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에 정적이 내려앉았다.이현은 천천히 장부를 덮었다.“사람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군.”“저하…….”“이름만 지워지는 것이 아니야.”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기억까지.”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채연준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채씨 집안의 거처이옵니다. 나흘 전 약방에서 약을 지어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사옵니다.”“그 약방 주인은?”“아이의 얼굴은 기억하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옵니다.”이현의 손이 책상 위에서 굳었다.연우가 했던 말과 같았다.얼굴은 기억한다.하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이현은 천천히 일어났다.“연우에게는 아직 말하지 마라.”최상선이 고개를 들었다.“하오나 저하…….”“아이의 흔적을 더 찾아.”그가 장부를 내관에게 돌려주었다.“그리고 이 기록은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마라. 대비전에도.”최상선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였다.“명을 받들겠사옵니다.”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연우는 다시 동궁전 침전으로 불려 갔다.붉은 예복을 입으라는 명령은 없었다.대신 짙은 남색 치마와 연한 상아색 저고리를 입었다. 머리에는 화려한 장식 대신 작은 비녀 하나만 꽂았다.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가려져 있었다.연우는 면사 끝을 만지작거리며 침전으로 들어갔다.이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검은 곤룡포가 아닌 짙은 먹색의 평상복 차림이었다. 허리에 매달린 장식도 없었고, 머리에는 간소한 관만 쓰고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더 위압적으로 느껴졌다.화려한 장식이 사라지자 그의 체격과 움직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연우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저하를 뵙습니다.”“왔군.”이현이 돌아섰다.“옷은 마음에 드나?”연우는 당황했다.“……예?”“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었다.”“없습니다.”“다행이군.”그는 탁자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앉아.”연우는 조심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이현은 차를 따라 그녀 앞에 놓았다.연우는 차를 바라보다가 손을 멈췄다.“저
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