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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까지 D-30, 부 대표님이 멘붕했다
떠나기까지 D-30, 부 대표님이 멘붕했다
Author: 영하

1 화

Author: 영하
소윤슬이 이혼을 결심한 날,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 번째, 부강현의 첫사랑 한신아가 귀국했다.

강현은 수억 원을 들여 맞춤형 요트를 준비했고, 신아와 함께 이틀 밤낮을 요트 위에서 보내며 언론의 중심에 섰다.

수많은 기사들이 두 사람의 재결합을 암시하고 있었다.

두 번째, 윤슬은 대학 시절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창업했던 회사로 복귀하기로 했다.

한 달 뒤, 윤슬은 강현과 함께 살던 이 집을 떠날 예정이다.

물론, 그녀가 무엇을 하든 강현은 아무 관심도 없었다.

강현에게 윤슬은 그저 부씨 가문의 ‘집안일 도우미’에 불과했으니까.

윤슬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씨 가문에서 살아온 지난 2년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그리고 조용히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3일 후, 그녀는 부씨 가문과도, 부강현과도 더 이상 아무런 관계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강현과 소윤슬은, 이제 남보다도 먼 사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해장국 가져와. 이 인분.]

짧고 익숙한 명령조의 메시지.

윤슬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손끝을 떨었다.

지금은 밤 9시 40분.

강현은 신아의 귀국 환영 파티에 참석 중이었다.

예전이라면 강현은 윤슬에게 밖에 나가 국을 가져오라는 말 따윈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윤슬은 대외적으로 ‘부끄러운 존재’였고, 한 번도 아내로 인정한 적이 없었으니까.

예전의 윤슬이라면, 이런 연락을 받고도 기뻐했을지 모른다.

‘혹시 드디어 날 인정해주는 걸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이 인분’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그 국은 전부 신아를 위한 것이었다.

강현은, 사랑 앞에서는 자신의 혐오조차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 난 당신 인생에서 지워져도 아무렇지 않은 불청객이었지.’

윤슬은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부강현의 할아버지, 부씨 가문의 최고 어르신 부태기 회장과의 계약 종료까지 남은 날은 29일.

윤슬은 화면에 떠 있는 디데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계약이 끝나는 날, 나도 끝나는 거야. 이제 정말... 끝내자.’

2년의 세월.

사랑을 담았던 윤슬의 손길.

하지만 돌아온 건... 강현의 무관심뿐이었다.

이젠, 윤슬에겐 사랑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한 달에 아내라는 역할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만 하려고 했다.

냄비 속 국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강현은 이 국을 참 좋아했다.

지난 2년 동안 윤슬은 수없이 이 국을 끓였지만, 수없이 버려져야만 했다.

지금, 그녀는 조용히 국을 저으며,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엔 조용한 평온과 씁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30분 후.

뜨거운 해장국이 꽉 닫힌 보온 용기에 담겼다.

윤슬은 조용히 택시를 타고 HOLI호텔로 향했다.

...

차 안.

창밖을 스치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던 윤슬은 잠시 후 핸드폰을 켰다.

낯선 번호로 오전에 도착한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윤슬아, 나 누군지 알지? 나 신아야. 나 돌아왔어! 다시 널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뻐. 강현이를 네가 뺏긴 건 좀 그렇지만, 우리 아직 친구잖아? 오늘 저녁엔 꼭 같이 보자!]

오늘 저녁, 한신아의 귀국 환영 파티가 열린다.

하지만 강현은 윤슬에게 단 한마디도 환영 파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윤슬이 환영 파티를 알게 된 건, 신아가 직접 메시지를 보내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신아의 말투에선 자신이 얼마나 ‘넓은 마음’을 가졌는지 과시하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 메시지를 읽은 윤슬은 피식,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친구? 뺏겼다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지만, 그건 웃음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포기한 거였지.’

‘부태기 회장이 막으니까, 넌 1억 원을 들고 나갔잖아.’

‘내가 뺏은 건 없어. 다만... 욕심이 있었지.’

그래도 한때는 신아의 ‘선한 얼굴’을 믿고 싶었다.

적어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 있었다.

윤슬은 어느새 관계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고,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는 하나씩 끊겨 눈에 띄게 고립되어 갔다.

처음엔 다들 바쁜 척, 피곤한 척하며 윤슬을 조금씩 거리 두기 시작했다.

말을 걸어도 어딘가 어색하게 웃고 넘기기만 했고, 단체 채팅방에서도 윤슬의 말엔 반응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는 점점 더 뚜렷해졌고, 어느 순간부턴 아예 대놓고 윤슬을 투명 인간 취급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윤슬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윤슬은 알게 된다.

그 뒤엔 신아의 조용하지만 치밀한 손길이 있었다는 걸.

오늘 그 환영 파티 자리에는 고등학교 동창들도 여럿 참석하겠다.

그때 윤슬을 ‘외면’했던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연히 모두 신아의 편에 설 테지.

윤슬은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다.

누가 봐도 함정인 자리였고,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속에서 딱히 반가운 사람은 없었다.

불편했고, 마음이 괜히 답답했다.

그냥 해장국만 전해주고 조용히 나올 생각이었다.

약속된 장소 앞에 도착한 윤슬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마음을 다잡고 문을 두드렸다.

몇 초쯤 지나 문이 열렸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문을 연 사람은 부강현이 아니라 하얀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화사하게 웃는 신아였다.

“윤슬아! 왔구나! 얼른 들어와, 다들 널 기다리고 있었어.”

신아는 마치 동화 속 공주님처럼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윤슬의 가슴 어딘가를 서늘하게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신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윤슬의 시야에 들어왔다.

푸른빛이 묘하게 일렁이는, 낯설지 않은 모양.

며칠 전, 강현이 ‘루미에르 바다’라고 부르며 고심 끝에 골랐던 바로 그것다.

‘역시, 선물한 사람이 신아였구나.’

윤슬이 이제 알게 된다.

“아니야, 난 해장국만 전해주러 왔어.”

윤슬은 담담하게, 차가운 톤으로 말했다.

“윤슬아, 우리 2년 만에 보는 건데, 이렇게까지 거리 둘 필요가 있어? 나, 강현이 일은 정말... 다 잊었어. 그땐 우리 둘 다 어렸잖아.”

신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자기가 먼저 상처받은 사람인 양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연기, 윤슬은 이제 정말 질릴 만큼 봤다.

‘또 시작이네.’

그리고 속마음엔 짜증과 피로가 스며들었다.

‘피해자 코스프레. 이제 좀 그만해.’

말없이 신아 옆을 지나가려던 순간, 신아가 앞으로 다가서며 해장국이 든 보온병 뚜껑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움직였다.

“들어오기 싫으면, 내가 대신 전해줄게.”

신아는 여전히 다정한 말투였지만, 손끝을 자연스럽게 보온병 뚜껑을 누르고 있었다.

그 작은 엄지손가락의 움직임 속에, 윤슬은 숨겨진 의도를 느꼈다.

‘넌 여기 들어올 자격 없어.’ 은근하고 교묘한 선 긋기였다.

윤슬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순순할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해.’

그래도 괜히 더 엮이기 싫어 윤슬은 보온병을 건네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신아가 제대로 받지 않은 보온병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뚜껑은 완전히 열리면서 끓는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은 순식간에 흥건해졌고, 신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꺄악! 아, 다리야!”

그 소리에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문 쪽을 바라봤다.

강현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 사이, 신아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소윤슬, 국도 하나 제대로 못 드냐?”

강현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무릎을 꿇고 앉아, 고급 수트를 벗어 신아의 종아리에 튄 국물을 닦기 시작했다.

“나... 그게...”

윤슬이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신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현아... 윤슬이를 탓하지 마... 내가 제대로 안 받은 거야... 내가 미안해...”

그녀는 울먹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작고 여린 체구가 떨리는 것 같았다.

강현은 바닥의 보온병을 집어 들고, 뚜껑을 들여다본 후, 바로 고개를 들어 윤슬을 노려보았다.

“뚜껑엔 깨진 데가 없어. 그런데 이게 어떻게 열렸을까? 신아가 놓친 걸까, 아니면 네가 일부러 열어뒀던 걸까?”

윤슬은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뚜껑을 바라봤다.

뚜껑은 단단하고 무거운 구조라 웬만해선 열릴 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건 너무도 ‘말끔히’ 열린 상태였다.

‘설마... 일부러?’

“열어 둔 거 아니야. 설령 그랬다면 내가 들고 오는 동안 이미 다 쏟아졌겠지.”

윤슬은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강현의 눈빛은 이미 믿을 의지가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거잖아. 변명 좀 그만해.”

‘역시 저 사람은 처음부터 나를 믿은 적이 없어.’

강현은 언제나 윤슬을 ‘수단’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부태기 회장을 설득한 것도, 신아를 떠나게 한 것도 다 윤슬이 꾸민 일이라 믿었다.

강현은 보온병의 뚜껑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신아를 안아 올렸다.

가녀린 두 팔이 남자의 목을 감았고, 신아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강현아... 근데... 윤슬이도... 발등에 국이 튄 것 같아...”

강현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보였다.

윤슬의 발등 위, 벌겋게 달아오른 자국.

넓게 퍼진 국물이 스타킹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남자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잠깐... 아주 짧게 망설이는 기류가 스쳤다.

하지만 그건 고작 1초.

‘그래봤자 자업자득일 뿐이야. 이런 일을 꾸미지 않았으면, 저런 일도 없었을 테니까.’

강현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고, 팔에 안긴 여자를 더 꽉 안으며 말했다.

“모델이 다리를 다쳤잖아. 그게 훨씬 더 큰 일이지.”

“저 사람... 죽진 않을 거야. 알아서 병원 가겠지.”

그 목소리는 냉랭했고, 감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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