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를 나온 나는 살롱으로 돌아갈 기력조차 없어 그대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창백해서 유령처럼 보였다. 화려한 호텔 라운지에서 생활감이 짙은 지하철로. 그 낙차가 지금 내 처지를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 같았다.‘……최악.’ 집 문을 열고 좁은 현관에 구두를 벗어 던졌다. 한꺼번에 진흙 같은 피로가 밀려왔다. 나는 무너진 메이크업조차 지우지 않은 채 서늘한 거실 바닥에 엎드렸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건 그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차세린과, 그녀와 대등하게 대화하던 민준. 그 공간에는 내가 끼어들 틈이 단 1밀리미터도 없었다. 샤워를 몇 번이나 해도 지워지지 않은 듯한 그 남자의 향이 아직 피부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대체 뭐야, 저 인간. 렌탈 남자친구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나를 고용하겠다고 하고. 그러더니 저렇게 완벽한 여자와 내가 전혀 모르는 얼굴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고.‘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걸로’ 같은 달콤한 말로 사람을 흔들어 놓고, 결국 나는 이 남자의 게임판 위에 놓인 말 하나일 뿐이잖아. 전부 저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뿐이잖아. 분하고 한심해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시야가 흐려지려던 순간이었다.“……너 뭐 하냐. 바닥에서.” 어이없다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움찔하며 올려다보자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언니, 윤서현이 쓰레기봉투를 손에 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언니. 왔어?”“왔어가 아니라, 너 오늘
최신 업데이트 : 2026-10-04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