웃음을 흘리자 태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바닥에 놓인 도면 상자를 내려다봤다. 함께 전시장 모형을 만들던 날, 태겸은 세령이 그린 선 하나도 마음대로 고치지 않았다. 손을 뻗으려다 꼭 먼저 물었었다.‘이쪽 벽은 옮겨도 돼?’‘안 돼요. 그건 제가 정한 거예요.’‘알겠습니다, 감독님. 앞으로도 허락받고 사랑할게요.’그 능글맞은 농담에 웃던 사람이 지금은 두 손을 떨고 있었다.“옛날엔 내 도면 한 장도 허락 없이 못 만지더니, 왜 내 인생은 멋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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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형수님, 도망갈래요?

“지금 내가 원하는 게 뭔지요? 적어도 당신들 형제 없는 곳에서 숨 쉬는 거예요.”대답하지 못한 채 돌아서려던 세령이 끝내 그 말을 뱉었다. 현관 앞 태겸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으나, 세령은 듣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그럼 오늘은 갈게.”태겸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문밖으로 물러서면서도 한 번 더 안쪽을 살폈지만, 괜찮으냐는 말마저 삼켰다.세령은 문이 닫힌 뒤에야 현관에 주저앉았다. 기다려달라고 한 적 없는데도 기다리던 남자, 아무도 선택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제멋대로 물러난 남자. 그가 다시 기다리겠다는 얼굴로 서 있는 게 밉고도 아팠다.7년 전에도 저 남자는 세령이 넘어질까 봐 발밑부터 살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정작 손을 놓았다. 세령은 그 손이 그리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다음 날 아침, 세령은 도면 통과 작업 가방을 챙겼다. 식탁에는 유건이 사 온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카드에는 ‘우리 여왕님, 화 풀릴 때까지 기다릴게’라고 적혀 있었다.세령은 꽃은 건드리지 않고 카드만 뒤집어 놓았다. 연애하던 시절, 유건은 작은 꽃 한 송이를 사 와서는 '네가 웃으면 가게 꽃 다 필요 없겠다'며 뻔뻔하게 굴었다. 그때 세령은 웃으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지금은 꽃향기마저 숨을 막히게 했다.손님방 문이 열렸다.“자기야, 어디 가? 내가 데려다줄게.”유건은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밤새 잠을 못 잤다는 얼굴이었지만 세령은 차 키만 찾았다.“일하러.”“우리 먼저 얘기하자. 어제 형이 무슨 말 했는지도…….”“당신이랑 얘기할 주제가 형밖에 없어? 호텔 1708호 얘기부터 마저 해볼까?”유건은 더 따라오지 못했다. 세령이 현관문을 닫자 등 뒤에서 꽃다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건물 앞에 내려서니 이도가 차에 기대 서 있었다. 선글라스를 코끝까지 내린 채 차 키를 빙글 돌리고 있었다.“형수님, 출근길부터 표정이 살벌하네. 어제 둘째 형이 또 뭘 해 먹었어요?”“비켜. 안 그래도 바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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