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엘리사는 나를 스위스의 아주 은밀한 최고급 요양 센터로 보내 치료받게 했다.수면제를 한꺼번에 들이부은 탓에, 암으로 이미 쇠약해져 있던 내 몸은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다.하지만 엘리사가 제때 도착해서 나를 구해 냈다.그날, 나는 기억하고 있다.언제나 우아하고 강인했던 코르시카 집안의 안주인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으며, 나와 돌아가신 내 부모님에게 참회하던 모습을.하지만 그런 일들은 이제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뇌 속의 종양은 깊은 곳에 묻힌 폭탄과도 같았기에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아버지가 남긴 반지가 부서졌다는 것이었다.나는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주워서 벨벳 상자에 담아 두었다.그리고 아무리 맞춰 보아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치료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로렌초가 결국 이곳까지 찾아왔다.나는 엘리사 여사가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았다.몇 달 만에 본 로렌초는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턱에는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이 남아 있었고 두 눈에는 핏발이 가득했다.예전의 날카로움과 냉정함은 어느새 깊은 피로감과 조심스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키아라....”병실 문 앞에 선 로렌초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약혼은 이미 깨졌어. 이제 우리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만 남았고. 그런데 또 왜 온 거야?”나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말했다.몸이 약해진 탓에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로렌초가 달려와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로렌초의 팔이 쇠사슬처럼 나를 꽉 조였다.마치 나를 뼛속까지 끌어안고 자기 살과 핏속에 녹여 버리려는 것 같았다.꾹 눌러 참던 울음은 끝내 무너져 통곡으로 변했고, 뜨거운 눈물이 내 환자복을 흠뻑 적셨다.로렌초는 흐느끼다가 끝내 목 놓아 울었고,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파혼 안 해. 우리 파혼 못해... 우리 영원히 함께하기로 했잖아. 잊었어?”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갑작스러운 로렌초의 멘붕이 낯설고 어리둥절했다.로렌초가
로렌초는 병원으로 돌아갔다.로렌초를 보자, 소피아의 눈에 생기가 돌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로렌초, 나를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소피아가 팔을 끼려고 다가왔지만 로렌초는 차갑게 피했다.소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더 이상 예전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고, 그저 차갑게 소피아를 살피는 시선뿐이었다.“네가 자살 시도한 거, 정말 키아라가 몰아붙인 거야?”소피아는 로렌초가 다시 이 일을 물을 줄 몰랐는지 억지로 태연한 척했다.“당연히 그 여자 때문이지! 로렌초, 남의 말을 믿으면 안 돼. 그런 여자는...”“알아봤어.”소피아의 말을 끊는 로렌초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그저 깊은 실망과 피로만이 담겨 있었다.“키아라는 너와 아무런 직접적인 연락도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몰아붙였길래, 내가 성당에 가기로 한 그날에 딱 맞춰서 자살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는 거야?”“의사가 네 혈액 속 약물 농도는 생명이 위험해질 수준이 전혀 아니라고 했어. 이번 자살 시도는 차라리 치밀하게 짜 놓은 연극 같다고 말이야.”로렌초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마지막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그 순간 로렌초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웠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어설픈 거짓말에 눈이 가려져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로렌초는 그 자리에서 소피아를 해외로 내보내라고 지시했다.소피아에게 준 모든 재산을 회수하고, 그동안 쏟은 감정 투자에 대한 비용까지 청구하면서 기한 내에 갚으라고 했다.소피아는 울면서 떼를 쓰더니 다시 죽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하지만 로렌초의 마음은 더 이상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만약 소피아가 나타나 이간질하지 않았다면, 로렌초와 키아라의 사이는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로렌초는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도시를 거의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키아라의 흔적은 조금도 찾지 못했다.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다.결국 로렌초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코르시카 집안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어머니, 키아라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키아라가 사라졌어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요.”로렌초의 목소리에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엘리사는 그런 로렌초를 차갑게 한번 흘겨보았다.“찾을 필요 없어. 내가 코르시카 집안을 대표해서 너와 키아라의 약혼을 깼어. 이제 걔는 너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그 말이 쇠망치처럼 로렌초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것만 같았다.순간 현기증이 난 로렌초는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약혼을 깼다고요? 왜요? 이건 모르토 집안이 목숨으로 바꾼 약속이에요! 우리가 피로 맹세도 했고요!”엘리사 여사는 비웃듯 웃었다.“피로 맹세를 했다고? 넌 피로 맹세를 했다는 걸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그렇다면 그 뒤로 넌 대체 무슨 한 짓을 한 거야?”로렌초는 말문이 막혔고 이를 악문 채 거의 집착하듯 내뱉었다.“키아라가 동의할 리 없어요! 키아라는 절대로 파혼하겠다고 하지 않을 거예요!”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리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눈에는 실망과 아픔이 가득했다.“키아라가 먼저 요구했어.”그 한마디에 서재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 가며 내는 소리와 북처럼 쿵쾅거리는 자기 심장 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했다.로렌초의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키아라가 먼저 포기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5년 동안 치밀하게 33번의 사고를 꾸며 낸 것도 키아라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서, 그 지긋지긋한 약혼을 먼저 깨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그러면 모르토 집안의 은혜에도 떳떳하고, 자신의 마음에도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왜 지금은 조금도 홀가분하지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로렌초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소피아가 응급 처치를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났다.로렌초가 키아라의 목구멍에 억지로 들이부은 양이라면 두 시간 안에 사람이 죽기에는 아주 충분했다.로렌초는 부하를 거칠게 밀쳐 내고 뒤엉킨 걸음으로 병원을 뛰쳐나갔다.곧바로 차에 올라 소피아의 별장으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그동안 로렌초의 심장은 쿵쾅쿵쾅 쉴 새 없이 요동쳤다.너무나 조용했고 휴대폰에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키아라의 번호로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도 돌아오는 것은 받지 않는 신호음뿐이었다.별장의 문은 여전히 반쯤 열려 있었고 거실도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바닥에는 빈 약병과 반지 조각만 남아 있을 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로렌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의 울부짖듯 소리쳤다.“키아라?”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수면제를 반병이나 들이부은 키아라가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지?’로렌초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 버렸다.온갖 불길한 예감이 밀물처럼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로렌초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그 순간 이성을 잃고 잔인하게 행동했던 자신을 원망했다.본인이 부정하고 싶어도 키아라는 현재 자신의 약혼자였다.은인의 딸이었고, 어린 시절 로렌초가 한때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아이이기도 했다.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가라앉힌 뒤, 로렌초는 집안의 힘을 동원해 키아라를 찾으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마피아 보스의 약혼자가 실종됐다는 사실 자체가 추문이자 위기였기에, 대놓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소파에 주저앉은 로렌초의 두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키아라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아직 살아 있을까?’‘설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걸까?’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을 때, 병원에서 소피아가 깨어났다는 연락이 왔다.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로렌초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로렌초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서둘러 병원으
부하의 말이 끝나자 로렌초가 벌떡 일어섰다.로렌초의 이성은 순간 뚝 하고 끊어졌고 얼굴에는 공포만이 남았다.“키아라! 네가 감히!”로렌초는 이를 악문 채 나를 노려보았다.오랫동안 로렌초를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까지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로렌초는 내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뒤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지시해서 나를 거칠게 차에 끌어 태우고 소피아의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별장 안은 엉망진창이었다.소피아와 로렌초가 함께 찍은 사진은 모조리 바닥에 깨져 있었고, 소피아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숨도 거의 쉬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로렌초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비틀거리며 소피아에게 달려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소피아의 차가운 손을 꽉 움켜쥐었다.“소피아! 나를 봐! 나 결혼 안 해! 그러니까 눈 좀 떠서 나를 봐!”소피아의 손 옆에는 뜯어 놓은 수면제와 피가 묻은 유서가 놓여 있었다.유서에는 자살한 이유를 전부 내 탓으로 돌리는 내용과 함께, 나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로렌초의 동공이 분노로 흔들리더니 이내 몸을 홱 돌려 커다란 손으로 내 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약병 안에 수면제가 아직 절반 넘게 남아 있었고, 소피아가 실제로 먹은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로렌초는 미쳐서 날뛰는 짐승처럼 나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키아라!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나랑 결혼하고 싶다며! 내가 하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소피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소피아가 무슨 잘못을 했어?”증오로 가득한 그 눈빛이 얼음송곳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로렌초는 처음부터 나를 믿은 적이 없었다.“나는 자살하라고 한 적 없어. 나도 너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 로렌초 너를 따라간 건 아버지의 반지를 되찾으려던 것뿐이야.”나는 깨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고 점점 숨이 막혀왔다.솔직히 나는 잘 알고 있었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로렌초는 믿지
한 달 가까이 로렌초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아무래도 모든 시간을 소피아에게 쏟는 것 같았다.평소에는 글 하나 올리지 않던 로렌초의 SNS 계정에 소피아와 함께한 피드가 자주 올라오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평범한 연인처럼 오페라를 보러 갔고, 프라이빗한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로렌초가 예전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씩 함께했다.마지막으로 올라온 게시물에는 로렌초가 맞춤 정장을 입고, 소피아와 웨딩 사진을 찍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게시물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한 번쯤 보고 싶었거든.]나는 자조하듯 웃으며 좋아요를 누르고는 휴대폰을 껐다.다음 날, 로렌초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에는 마지못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키아라, 서류 챙겨서 한 시간 뒤에 성당으로 와.]로렌초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5년 동안 로렌초가 먼저 성당에 가자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거절 문자를 쓰려던 순간, 아버지가 남긴 반지를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떠나기 전에 적어도 그 반지만큼은 되찾아야 해.’나는 오래된 성당으로 향했다.익숙한 거리였고 5년 동안 수없이 오갔던 길이었다.그런데 이번에는 드물게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나는 탄흔이 가득한 돌기둥 아래에서 로렌초를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한참이 지나서야 로렌초의 모습이 보였다.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도 전보다 훨씬 강했다.오랜 시간 함께해 온 나는 알고 있었다.로렌초는 극도로 힘들 때만 담배를 피웠다.한 달 만에 나를 본 로렌초는 잠시 멈칫했다.“너 왜 이렇게 됐어?”병마에 끊임없이 시달린 고통과 항암 치료의 부작용 때문에, 한 달 사이에 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로렌초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금의 내가 틀림없이 아주 흉해 보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로렌초는 미간을 더욱 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