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다인아? 듣고 있어?”연다인은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에 임슬기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그럴 리 없어! 그년은 이미 죽었어. 살아 돌아올 리가 없잖아.’하지만 김현정의 묘비를 찾아갈 정도로 가깝고 진승윤의 약혼녀 자리까지 단번에 차지한 여자라면... 도저히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지난 4년 동안 연다인은 줄곧 배정우와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배정우의 태도는 해마다 싸늘해졌고 지금은 아예 자신을 죽일 듯 증오하고 있었다.그러던 중 그가 해외로 나갔다는 소
‘다른 사람?’임슬기는 의아한 눈빛으로 진승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석지헌 말하는 거야?”“석지헌?”진승윤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그 사람이 석지헌이야?”“응, 해외에 있을 때 알게 됐어.”임슬기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그 사람이 날 구해줬거든.”“언제?”“유호준한테 납치당했을 때... 그 사람이랑 같이 납치됐었어. 유호준이 날 죽이려고 했는데, 대신 칼 맞고 병원에 실려 갔어.”진승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유호준이 풀려난 일, 아직도 이상한 점이 많아. 경찰이 왜 그렇게 갑자기
“그쪽이 왜 여기 있어?!”석지헌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배정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하린아,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네 약혼자도 아니잖아.”“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배정우가 불쾌하다는 듯 쏘아붙였다.“그래, 약혼자 아니야. 난 남편이거든!”“헛소리하지 마! 하린이는 너 같은 놈 인정 안 해!”“그럼 넌 대체 뭔데? 명인까지 쫓아와서 이유 하나 묻겠다고? 그런 순정 나는 못 믿겠는데?”배정우가 비웃듯 말하자 석지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석지헌은 길고 예쁜 눈매로 임슬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대답을 원하는
임슬기는 일어나 확인하려 했지만 배정우가 그녀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신경 쓰지 마.”임슬기는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이 남자는 언제 이렇게 고집불통에 끈질긴 성격이 된 걸까.“배정우, 당장 놔. 계속 이러면 경찰 부를 거야.”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배정우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소파 끝에 엎드렸다. 더는 막지 않았다.임슬기는 옷깃을 여미고 현관으로 걸어가 도어 뷰어로 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석지헌이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지?’잠시 망설이던 임슬기는 결국 문을 열었다. 다만 문을 활짝 열진
요즘 들어 일이 너무 많아서인지 임슬기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한밤중 그녀는 홀로 베란다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배정우와 결혼하기 전날 밤이 떠올랐다.그때 그녀는 몹시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렜다. 그래서 매일 밤 배정우와 통화를 하며 잠에 들곤 했다.대부분 그녀 혼자서 이야기하고 배정우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었다. 늘 그녀가 먼저 잠들어 버렸고 그는 그 상태로 전화를 끊지 않은 채,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건네주곤 했다.그 시절은 정말 달콤했다. 생각할 때마다 임슬기는 그때의 배정
웨딩드레스를 고른 뒤 진승윤은 임슬기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차에서 내리기 전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슬기야, 우리 결혼하면... 너 나랑 같이 살아야 할 수도 있어.”말을 하고 나서 혹시 그녀가 오해할까 싶어 진승윤은 황급히 덧붙였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안방은 네가 써. 난 다른 방 쓸게.”임슬기는 그가 긴장한 듯한 얼굴을 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승윤아, 우리 이제 같은 편이잖아. 같이 사는 게 당연해. 우리도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상의해야지. 결혼하고 나면 진성한이 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