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몰락한 집안의 딸 채연우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세자빈 한소명을 대신해 일곱 밤 동안 동궁전에 들어가는 대역을 맡는다. 세자의 얼굴을 보지 말고, 이름을 밝히지 말고, 자정 이후 손을 잡지 말라는 기묘한 조건. 그러나 첫날부터 세자 이현은 그녀가 가짜임을 알아챈다. 자정, 그의 손을 잡은 연우는 꿈속으로 끌려가 매일 밤 살해당하는 이현과 또 다른 이현을 목격한다. 그리고 세자빈이 남긴 기록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채연우를 절대로 그의 꿈에 들여보내지 마라.’
View More“딱 일곱 밤입니다.”
채연우는 제 앞에 놓인 돈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낡은 탁자 위에 놓인 비단 주머니는 이 초라한 방과 어울리지 않았다. 매듭부터 달랐다. 짙은 남색 비단 위로 금실이 촘촘하게 얽혀 있었고, 매듭 끝에는 작은 옥구슬까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연우의 시선을 붙든 것은 비단도 옥도 아니었다. 돈이었다. 주머니 입구가 조금 벌어지면서 안에 든 금빛이 보였다. “……이걸 전부 주신다고요?” “절반입니다.” 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인은 조금 전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사십을 넘겼을까.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고, 평범한 옷을 입었지만 말투와 자세에서는 숨길 수 없는 궁인의 기품이 묻어났다. “나머지 절반은 일이 끝난 뒤 드립니다.” 연우는 다시 돈주머니를 내려다봤다. 저 돈이면 밀린 약값을 갚을 수 있었다. 전당포에 넘어간 아버지의 자수틀도 되찾을 수 있고,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도 고칠 수 있었다. 운이 좋다면 남동생 연준을 다시 서당에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이유 없는 돈은 없었다. 특히 이렇게 큰돈에는 반드시 그만큼 큰 대가가 붙었다. 연우가 돈주머니에서 손을 떼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면 못 합니다.” 여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런 일은 아닙니다.” “훔치는 것도요.” “아닙니다.” “그럼 뭘 하면 됩니까?” 잠깐의 침묵. 여인이 말했다. “사람 하나를 대신해 주시면 됩니다.” “누구를요?” “세자빈 마마를.” 연우의 손이 멈췄다. 밖에서 장사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목을 뛰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낮이었다. 그런데 이 좁은 방 안에서만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연우가 한참 뒤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세자빈 마마를 제가 어떻게 대신합니까?” “낮에는 하실 일이 없습니다.” 여인은 담담했다. “해가 진 뒤 궁으로 들어가 세자빈 마마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동궁전에서 밤을 보내시면 됩니다. 동이 트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연우는 웃지 못했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여인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다. “그게…… 전부입니까?” “전부입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수상했다. “제가 세자빈 마마와 닮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대신하죠?” “얼굴은 가릴 겁니다.” 연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요?”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연우는 확신했다. 이 일에는 무언가 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무언가가.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여인이 말했다. “동생분의 약값이 석 달 밀렸더군요.” 움직임이 멎었다. “……제 뒷조사를 하셨습니까?”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제 가족까지—” “동생분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을 제가 어떻게 믿죠?” 처음으로 여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돈주머니를 연우 쪽으로 밀었다. “하지만 채 낭자께는 이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비겁한 말이었다. 그리고 정확했다. 연우는 이를 악물었다. “왜 저입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여인은 연우의 손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연우의 손가락 사이에 박힌 작은 바늘 자국들을. “바느질을 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느질 잘하는 여자는 도성에 수백 명입니다.” “사람의 옷을 한 번 보면 치수까지 짐작한다고요.” “그것도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여인의 시선이 더 내려갔다. 연우의 허리춤. 그곳에는 작은 바늘집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가 남긴 낡은 은바늘이 들어 있는 물건이었다. 여인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 연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혹시.” 연우가 바늘집을 손으로 가렸다. “이것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연우는 사람의 표정보다 손을 보는 버릇이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입술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여인의 오른손 엄지가 검지 끝을 꾹 누르고 있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연우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세자빈 마마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건 아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그분을 대신해야 하는데요.” “그래서 더 모르셔야 합니다.”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해가 지면 사람이 데리러 올 겁니다.” “제가 한다고 하지 않았는데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인은 문을 열기 전 돌아봤다. “다만 이 일은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채 낭자께도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겁니다.” 문이 닫혔다. 연우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돈주머니를 열었다. 금전이 쏟아졌다. 손끝이 떨렸다. 그때 안쪽 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누나…….” 연우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날 해가 질 무렵. 연우는 궁으로 향하는 가마에 올라탔다. 궁에 도착하고서야 연우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받아들였는지 깨달았다. 눈을 가린 채 들어왔기 때문에 길은 알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문을 통과했는지도 몰랐다. 다만 가마가 멈춘 뒤 눈가리개를 풀었을 때, 연우 앞에는 붉은 기둥과 높은 담장이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궁인들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으로 데려갔다. “옷을 벗으십시오.” “……예?” “시간이 없습니다.” 연우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목욕을 하고 머리를 빗고 얼굴에 분을 발랐다. 마지막으로 붉은 옷이 들어왔다. 연우의 숨이 멎었다. 세자빈의 예복이었다. 붉은 비단 위로 금실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다. 살아 움직일 듯 정교했다. 그 옷을 입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남의 인생을 훔쳐 입는 것 같았다. 궁인이 허리의 띠를 조였다. 연우가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꽉 조이는 것 같습니다.” “마마의 치수에 맞춘 옷입니다.” “저는 마마가 아닙니다.”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궁인이 연우를 바라봤다. “오늘 밤만큼은 그 말씀을 잊으셔야 합니다.” 그녀가 붉은 면사를 가져왔다. 그리고 연우의 얼굴을 가렸다. 세상이 붉어졌다. “지금부터 네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궁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첫째. 절대로 세자 저하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묻지 마십시오.” “…….” “둘째. 저하께 진짜 이름을 알려서는 안 됩니다.” “저하께서 물으시면요?” “대답하지 마십시오.” 연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세자 저하께서 물으시는데 제가 대답을 안 해도 된다고요?” “그것이 사는 방법입니다.” 웃음이 사라졌다. 궁인은 계속했다. “셋째. 자정이 지나면 저하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또 왜…….” “마지막.” 이번에는 궁인이 연우의 두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저하께서 잠드시더라도 절대로 함께 잠들지 마십시오.” 연우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잠들면 어떻게 됩니까?” 궁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연우의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깨어 계십시오.” 연우가 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궁인이 손을 놓았다. 다른 궁인들이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연우는 무심코 치맛자락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금실 사이에 이상한 실밥 하나가 보였다.연우는 움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연우의 어깨에 닿았다. “찾아 주겠다.” 연우의 눈이 커졌다. “……예?” “네 동생.” 그가 낮게 말했다. “내가 찾아 주겠어.” 연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려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그 아이가 정말 있다면 찾아야지.” “저하께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상관이 생겼어.” 이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네가 내 꿈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덧붙였다. “네 기억을 가져간 것이 내 얼굴을 한 놈이라면 더더욱.” 연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현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무엇입니까?” “오늘 밤부터 내 곁에 있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예?” “네가 기억을 잃는 순간을 확인해야겠어. 그놈이 다시 나타나는지도 봐야 하고.” “하지만 저는 일곱 밤만…….” “일곱 밤.” 이현이 말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네 동생을 찾겠다.” 연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찾지 못하시면요?” “그때는 네가 떠나도 돼.” “정말입니까?” “왕세자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연우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좋아.” 그는 돌아서려다가 문득 멈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예?” “앞으로 내 앞에서 울지 마.” 연우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울고 싶어서 우는 줄 아십니까?” 이현이 낮게 웃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가 다시 다가왔다. 손가락이 연우의 얼굴 가까이 올라왔다가 멈췄다. 면사 너머로 눈물이 흐른 자리를 바라보던 그는 잠시 망설인 뒤 손을 내렸다. “네가 울면.”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톱으로 실 끝을 건드렸다. 순간.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야.’ 어머니였다. 연우는 숨을 멈췄다. ‘누군가 네 이름을 부르거든…….’ 목소리가 끊겼다. 연우는 황급히 바늘을 움켜쥐었다. “어머니?” 아무 대답도 없었다. “어머니!”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연우가 화들짝 돌아봤다. 이현이었다. 그는 연우가 움켜쥔 바늘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연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해야 할까. 또다시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이현이 다가왔다. “손을 펴 봐.” 연우가 망설였다. “이번에는 왜요?” “피가 나.” 그제야 연우는 손바닥이 따끔거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바늘 끝이 살을 찌르고 있었다.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이현이 손수건을 꺼냈다. “놓아.” 연우는 천천히 바늘을 내려놓았다. 그가 손수건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감쌌다. 연우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검은 비단 위에 금실로 작은 용이 수놓아진 손수건이었다. 왕세자의 물건이었다. “이런 걸 제게 쓰시면…….”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래도 아깝지 않으십니까?” 이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손수건이?” “예.” “네 손보다?” 연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상처가 깊지 않은지 확인하고 천천히 손수건을 묶었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연우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 손을 잡으면 꿈속으로 떨어질까 두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손을 놓는 순간이 더 신경 쓰였다. 연우는 황급히 다른 생각을 했다. ‘정신 차리자.’ 이 사람은 세자다. 자신은 대역이다. 그리고 진짜 세자빈은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었다. “저하.” “왜.” “세자빈 마마께서는 어디에 계십
대신 글씨의 마지막 획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건 수놓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알아차린 사실이었다. 실의 광택이 살아 있었고, 바늘구멍 주변의 비단이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길어야 사흘입니다.” “사흘?” “예. 비단을 뒤집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실은 최근에 들어간 겁니다.” 이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사흘 전. 한소명이 잠든 지 이미 보름이 지난 뒤였다. 그렇다면 이 경고를 남긴 사람은 한소명이 아니었다. 적어도 현실에서 직접 바늘을 움직인 사람은. “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문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은 연우에게 치맛단을 내리라는 눈짓을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라.”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내관이 들어왔다. 그는 연우를 보는 순간 미세하게 걸음을 멈췄다. 그 짧은 반응을 연우는 놓치지 않았다. 내관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가린 면사로 향했다가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르셨사옵니까.” “오늘 밤 세자빈을 모셔 온 사람이 누구냐.” “상궁 윤씨이옵니다.” “그 여자를 데려오라.” 내관의 얼굴이 굳었다. “저하, 그것이…….” “왜.” “윤 상궁은 조금 전 궁을 나갔다 하옵니다.” 연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궁을 나갔다고? 자신을 데려온 사람이? “무슨 명으로?” “대비마마의 전교를 받들었다고 하옵니다.” 이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대비마마?” “예, 저하.” “동궁의 사람을 내 허락 없이 데려갔다는 것이냐.” 내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현은 한동안 그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그건 나중에 따지지.” “저하…….” “채씨 집안의 호적과 거주지를 확인해 오라. 특히 어린 남자아이가 있는지 알아보고.”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내관 역시 놀란 듯했다. “채씨 집안이라 하심은…….” “내가 두 번 말해야 하느냐?” “아, 아니
“왜 왕실에서 백 년 전에 없애 버린 몽처의 명패에 네 이름이 적혀 있지?” 채연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세자빈의 대역으로 궁에 들어온 평범한 삯바느질꾼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왕세자의 꿈속에서 그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보았고,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아니라 세자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남자가 현실의 침전에 나타나는 것까지 목격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 이제는 백 년 전에 사라진 무언가의 명패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단다. 연우는 눈앞의 명패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모른다?” “예. 정말 모릅니다. 저는 몽처라는 말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네 이름이 새겨져 있어.” “그러니까 저도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세자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기억한 연우가 황급히 시선을 내리자, 그의 입가에서 낮은 숨이 흘러나왔다. “내 앞에서 이렇게 말대꾸하는 여자는 처음 보는군.” “거짓말을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거짓말은 이미 여러 번 했지.” “그건…….” “내 아내인 척했고, 이름도 숨겼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연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 말만큼은 억울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현이 명패를 내려놓았다. 작은 나무 조각이 탁자에 닿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연우의 머릿속에 다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남자아이였다. 열이 올라 붉어진 뺨, 마른 손목, 잠결에도 누나의 소매를 놓지 않으려던 작은 손. 연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생.’ 집에 두고 온 동생이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아침까지만 해도 불렀다. 약을 먹이고, 이불을 덮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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