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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作者: 팝핑캔디
나는 안방 문을 잠근 채 점심 내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오후가 되자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고다은이 안방을 쓰고 싶어 했지만 이정숙이 말렸다고 했다.

“사모님 뒤에는 심씨 집안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집안 일은 사모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요. 그러니 너무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또...”

아주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곁을 지켜 준 분이었다.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말을 멈추고 내 표정을 살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주머니가 이어 말했다.

“임신하면서 드는 비용은 전부 사모님한테 내라고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어차피 사모님은 아이도 못 낳으니까, 이렇게라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경험하게 해 주자고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나는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다른 말은요?”

아주머니가 덧붙였다.

“사모님은 자식이 없으니 나중에는 사모님 재산도 전부 그 아이 차지가 될 거라고...”

참다못해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부모나 자식이나, 정말 계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집안이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주머니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그저 웃으며 평소대로 하시라고 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점심을 가져다줬다.

식사를 마친 뒤 침실 창가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호준이 고다은을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문득 5년 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후였다. 나는 부모님을 찾아가서 강호준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며 울고불고 떼를 썼다.

당시 부모님은 이미 마음에 둔 사윗감이 있었다.

도현그룹의 외아들 양재민이었다.

도현그룹은 강주시에서 손꼽히는 기업이었다.

양재민과 나는 어릴 때부터 이웃으로 지냈다. 부모님은 늘 양재민을 좋아하셨고, 자주 집에 불러 밥을 먹이셨다.

하지만 나는 양재민을 이성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강호준을 만난 뒤로는 온통 강호준 생각뿐이었으니, 양씨 집안과 정략결혼을 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나는 부모님께 늘 말했다.

우리 결혼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게 해 달라고. 양재민도 분명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부모님 생각은 달랐다.

양재민이 내게 마음이 없다면, 내가 놀러 나갈 때마다 그렇게 자신이 먼저 나서서 데리러 오고 집까지 바래다주겠냐고 하셨다.

사실 그때의 나는 양재민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관심도 없었다.

강호준을 처음 만난 건 대학교 개강 첫날, 학생회에서 신입 부원을 모집하던 자리였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같은 지원서를 집어 들었다.

강호준은 정중하게 사과하며 지원서를 내게 양보했다.

그날 강호준은 회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맑은 눈매에 키도 컸고, 웃는 모습도 무척 환했다.

손도 참 예뻤다. 원래 손이 예쁜 남자에게 유독 끌리던 나는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연히 만난 사이였는데도 어느새 강호준의 핸드폰 번호까지 외우고 있었다.

헤어진 뒤 그에게 메시저를 보내고 내 이름을 밝히자, 강호준은 망설임 없이 답장을 보냈다.

[심씨 집안 따님이셨군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길을 걷을 때마다 우연히 강호준과 마주치기를 바라곤 했다. 조금이라도 더 자주 만나고 싶어서 학생회에 들어가려고 애쓰기까지 했다.

첫 만남에 완전히 빠져 버린 나는 기꺼이 강호준만 따라다녔다.

결혼한 뒤에는 강호준이 먼저 회사 경영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편하게 집에서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제의를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부부라면 한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호준의 집안 형편은 그저 평범했다.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는데, 아내인 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부모님과 절친 주나연이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만류한 적이 있었다.

결혼 전부터 부모님은 강호준이 나와 결혼하려는 건 단순히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안의 재력을 보고 결혼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건 상관없다고 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강호준이 나와 결혼한 뒤, 이정숙과 강동식은 편하게 살게 됐다.

다니던 공장도 그만두고 매달 강호준이 보내 주는 생활비로 여유롭게 지냈다.

두 사람은 아들이 이제 회사 대표라며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자 강씨 집안 친척들이 너도나도 강호준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식들 혼처까지 강호준에게 알아봐 달라고도 했다. 되도록 강주시에서 이름 좀 있는 집안으로 알아봐 달라는 조건까지 붙이면서.

그래도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우리 집에 돈이 많으니 조금 더 도와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호준이 모르는 일이 하나 있었다.

약혼식 전날 밤, 양재민이 나를 찾아와 지분 양도 계약서를 건넸다.

양재민은 내게 계약서에 서명해 달라고 했다. 나중에 결혼 생활이 불행해지더라도 강호준을 떠날 수 있을 만큼 든든한 기반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진지하게 말했다.

“네 뒤에는 심씨 집안만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있어. 강호준이 너한테 상처를 주면, 나도 절대 가만 안 둬.”

나는 괜한 걱정을 한다며 웃어넘겼다. 어릴 때부터 내 안목만큼은 굳게 믿었다. 강호준이 나를 저버릴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제 와 돌아보니 다들 옳은 말을 해 줬다. 그때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내가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혼한 뒤 나는 매사를 모두 강호준에게 맞췄다. 그래도 강호준은 사사건건 흠을 잡았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 한다느니, 성질이 드세다느니, 친구들 아내처럼 살뜰하지 못하다면서 타박을 했다.

그때의 나는 강호준에게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 남편을 위해서 생활 습관까지 다 바꿨다.

강호준은 매일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있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되도록 집에 머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요리법을 찾아가며 날마다 다른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주나연은 내가 결혼하고 점점 나답지 않게 변한다고 했다.

쇼핑하고 사진 찍는 걸 제일 좋아하던 부잣집 아가씨가 남자 하나 때문에 자신마저 바꾸다니 놀랍다고 했다.

이정숙과 강동식은 내게 무척 만족해했다. 집안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강호준의 친척들도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다며 나를 칭찬했다.

그 집안에서 내 흠을 찾아내는 사람은 아마 강호준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줄곧 내가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강호준에게 나는 그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이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내가 뭘 하든 좋게 보였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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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의 결혼이 재가 되었다   제27화

    나중에야 알았다. 그 며칠 사이에 수많은 거래처가 강호준과 계약을 끊었고, 수백억 원의 위약금까지 물렸다는 사실을.강호준이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다 갚지 못할 엄청난 액수였다.강호준은 배상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내놨다.하지만 그에게 남은 재산이 얼마나 있었겠는가?불과 며칠 만에 강호준은 안하무인이던 대표에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받는 파산한 사업가로 전락했다.사업이 망한 뒤에도 강호준은 마지막 희망만큼은 놓지 않았다. 큰 병원이란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니며 검사를 받았다.하지만 어느 병원에서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이 냉정했다.그토록 오만하던 강호준도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고다은은 몰래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웠다. 그런 뒤 강호준에게 문자 한 통 남기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그래도 손가락에 낀 비둘기 알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라면 남자 친구와 한동안 먹고사는 데는 별로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내가 집에서 쫓아낸 강호준과 그 부모는 그 뒤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 편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집도 없이 궁핍하게 사는 걸 어떻게 견디겠는가?툭하면 부잣집 친척이라고 떠벌리던 세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무너져서 결국 각자 다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강호준이 내게 전화했을 당시에는 세원그룹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고 한다.무슨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대답이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꺾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비서가 보내 준 소식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그때 엄마의 말을 듣고 강호준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띵!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교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심서연 학생, 어제 제출한 디자인 과제가 정말 훌륭했어요. 한 디자인 회사에서 그 시안을 구매하고 싶다면서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다는데, 생각 있어요?][물론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답장을 보낸 뒤, 창밖의 연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5년의 결혼이 재가 되었다   제26화

    졸업한 지 오래됐지만, 다행히 그동안 그림 그리는 취미를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수업은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다.공부하는 게 강호준 가족들에게서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국내에 없어도 상황이 얼마나 엉망일지는 뻔히 짐작할 수 있었다.다만 양재민이 그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며 내게까지 피해가 오지 않도록 막아 주고 있을 뿐이었다.틈이 날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지난 세월 우리 사이에 쌓인 감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가족 같은 정이었을까?’‘우정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고민 끝에 결국 답을 찾았다.정말 사랑이었다면 이런 의문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다.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나는 평소처럼 한 폭의 유화 같은 풍경 속을 걸으며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국내 번호였다.출국한 뒤 번호를 바꿨고, 새 번호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누가 건 전화인지 짐작이 갔다.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피한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심서연, 드디어 찾았다.]역시 평생 잊지 못할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해도 그랬다.강호준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말해. 무슨 일인데?”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갑게 물었다.[SNS 실시간 검색어... 봤지? 요 며칠 뉴스에 나온 거 말이야.]강호준의 말투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예전의 오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응, 봤어.”부정하지 않았다.강호준이 그렇게 크게 소란을 피웠는데 못 봤다고 하면 거짓말처럼 들릴 터였다.[서연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강호준은 더 변명하지 않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사과했다.“너... 그렇게 애써서 내 연락처까지 알아낸 게 고작 그 말을 하려던 거였어?”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되물었다.강호준이 전화로 내게 사과하다니. 꿈에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잘못한 건

  • 5년의 결혼이 재가 되었다   제25화

    모든 일을 마무리한 뒤 양재민은 나를 데리고 해외로 떠났다.물론 휴가를 가는 건 아니었다.예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양재민은 내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디자인에도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다만 강호준 때문에 예술가의 꿈을 접었을 뿐이었다.게다가 나는 외동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경영을 배워서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다.강호준이 회사를 맡은 몇 년 동안 미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때마다 강호준은 계속 반대만 했다.강호준은 내가 속이 좁다며, 돈 많은 집 딸이라 유난을 떤다고 했다.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가망도 없는 공부를 해서 뭐 하겠느냐고 했다.나는 그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래서 공부는 계속 미뤄뒀다.강호준과의 일이 일단락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인생은 한 번뿐인데 꿈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룰 수도 있으니까.어제 양재민에게 넌지시 얘기했을 뿐인데, 그는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비행기에서는 간식과 귀마개까지 세심하게 챙겨줬다.내가 조용한 걸 좋아하고, 차나 비행기에 타면 곧잘 잠든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비행기 멀미가 났다. 그것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양재민은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다정하게 뒷정리를 도와줬다.비행기에서 내린 뒤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었다.비서에게서 온 메시지도 몇 개 있었다. 강호준이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회사 앞에서 난동을 부려서 취재진까지 몰려왔다고 했다.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양재민이 곧바로 핸드폰을 가져갔다.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몇 마디 당부하더니 곧바로 돌아와서 말했다.“앞으로 이런 골치 아픈 일은 나한테 맡겨.”짧은 한마디였지만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강호준과 결혼한 뒤 집안의 많은 일을 내가 직접 처리해야 했다.누군가에게 이렇게 배려받고 다정한 대접을 받아 본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강호준은 지난

  • 5년의 결혼이 재가 되었다   제24화

    “저 남자가 심서연이 몰래 만나는 남자예요! 저게 바로 바람을 피운 증거라고요! 불륜남이 집까지 찾아왔으니 이제 저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인간인지 아시겠죠!”양재민이 왔는데도 고다은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기세등등해져서 목청을 높였다.양재민은 체격이 건장하지만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임신한 자신에게는 절대 손대지 않을 거라는 걸 고다은도 알고 있는 듯했다.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법이었다.계속 말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누구도 자기를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상대로 고다은의 자극적인 말은 다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부추겼다.이웃들이 양재민을 보며 혀를 찼다. 사람들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고다은 씨, 여기 현관 앞에는 영상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전부 녹화되고 있어요.”“그런 거짓말을 퍼뜨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고요!”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재민은 당당하게 고다은 앞으로 걸어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양재민이 오른손을 꽉 쥐었다가 푸는 걸 봤다.이번에도 고다은이 그 점을 노리고 나선 셈이었다. 양재민은 임신한 여자에게 절대 손을 대지 않을 테니까.“심서연, 참 대단하다. 더러운 짓은 자기가 해 놓고 불륜남을 앞세워서 날 겁주려고 해?”양재민이 당당하게 맞서자 고다은도 조금 겁이 난 모양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를 바라봤다.“마침 당사자들이 다 있으니 한 번 기회를 줄게.” “둘이 무슨 더러운 짓을 하고 다녔는지 남들이 모르게 하고 싶으면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해. 안 그러면 온 동네에 다 퍼뜨릴 테니까!”고다은이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나를 봤다.벌써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천천히 고다은 앞으로 갔다.“고다은, 내 욕은 얼마든지 해. 하지만 양재민까지 건드리진 마.”짝!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높이 들어 고다은의 뺨을 힘껏 후려쳤

  • 5년의 결혼이 재가 되었다   제23화

    강호준은 아직도 내 곁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하지만 그 남자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집안이 이 도시에서 가진 영향력만으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날 나는 강호준과 부모가 울며불며 내 소유인 저택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관리사무소에도 연락했다.앞으로 세 사람을 우리 집 방문객 출입 금지 명단에 올려 달라고 했다. 누구든 다시는 우리 집 문 앞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잠깐 방심한 탓에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길 줄은 몰랐다.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집 밖이 소란스러웠다.처음에는 옆집이 이사라도 하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저택 밖으로 나갔다.고다은이 전단지 뭉치를 들고 밖으로 나온 이웃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바로 저 여자예요!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지만 속은 아주 썩어 빠진 여자라고요!”“온갖 비열한 수단을 써서 저랑 제 남자 친구 사이를 갈라놓고는,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비켜 주지도 않아요!”“남의 행복을 망가뜨린 저런 상간녀는 어딜 가든 손가락질받아야 해요!”“여러분이 좀 판단해 주세요! 제가 임신한 몸인데도 때리고, 저랑 배 속 아이한테 잡종이라고 욕까지 했다니까요!” “집에서는 남편을 붙잡아 놓고 밖에서는 다른 남자까지 만나고 다녀요!”“저렇게 뻔뻔한 여자가 어떻게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나는 그 광경을 보자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살면서 저렇게 대놓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처음 봤기에.고다은의 말은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충분했다. 이웃들이 줄곧 좋게 봐 주던 나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는 듯했다.“쯧쯧, 심씨 집안 딸이 저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네.”“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심씨 집안 아가씨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뒤에서는 저런 짓을 하고 다녔어?”“내가 진작 말했잖아. 그 큰 회사는 내버려 두고 맨날 집에 틀어박혀 살림만 하는 데는 다

  • 5년의 결혼이 재가 되었다   제22화

    “네, 네가 한 말, 전부 사실이야?”이 지경이 되고도 강호준은 양재민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요즘 의학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양수를 조금 채취해서 DNA 검사하면 돼.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양재민은 남의 망신을 구경하듯 강호준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고다은이 그렇게 네 아이라고 자신한다면 결백을 증명하려고 DNA 검사도 받겠지?”“검사만 할 게 아니라 너도 언제든 병원 가서 정액 검사 다시 받아 봐. 어쩌면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무정자증이 나았을지도 모르잖아!”나도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 고다은을 향해 웃으면서 격려하듯 거들었다.“고다은, 나랑 DNA 검사 받으러 갈래?”강호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릎걸음으로 고다은에게 다가갔다. 간절한 얼굴로 고다은을 바라봤다.“오, 오빠는 날 그렇게 못 믿어? 너한테 내가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나, 난 검사 안 받아! 그렇게 못 믿겠으면 여기서 헤어져. 오빤 오빠 행복이나 찾아!”고다은은 말을 마치자 벌떡 일어났다. 무릎을 꿇고 있던 강호준을 거칠게 밀치고 성큼성큼 저택을 나갔다.이미 모든 게 들통났다는 걸 고다은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끌려가 DNA 검사까지 받고 다시 망신을 당하느니 지금 제 발로 나가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그래야 조금이나마 체면이라도 지킬 수 있을 테니까.고다은이 떠난 거실에는 난장판이 된 흔적만 남아 있었다.강씨 집안 세 사람은 눈만 휘둥그레 뜬 채 서로를 바라봤다. 누구 하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러니까 이제 나한텐 아이도, 아내도, 회사도 없다는 거야?”강호준이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니지. 잃은 게 그것뿐인 줄 알아? 아주 특별한 선물이 하나 더 남았거든!”양재민이 나를 등 뒤로 감싸듯 보호하며 웃었다.“선물? 무슨 선물?”선물이라는 말에 강호준이 다시 기운을 차렸다. 들뜬 목소리로 양재민에게 물었다.양재민이 강호준을 보며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곧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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