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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Author: 손이영
온다연은 두려워서 몸이 경직되었다. 유강후는 차가운 손등으로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가 거두어들였다.

“집사님이 네가 오후부터 열이 나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열이 내렸네. 의사를 부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온다연은 그제야 자신이 오후에 열이 났고 반나절이나 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잤는데 왜 머리가 아직도 무거울까?

온다연은 그 원인을 유강후가 너무 가까이 다가온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삼촌, 불 좀 켜주시면 안 돼요?”

유강후는 그러자 문 쪽으로 가서 불을 켰다. 조명이 켜지자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강후를 쳐다봤다.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유난히 늘씬해 보였고 매력적이었다.

그는 넥타이도 맸고 조명 아래 다이아몬드 옷깃이 화려하게 빛났다. 무심코 들어낸 손목시계도 비싼 명품 같았다.

온다연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많이 봤지만 유강후 같은 분위기를 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차갑고 섹시하고 고급스러웠다.

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아까보다 더 긴장되어 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유강후는 더웠는지 넥타이를 벗어 의자에 털썩 걸치고 양복을 벗더니 가늘고 흰 줄무늬 셔츠를 드러냈다.

외투를 벗은 유강후는 카리스마가 줄었지만 도도함이 더 돋보였다. 온다연은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외투를 놓고 나갔다가 2분도 안 되어 다시 돌아왔는데 이때 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 하나가 더 늘어났다.

유강후는 쇼핑백에서 도시락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어나서 뭐 좀 먹어.”

온다연은 확실히 배가 고팠기에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손에는 무의식적으로 그 하얀 진주 머리띠를 쥐고 있었다.

유강후는 그녀를 한번 훑어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잘 어울리네.”

깔끔한 디자인의 이 드레스는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였으며 전에 입었던 치마보다 훨씬 소녀답고 예뻤다.

온다연은 치마를 잡아당기며 속옷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머리띠를 착용했다.

그녀는 원래 깨끗하고 가냘프게 생겼다. 이 머리띠를 착용하자 완벽한 얼굴형이 그대로 드러났고 청순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유강후는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먹어. 다 죽이야.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시켰어.”

온다연은 도시락을 열어보니 어죽, 야채죽, 호박죽 그리고 계란국이 있었다.

그녀는 야채죽과 계란국을 조금 먹고 나머지 죽은 다치지 않았다. 계란국의 맛은 생각과 달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계란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식사를 마친 온다연은 도시락을 치우고 고개를 들자 유강후가 창가에서 그녀를 진지하게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삼촌, 늦었는데 돌아가세요.”

유강후의 눈빛은 그윽했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다만 온다연은 이렇게 늦었으니 얼른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강후는 창가에 기대어 꼼짝도 하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갈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온다연은 어색해서 고개를 숙이고 계속 밥상을 정리하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유강후는 천천히 문을 나섰다. 그가 떠나자 온다연은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기 중에는 아직도 그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은은한 그의 향기는 그녀를 숨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설마 유강후가 아직 떠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온다연은 다시 안절부절못하다가 큰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결국 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복도 밖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가 더 기뻐하기도 전에 유강후의 양복 외투가 의자에 걸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옷을 잠시 쳐다보다가 홀린 듯 다가서더니 옷을 집어 들고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

원단의 품질은 훌륭했고 옷에는 은은한 설송나무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청량하지만 무게감도 있었다. 마치 유강후가 사람에게 주는 느낌과 같았다. 그러나 오늘 공기 중에는 꽃향기가 더해져 싱그러웠다. 바람이 불어오는 한순간이었지만 온다연은 그 꽃냄새를 맡았다.

임정아의 향수 냄새인가?

“뭐해?”

이때 갑자기 유강후의 목소리가 들리자 온다연은 황급히 옷을 내려놓았다. 마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들킨 초등학생처럼 유강후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게... 옷을... 가져가지 않아서...”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뒤로 숨었다. 유강후는 종잡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색한 분위기가 한참 흐르고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

“은별 씨는 어때요? 아침에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어디 아프다면서요?”

유강후는 쇼핑백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신경 꺼.”

그러자 온다연은 더 뻘쭘했다.

하지만 유강후의 말도 맞았다. 나은별은 고귀한 부잣집 아가씨고 하늘 같은 존재라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데 온다연 같은 사회 최하층의 사람이 왜 그녀 걱정을 할까?

그런데 유강후는 왜 또 돌아왔을까? 여기서 자려는 건 아니겠지?

온다연은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놓인 커다란 쇼핑백을 보며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생각했다.

그러자 유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안에서 잠옷과 갈아입을 옷 그리고 세면도구 세트를 꺼냈다.

온다연은 눈을 부릅뜨고 손바닥에 땀을 흘리며 더듬거렸다.

”삼... 삼촌.”

유강후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 돌아서서 쇼핑백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네 거야.”

영문도 모르는 온다연은 쇼핑백을 열어보더니 안에는 흰색 니트가 있었고 유강후 손에 들고 있는 옷과 같은 원단인 것 같아 기분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이때 유강후가 먼저 말했다.

“네가 먼저 씻을래? 아니면 내가 먼저 씻을까?”

헐!

온다연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말을 더듬거렸다.

“여기서... 여기서 자려고요?”

그러자 유강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다연은 당황해서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긴 병원인 데다 침대도 하나밖에 없는데 그리고 침대도 이렇게 작은데...”

유강후는 그녀를 잠깐 바라보다가 말했다.

“침대는 지금 큰 걸로 바꾸면 돼.”

온다연은 깜짝 놀랐다. 유강후는 집이 많아 분명 이 근처에도 잘 곳이 있을 텐데 왜 꼭 그녀와 함께 이 작은 침대에서 자려고 할까? 설마 큰 집 살던 게 익숙해서 이런 작은 침대에서 자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걸까?

온다연은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저기... 삼촌... 여긴 병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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