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족에게 피를 빨리던 내가 재벌 회장 부인이 되었다: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두 달 전, 한성그룹의 해외 사업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서연에게 목숨을 구해진 순간부터 시혁은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다만 그때는 자신조차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다 강도윤이 서연을 배신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가 홀로 온갖 상처를 견디는 모습도 지켜봤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자신의 품에 안겨 오던 순간까지.그제야 깨달았다.자신은 이미 서연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특히 한태준이 한유진과의 약혼을 정리하고 서연과 약혼하라고 제안했을 때는 거의 망설이지도 않고 받아들였다.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서연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다.현우는 입을 벌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너…… 정말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거야?”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하…… 됐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야. 당장 나랑 같이 돌아가야 해.”“아직 못 가.”“윤시혁!”현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시혁의 이름을 불렀다.“네 몸속에 있는 독이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았어. 당장 돌아가서 다른 의사들과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해. 안 그러면 독이 점점 더 퍼질 거야. 앞으로는 격한 활동은 절대 금지고, 몸에 무리가 가는 일도 해서는 안 돼. 알아들었어?”시혁은 현우를 올려다봤지만, 그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알았어.”“정말 알았으면 좋겠네.”현우가 다시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갑자기 시혁의 안색이 변했다.날카로운 이명이 귓속을 파고들었다.시혁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눈앞의 풍경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왜 그래?”현우는 곧바로 이상을 알아차리고 시혁의 어깨를 붙잡았다.“시혁아?”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갑자기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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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윤시혁은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나를 아는 모양이군.”남자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너…… 대체…….”“이번엔 네가 대가를 치를 차례야.”시혁은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남자는 황급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반항하려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시혁은 재빨리 남자의 손목을 붙잡아 뒤로 꺾은 뒤 바닥에 내리눌렀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지만, 시혁의 일격에 그대로 힘이 풀렸다.시혁은 몸을 숙여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누가 시켰지?”남자는 이를 악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시혁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녀를 해친 놈은 누구든 절대 용서하지 않아.”그는 남자를 거칠게 내팽개쳤다. 남자가 더는 저항할 힘조차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서연에게 돌아갔다.시혁은 허리를 숙여 서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너무 가벼웠다.그 무게에 시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서연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숨소리마저 희미했다.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시혁은 곧장 서연을 안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호텔 객실로 돌아오자 박현우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현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시혁의 품에 안긴 여자를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이 사람은…….”“일단 이 사람부터 살려!”시혁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역력했다.현우는 서연을 한 번 살펴본 뒤, 안색이 어두워진 시혁을 바라봤다.“너 지금 네 몸 상태가 어떤지 잊었어? 아까 그렇게 무리했으니 독이 더 빠르게 퍼졌을 거야! 네가 먼저 치료를 받아야지!”“먼저 서연이부터 살리라고!”“윤시혁!”“이건 명령이야!”시혁의 목소리가 단숨에 무거워졌다.현우는 그 기세에 눌려 결국 이를 악물고 다가갔다.“알았어! 일단 이 여자부터 살릴게!”현우는 서연을 넘겨받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힌 뒤 곧바로 상태를 살폈다.몇 분 뒤, 현우가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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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서연아…… 눈 좀 떠 봐.”귓가에 다정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서연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우리 아가, 제발 눈을 떠서 엄마 좀 봐 주렴.”따뜻한 손길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누구지?혼미한 의식 속에서 서연의 머릿속은 온통 새하얬다.생각할 힘도 없었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지도 않았다.너무 아파…….사는 게 정말 지쳤다.이제는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았다.“아가, 제발…… 눈 좀 떠 봐. 응?”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흐느껴졌다.“엄마 여기 있어.”그 순간 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방금 엄마라고 했어?말도 안 돼.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았을 리 없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서연은 엄마의 품에 안겨 본 기억조차 없었다.그녀에게 엄마란 그저 액자 속에서 조금씩 빛바래 가는 사진 한 장에 불과했다.이 여자는 분명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 거야.그런데도 목소리에 담긴 슬픔을 듣자 서연은 마음이 아팠다.그 여자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설령 꿈속이라 해도, 한 번쯤은 대답해 주고 싶었다.서연은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바싹 마른 목에서 쉰 목소리가 겨우 새어 나왔다.“엄마…….”그녀는 간신히 눈을 떴다.눈부신 조명이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채웠다.서연은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 어지러움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야 머리 위의 새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방 안은 자신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방금 그 여자는 어디로 간 걸까?서연은 몸을 일으켜 앉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온몸에 퍼진 통증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는 듯했다.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은 처음 보는 방에 누워 있었다.여기가 어디지?바로 그때,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지하 주차장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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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그날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정말 그였던 것이다.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그는 정말 자신을 구하러 와 주었다.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밀려왔다.안도감과 서러움, 슬픔.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마음속 깊이 쌓여 있던 두려움까지.그에게 묻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너무나 많았다.당장이라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바로 그때, 곁에 있던 간호사가 갑자기 놀라 소리쳤다.“회장님!”간호사는 재빨리 한쪽으로 물러나더니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박현우는 그 모습을 보고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그는 난처한 듯 코끝을 문질렀다.“아, 그게…… 두 분이 나눌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네요.”그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간호사를 데리고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문이 조용히 닫혔다.병실에는 한서연과 윤시혁, 두 사람만 남았다.서연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회장님?왜 간호사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걸까?윤시혁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한참을 기다렸지만 시혁은 먼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쉰 목소리로 물었다.“몸은 좀 어때? 아직 아픈 데는 없어?”서연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그 웃음에는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나한테 설명할 생각은 없어?”시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나는…….”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하지만 막상 입을 열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결국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안해.”그 세 글자를 듣는 순간, 서연의 몸에서 온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역시 그랬다.이번에도 속은 거였다.강도윤은 그동안 수없이 달콤한 말을 속삭였지만, 결국 망설임 없이 그녀를 배신했다.그런데 윤시혁도 다를 게 없었다.그녀에게 다가왔고, 지켜 주었으며, 영원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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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

시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층 낮아져 있었다.“너한테 했던 말도 전부 진심이었어. 거짓말은 하나도 없었어.”윤시혁은 원래 자신의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그에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많았다.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서연이 자신을 믿어 주기만을 바라며 평소답지 않게 긴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서연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저 모든 게 귀찮다는 듯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마치 더는 어떤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처럼.믿음?그런 건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아버지부터 강도윤, 그리고 윤시혁까지.몇 번이고 반복된 거짓말에 그녀가 세상에 품고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바닥나 버렸다.한참이 지나서야 시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 서연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그의 목소리가 점점 잠겨 갔다.그때 서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시혁 씨…….”그녀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시혁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응. 나 여기 있어.”서연은 목에 걸린 듯한 씁쓸함을 삼키고 조용히 말했다.“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시혁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양옆으로 늘어뜨린 두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희미하게 빛나던 눈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너…….”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평정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잠시 후,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래.”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가벼운 목소리를 냈다.“어디 가고 싶은데? 내가 같이 가 줄게.”서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일부러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가 떠나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서연은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혼자 나가고 싶어.”시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늘 침착하던 그의 표정에 마침내 금이 갔다.차분하기만 했던 두 눈에 처음으로 뚜렷한 불안이 스쳤다.하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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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

서연의 머릿속에 아버지의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다.그녀는 이미 실종된 상태였다.한유진의 사람들에게 쫓기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지하 주차장에 쓰러졌다. 하마터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뻔했다.그런데 한태준은?그는 사람을 보내 그녀를 찾기는커녕, 실종된 딸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그뿐만이 아니었다.벌써 한유진의 후계자 취임식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마치 서연이라는 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서연의 마음이 조금씩 차갑게 식어 갔다.문득 모든 게 우스워졌다.자신이 죽든 살든 한성그룹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서연아…….”시혁은 그녀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차리고 말을 걸려 했다.“두 분 다 나가 주세요.”서연이 그의 말을 끊었다.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시혁을 외면한 채 차갑게 말했다.“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요.”시혁은 입을 다물었다.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가자.”그는 비서를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그제야 서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침대에 몸을 뉘었다.그녀는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이불 속은 온통 어두웠다.이렇게 있으면 아무도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서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억눌렀다.이제 그만 울고 싶었다.하지만 눈물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왜 모두가 자신에게 이러는 걸까?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기에?서연은 몸을 웅크렸다. 가슴속에 쌓인 고통과 서러움을 어떻게든 숨기려는 듯이.그때였다.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흐…….”아주 작고 희미한 울음소리였다.서연은 화들짝 눈을 떴다.처음에는 자신이 낸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그게 자신의 울음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걷어 내고 경계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병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잘못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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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저기요! 들어가도 돼요?”여자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서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대답할 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검은색 치마에 흰 앞치마를 두른 여자 직원이 식사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그녀는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점심이에요.”불만스러운 기색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차가운 눈빛이 서연에게 향했다.서연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고마워요. 그런데 지금은 별로 입맛이 없어서요.”“그건 제 알 바 아니죠.”직원은 서연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제 일은 식사 갖다 드리는 것까지예요. 더 시키실 일이 없으면 전 이만 갈게요.”서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직원의 태도가 그렇게 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적어도 식사는 가져다주었고, 음식도 꽤 정갈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자신을 싫어한다는 건 분명히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지는 않았다.어차피 남들에게 미움받는 일에는 이미 익숙했으니까.한씨 집안에서 대놓고 비웃거나 일부러 뜨거운 국물을 끼얹던 사람들에 비하면, 이 직원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었다.“왜 저를 그렇게 싫어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서연은 문득 그녀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곧 여기서 나갈 거예요. 더는 폐 끼치지 않을게요.”그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 말을 들은 직원은 순간 멈칫했다.뺨이 살짝 붉어졌다. 어딘가 민망해하는 눈치였다.“저…… 저도 아가씨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몇 초 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한씨 집안 사람들이 너무하잖아요!”서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설마 이 일도 모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우리 회장님이 독에 중독된 것도 전부 한씨 집안 때문이잖아요! 게다가 우리 그룹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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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데려다줘요!”한서연이 다급하게 재촉했다.“지금 당장 그 사람을 만나야 해요!”직원은 갑작스러운 반응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서연을 박현우의 개인 진료실로 안내했다.가는 내내 서연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머릿속에서는 직원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윤시혁은 아직 해독하지 못했다.자신을 구하기 위해 몸에 더 큰 무리를 감수하기까지 했다.그런데도 자신은 그가 이미 괜찮아진 줄 알고 있었다.마침내 두 사람은 흰색 문 앞에 멈춰 섰다.“저…… 여기가 맞아요.”직원이 문 안쪽을 가리켰다.“박현우 선생님이 회장님을 치료하고 계실 거예요.”“고마워요.”서연이 조용히 감사 인사를 건넸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마치 더는 서연 곁에 있고 싶지 않은 것처럼.서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진료실 앞에 선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치료 중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요!”문 안쪽에서 박현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은 문을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현우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방금 전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반가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디 아파요?”서연은 긴장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도 저도 모르게 꼼지락거렸다.“저…… 윤시혁 씨를 만나러 왔어요. 아까 점심을 가져다준 직원이 여기 계신다고 해서요.”“아, 그 사람은…….”박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턱을 문지르며 시선을 이리저리 피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눈치였다.그때 진료실 안쪽에서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여보내.”윤시혁의 목소리였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서연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었다.박현우는 난처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옆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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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

“저 여기 있을게요.”그 말을 들은 윤시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뭐라고?”서연은 두 손을 꼭 쥐고 다시 한번 말했다.“여기 있겠다고요.”시혁의 눈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그 순간, 마치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마침내 첫 햇살이 비친 것만 같았다.그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보는 환한 웃음이었다.너무나 눈부신 그 미소에 서연의 마음도 잠시 흔들렸다.시혁은 그녀를 품에 안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하지만 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손길을 피한 것이다.그녀는 어색한 듯 귀를 만지작거리며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대신 여기 있는 건 당신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예요.”“…….”“당신을 용서했다는 뜻도 아니고, 다시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아니에요.”시혁이 뻗었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표정마저 굳어 버린 듯했다.몇 초가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그럼 그다음은?”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서연은 망설이지 않았다.“해독이 끝나면 떠날 거예요.”시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방금 전까지 피어올랐던 희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감추지 못한 실망과 고통만이 남았다.서연은 그의 시선이 줄곧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걸 느꼈다.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그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 눈에 담긴 슬픔을 도저히 감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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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박현우는 난처한 듯 윤시혁을 한번 바라본 뒤 서연에게 시선을 돌렸다.“아…… 네, 맞아요.”그는 조금 망설이며 대답했다.“그럼 저도 같이 가서 살펴볼게요.”서연이 먼저 말했다.“아, 네. 그러시죠.”박현우는 시혁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난감함과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내 서연을 데리고 진료실을 나섰다.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였다.등 뒤에서 윤시혁의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안해…….”서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하지만 결국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박현우는 서연을 다른 치료실로 안내했다.그곳에는 시혁과 마찬가지로 중독 증상을 보이는 그룹 직원 몇 명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서연은 한 명씩 상태를 확인하고, 증상에 따라 약물 배합을 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 환자에게 맞는 해독제를 만들어 냈다.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이번 중독 사건이 이렇게 빨리 진전될 줄은 몰랐네요.”박현우는 문틀에 기대어 침대에 누운 환자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고생하셨어요.”서연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오랫동안 쉬지 않고 일한 탓에 그녀도 슬슬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그런데 혹시 예전에 이런 독을 본 적 있어요?”박현우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물었다.서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아니요.”그녀는 손에 든 약품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독의 배합 자체는 기본적인 편이에요. 다만 제가 익숙한 연구 분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에요.”박현우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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