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제4장: 잿빛 까마귀의 유산, 그리고 영면 붉은 흙먼지가 날리던 아프리카의 지평선을 등진 빅토르의 여정은, 뼈를 깎는 듯한 고통과 고독의 연속이었다. 작열하던 태양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지중해의 비릿하고 짠 바닷바람이 밀항선 밑바닥의 썩은 널빤지를 때릴 무렵부터, 사냥꾼의 핏속에 잠들어 있던 서늘한 감각은 점차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그는 동유럽의 험준하고 축축한 산맥들을 절뚝이는 다리로 묵묵히 넘었다. 남에서 북으로 북상을 거듭할수록 대기의 온도는 급격히 곤두박질쳤고, 하늘을 짓누르는 구름은 검붉은 빛깔에서 무거운 납빛으로 색채를 잃어갔다. 유목민의 푸른 베일(타겔무스트)과 얇은 가죽 코트는 이미 매서운 북풍을 견디지 못하고 찢겨나간 지 오래였다. 대신 그의 어깨 위에는 사냥한 야생곰의 두꺼운 털가죽이 눈보라를 막기 위해 무겁게 얹혀 있었다.마침내 빅토르의 발길이 당도한 곳은, 세상의 모든 온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흑한(極寒)의 땅이자 거대한 발테리아 제국의 심장부가 똬리를 틀고 있는 주도(主都),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였다.이곳의 겨울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거대한 백색의 야수와도 같았다. 대기를 찢으며 몰아치는 시베리아의 눈보라는 수만 개의 미세한 유리 조각처럼 빅토르의 거칠어진 뺨을 난도질했다.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허연 입김이 수염 끝에 엉겨 붙어 고드름처럼 얼어붙었고,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이찬 얼음장 같은 공기는 기관지를 날카롭게 긁어댔다.무엇보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는 빅토르의 망가진 육체에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과거 이곳 제국의 지하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박살 났던 왼쪽 무릎 관절은, 영하의 기온 속에서 뼛속의 골수까지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통증을 토해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부서진 뼛조각들이 살을 찢는 듯한 마찰통이 전신을 강타했지만, 빅토르는 눈보라 속에서 짐승처럼 턱을 꽉 깨문 채 묵묵히 기형적인 발자국을 눈밭 위에 새겨 나갔다.잿빛 안개와 거센 눈보라 너머로, 이윽고 거대한 제국의 수도가 그 오만하고도 웅장한 위용을 드러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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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3장: 사막의 신기루, 기만적인 안식 사바나의 붉은 흙바닥이 점차 하얗게 탈색되며 끝없는 모래의 바다로 이어지는 사막의 초입. 정오의 태양은 모든 수분을 증발시키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다.미세한 유리 조각 같은 모래알들이 사나운 열풍을 타고 날아와, 찢겨나간 빅토르의 복부와 어깨의 열상(裂傷) 위로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끓어오르는 모래밭 위로 아무런 가림막 없이 내던져진 탓에, 사막의 태양은 자비 없이 그의 남은 생명력을 바싹 말려버리고 있었다. 입술은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고, 고철 같은 왼쪽 다리는 이제 감각마저 상실해 버렸다.흐려지는 동공 위로 썩은 고기를 탐하는 사막 독수리 떼의 그림자가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모든 고통이 마비되고 지독한 갈증마저 잊혀갈 무렵, 빅토르는 이 핏빛 생애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죽음의 안식이 자신을 데려가려 함을 느꼈다.바로 그때였다. 열기로 기괴하게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뚫고 한 인영(人影)이 다가왔다.푸른 천으로 머리와 입술을 가린 채, 맑고 단단한 눈동자만을 빛내고 있는 젊은 여인. 생명의 흔적을 찾아 척박한 길을 횡단하던 유목 부족 '알 하리브'의 딸, 아미라(Amira)였다.그녀는 피비린내와 짐승의 악취가 진동하는 참혹한 광경을 발견하고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온몸이 찢겨나가 피투성이가 된 거구의 사내. 사막의 미신대로라면 악령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아미라의 맑은 눈동자에는 두려움보다 깊은 연민이 먼저 차올랐다. 그녀는 주저 없이 다가와 가죽 물통의 마개를 열었다."살아야 해요. 죽음에 굴복하지 말아요."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부드러운 이집트어 억양으로 속삭이며, 거칠게 갈라진 빅토르의 입술 위로 미지근한 물방울을 흘려보냈다.물 한 모금에 밴 광물질의 쓴맛. 그것은 메말라가던 빅토르의 세포를 억지로 찢어발기며 깨우는 날카로운 생명수였다. 아미라는 땀범벅이 된 채 가녀린 어깨로 짐승처럼 무거운 빅토르의 거구를 부축하고, 기어코 모래 언덕 너머의 오아시스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빅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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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2장: 철축단애(鐵軸斷崖), 부서진 육신으로 벼려낸 칼날 페테르부르크의 흑한(極寒)은 그저 온도가 낮은 것이 아니라, 피부 밑 혈관을 얼어붙게 만드는 폭력적인 기상 현상이었다. 네바 강의 살얼음을 깎아내며 불어온 칼바람이 황궁의 육중한 대리석 기둥을 때릴 때마다, 빙결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은 둔탁하고 기괴한 마찰음을 토해냈다. 황금빛 돔과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조각들로 치장된 지상의 본성과 달리, 빅토르가 향한 황궁 가장 깊은 곳의 ‘황실 움브라 통제국(Umbra Control Bureau)’은 짙은 음습함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빛이 온전히 닿지 않는 화강암 계단에는 벽면에서 스며 나온 습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시커먼 살얼음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탁한 가스등이 헐떡이며 내뿜는 매캐한 석탄 냄새와 오래된 양피지들의 묵은내, 그리고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비릿한 피 냄새가 환기되지 못한 채 묵직한 공기 속에 진득하게 녹아 있었다. 빅토르의 투박한 구두 굽이 얼어붙은 석재 바닥을 짓누를 때마다 울리는 파열음은, 이 거대한 지하 건축물이 살아 숨 쉬며 침입자의 온기를 착취하는 괴물의 내장처럼 느껴지게 했다. 어둠의 피조물들을 감시하고 사냥꾼들을 통제하는 제국의 은밀한 기관이었다.통제국의 수장이자 움브라 계 특별 관리관인 ‘바실리 카라조프(Vasily Karazov)’는 탁한 가스등 조명 아래서 거만한 표정으로 빅토르를 맞이했다. 빅토르는 그에게 어떠한 예의도 갖추지 않은 채, 자루의 끈을 풀어 집무실의 매끄러운 탁자 위로 내용물을 쏟아냈다.툭, 데구르르.은탄환에 미간이 박살 난 채 흉측하게 일그러진 머리통 하나가 굴러나왔다. 재로 바스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특수 주술이 걸린 은가루를 잔뜩 뿌려둔, 볼코프 백작의 잘린 수급이었다. 바실리는 불쾌한 피비린내에 미간을 찌푸리며 비단 손수건으로 코끝을 가렸지만, 이내 서늘한 눈빛으로 수급의 이목구비와 수배 서류를 꼼꼼히 대조했다. 특유의 기형적인 송곳니와 야성의 골격. 동유럽 변방을 어지럽히던 움브라 계의 깡패, 볼코프 백작이 틀림없었다."수고했군, 추적꾼. 제국의 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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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제1장: 제국의 족쇄와 꺾인 긍지 유럽 대륙의 동쪽 끝, 문명의 따스한 불빛이 미처 닿지 못하고 짙은 안개와 톱니바퀴처럼 날카로운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변방의 땅. 그곳에는 한낮의 태양조차 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회백색 구름 뒤로 숨어버리는 척박하고 음산한 협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흑회색 절벽의 가장 높은 꼭대기, 마치 병든 대지에 박힌 거대한 야수의 송곳니처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한 성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혹독한 풍파에 시달려 외벽 곳곳이 허물어지고, 검푸른 이끼와 가시넝쿨이 죽은 자의 혈관처럼 기괴하게 얽혀 있는 그 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절벽 아래 웅크린 숲과 계곡 전체에 숨 막히는 공포를 흩뿌리고 있었다.본래 이 성의 주인이었던 오만한 인간 영주의 비명이 알현실의 대리석 바닥을 붉게 적시며 끊어진 지도 벌써 수백 년이 지났다. 굳게 닫힌 거대한 철문을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와 단숨에 왕좌를 빼앗은 새로운 주인은, 어둠의 세계 '움브라(Umbra)'에서 건너온 악귀, 볼코프 드라큘라 백작이었다.그는 고상한 귀족 흉내를 내며 와인잔에 피를 담아 마시는 여타 고위 악마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아한 주술 대신 짐승 같은 완력과 원초적인 폭력성으로 먹잇감을 짓밟는 무법자이자, 고스트 계의 깡패. 귀찮은 규율과 사냥꾼들의 눈을 피해 이 척박한 변방의 요새에 둥지를 튼 그는, 찢겨나간 인간 가문의 문장 위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밤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벼랑을 타고 내려오는 붉은 눈의 괴물이 되어 있었다.태양이 핏빛 노을을 거두고 뼛속까지 시린 한기와 함께 짙은 어둠이 계곡을 집어삼키는 시간. 죽은 듯 고요하던 성탑 꼭대기에서 거대한 박쥐 형상의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달빛조차 두터운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춘 칠흑 같은 심야, 비로소 볼코프 백작의 진짜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그는 움브라를 주름잡던 무법자라는 악명에 어울리지 않게, 사냥의 방식만큼은 철저히 은밀하고 야만적이었다. 귀족적인 최면으로 사냥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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