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게. 나는 왜 일어난 일들을 이렇게 세세하게 다 기억하고 있을까. 그냥 철저한 업무 파트너였으면, 기획안에 적을 내용만 기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리가 쐐기를 박듯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문해인, 다음에 그 남자랑 또 만나면 나한테 끝난 직후에 바로 보고해.. “내가 왜 너한테 사생활 보고를 해?” “이건 네 삭막한 인생에 닥친, 연애 가능성에 대한 1급 긴급 상황이잖아. 그것도 사내 연애!” “내 사전에 사내 연애 가능성 같은 건 절대 없어.” “그래, 알았어. 그럼 그냥 상사한테 올리는 업무 보고라고 생각해.” “……뭐, 그 정도라면 할 수는 있겠네.” “와우! 좋았어! 다음 보고를 기대하마!” “내일 보자. 잘 자라!” 나는 귀가 붉어진 채 급히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야, 문해인! 나 아직 말 안 끝났..." 뚝. 나는 달아오른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던져 놓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분명히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는데, 거울에 비친 내 입가는 이상하게 조금 올라가 있었다. 밤이 깊어졌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다음 주 출근해서 처리할 회의 안건들을 머릿속으로 차례차례 정리했다. 다음 주 기획안도 수정해야 하니 일찍 자야 한다. 그러다 문득, 내 기획안 폴더 아이콘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진 분류도 끝났고, 자료 복사도 끝났다. 이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푹 잘 시간이다. 나는 노트북 전원을 끄려다 말고,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획안 폴더를 열었다. '활용_후보'라는 이름의 폴더를 더블 클릭했다. 공방 작업대 앞에서 빵 터져서 웃고 있는 내 얼굴이 환한 화면에 나타났다. 삐뚤어진 키링을 내려다보다가, 한이준의 뻔뻔한 농담에 웃음을 터뜨린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휠을 굴려
Last Updated : 2026-10-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