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 금요일 밤, 호텔 라운지 안쪽에서 내 목소리만 유난히 작게 울렸다. 둥근 테이블 위에는 아직 얼음이 다 녹지 않은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나지막이 흐르는 재즈,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 겉으로는 더없이 점잖은 분위기의 그곳에서, 삼 년을 사귄 남자친구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의 허리를 너무도 당연하게 감싸고 있었다. 상대는 유나였다. 대학 때부터 가장 가까웠던 친구. 내 방에서 새벽까지 연애 이야기를 하고, 편의점에서 산 푸딩 하나를 반씩 나눠 먹고, 울면서 “아린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던, 바로 그 유나.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있었다. 우연히 입술이 닿았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서로에게 기댄 어깨도, 얽혀 있던 손가락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떨어지는 몸도. 하나같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 나만 몰랐던 시간의 냄새가 났다.“아린아……?” 태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유나는 잠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내가 가장 약해지던 얼굴이었다. 유나가 저런 표정을 지으면, 먼저 물러서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그런 거 아니야, 아린아. 이건……”“뭐가 아닌데?” 손끝은 떨렸다. 그런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슬픔보다 먼저, 가슴 밑바닥이 차갑게 식어 갔다. 분노는 뜨거운 감정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정말로 상처를 받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내 생일에 일해야 한다던 그날 밤에도, 유나 집에 있었던 거야?”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나의 입술이 아주 조금 일그러졌다. 미안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들켰다는 얼굴이었다. 아, 그랬구나. 그냥 내가 바보였던 거구나. 남자친구의 거짓말도, 친구의 다정함도. 믿고 싶은 대로 전부 진짜라고 믿었다.“내가 너한테 고민 털어놓을 때, 재미있었어?”“아린아, 그만해. 여기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사람들 앞이라 곤란해?” 내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낮았다.“내 앞에서는 곤란
Last Updated : 2026-10-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